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그라드 조약

 

Treaty of Belgrade / Belgrade peace
1739년 9월 18일에 오스만 제국합스부르크 가문오스트리아 사이에 체결된 조약이다. 7차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 (1737년 ~ 1739년)을 마무리지었다.
2차 빈 포위 이후 합스부르크 제국에 연이어 털리던 오스만 제국은 이 조약을 통해 다소나마 자존심을 회복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오스만 제국이 단독으로 유럽 열강을 상대로 승리한 마지막 전쟁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1718년 파사로비츠 조약에서 상실한 영토 중 의 다뉴브 강 이북의 바나트 지역을 제외하고 베오그라드, 보스니아 북부, 왈라키아 서부를 회복하였으며, 다뉴브 강에서 사바 강으로 이어지는 국경선을 설정하게 되었다. 동로마 제국이 전성기 (6세기 / 11세기 전반 / 12세기 중반)에 유지하던 바로 그 자연 국경이다.
또한, 이로써 베오그라드 일대에 존재하던 합스부르크 령의 세르비아 왕국 (1717년 ~ 1739년)은 단명한 채로 다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1878년이 되어서야 자치권이 주어지게 된다. 다만 1788년 - 1792년에 오스트리아 군이 다시 베오그라드부터 니시 인근까지 영토를 점령했으나 프랑스 혁명 전쟁으로 시스토바 조약에서 포기한 것이다.
한편, 7차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은 동시에 6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이었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서로 다른 목적으로 서로 다른 지역에서 싸우나 같은 적에 맞선 일종의 연합군으로서 오스만에 맞서 싸운 것인데 오스만에게 밀리면서 베오그라드 조약을 체결해야 한 오스트리아와 달리 러시아는 오스만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그런데 베오그라드 조약으로 오스트리아가 전쟁을 빠지고 오스만의 요구로 오스트리아가 러시아에게 종전을 하도록 압력을 가하자 결국 전의를 상실한 러시아는 같은 해 10월 3일에 오스만 제국과 니시 조약을 체결했다.[1] 니시 조약의 결과 러시아는 오스만의 속국인 크림 칸국몰다비아 공국을 포기하였으나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얻었으나 대북방전쟁 때 잃었던 아조프를 할양받아 항구를 건설하면서 러시아의 흑해 진출이 시작되었다. 그 유명한 흑해 함대의 시작이었다.

[1] 그리고 이 대가로 오스만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제들을 원래 러시아 황제가 노리고 있던 "오스만 영토 내 모든 기독교도 신민들의 보호자"로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