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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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티코노프블라디미르(러시아어: Владимир Тихонов)[1]
박노자(朴露子, Пак Ноджа)
'''출생'''
1973년 2월 5일 (51세)
소련 레닌그라드
'''국적'''

'''학력'''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한국사학 / 학사)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 / 석사)
경희대학교 (철학 / 석사)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한국고대사학 / 박사)
'''직업'''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 교수
노동당 대표최고위원
'''정당'''
| '''노르웨이 적색당'''
'''가족'''
부모, 배우자, 슬하 1남 1녀
'''종교'''
불교
'''링크'''
박노자 블로그
오슬로 대학 학생들을 위한 사이트(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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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젊은 시절의 모습.
1. 개요
2. 한국에 오다
3. 성향
4. 비판
5. 저서
6. 선거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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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 출신 귀화 한국인. 2021년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한국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러시아어한국어, 노르웨이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여러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유대계 러시아인 가계로, 귀화하기 전의 러시아어 이름은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티호노프(Влади́мир Миха́йлович Ти́хонов)'이다. 한국에서 쓰는 필명은 한자로는 '朴露子'라고 쓰며 '러시아 사람'이란 뜻이다. 성은 대학 시절 은사인 박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교수의 성을 땄다. 귀화 후의 성명도 그냥 '티코노프블라디미르'이다.[2] 외국에서는 그냥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본래의 러시아어식 이름을 사용하며, 오슬로 대학 홈페이지에도 그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동방학부 조선학과를 졸업하였다.[3] 원래는 인도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소련 말 인도학과는 정신의 안녕을 찾으려는 인문학적 지향을 가진 젊은이들이 몰리는 최고 인기 학과였으며 빽 없이는 입학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춘향전으로 인상 깊었던 조선학과를 썼다고 한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북한의 다른 서적들은 소련에서 코미디 취급을 받았지만, 춘향전만큼은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로 돌아가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대학원 한국고대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대한민국에 돌아왔다. 1995년에 대한민국 바이올린 연주자 백명정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1996년 경희대학교 러시아어 전임강사로 근무하다가 2000년 노르웨이로 건너가 오슬로 대학교 동양학과 교수로서 근무 중이다. 2001년에 대한민국으로 귀화하였다.

2. 한국에 오다


이방인의 눈으로 보고 체험한 대한민국의 부조리에 대해 다룬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한국에서 대박난 이후로, 《한겨레》에서 정기적으로 연재, 기고를 한다. 한국 여성과 결혼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글을 쓸 때는 외국 출신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급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말하는 것은 러시아 억양이 아주 강하게 남아있어 토종 한국인은 듣기가 다소 거북스러울 정도로, 활자로 그를 먼저 접한 보통 사람들은 목소리를 듣고 확 깨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4] 그 외에도 외국어 고유 명사나 외래어의 한국어 표현에 익숙지 않은 모습을 종종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외국 출신임에도 한국어를 잘한다. 사실 한국어만 잘하는것이 아니라 일본어와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인용하는 자료들도 일반적인 한국 학자들이 인용하는 것보다 폭이 넓고 다양하다. 강연회에 가보면 한국인들도 어려워하는 고급 어휘와 한자성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심지어 ''''이황를 읽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애창곡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라지만 음주가무 중에서 가무엔 능하지 못하다고. 그리고 취미가 나무하고 말하기라고 한다.

3. 성향


본인의 주장으로는 탈국가, 탈민족을 주장하는 아나키스트적인 사회주의자이며 평화주의자라고 자칭한다. 그 외에도 불교신자이며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다만 민주노동당의 몰락 이전과 이후로 발화 방식이 많이 다르다. 그 전에는 서구 좌파의 입장에서 한국의 전근대성을 비판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거의 사회주의자적 성향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다.
