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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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무렵의 오프닝 화면. 방영 초기에는 '번지'를 한자로 표기하였다.
1. 개요
2. 출연진
3. 대표 코너
3.1. 감초의전방
3.2. 고독한 사냥꾼
3.3. 괜찮아유
3.4. 꽃피는 봄이 오면
3.5. 남 그리고 여
3.6. 내일은 챔피언
3.7. 농담 한마디
3.8. 동궁마마는 아무도 못 말려
3.10. 맨손의 청춘
3.11. 밤이면 밤마다
3.12. 변방의 북소리 → 승리의 북소리
3.13. 부채도사
3.14. 북청 물장수
3.15. 아르바이트 백과
3.16. 여자, 여자, 여자
3.17. 열녀문
3.18. 영구야 영구야
3.19. 이상해와 심형래의 폭소소동
3.20. 장밋빛 인생[1]
3.21. 제 7 병동
3.22. 진중일기
3.23. 청춘을 돌려다오
3.24. 추억의 책가방
3.25. 충무로 차차차
3.26. 캠퍼스학 개론
3.27. 탱자 가라사대
4. 주요 유행어
5. 몰락
6. 여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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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방영시에는 '유모어 1번지'였지만 외래어 표기법의 변경으로 인해 상기 제목이 되었다.
1983년 4월 2일부터 1988년 3월 26일까지 KBS 2TV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50분, 1988년 4월 2일부터 1991년 5월 18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6시 40분, 1991년 5월 26일부터 1992년 10월 4일까지 매주 일요일 저녁 6시 50분에 방영된 개그 프로그램. 동시에 80년대를 대표했던 코미디 프로그램이다.[3]
초기에는 단편 코미디 프로들로 구성되었다가 나중에는 고정 코너들을 선정하고 틈틈히 단편 개그 코너들을 투입하는 유연한 진행을 보였다.
이 진행은 동일 방송사의 프로그램인 개그 콘서트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지만 형식 면에선 오히려 쇼 비디오 쟈키 쪽이 더 가깝다고 봐야 한다. 스탠드업 코미디나 애드립 혹은 순간의 자극보다는 콩트나 코미디언들이 제대로 '코미디 연기'를 하는 희극 같은 분위기의 코너가 많았다. 한 달 정도는 공개 코미디로 전향하다가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2. 출연진


이 작품으로 배출된 스타들은 심형래, 임하룡, 김형곤 등이 유명하다. 기본적인 진행 대본은 PD가 작성하였으며 세부적인 대본의 작성과 편집은 해당 코너의 담당 개그맨들이 참여한 당시로선 파격적인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국개그의 대표적인 마스코트인 영구가 탄생하였으며 군대에 대한 풍자와 개그를 다룬 코너인 동작그만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워낙 오래된 방송이라서 초기에 병풍이었던 최양락이 나중에는 주역으로 오르는 등 부침이 심했다. 6개월이나 1년 정도 장수 코너를 제외하고 모두 갈아버리는 것으로 재탄생했는데...
출연진은 아래와 같다.
송해[4][5], 이상해, 배삼룡[6], 최용순, 고영수, 송영길[7], 임하룡, 김형곤, 전유성, 주병진[8], 최양락, 엄용수, 장두석, 김학래, 이성미, 정명재, 김정식, 이상운, 심형래, 이경래, 이선민, 지영옥, 김한국, 김혜정, 김미화, 이봉원, 조금산, 이경애, 임미숙, 김의환, 김용, 박승대, 팽현숙, 곽재문, 서원섭, 양종철, 조문식, 한정호, 김종국, 하상훈, 이현순, 김호남, 임인하, 김정빈, 오성우, 김황우, 성낙앙, 오재미, 김진호, 안숙희, 윤혜영, 이희구, 최형만, 이창훈, 배동성, 김지선, 김현영, 서현선, 서인석, 최영준, 문형주, 김찬, 김국진, 김용만, 김수용, 남희석, 박수홍, 양원경, 유재석, 최승경, 엄정필, 전효실 등이다.

3. 대표 코너


  • 가나다 순으로 정렬할 것!

3.1. 감초의전방


방영기간: 1991년 9월 1일 ~ 10월 6일
출연: 심형래, 김정식, 엄용수, 양종철, 최영준

김정식이 감초 선생 역을 맡고 심형래가 바보 제자[9]로 나오는 코너. 그 외의 제자로는 엄용수, 최영준, 양종철이 등장한다. 한의원을 소재로 한 코너로서 이후 쇼 행운열차에서 심형래가 주축이 된 감초보감이나 심심보감 등의 원조 격 코너라 볼 수 있다. 주요 패턴으로는
  • 김정식이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면 심형래 빼고 다 손을 드는데, 김정식이 이를 지적하면 심형래가 손을 들면서 다른 사람들이 다 내리게 되어 심형래가 지명된다. 이에 손을 원망하는 개그는 덤.
  • 심형래는 당연히 엉뚱한 대답을 하고 다른 제자나 김정식이 정답을 말한다.
  • 환자가 실려오면 심형래는 무조건 부검(...)부터 하려고 든다.
  • 코너 마지막에는 간단한 한의학 상식을 알려주면서 끝.
그러나 이 코너의 핵심인 심형래가 SBS로 이적하면서 1달 만에 종영해버렸고, 심형래는 이적 3개월 만에 KBS로 복귀했다.

3.2. 고독한 사냥꾼


방영기간: 1989년 1월 ~ 1990년 6월 30일
출연: 최양락, 김종국
고정 출연자는 최양락(극중 이름은 최우빈)과 최우빈이 자주 찾는 카페의 종업원을 연기한 김종국이었다. 최양락이 말그대로 여자들을 헌팅하는 일종의 픽업 아티스트인 시티 헌터(…)로서 활약하는 이야기. 매번 단골카페에 나올 때마다의 독백인 '''"내가 이 카페를 자주 찾는 이유는, 이곳에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 때문이지"''' 멘트를 줄줄이 외우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당시의 미녀 연예인들이 상대역으로 자주 출연해서 더욱 화제가 되던 코너였다.
본인은 신사를 자처하지만 실은 백수에다가 작업도 늘 실패해서, 농촌 처녀에게 집적대다 농부 아저씨들에게 두들겨맞고, 난폭운전 여성을 만나서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극도의 남자혐오증+폭력범 여성을 만나서 여성공포증에 걸리거나 여름 되면 납량특집으로 처녀귀신에게 얽히거나 여경에게 끌려가 부천서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하는 등 온갖 고생만 다한다. 무엇보다 한 에피소드에서는 인신매매범 일당인 여자에게 당해 새우잡이 어선에 팔려갔다(...) 나름대로 당시 이슈가 된 인신매매를 비꼰 멘트랄까. 그러다 보니 '''"에구에구 그 날 난 ~~~ 당했다."'''라는 독백성 멘트로 장식하는 게 현실. 참고로 이 멘트는 윤다훈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나왔었다. 마지막회는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인 명단에 이름이 실리지만 무사한 모습으로 명동에 나타나 똑같은 등장대사를 읊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KBS에서 지난 방송들을 올려줬다. 초반 방영분은 89년 2월 11일치 하나뿐이고 89년 11월 4일치부터 몇 편이 빠친 채 순서대로 올라왔다.
종영 후 예우프로덕션에서 90분짜리 비디오용 극장판이 제작되었는데, 이상구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KBS 코미디작가 유성찬이 각본을 썼다. 당시 기준으로는 19금을 먹었다. 이후 2011년 8월 25일 최양락과 함께 SBS 자기야 101회에 출연했던 팽현숙이 최양락이 마치 에로 영화에 출연한 것인양 표현하기도 했지만#1#2 실제로는 여성의 상반신 노출도 없을 정도로 수위가 약한 영화였다.

