박송남
대한민국의 프로레슬러. 한국인 및 한국계 외국인을 통틀어 북미 프로레슬링에서 가장 활발한 커리어를 보여줬던 레슬러.
정확한 데뷔전은 불분명하나, 1963년 4월 19일 "신진 거인"으로 소개된 박송남이 '백곰' 우기환을 상대로 37분만에 핀폴로 이겼으며, 21일에는 장영철을 상대로 한 헤비급 챔피언 매치에서 패배했다는 기사가 동년 4월 20일, 22일 경향신문 기사로 확인된다.
몇몇 주장에 따르면 장영철을 따라 대한 프로레슬링 협회에 들어왔으나, 김일의 귀국 이후 김일 파벌 하에 들어가면서 장영철과의 사이가 심각하게 틀어졌다고 전해진다. 장영철 파벌에 의해 산 속에 꽁꽁 묶여 버려졌다고도. #, #
북미 기록으로 확인되는 바는 1970년부터 김일과 태그팀으로 NWA 서부 지구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70년대 동안 NWA 산하의 미국 여러 단체에서 "The Korean Assassin"으로 활동하며 할리 레이스, 도리 펑크 시니어, 테리 펑크, 진 키니스키, 진 머독, 더스티 로즈, 락키 존슨, 밥 백런드 등 지역구 시대의 영웅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기억이 남아있으며, 특히 더스티 로즈와는플로리다를 중심으로 1970년대 후반에 걸쳐 퓨드를 펼쳤다. 기록에 따르면 1980년 텍사스 지구에서 커리어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활동한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으며, 1976년 안토니오 이노키와의 시멘트 매치가 주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후 당뇨병 투병을 하다 1982년 10월 24일 여의도 광장아파트 자택에서 39세의 나이로 별세.
오랫동안 한국 팬들에게는 잊혀졌다가 2000년대 한국으로 투어를 왔던 레이븐(프로레슬러)가 '한국인 레슬러 Pak Song'에 대해서 물어봤던 것이 알려지면서 매니아 층에게 다시 그 이름이 알려졌다.
[1] '朴松男'이라고 표기된 기사도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