노동당의 당원으로 본래 민주노동당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으나 2008대선 이후 NL(자주파)과의 문제로 진중권, 홍세화 등과 함께 분당을 주장하였다. 2012년 총선에 '티코노프블라디미르'라는 이름을 써서 진보신당의 6번째 비례대표로 출마하였다.[5]
근대 비판주의자로 현대 대중문화의 폭력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정작 자기 아들은 그 폭력적인 문화를 좋아해서 걱정이라고 한다. 한국의 민족주의 풍조와 관련해선 제국주의와의 위험한 이종교배를 우려하는 편으로, 한국의 민족주의를 본래 의미보다는 나치와 비슷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강자 중심의 국가주의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할 것을 주장한다. 2002년 당시의 월드컵 열기를 '광기'로 표현했다. 또한 징병제 반대론자로서 한국의 군사 문화에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군사화된 사회에 비판적인 편이다. 본인부터가 러시아군의 그 악명높았던 가혹행위를 익히 알고 있던 러시아인이었기에 한국군병영부조리, 가혹행위도 신랄하게 비난한다. 그의 저서에 따르면, 그가 어린 시절 책을 읽느라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하면 그의 할머니가 "대학에 못가면 군대에 끌려간다. 너같은 약골은 군대에서 살아남지 못해."라고 겁을 줬었다고 한다.[6] 그에 따르면, 한국사회가 심지어 종교의 교단에서 조차 근대화되면서 군사주의적 경향을 띤 것은 일면 이해가 가지만 서글픈 것이며, 한국 불교계의 어떤 승려도 종교인이 군사훈련을 받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하였다.[7][8]
노르웨이에서는 중도좌파 노동당에서 떨어져 나온 사회주의좌파당의 당원이었으나, 사회주의좌파당이 노동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그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개입을 한 것 때문에 탈당했다. 현재는 혁명적 좌파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적색당 당원이다. 그의 급진적 좌파 성향에는 젊은 시절을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보냈다는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박노자는 진보적 국가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 기준으로도 상당히 먼 좌파에 속한다.
2009년 10월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노벨평화상을 수상하자 노벨 전쟁상, 그리고 사민주의자들의 순진한 세계정치론 으로 비판했다. 2014년 6월에는 세월호 사건을 '잘못된 사회구조에 의한 학살'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2015년 6월에는 한겨레 기고문에서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우리 최대의 문제, 반사회적 지배층
2015년 11월 파리 테러에 대해서는 사실상 '국가체 후보생'이나 나름없는 이슬람 국가의 프랑스에 대한 폭력이나 프랑스의 시리아 폭격이나 민간인 학살이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으며, 전자만을 슬퍼하고 후자에 대해서 관심이 덜 가는 것은 체제 논리가 그렇게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평화를 위해서는 유럽 국가들의 중동 침략부터 먼저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스탈린주의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박노자 본인이 반박하기도 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뭐라고 부정적으로 말하기가 힘듭니다. De mortuis nil nisi bonum이라고, 망자에 대해 비판할 일은 없죠. 특히나 감옥에서, 암으로 돌아가신 분 같으면...뭐라고 하기 전에 일단 그를 불법 체포, 구속하여, 병보석도 불허한 관헌의 태도부터 비판함이 정당할 겁니다. 의견을 가지고 사람을 잡아 하옥시키는 것은 개명한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더군다나 어차피 중국에서 동정을 얻기 어려운 의견이고, 그 문제점이 자명한 의견인데, 그냥 가만두는 것은 당으로서는 맞기도 하고 더 이롭기도 했을 겁니다. 劉暁波 교수를 하옥시키는 것은 분명히 당의 범죄이자 정치적 오류죠.

- 2017년 7월 16일 박노자 페이스북

류샤오보를 구금했던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스딸린주의 국가는 왜 하필이면 강제이주라는, 다수에 대한 야만적인 폭거를 저질렀을까요? 고려인도 당했지만 총잡아 강제이주를 당한 소수자 집단들은 스딸린 시기에 20개나 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은 있었지만 하나의 기본적 배경으로 깔려 있었던 것은 개발주의적 체제의 "통제" 집념이었습니다. 조상이 일꾼 땅에서 자연스럽게 세거하여 월경해서 만주, 조선에서의 동족들과 계속 왕래가 잦은 소수자를, 개발주의 권력이 완벽하게 통제, 감시하지 못합니다. 한데 뿌리가 뽑혀 그 어떤 월경적 소통도 불가능한 중앙아세아 내륙지방으로 강제 이주 당하면 그 군, 그 현의 내무성, 보위부의 완벽한 콘트롤 아래 두어지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소수자들으 문화, 언어를 파괴하면서 그 소수자들에 대한 "통치성"을 높이려 했던 겁니다.

절대 반복돼서 안될 야만 중의 야만, 강제이주의 폭거입니다...

- 2017년 10월 14일 박노자 페이스북

스탈린 시절 소련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의 극우주의를, 모조품이라고 비판했다.