3.3. 괜찮아유


방영기간 : 1991년 5월 26일 ~ 10월 6일
출연: 최양락, 김학래, 이경애, 김지선 등

전형적인 충청도식 유머를 모티브로 한 코너. 김학래와 최양락은 실제로 각각 천안시, 아산시 출신이다. 직설적인 말 대신 빙빙 돌리며 서로 속을 긁고 그 말에 서서히 열 받는 모습이 웃음 포인트. 처음에는 정다운 이웃이란 제목으로 방영했다가 몇화만에 이 제목으로 달라졌다. 극중 부부는 각각 양락이와 경애라는 아들딸이 있어서 극중에서 최양락은 양락이 애비이고, 이경애는 경애 애미이다. 가수인 송대관이 한번 카메오로 나오기도 했다.
다만 그 웃음 포인트를 보면 씁쓸한 친일파 이야기가 나온다. 최양락이 이웃인 김학래를 형님으로 부르는데 경애 할아버지(=김학래의 선친)가 일제시대에 그 뭐야, 순사인 나까무라에게 아첨하느냐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다는 이야기가 있죠~~ 라는 말을 하여 김학래가 야! 우리 조상 이야기 하지말랬지! 라고 버럭거린다. 송대관이 나오던 에피소드에서도 김학래와 개인적으로 알아서 뭐다 나오는데 최양락이 이야기하다가 일본 공연가는 송대관의 말에 "일본 좋죠, 그러고 보니 일본하니까 떠오르는데 형님네 할아버지가 일본 순사 나까무라에게"이러자 또 김학래가 버럭거린다. 그러다가 말리던 송대관까지 화내면서 멱살잡고 그러다가 앗차!? 라고 사과하지만 송대관이 화내면서 그냥가버렸다. 겨우 화가 풀리나 했더니 또 한마디하는 최양락 "형님 그래도 야마모토 순사 이야기는 안했잖아요!"
마지막회에 양락이네가 서울로 이사를 가는데, 실제로는 주연 4인방 모두 서울방송으로 이적했다.[10]
무한도전에서 농촌 상황극을 하면 이 코너를 오마주하는 스토리로 흘러간다. 여러모로 충청도 개그와 친일파드립의 레전드였던 코너.
개그 콘서트 코미디 40년 특집으로 재구성된 바 있다. 최양락, 김학래, 박지선, 허안나가 출연. 여기서도 최양락이 친일파 드립을 치며 김학래의 속을 살살 긁는 게 백미.

3.4. 꽃피는 봄이 오면


방영기간: 1990년 11월 3일 ~ 1991년 9월 1일
출연: 김형곤(왕손 역), 배삼룡(왕손 삼촌 역), 곽재문(합죽이 역), 이상운(대표 거지 역), 조문식(냄비 역), 서원섭(덩어리 역), 김진호(강골 역), 서인석(솥뚜껑 역), 최영준(촉새 역)

김형곤의 시사 코미디로 자칭 고려의 왕손이라는 거지 왕초 김형곤과 그 휘하 거지들이 벌이는 이야기다. 원로 코미디언 배삼룡도 이 코너에 참여했는데, 거지 왕초의 주책맞은 삼촌 역할로 나왔다. 항상 코너 마무리로 "꽃피는 봄이 오면... ***하겠지?"라고 약간은 기대를 담은 한 마디씩을 남겼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의 외압성 하차에 따른 김형곤의 반발도 들어가서인지 풍자와 비판이 더더욱 노골적이었다. 이를테면 거지 왕초인 김형곤이 지팡이를 들다가 부러지자 "'''지팡이가 썩었어! 썩었어! 이래놓고 뭐가 민중의 지팡이라는 거야?!'''" 라고 돌직구를 날려 경찰을 비판했다. 왕손 김형곤과 대표 거지 이상운의 관계는 대놓고 당시 대통령3당 합당으로 들어온 여당 대표의 풍자. 오죽하면 김형곤이나 등장인물들이 연말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서 "몇 년전만 해도 이런 거 방영하다간 우리들 무사하지 못했죠"라고 씁쓸하게 웃었을 정도였다. 삼국지에 대한 토론도 나왔었는데 이때 거지 하나가 삼국지에서 통일을 김유신이 했다고 하자 김형곤이 "삼국지에서 통일을 무슨 김유신이 해? 조조가 했지..."라는 말도 하기도 한다. 물론 이건 웃기고자 연출된 것이고, 이 대사가 나오면서 녹음된 웃음소리가 나오고 다른 거지들이 이뭐병하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3.5. 남 그리고 여


방영기간: 1987년 ~ 1988년
출연: 최양락, 팽현숙, 전유성
가부장적인 남자 철민(최양락)과 순종적인 여자 현숙(팽현숙), 그리고 어리숙한 아저씨(전유성)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다룬 코너. 유행어는 최양락의 "있을 때 잘해, 나는 봉이야~". 최양락-팽현숙은 실제 연인 관계로 발전해 개그맨 1호 커플이 되고 둘이 결혼하는 것으로 종영한 뒤 실제로 결혼한다.

