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스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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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는 로이 릭턴스타인의 '행복한 눈물' 패러디.
2011년 6월 17~8일 양일간 서울대학교에서 개최된 락 페스티벌.
명칭은 짐작가능하듯이 미국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유래. 당시 서울대 법인화 재검토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본부 건물을 점거하던 상황에서 '''본부를 점거하고 개최하는 우드스탁'''이란 뜻에서 본부스탁이라고 명명.
서울대학교 학생총회를 통해 법인서울대학교 설립준비위 해체 요구안이 통과되고 그 자리에서 본부 점거가 이루어진 후[1] , 본부에서 점거에 참여중이던 모 학생의 구상에 의해 본부스탁의 잉태가 이루어졌다. 본부 점거에 비운동권 학생들도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평화를 갈망했던 우드스탁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생각이었다. 그 학생은 이러한 발상을 본부점거 과정에서 친분을 쌓은 다른 두 학생들과 나누었고, 금세 호응을 얻어 본부스탁을 추진하기로 그 자리에서 뜻을 모은다.
외부에서는 본부스탁이 총학생회[2] 와 관련된 운동권 학생들이 추진한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했지만[3] 사실 본부스탁을 처음 구상한 학생은 운동은커녕 어떤 학생자치단체에도 소속된 적이 없고 그 흔한 과/반 학생회도 해본 적이 없는 소위 '''원자'''[4] 였다. 처음 본부스탁 구상을 공유한 두 학생도 마찬가지로 비권이었고, 스태프들 역시 특정 학내 정치조직과는 전혀 무관하게 자원해서 참가를 신청한 학생들이었다.
여담으로 본부스탁 최초 제안자가 훗날 밝힌 바에 따르면 처음 상상한 본부스탁의 풍경은 본부 건물 앞 공간에서 학내밴드들 몇 팀에 외부 인디밴드 한두 팀 정도로 약소하게 치루어지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학생들의 엄청난 호응과 관심을 받고 일이 점점 커져 버린 것이다. 말 그대로 '''그 과정 자체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의 연속'''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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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스탁 티저 포스터. 당시 총장의 얼굴을 포스터에 가져다 쓰는 패기를 발산하고 있다.
본부스탁을 처음 구상한 학생이 서울대 학생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 본부스탁 제안의 글을 게재한 것이 2011년 6월 9일인데, 1차 라인업 공개가 같은 날 이루어졌다(...) 심지어 위의 티저 포스터가 1차 라인업보다 더 늦게 공개되었다. 1차 라인업에는 학내밴드들이 다수를 이룰 것이란 예상을 비웃듯 눈뜨고코베인, 밤섬해적단,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등 유명 인디밴드들이 포함되어 사람들을 충공깽에 빠뜨렸다. 16팀이 1차라인업에 포함되었는데 인디에서 섭외한 팀은 9팀, 학내에서 섭외한 팀은 7팀이었다.
그리고 이틀 후 바로 2차라인업이 공개되었다. 제리케이, 빈지노 두 서울대 출신 힙합 뮤지션이 포함되어 장르의 다양화를 시도하였고 3호선 버터플라이도 이름을 올렸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총장실 프리덤으로 장안의 화제가 된 '''SNUV'''가 라인업에 포함되었다는 사실...
행사를 사흘 앞둔 6월 14일 날짜별 최종라인업이 공개되었다. 최종라인업에는 2차라인업에 이미 발표된 팀들에서 딱 한 팀만 추가되었을 뿐인데 그 한 팀의 무게감이 워낙 강력해서... 당시 상상마당에서 장기간 공연이 잡혀 있어서 장비들을 옮길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쿠스틱으로라도 공연하겠다고 선뜻 섭외요청에 응했다고 한다. 고마운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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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라인업[5]
촉박한 시일에도 이렇게 순조롭게 착착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학교측에서는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었는지 본부스탁을 중지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리고 행사예정장소인 총장잔디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셔틀버스를 동원하여 경륜산성[6] 을 설치하였다.[7] 거기에다 총장잔디에 진입하면 규정상 퇴학도 가능하다고 엄포를 놓기도... 학생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길목을 막고 있는 차량을 들어서 옮기는 등(...)으로 맞섰다.
