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살리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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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중인 베르살리에리. 부대 전통에 따라 뜀걸음으로 행진하고있다.
1. 개요
Bersaglieri
이탈리아군의 정예 육군 부대. 사르데냐 왕국 시기 창설되었다.
이들의 상징이라 할수있는 검은색 모자 'vaira'는 본래 기병의 세이버 공격을 막기 위해 착용하던 것으로, 검은색 뇌조 깃털로 장식을 한다. 깃털 자체는 실용적 가치가 전혀 없어서 위장이 중요시 되는 현대전에서는 걸리적 거리는 장식이 되어버렸지만,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베르살리에리 대원들은 방탄모에 이 깃털을 꽃고 작전을 뛰는 기행을 보여주기도 한다.[1]
현재는 남녀혼성부대로, 위 사진만 봐도 여성 부대원이 포함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2. 역사
사르데냐 왕국의 장군 알레산드로 라 마르모라의 제안으로 1836년 6월 18일 창설되었다. 모태는 경보병 부대였으며, 이는 당시 사르데냐군의 부족한 기병전력을 메꾸기 위한 조치였다. 이 부대의 가장 큰 특징인 '3보 이상 구보'도 빠른 이동속도로 기동보병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전술적 유연성을 위한 독립적인 작전권도 보장 받았다.
본래 창설될 때는 네 개 중대만 있었지만 규모가 점점 커져서 1871년에는 36개 대대로 이루어진 6개 연대가 되었다. 이들은 1870년 교황령 점령에서 큰 활약을 하였다.
이들이 최초로 국제사회에 이름을 떨친 것은 크림 전쟁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왕국의 모태였던 사르데냐 왕국은 훗날 이탈리아가 독립을 선언 할 때 열강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1만 5천명의 군대를 파병하였고 베르살리에리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당시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똥별들의 삽질등으로 인해 온갖 추태를 보여주었는데, 상대적으로 소수였던데다 정예병으로 구성되어있었던 사르데냐군은 상당히 잘 싸워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베르살리에리 연대는 그중에서도 돋보였으며, 체르나야 전투에서는 러시아군의 기습에도 굴하지 않고 육박전까지 벌여가며 적을 쫒아내는데 지대한 공훈을 세웠다.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모든 베르살리에리연대에 자전거 대대가 창설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베르살리에리의 규모는 2개 특수사단, 7개 여단, 21개 연대, 5개 독립대대였다. 자전거 대대는 전쟁이 끝난 후인 1919년 해체된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베르살리에리는 기갑사단, 차량화사단, 기병사단과 같은 기동사단에 연대 단위로 배속되어 활동했다. 독일군 원수인 에르빈 롬멜은 베르살리에리를 이렇게 평했다. "독일 군인은 세상을 놀라게 하지만 베르살리에리 군인은 독일 군인을 놀라게 한다."이들의 인식이 서구권에서 어땟는지를 알수있는게 패튼이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주둔한 부대가 이탈리아군에게 박살났단 보고를 듣곤 노발대발해지만 그부대가 베르살리에리라는 보고를 받자마자 그들에게 사과를 했을 정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탈리아 공화국이 수립된 후에도 부대는 존속되었다. 냉전 시절에는 기계화보병 부대로 운용했다. 1975년 군제 개혁 때 편제가 다시 바뀌었으나 부대의 명칭과 기계화 보병이란 성격은 그대로 남아서 현대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3. 현역 부대
- "가리발디"베르살리에리여단
- 제1베르살리에리연대
- 제8베르살리에리연대
- 제3베르살리에리연대
- 제6베르살리에리연대
- 제7베르살리에리연대
- 제11베르살리에리연대
4. 기타
로마에는 베르살리에리 박물관이 있다. 위치는 교황령 점령 당시 베르살리에리가 교황령 주아브를 상대로 승전을 거둔 포르타 피아(Porta Pia)다.
경보병으로 시작한 부대라서 그런지 이동시 뜀걸음으로 이동하는 전통이 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열병식할 때도 뜀걸음을 하며, 관악기를 연주하는 군악대도 예외없이 뜀걸음으로 행진한다.
그리고 의화단 운동 당시 베르살리에리 연대도 참전했는데, 베이징에 뛰면서 입성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