3.6. 내일은 챔피언



방영기간: 1990년 11월 3일 ~ 1991년 4월 13일
출연: 심형래, 임하룡, 양종철, 오재미 등
심형래가 주인공으로 활약한 코너이다. 권투체육관을 무대로 챔피언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청춘을 그리고 있지만 실은 관장부터 관생들까지 전부 다 나사 하나 빠진 캐릭터들이다.
임하룡 관장은 작중 젊은이들을 지도하느라 고생중인 나만 정상인의 모습이지만, 원래는 머리를 치면 텅 빈 냄비 소리가 나고[11] 재정이 넉넉치 않아서 얼어붙은 집[12]에서 사는 전형적 개그 캐릭터다. 심형래와 오재미가 관장이 사는 집으로 갔다가 놀라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걸프전으로 인해 유가가 올랐는데 관원들이 관비를 안 내서 기름 못 때니 집이고 가구고 죄다 얼어붙은 것으로 설정 되었다.
왕고참 양종철은 한국 라이트급 랭킹 13위라며 자랑하지만 설정상 국내 라이트급 선수가 '''딱 13명'''이고, 권투 하려고 시골서 상경한 심형래는 말할 것도 없으며 동기인 오재미는 체중 관리에 실패해 플라이급(50.793kg 이하)으로 입단해서 한 달만에 헤비급(90.718kg 이상)이 되었지만[13] 국내에 다른 헤비급 선수가 없어서 시합도 못하고 매번 먹기만 한다.
실력은 다들 안습. 심형래는 20kg가까이 감량하겠다며[14] 한달 굶은 뒤 글러브를 빵으로, 오재미를 돼지로 착각해서 잡아먹으려 들고(!) 또 징크스라며 한달간 안 씻어서 냄새로 상대방이 기권해 승리하거나 한다. 당시 심형래의 별명 '칙칙이'가 유명해져서 스트리트 파이터 2마이크 바이슨(복서)을 칙칙이라 부르기도 했다.
역시 심형래 쇼에서 리메이크되었다. 관장은 임하룡에서 김준호로 변경. 나머지 멤버들은 유민상, 정태호, 신종령 등 후배 개그맨들로 채웠다. 줄거리는 관장님이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권투체육관 멤버들이 이를 도우러 가나. 심형래는 짐을 올리다가 끈에 밀려서 계속해서 추락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상처는 심해지지만 관장은 왜 일하는 중에 놀러나갔냐며 구박만 한다... 헌데 이 에피소드는 리메이크답게 이전에 했던 걸 그대로 했다. 다만 거기에선 심형래와 임하룡이 이삿짐을 올리다가 놓고 다른 이들이 연이어 추락하는데 올라올때마다 붕대 투성이가 된다.
칙칙이의 내일은 챰피온이란 제목으로 극장판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전형적인 어린이 영화이며 감독이 바로 전유성이다. 김미화, 김학래, 양종철, 엄용수, 이경래, 이경애, 주병진 등 당대를 대표하던 희극인들까메오로 출연한다. 원작의 후속작으로 볼 수 없는 스핀오프작이다. 심형래와 양종철을 제외하곤 본작에 출연한 사람들이 없다. 당장 관장부터 임하룡이 아니라 김성찬이다. 심형래보다 4살 연하인 최양락이 연기하는 칙칙이 아버지가 개똥을 밟고 미끄러져 사망해서 상경한다느니, 칙칙이가 번개를 맞고 초능력을 얻게 된다느니 하는 어처구니 없는 전개가 속출한다. 나중에 전유성이 이거 찍고 호되게 망했다고 스스로 말했을 정도로 흥행에서 참패했다.
참고로 아동문학(?)으로도 출간되었었는데 내용이 상당히 심오했다. 양종철은 가난때문에 막일을 하느라 체중조절에 늘 실패해서 경기전에 무작정 굶다가 설사약을 먹는등의 컨디션 난조로 패배가 쌓여가고, 심형래가 바보같은 컨셉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슬픈 가족사, 임하룡 관장과 딸의 슬픈 이야기등등... 아동문학이 아닐정도로 사회비판(?)적인 줄거리로 전개되는 것이 백미.

3.7. 농담 한마디


방영기간: 1988년 12월 ~ 1990년 2월
출연: 전유성, 고영수 → 엄용수
브리지 형식의 코너로 80년대 말에 유행하던 촌평 코미디였다. 초반 고영수(후기에는 엄용수로 교체)가 현 세태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면 이어서 전유성이 주제의 본질을 흐리는 엉뚱한 논평으로 웃음을 주는 코너.

3.8. 동궁마마는 아무도 못 말려



방영기간: 1990년 7월 ~ 10월
출연: 심형래, 송영길, 최영준, 김학래, 김의환, 곽재문, 윤혜영, 서현선, 김현영 등
예쁜 여자 좋아하는 사고 뭉치 왕세자와 궁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약삭빠른 내시 최영준과 미녀 무수리 서현선(원로 코미디언 서영춘의 딸), 맨날 나서다가 구박받는 추녀 무수리 김현영이 주로 나온다. 코너가 코너인지라 다들 나사가 빠진 캐릭터들이 많다. 후반부는 거지인 오재미와 심형래가 뒤바뀐다는 왕자와 거지 같은 내용. 이후의 회차 부터는 계속 두 사람의 처지가 바뀌어 나온다. 다만 진짜 세자인 심형래가 본래의 신분을 찾기도 전에 코너가 조기 종영되었는데, 원래는 심형래가 다시 세자 자리로 돌아오고 완결나는 것으로 계획이 잡혀 있던 것으로 보인다.[15] 최영준의 '연습이었소~~'가 대표 유행어. 신하들의 유행어로는 김의환의 '읍~습이옵니다'와 곽재문의 '별 다른 말이 없는 줄로 아뢰오~'가 있다.
이후 2006년 설특집 KBS 7080 개그쇼#에서 리메이크될때는 장동민이 대충이 왕세자로 나오고 심형래는 이제 왕이 된 것으로 나왔다. 당시 개그콘서트의 후배 개그맨들이 다수 참여했으며 각자 개그맨들의 드립도 중간중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때 잠깐 광대로 등장한 이수근이 궁녀들과 신하들과 함께 조선시대 버전으로 뮤직드라마를 부르다가 갑자기 왕세자 장동민이 "네 이놈들아!" 하는 호령과 함께 도검을 빼들고 난입하는 왕의 남자 스타일의 장면도 있었다. 왕으로 등장한 심형래는 시종일관 근엄한 모습이지만 중간중간 뒤뚱거리거나 개그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는 왕세자 장동민에게 술자리 예절을 가르치다가 오히려 왕세자와 같이 취해서 망가지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동년(2006년) 추석에 방영한 7080 고전유머극장에서 왕세자 장동민이 평범한 선비 복장을 하고 주변 백성들의 상황을 지켜볼 때 잠시 등장했던 왕을 연기한 사람이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왕으로 출연했던 송영길이다. 84년생 개그맨 송영길과는 동명이인으로, 원래 배우였다 개그계로 전직한 원로 희극인이며 한동안 미국에서 살다 현재는 귀국했다고 한다.
2011년에 방송된 심형래 쇼#에서 다시 한번 리메이크되었다. 여기서도 심형래는 왕으로 출연했고 박성광이 까불이 왕세자로 나온다. 박성광은 왕이 참여하라고 명한 어전회의도 몰래 빼먹으려 할 정도로 약삭빠른 모습을 보인다. 이때는 잠깐 슈퍼스타 KBS가 조선시대 버전으로 나오기도 했다. 심형래는 7080 개그쇼에서처럼 근엄한 왕으로 나오지만 여전히 예쁜 궁녀들만 보면 정신 못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3.9. 동작그만



3.10. 맨손의 청춘


방영기간 : 1990년 7월 7일 ~ 1991년 1월 26일
출연: 최양락, 이경래, 이창훈, 김종국, 양종철, 전유성, 김혜정 ,안숙희, 이희구