학교측의 방해[8] , 비 예보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본부스탁은 시작되었다.
첫 무대를 장식한 팀은 밴드가 아닌 '''관악노래패협의회'''였는데 첫 선곡이 의미심장하다. 민중가요 '''반격'''을 제창한 것. 락페스티벌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겠지만 가사를 생각해 보면 본부스탁의 서막으로 더 이상 적절한 곡이 없었을 듯. 곧이어 SNUV 3인이 '''총장실 프리덤''' 공연을 가졌다.
SNUV - 총장실 프리덤
학내 밴드인 쥬베닐리아는 패기돋게 일렉트릭 식스의 곡 게이바를 연주하여 엄청난 떼창을 이끌어 냈다.[9]
해질녘 즈음에 무대에 선 밴드 '''악어들'''의 보컬 지완은 공연 도중 무대 밑으로 뛰어내리더니 잔디를 한 입 물어뜯고 '''"총장님의 잔디!!"'''라고 일갈하기도(...)
락페스티벌 무대에 연이어 오른 랩퍼 둘 빈지노와 제리케이의 공연 역시 관객들의 열정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제리케이의 경우 날카롭고 깊이 있는 멘트로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제리케이 - 아이들이 미쳐가
첫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 밤섬해적단의 공연이었다. '''북괴의 지령이 내려졌다! 법인화를 저지하라!'''라고 일갈하며 일부 언론의 왜곡보도를 통렬히 비꼬는가 하면, "서울대 빨리 법인화되어서 본부건물에 편의점 생겼으면 좋겠다"라고 멘트하고는 '''해치'''를 부르면서 총장님과 시장님을 한 큐에 디스하기도 했다. 그러나 밤섬해적단이 보여준 최고의 기행은 서울대처럼 자기들도 법인화하겠다면서 자기들 대신 연주를 해 줄 세 명을 아웃소싱으로 고용한 것(...) 드럼, 베이스, 보컬 한 명씩 세 명의 관객이 졸지에 무대로 올라가 공연을 했고, 이는 수십명 관객들의 대거 무대난입으로 이어졌다. [10]
밤섬해적단 - 나는 씨발 존나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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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오브 더 디스코 공연. 사실 더거가 "빨리 법인화돼서 제가 건물 하나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드립을 치자 압둘라 나잠이 "이거 야채이름 밴드 하면서 돈 좀 벌었다고..."라고 받아쳤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일요일 밤의 열기
눈뜨고코베인의 보컬 깜악귀는 자신들의 대표곡 '''지구를 지키지 말거라'''를 공연하기 전에 "사실 이 노래를 해야 하나 고민을 참 많이 했는데요, 뭐 지구를 지키지 말란 거지 학교를 지키지 말란 건 아니니까..."라고 했다. '''일렉트릭 빔''' 공연 중엔 곡명에 어울리게 폭죽을 준비해 와서 밤하늘을 향해 발사하기도.
눈뜨고코베인 - 네 종종 전화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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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공연의 절정, 브로콜리너마저 공연 당시 모습.
어쿠스틱으로 공연을 한 브로콜리 너마저의 공연은 역시 밴드의 네임밸류에 걸맞게 이틀의 공연 중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고 멤버들도 아름다운 공연으로 화답했다. 특히 마지막 곡 '''졸업''' 中 반주를 중단하고 순수 관객들의 육성만으로 떼창이 이루어진 부분에선 많은 이들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브로콜리 너마저 - 졸업
직접 확인하자.
