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송나라)
조빈과 함께 북송 초반의 명장이며 송조의 개국공신이다. 태조 조광윤과 친분이 깊었으며 971년에 남한, 975년에 남당, 979년에 북한을 멸망시키며 송나라의 중원 통일을 주도하였다. 979년 말에는 요나라 군대의 침공을 대파하였고 983년에 한국공으로 봉해졌다. 986년, 태종의 2차 북벌 시에는 서로군을 이끌어 연운 16주 중에서 환주, 삭주, 운주, 응주 등을 회복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하지만 동로군의 조빈이 대패하여 후퇴하던 중에 후방을 엄호하던 양업을 돕지 않아 그가 진가곡에서 전사하자 태종은 반미를 검교태보로 격하시켰다. 991년에 동평장사로 제수되었으나 몇달 뒤에 사망하였다. 사후 991년에 태조의 능에 배향되었고 정왕에 추봉되었다. 그 후손들도 대대로 송조의 벼슬을 하였다.
송사 반미 열전 국문 번역본
그런데, 이 인물이 지금까지 기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양업을 돕지 않아 그를 죽게 했기 때문이다. 사실 양업이 패한 원인은 이 인물에게 있지 않으나, 아무래도 양업과 얽히는 인물들 중 가장 지위가 높았기 때문에 그는 이후 수도 없이 많이 나온 양가장 관련 무협 영상물에서 악역으로 찍혀버려, 송나라의 개국공신임에도 불구하고 평이 아주 좋지 않게 되었으니 매우 억울한 일이다.
의외로 후주 마지막 황제인 시종훈과도 얽힌다. 시종훈의 동생 시희양(柴熙讓)을 입양하여 반유길(潘惟吉)로 개명시켜 시영의 핏줄을 보전케 했다. 시종훈은 자식 없이 죽어 시영의 자손들은 반유길의 후손만 남게 되므로 모두 반씨가 되었다.
진종의 황후인 장회황후 반씨가 반미의 일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