맹구로 유명한 이창훈의 본격 코미디 출세작. 최양락이 조연을 맡은 몇 안되는 코너이다. 대중 목욕탕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엮는 휴머니즘 코미디이다. 목욕탕 사장[16], 이발사 병만이(최양락), 때밀이 달용이(이창훈), 구두닦이 칠성이 (이경래) 복덕방 직원 삼돌이(김종국)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특히, 달용이의 '난 짜장은 증말 싫어, 난 짬뽕!', '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리바이벌은 안해'[17]가 대표 유행어.
다만 극중에서 묘사되는 목욕탕 업계와 현실의 목욕탕 업계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때밀이 달용이에게 갑자기 일을 하지 못할 급한 사정이 생기면 그냥 친구 김종국이 대신 일을 해주는데 현실에서는 때밀이들이 바쁘거나 일을 하지 못할 사정이 생기면, 목욕탕에서는 일용직 때밀이인 스피아를 구한다. 또한, 칠성이의 꼬드김으로 달용이가 대우가 좋은 호텔 사우나로 가려고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사장인 양종철이 처음에는 해고하려고 하다가 달용이의 생계를 걱정하여 너그럽게 계속 같이 일하기로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또한 현실과 차이가 있다. 때밀이는 사용자인 목욕탕 사장과 고용계약을 맺은 노동자가 아니라 이발사, 구두닦이처럼 보증금을 내고 목욕탕 시설을 임대하여 영업하는 자영업자이다. 월급제 때밀이도 목욕탕 사장이 아닌 때밀이 사장이 구두계약인 고용계약을 맺고 채용하는 것으로 목욕탕 사장이 채용과 해고를 할 권한이 없다.
KBS의 유튜브 채널에 예전 방송분이 올라와 있다. 아쉽게도 13화(1990년 10월 6일)가 누락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 댓글들이 있었지만 관리자가 묵묵부답이라 정확한 진상을 알 수 없다. 현재로선 KBS 아카이브로 전화통화하거나 이메일을 보내는 것 외엔 해결책이 없다.
여담으로 댓글을 보면 작중 달용(이창훈)이 하는 짓이 매우 좋지 않게 보인다는 사람이 많다.

3.11. 밤이면 밤마다


방영기간 : 1991년 5월 26일~10월 6일
출연 : 이봉원, 김미화

이봉원과 김미화가 경상도 말투 부부로 분해 밤마다 벌이는 소동을 다룬 코너. 극중에 쓰인 '문디', '보소' 같은 경상도 표현들이 인기를 끌었다.

3.12. 변방의 북소리 → 승리의 북소리


방영기간: 1986년 9월 ~ 1987년 10월
출연: 심형래, 임하룡, 이봉원, 김의환, 하상훈, 김용, 정우진 등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임하룡장군, 심형래 등 여러 개그맨들이 군졸로 나와서 "군졸이~군졸이~ "[18] 라는 군가(?)를 불러 유행시킨 코미디. 개그맨 김용이 전령으로 나와 항상 실수 투성이 어명이나 정찰 상황을 전하고 장군에게 혼나다가 장군님~ 약오르시죠? 이 말하고 곱배기로 더 혼나기 일쑤였다.
가끔 전투씬이나 훈련씬이 나왔다. 이를테면 아군끼리 전투 훈련을 한답시고 심형래가 성을 지키는 쪽을 훈련하고 다른 아군이 쳐들어오는 적군을 맡았는데 성 안에서 임하룡이 무기를 던져라! 라고 명령하자 심형래가 대포를 통째로 내던져서 밑에 아군들이 다 깔려버린다. 임하룡이 "임마! 대포는 쏴야지 그냥 던지면 어떻게 해!"라고 화내자 심형래는 "저것도 무기잖아요"(...) 그러자 임하룡이 "으이구! 너 때문에 속터진다!" 이러고 끝.
대표적인 유행어로 경사났네 경사났어 등이 있는데, 현충일날 방영된 에피소드에선 이 대사를 그대로 쓰기가 그랬는지 좀 슬픈 이야기로 바꾼 적도 있다.
중간에 제목이 승리의 북소리로 바뀌었고, 종영 이후 1988년에 시대 배경을 거란과 대치중인 고려시대로 바꾸고 임하룡과 심형래가 원래의 장군과 병사 포지션을 그대로 유지하고 거의 같은 포맷으로 진행된 ‘서기 988년’[19]이 한동안 방송되기도 했으나 이쪽은 엄청나게 빨리 끝나서 기억하는 사람도 적다. 참고로 여기서 최고참 병사 심형래에게 꼬박꼬박 대드는 후임 병사 역으로 나온 게 이후 ‘동작그만’의 주인공이 된 김한국. 그 외에 <87북소리>와 <88북소리>[20] 등 일회성 에피소드들이 또 나왔다.
이후 심형래쇼를 통해 다시 부활했으며, 장군 역은 한참 후배인 김준호가 맡았다. 2013년 3월에 방영한 공사 창립 40주년 특집 개그 콘서트에서는 심형래 역은 박성광[21], 장군 역은 이봉원이 맡았다.

3.13. 부채도사


방영기간: 1991년 2월 2일 ~ 1992년 4월 5일
출연: 장두석, 김의환, 전효실 등

'부채신'을 모신다는 돌팔이 도사 이야기. 무릎팍도사에 영향을 준 코너이다.[22] 도사 역은 장두석이, 손님 역은 주로 김의환이, 김의환 하차 후 투입된 보조 아가씨 역에 전효실이 나왔다.
원래는 손님 김의환, 도사 장두석 투톱 체제였는데 김의환이 SBS로 이적한 후 얼마 안 가 종영되었다. 하지만 김의환이 떠난 것 때문에 종영한 것은 아니며, 무속인들의 항의가 빗발쳐서 조기 종영되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이후에 장두석 본인이 과거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에서 후일담으로 밝힌 적이 있는데, 부채도사 코너가 무속인과 민간신앙을 비하한다면서[23] 무속인 협회가 KBS측에 직접 항의를 했기에 결국 몇 회차 후 코너가 조기 종영 되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마지막 내용은 부채도사가 협회에서 제명당해 모든 것을 다 잃고 그동안 부채도사가 엉터리점으로 사기를 치는걸 알게 된 부채도사의 옛 스승이던 진짜 도사가 찾아와 부채도사에게 다시 수행이 필요하다며 부채도사를 데리고 떠나는 내용이다.[24] 그리고 조수 아가씨는 길 떠나는 도사를 마지막으로 배웅하며 그리워하는 새드 엔딩의 내용으로 마무리되었다.
삽입곡으로 "실례 실례 합니다~"로 시작되는 "실례송"이 있다.[25] 손님이 점 보러 들어올 때 나오는 노래로, 손님과 장두석이 한 소절씩 번갈아 부르는 것이 특징. 초창기에는 이 노래가 없었고 손님이 들어가면서 하는 대사였는데, 430회(1991년 10월 27일 방영)에서 부채도사 주제곡으로 처음 등장했다. 이때는 실례송이 아니어서 가사도 달랐는데, 제작진이 영 아니었다고 생각했는지 432회(1991년 11월 11일 방영)에서 처음으로 실례송으로 개사해서 등장한다.
여담으로 김영하가 90년대 초에 아이큐 점프에서 이걸 거의 베낀 걸 귀래거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기도 했는데 당시에도 욕처먹고 금새 연재를 끝난 바 있다.