브로콜리 너마저 - 2009년의 우리들
사실 둘째날 공연의 숨겨진 헤드라이너는 따로 있었다. 바로 브로콜리 너마저 다음다음 순서로 무대에 선 '''제8극장'''. 이틀간의 일정에 체력이 고갈되어가던 관객들은 제8극장의 클래시컬한 로큰롤 음악에 미친듯이 몸을 흔들었고, 처음으로 물뿌리기도 곳곳에서 시전되었다. 제8극장이 앵콜을 세 번이나 하는 바람에 막차를 놓친 사람들도 많았다. 마지막 앵콜이 끝날 때엔 누가 시작했는지 관객들이 한두개씩 가지고 있던 야광봉을 일제히 무대로 던지면서 장관을 이루기도.
야간 DJ타임까지 모든 공연이 끝난 후에는 스태프들과 관객들이 함께 쓰레기를 줍고 뒷정리를 하는 등 여타 락페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본부스탁 공연은 전적으로 무료로 개방되었으며, 대신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낼 수 있었다.
무대에 선 뮤지션들은 섭외시에 게런티를 정해 놓지 않았다. 대신 후원금을 다 모은 후 개최에 필요한 제반 비용을 제하고 남은 금액을 모든 팀들이 1/n로 균등하게 나누어 갖기로 했다.
학교측에서 진입로를 통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장비차량이 어떻게 학내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고 여러 설이 분분하다. 본부점거 회고록 <숨은기억찾기>에 따르면 본부스탁 주최측은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으나[11] '공식적으로'는 총장실에 들어갈 아이스크림차라고 속여서 통과했다는 설(...)을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진실은 저 너머에
공연 도중 막간에 공연 장소인 총장잔디를 '''학생잔디'''로 개명하는 동시에 총장에게서 학생들에게로 헌정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항목 참고.
'''즐기면서 시위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본부스탁이었지만 학생들이 본부스탁에서 너무 하얗게 불태웠는지 본부스탁 이후의 본부점거는 다소 김이 빠진 듯한 분위기가 이어졌고[12] 결국 총학생회는 점거를 자진해서 해제한다는 결정을 하게 된다.
본부스탁을 최초로 제안한 학생은 퇴학이라거나 하는 불상사 없이 무사히 졸업했고 지금은 군복무 중이라 한다. 다른 스태프들도 무사히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 같다.[13]
학생대표와 학교 본부측의 협상 도중 학생들이 본부점거를 해제하는 대신 본부측에서 내세운 조건 중에 '''본부스탁 연례 개최 지원'''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전언. 학생들은 이에 대해 대체로 '''시바 개굴욕ㅜㅜ'''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본부스탁의 의의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탄생시켰다는 데 있는데 학교측에서 본부스탁 하라고 돈 대주고 판 깔아주면 그런 능욕도 또 없는 셈. 당연히 본부스탁 연례 개최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6년 시흥캠퍼스 문제로 인해 또다시 본부관 점거가 일어났고, 당시 행사를 준비한 학우는 아니지만 '''당시 행사를 매우 감명깊게 참여했던 학우가 다시 본부스탁을 시도하겠다고 나섰다''' 링크
포스터는 로이 릭턴스타인의 '행복한 눈물' 패러디.
1. 개요
2011년 6월 17~8일 양일간 서울대학교에서 개최된 락 페스티벌.
명칭은 짐작가능하듯이 미국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유래. 당시 서울대 법인화 재검토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본부 건물을 점거하던 상황에서 '''본부를 점거하고 개최하는 우드스탁'''이란 뜻에서 본부스탁이라고 명명.
2. 발단
서울대학교 학생총회를 통해 법인서울대학교 설립준비위 해체 요구안이 통과되고 그 자리에서 본부 점거가 이루어진 후[1] , 본부에서 점거에 참여중이던 모 학생의 구상에 의해 본부스탁의 잉태가 이루어졌다. 본부 점거에 비운동권 학생들도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평화를 갈망했던 우드스탁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생각이었다. 그 학생은 이러한 발상을 본부점거 과정에서 친분을 쌓은 다른 두 학생들과 나누었고, 금세 호응을 얻어 본부스탁을 추진하기로 그 자리에서 뜻을 모은다.
