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 복이와요
1. 개요
MBC에서 방영됐던 전설적인 코미디 프로그램.
총 3차례에 걸쳐 폐지와 부활을 반복했는데, 첫 번째로 방송한(1세대) 웃으면 복이 와요가 한국 코미디 사상 레전드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1세대는 1969년 8월 14일 ~ 1985년 4월 17일, 2세대는 1992년 ~ 1994년, 그리고 3세대는 2005년 3월 17일 ~ 2005년 10월 20일까지 방영됐었다.
1세대 웃으면 복이와요는 한국 방송사에 길이 남을 전설의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구봉서, 백남봉, 서영춘[1] , 배삼룡, 송해, 이기동[2] , 곽규석, 남보원, 한무, 남철·남성남[3] , 양훈·양석천[4] , 배연정, 배일집[5] 같은 쟁쟁한 코미디언들이 출연해서 말 그대로 전국을 들었다놨다 하며 웃겼던 전설적인 프로그램으로 MBC 창사시절부터 같이한 장수 프로그램[6] 이었지만 1985년에 프로야구 중계시간을 늘리겠다고 허무하게 폐지되었다(...).[7][8]
1970년대 후반 오프닝 영상의 경우 당시 더 드리프터즈가 출연하던 TBS테레비의 8시라구! 전원집합(8時だョ!全員集合) 이나 도리후 대폭소 같은 일본 쇼 오프닝의 영향이 엿보인다.[9][10] 사실 당시 국내 예능프로그램의 태반이 일본 방송 것을 그냥 무단으로 베껴 쓰던 시절이었다. 일본 방송이 잡히는 부산 등 경남 지방에 가서 일본 방송을 보고 내용을 베끼는것이 일종의 관행이었는데 코미디 프로는 특히 표절이 심해서, 코너의 형식은 물론 콩트의 내용까지 그대로 베껴서 써먹는 일도 다반사였다.[11] 활동하던 코미디 배우들도 왜정시대에 태어났거나 해방 후에도 일본 영향이 크게 남아 있던 악극단 출신들이 많아서, 당시의 일본식 스탠드업 코미디 (만담)에서 소재를 그대로 가져와 현지화하여 쓰는 일도 많았다.
그렇지만 잘 나가던 코미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MBC 코미디의 전설을 이어받겠다고 두 번이나 부활했다. 1994년에 끝난 이후 11년만에 다시 부활한 적이 있다. 참고로 두 번째의 정확한 이름은 '新 웃으면 복이와요', 두 번째는 실패해서 막을 내린 게 아니라 그냥 개편철이 되어 오늘은 좋은날로 개편된 것에 가깝다. MBC 코미디는 청춘행진곡 시절부터 시작해서 오늘은 좋은날과 코미디 동서남북이 막을 내리는 90년대 중후반까지는 최전성기의 파워를 누렸다. 新 웃으면 복이와요의 PD가 다름아닌 김영희 PD였다. '''쌀집 아저씨'''라는 별명도 이 프로그램에서 이경실이 지어준 것. 이 쌀집아저씨의 캐릭터가 수십년이 지난 나는 가수다까지 이어진 것만 봐도 이 당시 프로그램의 시청자 영향도를 알 수 있다. 참고로 강호동도 이 당시에 활약했었다.
세 번째의 풀네임은 '코미디쇼! 웃으면 복이 와요'이다.
2세대때 오데로 갔나라는 합창곡이 유행했다.
2. 웃으면 복이와요 부활의 시작
이전에 코미디하우스가 방영됐지만 낮은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불만, 그리고 봄 개편으로 정확히 4년 10달만에 종영했다. MBC는 결국 다시 11년 만에 웃으면 복이와요를 부활시키면서 방송 3사 중 마지막으로 공개 코미디를 도입했다.
3. 출연자 (2005년 기준)
그 외 등등...