전반적으로 그의 정치성향은 '''노르딕 스타일의 좌익~극좌'''에 가깝다. 실제로 그의 정견이 그가 소속된 적색당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4. 비판


스스로는 아나키스트적인 사회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비스탈린주의적[9] "마르크스주의자"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 모두 현 국가체제를 부르주아 질서의 수호자로 파악하고, 궁극적으로 국가가 사라져야 한다는 반국가주의적 요소는 공유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10] 언급한 노동계급이 국가를 통제하는 일시적인 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바쿠닌은 노동자 출신인 이들이 권력을 장악한다고 해서 노동자 국가라고 표현하는 것은 비유물론적인 발생학적 오류에 불과하며, 권력이 그들을 타락하게 할 것이고, 노동자 기관은 지배 기관이 되며, 노동자 대표는 그대로 새로운 계급이 된다고 반박했다.
역사에서는 실제로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에 철저한 국가주의, 권위주의 논리를 주입시키고 그 입장에 따라 반대파인 아나키스트 세력을 혁명 과정에서 학살한다. 볼셰비키 혁명이후 마르크스주의자, 공산주의자라는 말은 사실상 레닌주의자를 의미하게 되었고(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후 마르크스주의자와 아나키스트들은 화해할 수 없는 길을 걷게된 것이다. 말하자면 본래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국가를 비판할 수는 있으며, 그 정도 비판하는데 아나키즘까지 필요 하지도 않다는 말이다.[11]
만약 그가 아나키즘 운동이 활성된 나라에서 논객활동을 했다면 그가 정당 활동을 하는것 만으로도 아나키스트들한테 국가주의자라고 비판판았을 것이다.[12] 소련 뿐만 아니라 레닌주의 혁명가들이 권력을 장악한 곳은 어디든지 아나키스트들은 숙청 당했다. 이런 일은 러시아, 중국, 쿠바등 모든 지역에서 동일하게 일어났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일부 아나키스트들이 좌파 단결(Left unity)은 장기적인 자살행위라고 믿게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는 국가자본주의론을 부정하는데[13] 이는 국가없는 사회주의(stateless socialism)의 정통성을 버리는 아나키스트 입장에서는 매우 반동적인 주장이다.
아울러 그의 발언과 글들에는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표현이 많이 있고 근거없는 음모론도 굉장히 좋아해서 자주 부풀려 써먹는다. 특유의 과격한 사상이 사실을 잠식하기 때문에 학계에 대해서도 말을 함부로 하긴 하는데 일례로 북한학의 거장인 브라이언 마이어스를 페이스북을 통해서 비방하기도 했지만 정작 비방 근거가 박노자 특유의 왜곡된 파시즘관 등이라서 정치외교학 전공자들에겐 가루가 되도록 씹혔다.[14] 자세히 설명하자면, 마이어스 교수의 저서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에서 북한의 극우민족주의가 일제시대 황국신민 개념을 이어받은 것이라는 지적(요약기사)을 한 것에 대해, 전공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진영논리만 가지고 비방을 했으니 조소를 들을 만 했다. 브라이언 마이어스 교수의 책이 종종 극우 진영에서 오용되는 것을 비판하는 정도로만 했다면 모를까.
그의 사상이 굉장히 극단적이라는 이유로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파 성향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좌파 성향인 사람들조차도 박노자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를 극도의 반미국까 내지는 모두까기 인형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한국인임에도 혐한으로 취급하는 의견도 있는데 일부러 귀화한 다음에 깨시민 행세 하는 거 아니냐는 게 이유다.