외부에서는 본부스탁이 총학생회[2] 와 관련된 운동권 학생들이 추진한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했지만[3] 사실 본부스탁을 처음 구상한 학생은 운동은커녕 어떤 학생자치단체에도 소속된 적이 없고 그 흔한 과/반 학생회도 해본 적이 없는 소위 '''원자'''[4] 였다. 처음 본부스탁 구상을 공유한 두 학생도 마찬가지로 비권이었고, 스태프들 역시 특정 학내 정치조직과는 전혀 무관하게 자원해서 참가를 신청한 학생들이었다.
여담으로 본부스탁 최초 제안자가 훗날 밝힌 바에 따르면 처음 상상한 본부스탁의 풍경은 본부 건물 앞 공간에서 학내밴드들 몇 팀에 외부 인디밴드 한두 팀 정도로 약소하게 치루어지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학생들의 엄청난 호응과 관심을 받고 일이 점점 커져 버린 것이다. 말 그대로 '''그 과정 자체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의 연속'''이었던 것.
3. 추진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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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스탁 티저 포스터. 당시 총장의 얼굴을 포스터에 가져다 쓰는 패기를 발산하고 있다.
본부스탁을 처음 구상한 학생이 서울대 학생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 본부스탁 제안의 글을 게재한 것이 2011년 6월 9일인데, 1차 라인업 공개가 같은 날 이루어졌다(...) 심지어 위의 티저 포스터가 1차 라인업보다 더 늦게 공개되었다. 1차 라인업에는 학내밴드들이 다수를 이룰 것이란 예상을 비웃듯 눈뜨고코베인, 밤섬해적단,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등 유명 인디밴드들이 포함되어 사람들을 충공깽에 빠뜨렸다. 16팀이 1차라인업에 포함되었는데 인디에서 섭외한 팀은 9팀, 학내에서 섭외한 팀은 7팀이었다.
그리고 이틀 후 바로 2차라인업이 공개되었다. 제리케이, 빈지노 두 서울대 출신 힙합 뮤지션이 포함되어 장르의 다양화를 시도하였고 3호선 버터플라이도 이름을 올렸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총장실 프리덤으로 장안의 화제가 된 '''SNUV'''가 라인업에 포함되었다는 사실...
행사를 사흘 앞둔 6월 14일 날짜별 최종라인업이 공개되었다. 최종라인업에는 2차라인업에 이미 발표된 팀들에서 딱 한 팀만 추가되었을 뿐인데 그 한 팀의 무게감이 워낙 강력해서... 당시 상상마당에서 장기간 공연이 잡혀 있어서 장비들을 옮길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쿠스틱으로라도 공연하겠다고 선뜻 섭외요청에 응했다고 한다. 고마운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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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라인업[5]
촉박한 시일에도 이렇게 순조롭게 착착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학교측에서는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었는지 본부스탁을 중지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리고 행사예정장소인 총장잔디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셔틀버스를 동원하여 경륜산성[6] 을 설치하였다.[7] 거기에다 총장잔디에 진입하면 규정상 퇴학도 가능하다고 엄포를 놓기도... 학생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길목을 막고 있는 차량을 들어서 옮기는 등(...)으로 맞섰다.
4. Day 1
학교측의 방해[8] , 비 예보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본부스탁은 시작되었다.
첫 무대를 장식한 팀은 밴드가 아닌 '''관악노래패협의회'''였는데 첫 선곡이 의미심장하다. 민중가요 '''반격'''을 제창한 것. 락페스티벌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겠지만 가사를 생각해 보면 본부스탁의 서막으로 더 이상 적절한 곡이 없었을 듯. 곧이어 SNUV 3인이 '''총장실 프리덤''' 공연을 가졌다.