3.14. 북청 물장수


방영기간: 1987년 7월 ~ 1988년 12월 31일
출연: 이봉원, 장두석, 임미숙, 조금산, 이경애, 김의환 등
당시 신인이던 KBS 공채 2기 개그맨들을 주연으로 내세워서 제작한 코너로 일제 강점기 함경남도 북청을 무대로 청년 물장수 이봉원, 이봉원의 라이벌로서, 특히 임미숙을 둘러싸고 앙숙 관계인 경상도 출신 물장수 장두석, 그리고 라디오 장수 김의환 등이 벌이는 소동을 그렸다. 특히 조금산과 장두석이 앉았다 일어나며 악수하는 "아이고~ 장사장"(장두석) "아이고~ 조사장님"(조금산) "반갑구만~"(장두석) "반갑십니더"(조금산)가 유행어가 되었다. 그리고 이 유행어는 28년 후... 더불어 김의환이 등장할 때마다 부르던 '만리포 사랑'이 재차 인기를 얻기도 했다. 막화에서는 사실상 연인 관계였던 이봉원과 임미숙이 전쟁통에 헤어지고, 경쟁에서 밀렸던 장두석이 그 틈을 파고들어 결국 임미숙과 아들 하나를 둔 부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서로 행복한 혼인 관계를 이루고 있진 않았는데, 우연찮게 장두석과 재회한 이봉원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결국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임미숙을 포기하면서 코너가 막을 내리게 된다.

3.15. 아르바이트 백과


방영 기간: 1985년 4월 ~ 1987년 7월
출연: 장두석, 김정식, 임미숙
영악한 선배 장두석과 거기에 휘말려 늘 이용당하고 골탕먹는 후배 김정식이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는 내용. 정식의 연인으로 나오는 개그우먼 임미숙이 오해해 김정식에게 날리는 멘트인 "짐~승~"은 코너에 시작되는 "아~ 아~ 아르바이트~"라는 멘트와 함께 나름의 유행어였다.[26]

3.16. 여자, 여자, 여자


방영기간 : 1990년 2월 ~ 6월
출연: 임하룡, 김미화, 임미숙, 이희구
여자 세명이 사는 하숙에 들어온 사이코 예술가 임하룡의 이야기로 극의 실제 주인공은 여자 세명인 이희구, 임미숙, 김미화이다. 중간에 임하룡이 아이디어 부재와 비중 문제로 갑자기 점잖은 사람으로 출연하고 하차하면서 유야무야 종료되었다.

3.17. 열녀문


방영기간: 1991년 10월 ~ 1992년 2월
출연: 지영옥, 문형주, 최용순[27], 김용
조선시대 남편을 일찍 떠나보낸 과부 3대(지영옥, 문형주, 최용순[28])의 에피소드를 담은 코너. 남편을 잃고 수절을 지키며 사는 것 같지만 실상은 언제라도 재가를 노리고 있고, 이런 그들의 사정을 아는 보부상(김용)이 남자를 소개시켜 주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머슴 선발대회 편에서는 배삼룡이 변강쇠(...)로 등장해 특유의 비실비실한 몸개그를 선보였다.

3.18. 영구야 영구야


방영기간: 1988년 6월 ~ 1990년 1월 6일[29]
출연: 심형래(송영구 역), 송영길(송영감 역), 이현순(영구 어머니 역), 윤혜영(색시 역), 조춘·김유행(쌍라이트 형제 역), 김학래 등

본래 유머 1번지중 한 코너인 '원작따로 코미디따로'의 한 시리즈로 시작되었으며 드라마 '여로'를 기본베이스로 패러디한 코너였다. 원래 영구야 영구야는 단편 몇주로 끝내고 다시 다른 작품을 베이스로 할 예정이었으나 심형래의 주인공 캐릭터인 영구가 크게 인기를 끌어[30] 원작따로 코미디따로는 사라지고 아예 영구야 영구야가 고정코너가 된다. 영구의 아버지로는 송영길이 출연. 영구의 이름을 지은 방법으로는, 01, 02, 03(...), 04..를 계속 해보다가, 07(영칠)은 너무 칠칠맞고, 08(영팔)은 이름이 너무 웃긴다고 하다가, 09(영구)가 괜찮겠다고 해서 지었다고 한다.
배경은 원작영화와 마찬가지로 일제시대를 따르고 있지만, 영구는 우연히 김학래가 이끄는 독립군 비밀조직의 일원이 되어 첩보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때 임무를 하달받고 코피가 나도록 쾅! 뛰어서 큰절을 하는게 또다른 인기요인이 되기도 했으며, 영구는 당시 어린이들의 우상이 되어 극장용 영화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도 나왔다. 영구의 동료인 조춘과 김유행 콤비의 일명 쌍라이트 형제도 큰 인기를 끌며 또다른 어린이영화의 주연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300회 특집에서는 88년 KBS 주말연속극 '순심이'에서 바보 칠득이 역을 맡았던 배우 손영춘이 극중 캐릭터로 특별출연했고, 배삼룡이 칠득이 아버지 역으로 나왔다. 또 배삼룡은 6.25 전쟁 이전에 남한에서 공산화 운동을 펼치던 '''김삼룡''' 역으로 나오기도 했다.

3.19. 이상해와 심형래의 폭소소동


방영기간: 1991년 6월 ~ 8월
이상해심형래가 콤비가 된 옴니버스 형식의 코너. 찰리 채플린 스타일의 슬랩스틱, 옆방 신혼부부집을 엿듣다가 난장판이 되는 의사와 환자, 영화 클리셰 비틀기 등 짧은 기간에도 다양한 코미디 형식을 선보였다.

3.20. 장밋빛 인생[31]



방영기간: 1989년 10월 ~ 1990년 2월
장두석과 이상운이 바텐더로, 다른 개그맨들이 고객으로 출연하여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코너이다.

3.21. 제 7 병동


방영기간: 1987년 10월 ~ 1988년 4월
제 7 병동의 남자 간호사 김정식과 그 주변 사람들[32]의 이야기로 드라마나 영화를 베이스로 한 코미디는 있으나 반대로 드라마의 모티브가 되었다. 드라마가 제작되면서 코미디 쪽은 종영되었다.
1988년에 방영한 동명의 드라마는 개그와는 거리가 먼 메디컬 드라마[33]종합병원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름 있는 메디컬 드라마였으나 조기종영되어 기억해주는 사람도 없고, 선구자 자리마저도 내어줬다. 여러모로 안습... 사실 80년대 초반 비슷한 메디컬 드라마도 같은 길을 걸었다.

