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문

 


1. 개요
2. 생애
3. 그의 죽음에 대한 평가
3.1. 이재명 개인의 인식문제


1. 개요


朴元文 (1865년~1909년 12월 22일)
대한제국 말기의 인력거꾼이다. 1909년 12월 22일 명동성당에서 벨기에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이완용을 우연히 태우게 되었으며''', 같은 시각 이완용의 암살을 기도한 독립운동가 이재명에 의해 현장에서 자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2. 생애


1909년 12월 22일 박원문은 자신의 인력거에 이완용을 태웠으나 그를 기다리며 군밤 장수로 변장해있던 이재명이 나타났다. 이재명은 칼을 휘둘렀고 인력거에 타고있던 이완용의 허리와 어깨를 찔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인력거를 몰던 박원문은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한이 탑승객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가로막았으며, 이재명은 반사적으로 이를 방해꾼으로 인식, '''가로막던 박원문을 찌르고''' 다시 이완용을 공격했다.
부상을 당한 이완용은 대한의원[1]으로 옮겨져서 흉부외과수술[2]을 받아 목숨을 구했지만,이재명의 칼에 찔린 박원문은 '''결국 숨지고 말았다.'''
이재명은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고 경성공소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죽은 박원문에 대해서 유감이나 조의를 표명하지 않고 자신이 박원문을 죽인건 우연이였다는 사실만 강조하면서 "무지무능한 저 가련한 노동자를 일부러 죽이려고 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일본 법정은 박원문을 칼로 찔러 죽인 이재명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사건에 대한 상고는 기각되었는데, 재판소의 기각이유 가운데 박원문을 언급하는 부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력거꾼 박원문(朴元文)은 이완용의 위급을 구하기 위하여 피고의 흉악한 행동을 저지하고자 하자 피고가 그 방해를 배제하기 위해 인력거꾼을 살해한 것으로 피고에게 고의가 있는 사실이 명백하다.