SNUV - 총장실 프리덤
학내 밴드인 쥬베닐리아는 패기돋게 일렉트릭 식스의 곡 게이바를 연주하여 엄청난 떼창을 이끌어 냈다.[9]
해질녘 즈음에 무대에 선 밴드 '''악어들'''의 보컬 지완은 공연 도중 무대 밑으로 뛰어내리더니 잔디를 한 입 물어뜯고 '''"총장님의 잔디!!"'''라고 일갈하기도(...)
락페스티벌 무대에 연이어 오른 랩퍼 둘 빈지노와 제리케이의 공연 역시 관객들의 열정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제리케이의 경우 날카롭고 깊이 있는 멘트로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제리케이 - 아이들이 미쳐가
첫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 밤섬해적단의 공연이었다. '''북괴의 지령이 내려졌다! 법인화를 저지하라!'''라고 일갈하며 일부 언론의 왜곡보도를 통렬히 비꼬는가 하면, "서울대 빨리 법인화되어서 본부건물에 편의점 생겼으면 좋겠다"라고 멘트하고는 '''해치'''를 부르면서 총장님과 시장님을 한 큐에 디스하기도 했다. 그러나 밤섬해적단이 보여준 최고의 기행은 서울대처럼 자기들도 법인화하겠다면서 자기들 대신 연주를 해 줄 세 명을 아웃소싱으로 고용한 것(...) 드럼, 베이스, 보컬 한 명씩 세 명의 관객이 졸지에 무대로 올라가 공연을 했고, 이는 수십명 관객들의 대거 무대난입으로 이어졌다. [10]
밤섬해적단 - 나는 씨발 존나 젊다
5. Da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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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오브 더 디스코 공연. 사실 더거가 "빨리 법인화돼서 제가 건물 하나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드립을 치자 압둘라 나잠이 "이거 야채이름 밴드 하면서 돈 좀 벌었다고..."라고 받아쳤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일요일 밤의 열기
눈뜨고코베인의 보컬 깜악귀는 자신들의 대표곡 '''지구를 지키지 말거라'''를 공연하기 전에 "사실 이 노래를 해야 하나 고민을 참 많이 했는데요, 뭐 지구를 지키지 말란 거지 학교를 지키지 말란 건 아니니까..."라고 했다. '''일렉트릭 빔''' 공연 중엔 곡명에 어울리게 폭죽을 준비해 와서 밤하늘을 향해 발사하기도.
눈뜨고코베인 - 네 종종 전화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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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공연의 절정, 브로콜리너마저 공연 당시 모습.
어쿠스틱으로 공연을 한 브로콜리 너마저의 공연은 역시 밴드의 네임밸류에 걸맞게 이틀의 공연 중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고 멤버들도 아름다운 공연으로 화답했다. 특히 마지막 곡 '''졸업''' 中 반주를 중단하고 순수 관객들의 육성만으로 떼창이 이루어진 부분에선 많은 이들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브로콜리 너마저 - 졸업
직접 확인하자.
브로콜리 너마저 - 2009년의 우리들
사실 둘째날 공연의 숨겨진 헤드라이너는 따로 있었다. 바로 브로콜리 너마저 다음다음 순서로 무대에 선 '''제8극장'''. 이틀간의 일정에 체력이 고갈되어가던 관객들은 제8극장의 클래시컬한 로큰롤 음악에 미친듯이 몸을 흔들었고, 처음으로 물뿌리기도 곳곳에서 시전되었다. 제8극장이 앵콜을 세 번이나 하는 바람에 막차를 놓친 사람들도 많았다. 마지막 앵콜이 끝날 때엔 누가 시작했는지 관객들이 한두개씩 가지고 있던 야광봉을 일제히 무대로 던지면서 장관을 이루기도.
야간 DJ타임까지 모든 공연이 끝난 후에는 스태프들과 관객들이 함께 쓰레기를 줍고 뒷정리를 하는 등 여타 락페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6. 후일담
본부스탁 공연은 전적으로 무료로 개방되었으며, 대신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낼 수 있었다.