가끔 지나치게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특정 사건의 범인들에 대하여 옹호적인 칼럼을 쓸때가 있는데 특히 군이 개입한 사건일 경우엔 더더욱 이런 논지가 심화되는 편이다. 이런 논지의 칼럼은 박노자 본인에 대한 호불호와 관련없이 비난받는다. 예를 들면 아덴만 여명 작전을 비난하는 칼럼에서는 무조건적인 인간애와 생명중시를 위시하여 한국도 옛날부터 외세에 시달려왔으니 소말리아 같은 못 사는 나라를 보고 해적들도 이해해줘야한다는 논리를 보여줬다. 소말리아 해적과 같은 범죄자를 양산하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게 아니라 그 범죄자가 검거된 것을 기뻐했다는 이유만으로 "외세에 시달려본 한국인들은 과연 그들의 아픔을 약간이나마 이해해줄 만한 아량마저도 없는 것인가?" 라고 국민들을 비난하여 큰 비판을 받았다. 이때문에 감정적 공감대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는 비난까지도 받았다. 박노자는 범죄를 합리화하려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단지 '해적들이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검거에 안도하는 사람들 조차도 비난하여 문제가 되었다. 이 분야의 최고봉은 한국전쟁의 전범인 박헌영을 띄워주는 주장들...[15]
2002년 시사잡지 한겨레21에 "나치 포로는 사람도 아닌가"라는 제목으로 미군을 비난하는 칼럼을 쓴 바 있는데 그 근거중 하나에 James Bacque라는 인물이 쓴 소설이 포함되었다. 미군이 독일군의 대량 항복 당시 포로 대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건 사실인데, 여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독일군의 대량 항복이 발생한것은 나치 독일의 패배가 확실시 되가던 전쟁 말기인데, 이당시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몰려오는 소련군을 막는 한편 서부전선에서는 서방측 연합군도 막아내야 했으나, 잡히면 굴라그행과 죽음을 면하기 어려운 소련군 대신에 그나마 인간 취급을 해주는 서방측 연합군에게 잡히거나 투항하길 원했다. 때문에 독일군은 소련군을 상대로는 죽기살기로 싸웠으나, 서방측 연합군에게는 기본적인 저항을 펼친 후 항복을 하거나, 아니면 자진 투항하는 경우가 많았다.[16] 특히 대전 말기에는 대다수의 피난민과 독일군, 국민돌격대등이 섞여 다량으로 연합군에게 투항하기 위해 이동했고, 이렇게 섞여 몰려드는 엄청난 수의 패잔병과 난민들을 감당할 수 없었던 미군은 대다수의 투항한 독일군을 무장해체 후 조사하여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으면 그냥 돌려보냈다. 이때문에 포로 대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는 포로를 학대하거나 가혹행위를 시키는등의 어떠한 ' 행위 ' 로서 대우를 제대로 한 것이 아닌 포로를 잡아 포로의 ' 신분 ' 으로서 대하지 않았다는 말이므로서 이는 당시 상황을 보면 그렇게까지 물고 늘어질 사항은 아니다. 오히려 박노자의 출신국인 러시아가 포로의 대우에 대한 논란에서는 더 많은 잡음이 들린다.
2009년 진보 인터넷 매체에 동북공정을 옹호하며 "한국경제 대안은 중국 영향권 편입"이란 주장을 하여 물의를 빚은 바 있는데, 해당 주장에 대해서는 박노자의 비판에 대한 재반박이 있다. 박노자 왈, “한반도가 중화권 안으로 흡입이 돼가는 것이 불가피한 과정으로 보는 것이지 '좋은 일'로 보거나 '긍정'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하였으나 진보신당 내에서는 쓴소리를 좀 들었다.
2013년 9월 16일 낮, 일본에서 강제추방된 뒤 월북하려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에서 거주했던 40대 남성이 임진강에서 부표를 매달고 월북하려다 대한민국 육군 초병의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을 두고 사람 죽여놓고 이렇게 자축하는 이 존재들은 정말 인간 맞나 싶어요 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칼럼 역시 아덴만 여명 작전을 비판한 칼럼의 논리와 비슷한 맥락이다. 군의 임무에서 사살한 것은 정당하다 쳐도 사람에 대한 애도가 없으니 사람이 맞느냐, 군은 이것을 철통경계라고 자부심을 느낀다는 점에서 강력한 비판을 한 것인데, 국가의 헌법이나 질서에 따른 정당성을 고려하지 않아 문제가 되었다. 월북시도자 형편이나 사정을 내비치면서 동정을 유도하는 식의 말을 하면서 그것을 임무라고 죽인 군대를 비판하는 논조는 기본적으로 나라의 안보를 지키는 군의 입장과 일반인의 입장차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완용을 암살하려다 인력거꾼 박원문을 죽이게 된 이재명 열사의 행위에 대해 비판한 칼럼도 이야깃거리가 되긴 하는데 사실 칼럼 내용을 훑어보면 이재명 열사의 도덕성에 대한 고발이라기 보다는 민족주의자들의 "대를 위한 소의 희생 합리화"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수 있고 김립 피살 사건에 대한 지적을 보면 오히려 꽤 괜찮은 칼럼이다. 다만 이 편에서 진짜 문제가 되었던 점은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의거 사건을 위의 두 사건에다 갖다붙이고 일본 민간인들의 희생이 컸다며 이를 이라크 민족주의자들의 반미 테러 행각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난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홍커우 의거 당시 민간인 사상자는 기록된 바가 없었고 박노자 본인도 당연히 따로 증거나 출처를 제시하지 않았다.