3.22. 진중일기


방영기간: 1991년 10월 ~ 12월
출연: 김형곤, 정명재, 양종철, 최승경, 서현선 등
임진왜란기를 배경으로 하는 김형곤 주연의 풍자 코미디 코너. 당연히 코너명의 유래는 난중일기. 1992년 초 김형곤이 일신상의 이유로 잠시 휴식을 선언하며 조기종영되었다. 당시 신인이었던 남희석과 최승경도 출연했다.

3.23. 청춘을 돌려다오


방영기간: 1988년 10월 22일 ~ 1990년 2월 3일

젊은오빠 임하룡이 손자손녀 다둔 할아버지로 분하며 친구 전유성과의 툭탁거리는 우정, 동네할머니 임미숙과의 사랑을 그려나간다. 초창기에는 팽현숙이 임하룡의 며느리로 출연하기도 했다. 임하룡은 여기서 “헐랭이 춤”을 추며 잘 노는 할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선보였고, "내가 일주일만 젊었어도...아우!"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임하룡이 평소 썸을 타던 할머니 이경애와 재혼하면서 끝이 났다.
1989년에 아이큐 점프를 통해 만화로도 연재된 바 있는데, 스토리는 전유성, 작화는 고상한이 맡았다.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한 에피소드를 번안한 제목으로도 쓰였다.

3.24. 추억의 책가방


방영기간: 1991년 9월 1일 ~ 1992년 10월 4일
출연: 임하룡, 김현영, 조금산, 이경래, 김진호, 이희구, 안숙희 등

내일은 챔피언이 끝나고 시작된 임하룡의 새로운 코너. 그의 특기인 "다이아몬드 스텝"이 유래한 것이 바로 이 코너다. 여기서는 70년대 까까머리의 일제식 교복을 입은 날라리 고등학생 '임해롱'으로 등장하며, 우등생이지만 멘탈이 찌질한 '조병태' 역에 조금산, 해롱이와 같이 다니는 친구 '걸레' 역에 이경래, 해롱이에게 구박 받지만 그를 열렬히 짝사랑하는 '오달자'역에 김현영, 무서운 담임선생님이자 오달자의 친오빠인 '게슈타포'[34] 역에 김진호가 출연했다. 해롱이가 사는 동네에 수학여행을 온 다른 학교 학생들과 시비를 붙는 적이 있는데, 그때 타학교생으로 나온 엑스트라가 바로 김용만남희석이었다.
유머 1번지 마지막회까지 방송되었던 코너로, 엔딩은 담임 선생님의 회갑 잔치에 병태, 걸레 부부가 온 가운데 해롱이만 늦게 나타난다. 그는 여전히 춤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못말리는 가장이 되었는데 부인은 바로 오달자(..) 학생 시절과는 다르게 완전히 잡혀살고 있었다.
공사 창립 40주년 특집 개그 콘서트에서는 임하룡과 이경래가 그대로 출연했고 오나미(오달자), 박영진(선생님), 김성원(모범생)이 나왔다.

3.25. 충무로 차차차



방영기간: 1990년 1월 ~ 6월
영구야 영구야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심형래가 내놓은 새로운 코너. 1950년대 충무로에서 영화배우 지망생인 심형래와 감독인 전유성, 그리고 임화수를 풍자한 제작자(김학래)가 나와서 벌이는 영화 제작 이야기들. 윤봉길 의사에 대한 영화를 만들다가 진짜 폭탄을 던져서 다들 숯덩이처럼 새커멓게 멍하게 있는 장면도 나오기도 하고 암울한 배경이라 그런지 제작비를 아끼라고 허구헌날 끼어드는 무식한 제작자의 연기가 감초이다. 이를 본 임화수의 지인들이 임화수 병신 만들기라고 분노했으나 되려 그 시절을 겪은 이들에게 김학래의 재수없는 말투와 연기가 정말 임화수를 보는 모습이라고 감탄 및 심지어 임화수가 생각나서 치가 떨린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한다.
멍한 얼굴에 둥근 모자를 쓰고 엄청나게 큰 단추를 매달고 나온 심형래의 패션이 인상적이어서 심형래가 이 차림으로 신문광고에 나온 바 있다. 심형래가 마지막에 하는 대사인 " 근데 ~하는 거 그거 정말 하는거요? 실감나데..." 라는 대사에서 나온 '실감나데'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3.26. 캠퍼스학 개론


이봉원과 김미화가 캠퍼스 커플로 나왔다. 코너 자체의 방영 기간은 길지 않았으나 이 코너가 끝난 직후 이봉원이 동작그만에 합류하면서 그와 연계가 된다. 이봉원과 김미화가 산 속에서 분위기를 잡던 도중 동작그만의 출연진들이 나타나 "여기는 군사보호구역입니다."라고 하면서 내보낸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봉원이 코너가 끝난 직후 군에 입대하는 형식으로 동작그만에 투입되면서 내무반원들이 다들 그 일을 기억하는 스토리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봉원은 동작그만에서는 캠퍼스학 개론에서 쓴 이름인 '이영남'으로 나온다.