코미디 하우스의 후신격인 프로그램이었지만 MBC 코미디의 쇠퇴로 인해 코미디 하우스에 합류한 MBC 공채 희극인들은 소수였다. MBC에서는 출연진들을 보충하기 위해 컬투패밀리나 코미디 시장에 소속된 타 방송국 공채나 특채들을 대거 등용, 이 때문에 웃음을 찾는 사람들처럼 공채와 특채가 공존하는 코너가 되었다. 다만, 공채가 특채를 견제하는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4. 쇠퇴기
정성호, 추대엽 등이 부른 '''짜증송'''[12] 처럼 유명해진 코너도 있지만 시청자들이 시청하기 애매한 평일 저녁 시간대에 방영되어 시청자들에게 많은 욕을 먹었고 (일부 지역 MBC에서는 아예 방송되지도 않았다.) MBC는 좀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많이 온갖 노력을 하였으나 결국 재미없다는 이유로 시청률이 낮았다.[13]
히트 코너 기사가 떠도 인지도가 오를까 말까인데 출연진이 성폭행을 저질러서 입건되는 일이 있었다. MBC 희극인실 분위기 역시 안 좋았으며 우리는 그런 인간 모르고, 모든 MBC 희극인들을 그렇게 보지 말아달라는 반응을 보였다.[14]
그럼에도 MBC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으나 KBS의 개콘과 SBS의 웃찾사보다도 시청률이 떨어졌고 있는 시청률까지 더 떨어져 결국 2005년 10월 20일 가을 개편으로 종영됐다. 그 이후로 웃는데이가 후속 프로그램으로 새롭게 방영됐다. 웃는데이는 당시 이경규와 정형돈이 콤비로 투입되어 사극을 소재로 한 개그를 선보였지만 시청자들은 이번에도 촌스러운 코너밖에 없다며 MBC는 결국 또 욕을 먹었다[15] . 더군다나 신설한 지 얼마 안되어 방영 요일을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옮겼는데 경쟁프로그램이 '''해피투게더-프렌즈와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어서 시청률을 잡기 힘든 것도 있었다.[16]
결국 웃는데이도 4달만에 종영을 맞이했고[17] 후속작인 개그야가 생겨난다. MBC는 별 기대도 안 하고 제작을 한 거라 처음 방영했을 때는 시청률이 낮았지만 사모님 코너 이후로 개그야는 개콘과 웃찾사에 맞먹는 수준의 인기를 누리며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그 후로도 명품남녀, 고독한 킬러, 주연아, 최국의 별을 쏘다, 파라요, 천수정 이~뻐, 그렇지요~~, 우리도 결혼했어요, 무완도전 등 많은 인기 절정 코너들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개그야도 이제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코너들도 전부 종영하자 MBC는 왜 인기 절정 코너를 종영시키냐며 또 욕을 엄청나게 먹었고, 그래서 결국 개그야는 시간대 변경을 하게 되었으나 이마저도 안 되자 결국 개그야도 3년 7개월만에 종영됐다. 그리고 후속으로는 버라이어티 하땅사(하늘도 웃고 땅도 웃고 사람도 웃는다)를 선보였지만 역시나 1년도 안 되어 종영됐다. 그 이후로도 웃음버라이어티 꿀단지, 웃고 또 웃고, 뮤직 코믹쇼, 코미디에 빠지다, 코미디의 길 등 많은 개그프로를 선보였지만 결국 다 실패하고 MBC는 더 이상 개그 프로를 만들지 않겠다고 하자 결국 MBC 개그맨들은 코빅과 개콘, 그리고 웃찾사로 집단 이적을 하게 된다.[18]
5. 둘러보기
[1] 서영춘은 이 프로가 종영된 이후 이듬해에 사망.[2] 서영춘과 마찬가지로 이기동도 이 프로가 종영되고 2년 뒤인 1987년에 사망하였다.[3] 이 두 분은 이름을 이 순서대로 나란하게 불러줘야 정상이다. 콤비로 유명했기 때문[4] 이 두 분도 콤비로 유명했다. 사실 본명보다 홀쭉이와 뚱뚱이로 더 알려져있다. 홀쭉이가 양석천, 뚱뚱이가 양훈[5] 이 두 배씨는 콤비는 아니지만 수많은 작품과 코너에서 같이 나왔다. 부부로 아는 사람도 많을 정도. 애초에 배연정이라는 예명 자체가 배일집에 맞춘 것이다.[6] 심지어 메인뉴스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보다도 일찍 시작했다. 