가수 싸이가 우리 모두가 군인이라고 한 발언을 가리켜서 살인이라느니 전체주의라느니 나는 운동권 노래와 음악이 좋다느니 하며 날이 선 비난을 퍼부었는데, 그 기사에 달린 네티즌들의 댓글들은 "이러니까 대학 운동권이 망했지, 박노자도 이제 꼰대가 되었구나, 알고보니 박노자는 지독한 교조주의자였구나'#라면서 조롱을 하고 있다. 말로는 항상 민중이 어쩌고 하면서 정작 그 민중(대중)과 소통할 생각은 전혀 없고, 오직 자신들의 낡은 이념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만 들기 때문에 민중의 거부감을 사서 결국 대중적인 지지를 잃었던 좌파 지식인들의 몰락을 따르고 있는 셈. 허나 이 말은 다시 말하자면 결국 대중의 의견은 언제나 옳은 쪽이라는 시각에서 출발한 주장들이다. 한편 댓글에 의견을 쓴 어느 네티즌은 박노자의 저 칼럼을 가리켜 "예술에 대한 전체주의적 시각 뿐만 아니라 문화에 대한 경직되고 편협한 시각을 두루 내재하는 反문화적, 反예술적 사고가 드러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보았는데, 소련이나 중국, 북한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중 예술 작품들에 무조건 사회주의적 혁명 이념을 넣어야 한다고 강요했고, 그러한 이념이 없는 순수 예술을 반동적 부르주아라며 탄압한 바 있다.
이렇듯, 국제적인 시각은 현존하는 현실 사회주의 세력을 포함한 구공산권에 경도되어 있다.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 중국에도 상당히 우호적이다. 문제는 이런 우호적인 시각이 지나칠 때가 있어서 엄연한 해당 사회들의 문제점이나 전체주의적인 폭력 행위들을 애써 무시하거나 아예 옹호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대개 한국의 진보/좌익 세력에서도 꽤나 나타나는 행태이긴 하다.[17] 하지만 박노자의 경우 아예 선을 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가 크다. 아예 친중의 연장선상에서 동북공정을 지지한 적도 있다.[18] 박노자의 국제적인 시각은 민족주의에 경도된 한국 좌익에 비해 좀 더 원리적인 사회주의적 국제관을 가졌다는 차이점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소위 NL 및 운동권과 유사해보일 수 있다. 당연하지만 진영 논리에 입각하여 중국의 경쟁국이자 현대의 패권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가루가 되도록 깐다.[19] 또한, 미국의 세력권에 속한 나라라는 관점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정치외교적 비판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다.
다만, 특이하게도 친북반미를 주장하는 이들이 북한이나 중국과 같은 편이라는 시각에서 친러적 시각을 보이는데 비해 박노자는 대단히 반러적인 태도를 지녔다. 의외로 박노자는 모국인 러시아 연방혐러 수준으로 대단히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이는 그가 21세기 초의 러시아 연방을 '소련을 무너트린 반동분자들에 의해 건설된 괴뢰국가'로 보는 시각을 지녔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소련의 실질적인 계승국은 중국”이라는 프로파간다에 곡학아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자신의 사설에서는 아예 현재 러시아의 집권 세력인 '블라디미르 푸틴과 그 일당이 자신의 조국인 소련을 불법 점령'하고 있다고 쓰기도 했고, 러시아를 국가화된 마피아 집단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을 소련인이라고 생각하지 러시아인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소련 붕괴 이후 자본주의화된 러시아에 느끼는 감정은 분노밖에 없다고 하기도 했다.
또한 과거 공산권에 속한 동독,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과 한국을 비교하며 한국의 부족한 점을 지적한 후 은근슬쩍 중국과 북한 칭찬을 집어넣는 전략이나, 한국 군대에 입대한 미국 교포 병사가 질병을 얻거나 가혹행위를 당하면 조롱조의 기사를 올려놓는 행태[20] 등도 문제가 된다.
