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그라드

 

베오그라드 (세르비아)


[1]
1. 개요
2. 역사
3. 관광
4. 치안
5. 축구의 도시
6. 대중매체에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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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어
Београд(Beograd)
영어
Belgrade
라틴어
Singidunum
러시아어
Белград
베오그라드는 남유럽 국가 세르비아의 수도이다. 지리적으로는 도나우 강, 드라바 강, 사바 강 등이 합류하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보이보디나 자치주와도 접경해 있다.
베오그라드라는 지명은 세르비아어로 "하얀(Beo) 도시(grad)"라는 의미를 지닌다. 도시 이름에 맞게 건물들도 대부분 흰색으로 도색하게끔 조례가 잡혀있다. 크로아티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세르비아한테 악감정이 많아서 베오그라드를 두고 "폭격 너무 많이 맞아서 잿더미가 된 도시라서 하얀 도시"라 비꼬기도 한다.
전근대에는 독일어로는 바이센부르크, 베네치아어로는 카스텔루비안코, 헝가리어로는 난도르페헤르바르 같이 각국 언어로 백색 도시라 번역차용 되어 불리곤 했다.

2. 역사


고대 켈트계 부족인 스코르디스키가 세운 도시 신기둔/신기두논이 베오그라드의 기원이다. 이후 로마 제국이 라틴어로 신기두눔(Singidunum)이라고 부르며 다뉴브 강 방어선의 거점 군사 기지들 중 하나로 이용했다. 수백 년 동안 로마 제국 아래 있다가 441년 아틸라가 이끄는 에게 함락당했고, 그 뒤 여러 게르만 세력과 슬라브 이주민 세력이 발칸 반도로 침입하는 통로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때부터 12세기까지 신기두눔은 동로마 제국, 불가리아 제1제국, 마자르(훗날의 헝가리) 등이 뺏고 뺏기는 쟁탈전을 벌이는 군사 요새였으며 상황에 따라 거의 버려지다시피하기도 했다. 슬라브식 이름 베오그라드(Beograd)는 9세기에 불가리아가 점령하면서 쓰기 시작했다.
1204년 4차 십자군의 공격으로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세르비아 세력이 이 지역에 자리잡았고, 헝가리 왕국의 봉신으로 시작해 독립 세력을 구축한 세르비아 군주 스테판 드라구틴(1244 - 1316)이 베오그라드를 수도로 삼았다. 14세기 후반 세르비아 남부가 대부분 오스만 제국의 공격에 함락되어 베오그라드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이 마지막 저항의 중심지가 되었고, 1427년에는 결국 헝가리 왕국에 자진 합병되었다. 헝가리 치하에서는 헝가리어로 하얀 성채라는 뜻의 난도르페헤르바르(Nándorfehérvár)라고 불렸으며 계속해서 오스만 제국의 폭발적인 확장을 저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새가 되었다. 그에 따라 오스만 제국의 황제 메흐메트 2세가 공략을 시도했지만 헝가리의 명장 후녀디 야노시에게 완패해 음독 자살까지 시도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1521년, 메흐메트 2세의 증손자인 쉴레이만 1세는 즉위하자마자 기습적으로 난도르페헤르바르를 공격해 결국 함락시켰다. 1521년 당시 헝가리는 나라가 막장 테크를 타고 있었던지라, 수비군은 수백에 불과했다. 다른 도시도 아니고 난도르페헤르바르가 떨어졌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요새를 수리하고 군비 확충에 열을 올렸지만, 그마저도 구체적으로 체제를 잡은 게 아니라 귀족 한 명을 보내놓고는 '님이 다 알아서 하삼. 단 정부의 경제 원조는 바라지 말고.' 하는 식이었다. 게다가 전세를 뒤집기에 5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이후 쉴레이만 1세는 1526년에 모하치(혹은 모하크스) 전투에서 헝가리 군대를 괴멸시켜 독립 헝가리 왕국의 역사에 사형 선고를 내렸다. 정확히는 나라가 둘로 갈라졌고, 그것도 모자라 둘 가운데 하나는 합스부르크 왕조, 다른 하나는 오스만 제국의 신하국이 되었다. 이후 헝가리는 근대에 들어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될 때까지 외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다만 오스트리아 제국과의 대타협에서 주권국가나 마찬가지인 자치를 누렸다.
이후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300년 이상 머물렀으며, 1878년 세르비아가 베를린 조약의 결과에 따라 독립을 쟁취했을 때 비로소 수도로 확정되었다. 이후 역사의 우여곡절 속에서 1차 대전 때는 동맹군에, 2차 대전 때는 나치에 점령되기도 했지만 1945년 이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수도로 결정되어 또 다른 '비동맹주의'의 거점으로 주목을 받았다. 여담이지만 유고슬라비아 연방 내에서 세르비아인 제일주의,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대두를 경계하고 염려한 티토 대통령은 연방 수도를 사라예보(현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로 옮기는 것까지 고려했을 정도였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되면서 진통 끝에 신생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의 수도로 결정되었으며,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NATO 군대의 폭격을 받기도 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이끈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권좌에서 축출된 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으나, 2006년 몬테네그로가 분리 독립하면서 결국 세르비아 공화국만의 수도가 되었다.