3.27. 탱자 가라사대



방영기간: 1989년 3월 ~ 1990년 10월 27일
시사 코미디의 본좌인 김형곤의 출연작. 오프닝 배경음악은 영화 마지막 황제의 메인 타이틀 곡이고, 내레이션은 성우 장정진이었다. 스토리 설정상 야사 속 춘추시대의 노나라에 있던 탱자나무 그늘에서 깨달음을 얻은 탱자라는 사이비스러운 스승과 그 제자들이 벌이는 이야기로 역시 당대 사회를 열심히 비꼬고 있다. 사회만 비꼬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행태도 비꼬는 게 있었다. 특히 명언 하나를 날리고 나서 "적어라, 적어!", "꼭 공부 안 하는 것들이~"로 시작하는 부분은 당시의 입시위주 교육과 그 속에서 당시의 중고생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곧잘 핑계로 대던 미신에 대한 풍자가 담겨있었다.
원래 제자 백가시대를 배경으로 한 '꽁자 가라사대'라는 코너였으나 어떤 이유로 갑자기 '꽁자'에서 '탱자'로 인물이 바뀌었다. 극중에서는 꽁자가 입시 비리가 적발되어 문을 닫게 되었다며 제자들을 내보냈다. 누가 부정 입학한 제자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꽁자 曰"너희 전부". 그 제자들은 다음회에 탱자 밑으로 가있었다. 일각에서 이를두고 꽁자가 공자를 비하한다는 이유로 유림쪽에서 태클을 건 탓에 탱자로 바뀐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아마도 탱자나무와 관계된 드립 및 꽁자가 어감이 안좋아서 바꿨다는게 맞다. 당시 유림계는 구시대의 악습이라는 미명하에 은근히 탄압받던 시기여서 이런 걸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탱자로 바꾸니까 가수 이택림이 자기 별명이 탱자인데 왜 쓰냐고 태클을 걸기도(...).
1989년 송년특집으로 한번 이주일특별출연하기도 했다. "머리 밀면 다 탱자 아니냐"면서 가짜 행세를 하며 탱자와 대결하는 바보 사기꾼이자 80년대를 억압의 시대로 만든 29만원 그 분의 풍자 캐릭터를 연기했다. 탱자 김형곤이 "그대는 어디서 왔소?"라고 묻자 이주일이 "산 속에서 왔소이다"라고 말하고 "내가 내려오고 싶어서 산에서 내려왔느냐"라고 따지는데 이 역시 설악산 기슭 백담사에서 기거하다 내려 온 전두환에 대한 풍자다. 이 방영분은 1989년 12월 30일에 방송되었고 공교롭게도 이튿날 전두환의 국회 증언이 있었다. 이주일이 실제 전두환을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이 정지된 걸 생각하면...
제자로는 이자(조문식), 고자(하상훈), 환자(김용), 애자(이성미), 양자(오재미)가 출연했다. '이자'는 탱자가 잘못된 지식을 읊으면 딴죽을 걸어서 탱자로부터 "그래 니 잘났다, 니(네) 팔뚝 굵다"라는 대사를 이끌어냈으며 이는 본래 존재하던 "그래, 니 잘났다. 니 팔뚝 굵다"라는 유행어를 재유행시켰다. 이후 잘난척하는 사람에게 면박을 주는 용도로 니똥샤프심, 니똥칼라파워[35], 니똥칼라 등의 유행어들이 새로 파생되었으며 봉숭아 학당에서 복학생이 이 유행어를 다시 들고 나왔다. 양자는 오재미의 캐릭터다운 모자란 캐릭터로 탱자에게 구박을 당하는데, 이 때 탱자가 자주 쓰던 유행어가 "일생에 도움이 안 돼요". 탱자는 애자만 편애하는 바람에 다른 제자들이 딴죽을 걸고 양자가 애자를 따라하다가 탱자에게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그 외에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 이자는 맞추는데 나머지는 못 맞추는 기믹도 있다. 예를 들어 문제의 정답이 프란시스 베이컨인데 고자는 햄, 환자는 핫도그, 양자는 케찹 바름 등으로 쓰는 식.

3.28.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4. 주요 유행어


>아, 아, 아르바이트. 오늘은 OOO이죠 (장두석, 김정식/아르바이트 백과)
>잘 돼야 될 텐데, 잘 될 턱이 있나[36]
>어때요?/좋~습니다![37]
>잘~될까?/맡겨 주십시오!
>흥, 흥, 장사 하루 이틀 하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경사났네, 경사났어 (심형래/변방의 북소리)
>반갑구만, 반가워요[38] (장두석, 조금산/북청 물장수)
>있을 때 잘해, 나는 봉이야 (최양락/남 그리고 여)
>영구 없다/띠리리리리리~ (심형래/영구야 영구야)
>에구에구에구, 그날 난~ (최양락/고독한 사냥꾼)
>일주일만 젊었어도 (임하룡/청춘을 돌려다오)
>일생에 도움이 안 돼요/알~~겠느냐?/공부 못 하는 것들이 말이야 (김형곤/탱자 가라사대)
>그래, 나는 모른다, 니는 아나? (김용/탱자 가라사대)
>짜장은 증말 싫어, 난 짬뽕!
>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리바이벌은 안 해 (이창훈/맨손의 청춘)
>괜찮아유 (최양락/괜찮아유)
>실례 실~례합니다 실례 실례하~세~요~ (장두석/부채도사)

5. 몰락


사실 인기가 없는 코너는 그때그때 바로 내려버렸기 때문에 개콘이 나오기 전까지는 KBS 간판코미디 프로였다. 신인인 최양락 등이 이 작품을 통해서 성장하는 걸 볼 정도였고 대학 개그제 출신의 유재석, 김용만 등의 새로운 얼굴도 그때 그때 충원되던 바.
문제는 1991년 12월 9일에 개국을 한 SBS로 인해 중추를 이루던 개그맨들이 대부분 SBS로 가는 바람에 그 해 가을개편 철 많은 코너가 '''하루 아침에''' 없어져버렸다. SBS로 이적한 개그맨들은 나중에 용도 폐기되었다. 나름 성공적으로 이적했다고 하는 최양락조차도 어느날 갑자기 잘리는 바람에 호주로 이민을 갈까 생각할 정도. 그나마 간판을 지켰던 임하룡도 결국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MBC와 KBS 코미디를 동시에 출연했다. 게다가 95년에 SBS에도 진출하며 역사상 전무후무한 3사 코미디 동시 출연을 달성한다. 이때 이적한 개그맨 중에는 심형래도 있었는데, 김학래의 증언에 의하면 SBS가 지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곧바로 KBS로 복귀했다고 한다. SBS의 지역민방이 개국된 것은 이 프로그램이 종영되고 3년 뒤의 일이다. 이후 심형래는 유머 1번지 종영 이후에도 KBS의 각종 개그코너에서 맹활약을 할 수 있었다.
전문가인 선배들의 도움으로 무명부터 차근차근 올라와야 할 신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빈약한 실력으로 코너를 맡으니 결과적으로는 아이디어나 연기나 모두 떨어지게 되는 법. 또한 이때를 기점으로 정통 코미디보다는 일밤이나 꾸러기 대행진 같은 버라이어티 쇼 예능 쪽으로 코미디 방송의 대세가 바뀌면서 입지가 좁아진 것도 문제였다.
결국, 마지막회에서 김정식이 SBS에 간 사람들에 대한 한풀이 배뱅이 굿을 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모습을 끝으로 간판 장수 프로그램인 유머 1번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동시간대 라이벌 프로그램 꾸러기 대행진의 MC가 한때 유머 1번지 주축이었던 최양락이봉원이어서 아픔은 두 배였다.
이후 KBS 개그는 한바탕 웃음으로-명랑극장-코미디 1번지로 근근히 명맥을 이었으나 90년대 중후반에 이경실, 박명수, 서경석, 이윤석, 김진수, 조혜련 등이 주축이 되어 활약했던 오늘은 좋은 날웃으면 복이 와요 등을 내세운 MBC에게 완전히 주도권을 내주면서 그마저도 웃으면 좋아요와 웃으며 삽시다를 내세운 SBS에게 지분의 일부를 내주는 암흑기[39]에 빠졌다. KBS가 코미디계의 패권을 다시 되찾아오는 시기는 7년 뒤인 1999년개그 콘서트로 큰 히트를 치면서부터다. 그러나 개그콘서트마저 2020년을 끝으로 막을 내리면서 KBS뿐만 아니라 지상파 3사의 코미디 프로는 종언을 고했다.

