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경제
1. 개요
벨기에의 경제(2010)
벨기에 이야기: 두 지역의 뒤바뀐 운명 그리고 벌어지는 격차
벨기에는 좁은 국토와 낮은 부존자원 등 불리한 조건들을 극복하여 무역과 기술 개발로 경제성장을 이룩한 서유럽의 부국이다. 벨기에의 산업은 유럽에서 두번째로 산업혁명을 겪어 급격히 발전하였다.[2]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기를 겪었지만 주변 유럽국가들에 비해 양호한 실적으로 위기를 극복하였다. 2009년 이후 수출입이 크게 감소하였으나 서비스 수지와 소득수지에서는 오히려 흑자를 기록하였다. 그에 비하여 무역수지는 적자를 기록했다. 아시아 등의 신흥시장이 벨기에 경제회복에 큰 기여를 한것으로 추정된다.[3] 벨기에의 공공부채 비율은 2009년 말 기준으로 96.3%이며 2011년 기준으로 97.8%이다.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 개방구조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2. 산업구조
2.1. 수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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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벨기에의 수출구조, 보라색은 의료-화학-플라스틱 관련 산업, 파란색은 자동차 등의 일반 제조업, 연한 갈색은 식품관련 산업, 녹색은 패션산업, 노랑색은 농업, 붉은색은 건설재료-장비 사업, 갈색은 광산업 겅은빛 진한 고등색은 석유관련 산업 [* http://en.wikipedia.org/wiki/Belgium#Economy]
벨기에는 서비스 산업이 국민총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수출구조에서는 의료화학 산업과 일반 제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벨기에 안트베르펀(앤트워프)에서의 다이아몬드 원석 거래량은 80% 가공 다이아몬드 거래량은 50%를 차지하고 있다. 연합뉴스링크
'피의 다이아몬드' 문제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나라이기도 하다.
3. 역사
경제적으로는 벨기에는 산업 혁명 시기에 중견 국가로 성장하고 20세기 초까지는 네덜란드보다 대체로 잘 나갔다. 벨기에의 산업화가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영국 다음으로 일찍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벨기에의 탄전과 철광산 대부분이 왈롱 지방에 집중되어서 벨기에의 성장을 이끈 중공업 또한 왈롱에서 발달하였다. 이로 인해 막대한 부가 왈롱인들에게 쏠리게 된다.
벨기에의 플란데런 지방은 한때 서유럽 무역의 거점으로 화려하게 번영하였으나 전통 산업인 모직물 공업이 쇠락하는 등 지독한 경제난을 겪고 왈롱인들에게 거지 취급을 받는 고초를 겪었다. 본래 플란데런인들의 도시였던 브뤼셀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빠져나가는 플란데런인들과 수도로 진출하려는 왈롱인들의 이주로 인해 인구비가 역전되어 왈롱인들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4] 이런 취급은 벨기에 독립후 150여년 가까이 지속되다가 현대에 들어와서 벨기에의 중공업 섹터가 몰락하고, 관광과 금융으로 되살아난 플란데런 경제가 화려한 부활을 하면서 완전히 역전돼 버린 것이다. 맥주로 유명한 인베브가 플란데런에 본사를 두고 있다. 맥주나 팔아서 얼마 못 벌것 같지만 사실은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인베브보다 시가총액이 높은 한국기업이 없을정도로 규모가 크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국토 대부분이 점령당하고 최대의 격전지가 되었으며 그 교훈을 살려 에반-에마엘 요새를 건설하는 등 대비를 하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또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전국토가 넘어가버렸다. 이후 금융의 허브&평화로운 중립국의 이미지가 모두 박살나고 이를 스위스가 홀라당 채가면서 빛이 바랬다. 그래도 그 동안 쌓아놓았던게 어디 안 간 건 아니고 EU 본부가 바로 벨기에에 위치해있기에 금융업쪽에서는 나름대로 활발한 편이고 국민소득도 여전히 상위권에 속하기는 한다.
4. 현황
하지만 유럽경제가 타격을 입었을 때, 벨기에도 타격을 입었고 심지어는 구인난도 심각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벨기에는 정부가 가난하고 가계가 더 돈이 많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유럽에서도 자가보유율이 굉장히 높은 편이며 상대적으로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가계 빚이 가계에 직접적인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게 통설이였다.
그러나, 2014년 부터 점점 빈곤율이 올라가는게 현재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가장 큰 고민이다. 2018년 벨기에 통계청과 경제부 조사에 따르면 현재 벨기에 정부가 지정한 빈곤에 해당하는 가계가 전체 가계에서 15%를 차지 한다고 밝혔다. 또한, 빈곤율과 이민자 가정에 어느정도 통계상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벨기에 빈곤율의 경우 점점 도시화 지역으로 몰리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를 방치할 경우 대부분의 벨기에 대표도시에서 슬럼화가 더 빨리 진행될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5. 관련 문서
[1] 실제 경제력에 비해 낮은 신용등급인데, 이는 벨기에의 고질적인 정치문제에서 기인한다. 따로 벨기에의 정치 위기라는 문서가 있을 정도로 연방정부에 문제가 있다. 반면 지방정부들이 오히려 신용등급이 좋은 편이다.[2] http://terms.naver.com/entry.nhn?cid=3290&docId=1524657&mobile&categoryId=3290[3] http://terms.naver.com/entry.nhn?cid=3290&docId=1524662&mobile&categoryId=3290[4] 이 부분은 왈롱과 플란데런의 설명이 다르다. 왈롱인의 입장에 따르면 브뤼셀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배층에서 불어를 상용하였고, 사실 현재의 네덜란드어권인 헨트도 중세때는 지배층 카를 5세에서는 불어와 스페인어를 상용하던 곳이다. 하지만 민중에서 만큼은 네덜란드어가 광범위하게 쓰였으며, 나폴레옹 지배 이후에 브뤼셀에서 네덜란드어를 쓰는 민중이 쫓겨난것으로 플란데런 인들은 주장한다. 반면 산업혁명으로 가난했던 플란데런의 인구들이 브뤼셀로 이주하면서 네덜란드어가 다소 쓰이게 되었다고 왈롱인들은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