스스로 불교신자라고 하면서도 불교 교리에 대한 이해나 신행활동 등을 보인 사실이 별로 없으며, 노르웨이에서 스스로를 한국학 전문가라고 주장하고 다녔으나 정작 해당 인물은 노르웨이 내에서 한국 불교에 대해 소개하거나 어필하는데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다만 그가 쓴 역사 에세이집에 중국 덕분에 신라 불교 철학이 티베트에 건너갔다는 비약적인 서술이 있긴 하다. 일단 한국의 호국불교 사상을 이중 잣대[21]를 가지고 고의적으로 비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고 볼 수 있다.박노자 "호국 불교는 일제 잔재, 스님 입대는 파계[22] 자신이 무슨 조계종 간부도 아닌데 함부로 파계 운운하는 자체가 해당 인물이 불교 관련한 기초 상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불교계 내에서는 박노자가 자신의 평소 과격한 한국 비판 및 한중합방과 동북공정까지 옹호하는 친중 성향을 쉴드치기 위해서 불교 신자를 사칭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신천지 신도들이 종종 무신론자를 사칭해서 보수 기독교를 저격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불교와 정신문화에 무임승차하려는 얌체로 비판 받기 충분하다.'''
메갈리아와 워마드에 긍정적이다. 이 글과 같이 성향이 비슷하다 볼 수 있는 유시민이나 시사인[23]과 같이 한국을 '여성에게 그야말로 지옥이 된 이런 사회'라며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남성에 대한 비난을 한다. 이 글에서는 워마드와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남성을 통틀어서 '없는 남자[24]', '"고추 달린 사나이"로서의 특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화이트 트래시랑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묘사하며, 여성이 남성 임금의 63%만 받는다는 정보를 삽입하였다. #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의 여성 인권이 북한이나 필리핀보다 못하다는 식의 비하가 곁들어진 과격한 표현이다.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 차이는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높다는데서 기인[25]한다. 같은 글에서 나온 페미니즘 덕분에 한국에서 미혼모 차별이 줄었다는 주장 역시 한국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약자 혐오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일부러 은폐하고 왜곡하는 발언이라 볼 수 있다.
성범죄에 대해서는 유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도 좋다고 한 바 있다.박노자 본인의 블로그 글 반면 윤미향정의연을 진영 논리를 바탕으로 옹호할 때는 # 어떤 의혹이 제기돼도,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은 사람을 범인 취급하는 것은 원칙의 위반이라는 주장을 한다.
한국 보수 정치의 3대 코드를 반여성, 반중국, 반난민으로 지적하였다.# 물론 한국의 반 난민 정서가 가짜 뉴스 범람으로 심각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해당 기사에서는 중국에서도 반난민 정서가 심각한 것은 얼버무렸다.[26] 대한민국 보수가 반중이라는 것도 지나친 일반화인데,[27] 박근혜 정권 당시의 친중 외교가 여야 막론하고 비판받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은 보수, 진보 막론하고 여당 정권은 친중, 일반 대중은 국민 감정 문제로 반중인 상황이다. 또한 "노르웨이 같으면 대다수의 남녀(전체의 75~80% 정도)가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 거부는 소수의 몫이지만, 한국에서는 반대로 페미니스트가 소수자다."라는 주장 역시 체리피킹으로 해석 가능한데, 노르웨이는 남녀가 모두 징병 대상이며 징병제도 한국처럼 가혹행위나 폐단이 심각하지 않다. 그리고 노르웨이나 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남녀가 학교/호스텔 등에서 같은 샤워실을 쓰는데다가 인터넷 검열이 없는 나라이다. 명목상으로는 통계를 들이밀지만, 정작 노르웨이의 페미니즘과 한국식 페미니즘의 차이, 그리고 한국 사회 전반의 사회보수주의를 고려하지 않은 그냥 감정에만 호소하는 주장일 뿐이다. 이런 박노자의 주장은 이미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한국인들에게는 '그래 내 편은 선진국 편이고 다른 편은 후진국 편이야'라고 속 시원하게 해 줄 주장일 수는 있지만, 페미니즘에 찬성하지 않는 한국인들에게는 한국 사람들이 노르웨이가 어떤 나라인지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고 설득력이 0에 수렴한다.