3. 그의 죽음에 대한 평가


역사학자 박노자교수는 이재명에 대해 매국을 한 적도 없고 할 수도 없었던 평민 박원문을 찔러 죽이고도 그에게 별다른 사과나 유감을 표명하지 않은 행동을 비판했다.박노자 교수의 글에 의하면,법정에서 이재명이 박원문을 살해한 데 대해 '''''무지무능한 저 가련한 노동자를 일부러 죽이려고 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박원문에 대한 살해 의도가 없었음을 강변했다. 박노자는 이 공판 기록을 근거로 이재명이 반성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노자의 의견에 대한 반론도 있다.이재명 의사가 아무 상관도 없는 인력거꾼인 박원문을 죽이려고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건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다.박원문은 이완용에 대한 암살시도 중 우연히 그자리에 있어서 이완용을 대신해 칼에 맞은 것이었는데, 이 사건과 같이 행위자가 A를 살해하려고 했으나 방법의 착오로 B를 사망케 한 경우 죄책에 대해서는 오늘날에도 형법 학계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현재 대한민국 법원판례는 B의 대한 살인죄를 인정하나(법정적 부합설),학계에서는 A에 대한 살인미수와 B에 대한 과실치사의 상상적 결합을 인정해야 한다는 학설이 유력하다.(구체적 부합설)
그렇다면 이재명의 해당 진술은 박노자의 주장대로 뻔뻔하게 책임 회피를 하거나 반성을 하지 않는 태도라기보다는 자신이 박원문을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는 점에 대하여 사실 관계에 대한 해명을 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이는 변명이나 회피가 아니라 정당한 진술이자 변호에 해당하는 사항으로,자신의 의도에 없었던 것을 없었다고 피고인이 진술하는 것을 반성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만약 그렇다면 과실치사죄는 전부다 살인과 동등하게 처벌해야하고 정말로 죽일 의도가 없었는데 과실로 사람을 죽이게 된 사람이 고의가 아니였다고 법정에서 변호를 받는 것조차도 반성없는 파렴치범으로 욕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실제로 이재명 의사는 자신이 박원문을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즉,재판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박원문이 애꿎게 변을 당한 것은 아무리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해도 가해자로서 당연히 유감을 표해야할 사안이 맞지만 해당 장소가 법정이고 잘못된 죄목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는 과정이라는 것도 참작되어야 한다.살해 의도가 없었던 행각에 대해 잘못된 죄명으로 기소를 당한 상황에서 그렇지 않았다고 진실을 밝히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할수도 없다.더군다나 당시 일제가 이재명을 사형 선고한 죄목은 이완용에 대한 암살 미수가 아니라 박원문에 대한 살인죄가 더 크게 작용했다.암살 미수와 과실치사만으로는 사형 판결을 구형하기 어려운 일이었고,일제가 이 건을 악용하려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즉,이재명이 그 자리에서 유감의 뜻을 밝히거나 반성하고 있다고 해봤자 오히려 재판부에 의해 암묵적인 살해의도 인정으로 꼬투리를 잡혓을 가능성이 높고,변호사 안병찬과 이재명 역시 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박노자도 일제가 박원문의 죽음을 이재명의 사형 구형을 위한 도구로 악용했고 재판이 잘못되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즉,이재명이 유감을 표하지 않았다는 것과 재판 당시 어구 하나만 가지고 이재명이 반성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볼 수 있다.해당 장소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진위를 밝히고 변호하는 자리인 법정이었다는 점,그리고 기소 죄목 자체가 부당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것이다.
다만 그동안 이재명의 의거에 대한 후대의 기록에도 박원문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그리고 박노자가 비판하고 있는 부분 역시 이재명이 반성도 없는 나쁜 사람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와 대의를 위해서라면 소(小)의 희생은 눈감아버리는 인식에 대한 비판에 가깝다.실제로 해당 칼럼에서 쓴 김립 피살 사건에 대한 서술을 보면 이런 지적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해당 칼럼에서 박노자는 윤봉길의사에게 민간인 일본인들의 피해를 주장하며 이라크 민족주의자들의 반미테러 행각과 윤봉길의 의거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난하는 모습이 보이는데,실제로 홍커우 의거 당시 민간인 사상자는 기록된 바도 없으며 증거도 없고 오히려 해당 장소가 검열이 대단히 심해 민간인들이 함부로 오지도 못할 장소였단 것을 고려하면 대단히 근거가 빈약한 주장이다.윤봉길의 의거는 오히려 정확하게 일본군 거물들만을 노린 것이였다는 점에서 차별화되어 중국 당국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아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킨 "의거"로 평가되고 있기에 많은 공감을 얻기는 힘든 주장이다.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무작정 테러와 동급으로 취급한다는 점은 비판받을만하다,이 부분은 박노자 본인이 평소 좋아하는 박헌영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간것 같은데 박헌영의 이후 행적을 보면(...) 박노자의 주장은 더더욱 공감받기 힘들다.게다가 박노자는 정작 공산혁명에서의 폭력성은 긍정적으로 평가한 게 문제.

3.1. 이재명 개인의 인식문제


위에 언급된 건 어디까지나 정치적,법적 관점에서 본 것이고,이재명 의사 개인의 마음속에서 박원문의 죽음에 대한 반성이 진짜로 있었는지,있다해도 그게 과연 진지한 수준의 반성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무지무능한 저 가련한 노동자'''라는 표현 자체가 박원문을 지극히 하찮고 무가치한 존재, 신경쓸 가치조차 없는 존재로 깔아보는 시선을 드러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 시대상을 보자면 평소에 알고 지내는 사이도 아닌 인력거꾼을 방해물A 이상으로 신경쓰지 않았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니다. 독립운동가라 해도 결국 당대의 관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굉장히 긴박했다.그는 이미 칼을 꺼내들었고, 인력거를 탄 이완용은 그의 눈 앞에 있었다.절호의 기회가 온 순간에, 인력거꾼이 그의 앞에 있었다. 그때, 찌르지 않았다면 당연히도 그는 수감되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 상황에서 이것저것 다 고려하며 목적을 완수하기는 불가능했다는 점은 감안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완용 암살 자체는 실패했지만...... 물론 그 인력거꾼을 살해한 것은 정당화되어선 안된다. 그리고 이재명이 사이코패스까지는 아니었다고 해서,박원문의 죽음을 진짜로 진지하게 신경썼을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 이런 점들은 주의해서 생각하는게 맞을 것이다.
[1] 서울대학교병원의 전신.현재는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이다.[2] 이게 우리나라 흉부외과 수술 '''1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