뉴스데스크 첫 방송일이 1970년 10월 30일로 웃으면 복이와요가 1년 2개월은 더 일찍 방송을 시작했다.[7] 그럴 만 한 게 문화방송이 야구단을 운영할 때 야구 중계에 공을 많이 들였고, 지금까지도 자료가 남아 있을 정도로 중계를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다른 방송을 편성할 시간이 부족해져 이 프로그램을 폐지시킨 듯 하다. 지금은 스포츠 케이블 채널이 따로 있지만 그때는 그런거 없었다. 참고로 MBC 청룡은 이 프로그램이 종영된 후 1990년에 LG그룹(당시 럭키금성그룹)이 인수하여 현재의 LG트윈스가 되었다.[8] 당시는 정통성이 부족한 군부 정권이 우민화 정책으로 프로 스포츠를 만들면서 밀던 때이고, 만만한 것이 저질로 몰아붙이던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9] 특히 출연자가 다섯 명에다가 메인 카메라 시점이 고공으로 올라가 클로징하는 데에서 빼박이다. 다만 여성출연자가 배경취급 받는 도리후 대폭소와는 다르게 무희가 다섯 코미디언 중간에서 중심점을 잡도록 어레인지한 점은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10] 8시라구! 전원집합은 웃으면 복이와요의 1세대 방영 시기가 일치하며, 도리후 대폭소는 1977년에 방영을 시작하였다. 다만 8시라구! 전원집합은 나카모토 코지가 1981년에 도박 혐의로 구속된 이후로 시청률이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11] 막상 그 일본 프로그램도 미국TV프로그램을 베껴서 써먹는점이 많았다는 점이 우스운점인데 한국의 경우에는 AFKN에서 방영하는 미국 TV프로그램의 영향도 진하게 받았으니 결과적으로 양쪽에서 영향을 받았던 점이었다. 사실 미국것을 실컷 베껴써먹은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럼에도 일본프로그램을 베껴써먹은데에는 그나마 같은 동아시아권이라서 잘 통하는 프로그램이 많았기도 했다. 지금도 또한 당대에는 일본의 방송표현 수준이나 다채널화가 세계적으로 가장 잘 이루워진 축이다보니 한국에서 상상도 할수 없을 정도로 높아서(저녁시간대에 여자알몸을 대놓고 드러낼 정도였다) 쓸소재가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었기도 했다.. 놀라운 사실은 유럽의 TV프로그램들도 미국 TV프로그램을 베껴먹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12] 짜증날 땐 짜장면, 우울할 땐 울면, 복잡할 땐 볶음밥, 탕탕탕탕 탕수육.[13] 웃으면 복이 와요가 종영된 후 MBC 희극인들의 이탈은 계속되었다. 문용현과 임준혁 등 공채 희극인들이 웃찾사로 옮겼다.[14]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한 게, 당시 MBC에서는 공채 출신이 아닌 극단의 특채들까지 채용했으니 처음 보는 사람이 MBC 개그맨이라며 출근하는 일이 빈번했다.[15] 이경규 외에도 김국진이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본업인 코미디 프로그램 복귀를 했다[16] 하지만 웃찾사는 이 프로가 한창 방영되던 시기에 자기네 멤버들한테 급여도 주지 않고 갑질한 것도 모자라 해병대로 보낸 어느 개그맨의 만행으로 인해 얼마 못가 시청률이 하락했고 5년 뒤 프로그램은 종영되었다.[17] 이 충격 탓인지 웃는데이 출연진 중의 한 명이었던 김경식은 그 동안 진행을 맡아 온 KBS 2TV 쇼 파워비디오에서 2006년 봄 개편 때 하차했으며 98년 SBS 해피타임 조기종영 후 친정집인 SBS 외에도 iTV 코미디 프로그램 출연 제의를 받았으나 개인사정으로 고사했다[18] 코빅에 이적한 개그맨들은 그나마 잘 하고 있는 반해 웃찾사로 이적한 개그맨들은 잘 안맞는지 1~2코너를 하고 하차하였다. 그나마 권영기와 맹승지가 웃찾사에 잘 적응하고 있으나 맹승지는 웃찾사에 일찍이 하차했고 권영기는 개편으로 코너가 끝났고 이후 웃찾사 자체가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