민족 볼셰비키주의자를 좌익 민족주의자라고 옹호한 바 있다.## 좌파민족주의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민족 볼셰비키는 애초에 좌파 민족주의 사상조차 아니다. 1차대전 이후 경제가 파탄나서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가득할때 급진적 보수주의자들이 반자본주의 이론을 섞어서 만든 "보수 혁명" 이론이 민족볼셰비즘을 비롯한 제3의 위치 사상이다.[28] 그 외에서 한국의 내셔널리즘 깐다고 "예컨대 최근 러시아에서는 공산당원이나[29] 민족볼셰비키당 당원 등 급진주의자들이 러시아 국기를 제거하거나 훼손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국가란 민중을 억압하는 적대세력일 뿐이니 그런 행동은 이해되고도 남는다." 요런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이건 전간기 독일에서바이마르 공화국을 혐오하는 보수혁명론자나, 나치당원들이 국가(바이마르 공화국)를 모독하는 행위를 가르켜 국가 폭력에 대항하는 진보인사라고 부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5. 저서


저서로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1,2권,《나를 배반한 역사》,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하얀 가면의 제국》, 《우승열패의 신화》, 《우리가 모르는 동아시아》, 《비굴의 시대》, 《거꾸로 보는 고대사》, 《러시아 혁명사 강의》[30] 등이 있다.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진보신당
242,995 (1.13%)
낙선 (6번)



[1] 법적으로 등록된 이름으로, 2012년 총선에서 이 이름으로 비례대표 후보에 등록되었었다.[2] 외국인이 한국에 귀화할 때에는 전에 쓰던 성명을 발음나는 그대로 한글로 쓰게 되어 있다. 따라서 외국인이 한국식 성명으로 바꾸려면 성본창설허가 내지 개명허가를 받아야 한다(가족관계등록비송 문서 참조). 조선족의 경우는 한국식 한자성명을 그대로 쓸 수 있는 특례가 있지만, 다른 한자문화권 외국인(조선족이 아닌 중국인, 일본인, 대만인, 베트남인)은 자기 이름의 한자를 그대로 쓰고 싶다면 위와 같은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현재는 박씨로 창성창본 허가를 받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다고 한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티호노프가 맞지만, 티코노프로 등록한 이름을 계속 사용중이다.[3] 졸업 당시에는 한국학과로 개명. 중간에 한소수교가 있었다.[4] 사실 억양보다도 목소리톤이 웬만한 여자정도로 높아 외모와의 괴리가 매우 심하다.[5] 총선 출마자는 주민등록명을 써야 하는데, 상술된 대로 귀화 후의 등록명도 박노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다.[6] 소련은 징병제 국가였으며, 대학생에게는 병역을 면제해 주었다.[7] 박노자 <불교와 근대 한국사회>[8] 실제로 태국의 경우 불교 신자 비율이 높고 징병제를 시행하는 나라지만, 승려에게는 병역을 면제해준다. 승려는 군사훈련을 받아선 안되며, 다른 사람들이 군사훈련을 받는걸 멀리서 지켜봐서도 안된다는 계율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태국에서 불교가 국교로 대접받는다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9] 반스탈린주의라고 표현하지 않은건 그가 스탈린 시절의 소련에 대하여 상당히 모호한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다.[10]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마르크스주의자들 마다 의미가 다른데, 레닌주의자들은 전위정당(공산당)에 의한 국가권력 쟁탈로,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하는 "노동자 민주주의"로 이해했다.[11] 박노자 교수의 국가주의 비판도 한국의 평균적인 진보파의 주장 별반 다르지 않다. 그가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 아나키스트 이론가의 글을 인용하거나, 감옥폐지, no victim no crime 같은 주장을 한적이 있는가? 일반인들이 착각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스트의 대립이 국가에 대한 입장이라는 것인데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언급했듯이 현실의 마르크스주의자(레닌주의자들)들이 국가숭배 경향을 표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마르크스주의는 단순히 국가가 모든것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이 아니다.