6. 여담


엔딩 스탭롤이 올라갈때 나오는 음악이 프로레슬러 미사와 미츠하루의 입장 테마곡 (정확히는 성룡, 홍금보, 원표 주연인 홍콩 영화 쾌찬차(스파르탄X는 일본 개봉명)메인 테마음악이다. 이 곡이 사용되기 전에는 장 미셸 자르의 Zoolook이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300회 특집에서는 Squash Gang의 Moving Your Hips의 Instrumental 버전을 엔딩곡으로 사용하였다.
초창기 몇년간은 팝송 DJ인 김광한이 출연하여 해외 최신 팝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해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이성미와 함께 진행하다가 차츰 혼자 나오는 형태로 바뀌었다. 그리고 해외 팝 뮤직비디오 소개는 이후 쇼 비디오 쟈키로 이어진다.
종영 후 KBS 위성1을 비롯해 복지TV와 시니어TV에서도 재편성했다.
위에 언급된 유행어 중 다수가 응답하라 1988에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극중 되도 않는 개그를 즐겨하던(...) 김성균이 당대의 유행어들을 중독자 수준으로 시전하는 캐릭터였기 때문.
김형곤이 왕으로 나오는 '잃어버린 왕조'라는 정치풍자 코너를 만들고 녹화까지 마쳤으나 방송되지 못한 일화가 있다.
[1] 방영 당시에는 '장미빛 인생'[2] 2013년 3월 3일 개그 콘서트 - 코미디 40년 특집에서 마지막 무대로 꾸며졌던 코미디는 흐른다의 맨 첫 소절.[3] 여담으로 90년대를 대표했던 코미디 프로그램은 옆 동네에서 방영했던 오늘은 좋은 날.[4] 전국노래자랑의 그분 맞다. 해당 프로그램의 초창기에 '꼿꼿한 자세' 등의 꽁트에 출연한 사실이 있다. 게다가 이 분은 이 외에도 코미디 하이웨이에서 사극을 하면 훈장이나 사또를 전담했다.[5] 코미디 하이웨이에서 훈장으로 출연한 송해.[6] 1989년 300회 특집 영구야 영구야에서 칠득이 아버지로 특별출연했고, 1991년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왕손(김형곤)의 바보 삼촌 역으로 출연했다.[7] 송영길(1984)과는 다른 인물로 이쪽은 원로 개그맨이다.[8] 1983~84년 초창기에 출연하다가 MBC로 이적했다.[9] 김정식이 약을 잘못 지어준 바람에 바보가 되었다는 설정이다.[10] 이경애는 유머 1번지 종영 이후에 SBS로 이적했다.[11] 임하룡 집에 갔다가 임하룡의 학창시절 성적표를 발견했는데 가양양가양양양양가가... 였다고...[12] 사실상 얼음으로 된 집으로 나온다.[13] 때문에 극중에서는 늘상 헤비라고 불린다.[14] 원래 체급은 미들급(72.562kg 이하)인데 밴텀급(53.514kg 이하) 매치에 나가기 위해 감량에 도전했다.[15] 이후 거지들의 삶을 테마로 한 코너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도 거지옷을 입은 왕세자 심형래가 지나가는 모습으로 잠시 등장한다.[16] 사장 역은 원래 양종철이 맡았다가 극 중반에 전유성으로 교체되었다.[17] 달룡이란 캐릭터가 바보 캐릭터이긴 한데, 은근히 유식한 소리를 제법 맞는 타이밍에 읊어대는 기믹이 있는데, 이 때 최양락이 '너 방금 뭐라고 했냐??'라고 되물어보면 하는 대사다.[18] 주로 동요 둥글게 둥글게의 노래 곡조에 맞추어 불렀다.[19] 그래서 코너 시작 전 내레이션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천년전....”으로 시작됐다.[20] 상단 유튜브 링크[21] 심형래가 나오지 않은 이유는 하필 그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22] 물론 오프닝 - 오게된 이유 - 끝 이라는 구성만 계승한 것이지 무릎팍 도사와 부채도사의 웃음 포인트는 다르다.[23] 점괘가 매번 틀리고 무속인을 우스꽝스럽게 그렸다는 이유인 듯.[24] 하필 마지막으로 찾아온 손님은 부채도사의 마지막 점을 믿고 당첨된 상황이라 부채도사가 마지막엔 정말로 점괘가 들어맞은 상황이어 더더욱 안타까운 마무리였다.[25] 응답하라 1988에서 김성균성덕선이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지만 고증오류다. 극중 배경인 1980년대 말기에는 이 코너가 없었기 때문.[26] 이 코너의 시그널 음악은 장 미셸 자르의 앨범 Zoolook 수록곡인 Diva의 중간부분.[27] 원래는 김지선이었으나 SBS 이적으로 최용순으로 변경.[28] 지영옥이 40년차 과부, 문형주가 20년차 과부, 최용순이 이틀(...)된 과부로 나온다.[29] 심형래가 처음 영구를 연기한 것은 1986년도 극장판 여로다. 당시 분장은 땜빵머리가 아닌 본인 머리 그것도 떡진머리에 달랑 얼굴에 점부치기. 앞니 빠진 분장도 안했다. 참고로 심형래 코믹 캐롤 앨범은 영구가 탄생하기 전인 1984년에 발매되었고 하룡 서당이라는 코너의 바보 제자 캐릭터(난 잘 몰르겠는데요)를 이용한 것이다.[30] 엄청난 인기를 끈 결과 원래 "영구"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장욱제의 영구보다 심형래의 영구가 더 유명해지게되었다. 개그캐릭터로서, 그리고 개그맨 심형래의 페르소나로서의 영구가 국민적인 바보 캐릭터가 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로의 영구가 그 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들 이후로 잊혀지게 된 것도 다 이것 때문. 다만 여기에 뒷 사정이 있기는 한데 여로는 녹화 테이프를 알뜰하게 재활용을 했기때문에 방송자료가 이제 달랑 1편만 남아있다는 것도 한 몫한다. 70년대만 해도 녹화테이프가 워낙 비싸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31] 방영 당시에는 '장미빛 인생'[32] 동료 여간호사로 김미화가 나왔다.[33] 박성조 작가와 이성연 PD의 작품으로 주연은 이순재, 최화정, 김봉근, 주현, 김영애 등이며, 제작 여건 등으로 인해 수술씬 등이 적고, 환자와 의료진의 이야기 위주다.[34] 옛날 선생님들의 흔한 별명이었다.[35] 1988년에 나온 당시 빙그레에서 내놓은 콘 아이스크림이름이 칼라 파워였다. 가격은 200원.[36] "잘 될 턱이 있나" 부분 중 '턱' 대목에서 주먹으로 턱을 친다.[37] "좋~습니다"를 외치면서 손으로 'OK' 동작을 하거나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크게 그리는 모션을 했는데 어른의 사정으로 이들 모션이 엄지 손가락을 내미는 모션으로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OK' 손동작은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을 상징하는 손짓이었고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크게 그리는 모션은 평화민주당 총재였던 김대중의 트레이드 마크 모션이었기 때문이다. 바뀐 모션인 엄지 손가락은 그 당시 집권당이던 민주정의당을 의미했다.[38] 응답하라 1988에 이 대목이 등장한다.[39] 그나마 코미디 세상만사 덕분에 코미디 프로의 명맥이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