3. 관광


도시의 역사가 짧지 않지만, 프라하나 부다페스트만큼 볼거리가 많지는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위에 나온 것처럼 잦은 전쟁으로 인해 도시가 파괴된 사례가 많기 때문. 그래도 곳곳에 오래된 정교회 성당들이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고 특히 중심가인 크네즈 미하일로바(Улица Кнез Михаилова) 거리와 스카다리야 거리(Скадарлија)에는 유럽식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잘 남아 있다. 특히 다뉴브 강 과 사바 강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잡은 칼레메그단(Kalemegdan)요새는 자그마치 3세기 로마 제국 시절부터 존재해 왔으며 중세 세르비아 왕국과 오스만 제국 시절을 거쳐 지금까지도 여러 양식들이 혼합된 형태로 남아 있다. 요새 내부에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1차대전, 2차대전을 거쳐 구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 쓰이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으니 혹시 밀덕이 베오그라드를 방문할 예정이라면 이곳도 한 번 방문해 보길. 다만 편의 시설이 그렇게 잘 되어 있지 않고 관광 안내도 부실한 편이니 유념할 것.그리고 세르비아가 낳은 천재적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가 살아생전에 발명한 테슬라 코일 등 발명품들을 전시한 니콜라 테슬라 박물관도 동유럽 여행을 갈 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가봐야 될 명소 중 하나이다.
인구 100만을 넘어가는 대도시이기는 하지만, 이웃나라인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와는 다르게 지하철은 없고 노면전차가 지하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지하철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시절부터 건설 논의가 있었지만 자금문제로 계속 미뤄지다가, 2020년착공한다고 한다. 2개 노선 43개역을 계획중.
베오그라드 지하철 착공 일정이 연기되어 2021년 12월 착공한다. 기사

4. 치안


유고 내전과 내전 직후 혼란기때 많은 테러와 암살이 빈발했다. 특히 세르비아 마피아들이 설치면서 죽고 죽이는 사투를 벌이다가 2003년경 총리가 세르비아 마피아에 암살당한 사태를 계기로 대규모 검거작전이 이루어저 지금은 많이 개선이 된 편이다.

5. 축구의 도시


이곳을 연고로 하는 축구 구단으로 FK 파르티잔FK 츠르베나 즈베즈다가 있으며, 축구에 미쳐 사는 도시로 '악명'이 높다.
자세한 내용은 '더비 매치' 문서 참조.

6. 대중매체에서


중국의 모바일 게임 소녀전선의 대형 이벤트 전역 이성질체와 일반전역 11지역이 이곳을 배경으로 한다.

[1] Klangkarussell의 Netzwerk (Falls Like Rain) 이란 음악인데 뮤직비디오 촬영지가 베오그라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