[12] 실제로이는 미국에서 DSA(미국민주사회주의자)와 연관된 아나키스트들에대한 다른 아나키스트들의 태도다.[13] 그는 국가자본주의론이 클리프주의자들의 광신이라는 맥락의 주장을 한적이 있는데, 국가자본주의는 클리프주의자들만의 주장이 아니며, 클리프주의란 것이 존재하기 이전에도 존재했다. 애초에 아나키스트들은 볼셰비키 혁명이후 소련이 급속도로 관료화 되자 국가자본주의라는 비난을 했었다.[14] 해당 영문위백 문서에는 브라이언 마이어스에게 제기된 비판 등이 상세히 기제되어 있지만 정작 박노자가 마이어스 교수를 저격한 내용은 기재할 가치도 없는 유치한 궤변이라고 생각되었는지 올라오지도 않았다...[15] 박헌영의 6.25전쟁 주도는 그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김일성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냐, 정말로 한반도를 공산화하려고 했느냐) 주도했다는 사실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16] 이유는 간단하다. 나치 자체가 서유럽으로 대표되는 게르만족(영미로 대표되는 앵글로-색슨족도 게르만족의 한 갈래다)을 최고로 놓았기 때문에 그들과는 전쟁을 하면서도 학살 등의 잔학행위는 하지 않은 반면, 자신들이 열등하다고 상정한 슬라브족 위주의 동유럽인들을 엄청나게 학살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독일이 소련에 한 짓 1/10만 해도 독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17] 단, 좌익 내에서도 국제관에 대한 문제는 일관되어있지 않고 어느 정도 분열되어 있다. 일례로, 한겨례 신문에서 중국의 패권주의나 미국과의 대립을 적극 옹호하며 친중사상을 설파하다가도 중국의 티베트/위구르 탄압에 대해 비판 기사를 싣기도 한다.[18] 물론 박노자를 옹호하거나 변호하려는 측은 박노자가 중국을 동양의 나치제국이라고 칭한 사례를 들며 친중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박노자의 SNS나 글 전반적인 논조는 빼도박도 못하게 "중빠"에 가까우며, 중국을 나치독일이라고 표현한 것과 동시에 한편으로 동북공정을 옹호한 것은 자승자박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19] 후술하듯 러시아에 대한 그의 비판 역시 중국의 잠재적 경쟁국 중 하나 혹은 소련 계승권 논란 등등 관련하여 친중 진영 논리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20] 마치 일본 언론에서 한국의 자연 재해를 보도하는 듯한 논조[21] 여호와의 증인들이 일제 시대 징병 거부한 일 역시 외세에 대한 저항이고, 호국 불교 역시 외세의 침탈과 약탈로부터 민간을 보호하는 바이지만 박노자는 전자만 일방적으로 찬양하고 후자는 다른 관점을 적용한다.[22] 물론 해당 기사에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등에 대한 언급이나 여요전쟁 등에 관한 언급이 1도 없다. 그리고 기사에서 박노자가 언급한 불살생 아힘사 교리는 엄밀히 말하면 불교 교리보다는 자이나교 교리에서 강조되는 내용으로 아함경 예기하면서 그 아함경에서 비판하는 대상인 자이나교 교리를 예기하는 앞뒤가 안 맞는 내용이다.[23] 글의 제목인 "성난 남자"들의 문제는 과거 시사인에서 문제가 됐던 달의 잡지 제목인 '분노한 남자들'과 비슷하다.[24] 재산의 유무를 가리킨다.[25] 필리핀처럼 국내 제조업이 빈약하고 저임금 서비스업이 주 산업인 경우 통계상으로는 여성 임금 수준이 남성보다 높은 평등 사회로 나오기도 한다.[26] 차라리 박노자가 혐오하는 오늘날 러시아 연방이 중국보다 난민에게 훨씬 관대한 편이다. 러시아의 경우 야지디교, 아시리아인 난민 상당수를 받아들였다.[27] 박노자 기준으로 보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정권 역시 보수우익 정당에 가까우므로 더더욱[28] 슈트라서주의라는 유사한 사상도 있는데 볼셰비즘에 나치를 부었는가(민족 볼셰비즘), 나치에 볼셰비즘을 부었는가(슈트라서주의)의 차이일 뿐 똑같은 놈들이다. 이들은 주류 나치에게 당했다고 피해자 코스프레 하면서 좌파 운동에 엔트리즘(운동에 의도적으로 외부세력이 침투해서 조직의 이념적 경향이나 운동 방향을 변질 시키려는 전술을 의미) 시도 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한다. 이들도 주류 나치 처럼 군국주의 쩔어있고 유대인 혐오하고 전체주의 좋아하는 것은 똑같다.[29] 이쪽도 정상적인 부류는 아니다.[30] 클리프주의 계열 단체인 노동자 연대에서는 트로츠키를 저평가하고 그에 비해 스탈린을 고평가했다며 아주 혹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