무대에 선 뮤지션들은 섭외시에 게런티를 정해 놓지 않았다. 대신 후원금을 다 모은 후 개최에 필요한 제반 비용을 제하고 남은 금액을 모든 팀들이 1/n로 균등하게 나누어 갖기로 했다.
학교측에서 진입로를 통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장비차량이 어떻게 학내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고 여러 설이 분분하다. 본부점거 회고록 <숨은기억찾기>에 따르면 본부스탁 주최측은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으나[11] '공식적으로'는 총장실에 들어갈 아이스크림차라고 속여서 통과했다는 설(...)을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진실은 저 너머에
공연 도중 막간에 공연 장소인 총장잔디를 '''학생잔디'''로 개명하는 동시에 총장에게서 학생들에게로 헌정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항목 참고.
'''즐기면서 시위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본부스탁이었지만 학생들이 본부스탁에서 너무 하얗게 불태웠는지 본부스탁 이후의 본부점거는 다소 김이 빠진 듯한 분위기가 이어졌고[12] 결국 총학생회는 점거를 자진해서 해제한다는 결정을 하게 된다.
본부스탁을 최초로 제안한 학생은 퇴학이라거나 하는 불상사 없이 무사히 졸업했고 지금은 군복무 중이라 한다. 다른 스태프들도 무사히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 같다.[13]
학생대표와 학교 본부측의 협상 도중 학생들이 본부점거를 해제하는 대신 본부측에서 내세운 조건 중에 '''본부스탁 연례 개최 지원'''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전언. 학생들은 이에 대해 대체로 '''시바 개굴욕ㅜㅜ'''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본부스탁의 의의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탄생시켰다는 데 있는데 학교측에서 본부스탁 하라고 돈 대주고 판 깔아주면 그런 능욕도 또 없는 셈. 당연히 본부스탁 연례 개최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6년 시흥캠퍼스 문제로 인해 또다시 본부관 점거가 일어났고, 당시 행사를 준비한 학우는 아니지만 '''당시 행사를 매우 감명깊게 참여했던 학우가 다시 본부스탁을 시도하겠다고 나섰다''' 링크
[1]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2] 참고로 당시 총학생회는 학생행진 계열(PD)[3] 심지어 서울대학교 본부측의 경고 공문 발송도 총학생회장 수신으로 이루어졌다(...)[4] 서울대 본부점거 당시 과, 반, 동아리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점거에 참가한 비운동권 학생들을 지칭.[5] 라인업을 보면 알겠지만 외부에서 섭외한 팀들은 서울대 출신이거나 출신 멤버가 있는 팀들이 많다.[6] 총장이 학생대표단과의 협상 자리에서 발언한 '''설립준비위원회에는 경륜이 없는 학생들은 참가할 수 없다'''라는 드립에서 유래[7] 이 때문에 학내도로를 경유하는 시내버스 운행도 차질을 겪었다. 심지어 교직원들도 어쩔 수 없이 차를 두고 퇴근하기도...[8] 사실 전날밤에 밝힐 수 없는 모종의 방법으로 선수쳐서 무대장비와 음향장비 등은 다 들여왔는데 학교측에선 당일까지 산성 쌓고 헛수고했다고...[9] 사실 밴드 결성하게 된 동기부터가 '학교 축제 무대에서 게이바를 연주해 보자!'였다고 한다. [10] 이 사태 와중에 셋리스트가 유실되어 밤섬해적단은 나머지 공연을 기억에 의존한 채 해야만 했다.[11] 혹여나 바람직하지 못한 목적으로 악용될까 두려워서인 듯[12] 물론 이게 본부스탁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방학이라는 시기적 특성과 점거 장기화에 따른 동력의 약화도 고려해야 한다.[13] 다만 본부점거 건에 관해서는 당시 총학생회장 등이 정학 등의 징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