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

 

'''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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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945년

1946년
이시더 레비

'''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

퍼시 브리지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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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fgang Ernst Pauli'''
1900년 4월 25일 ~ 1958년 12월 14일
1. 개요
2. 상세
3. 독설가


1. 개요


오스트리아물리학자.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발견. 이 업적으로 194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2. 상세


1900년에 오스트리아의 비인에서 태어나 뮌헨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1] 거기서 숨마 쿰 라우데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괴팅겐 대학교에서 막스 보른 교수의 조교로 일했으며, 코펜하겐에서 닐스 보어 교수의 조교로 일했다. 1923년에는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교수로 취임했는데, 그곳에서 지냈던 6년의 시간은 그에게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는 양자역학에 있어서 질풍과 노도의 시절이었는데, 그 격렬한 시절을 오토 슈테른, 에리히 헥케, 봘터 바아데 등 그와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함께 보냈고, 그들과 많은 학문적 영감을 교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1928년에는 쮜리히의 ETH 교수로 부임했고, 1929년 결혼했지만 1년만에 이혼하고 1934년 프란체스카 베르트람이란 여성과 재혼했으며 자식은 없었다. 193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 대학교의 고등과학원 교수로 부임했다.
전형적인 이론 물리학자로 실험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실험실에서 사고를 자주 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심지어 동료 실험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파울리가 실험실에 들어오기만 해도 실험기기가 고장나버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들은 이를 파울리 효과라고 불렀다. 이 부분은 2017년 5월 21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고 해당 회차는 워니프레임 웹툰 버전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이 웹툰을 담당한 wony는 해당 화를 보고 아는 형이 생각난다고 발언했다.
또한 양자역학이 불러온 물리학 혁명의 선두주자로서 기존의 고전역학적 개념을 철저하게 거부, 새로운 이론이나 착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고전역학에 조금이라도 기대고 있다거나 혁명적인 신개념 제시가 동반되지 못하면 자비심 없이 짓밟아 버리는 것으로도 악명을 떨쳤다. 덕분에 젊은 물리학자들에게는 공공의 적 제 1호로 꼽히기도 했다고 한다.[2] 거기다 독설도 상당히 심해 한번 어떤 이론이 나오자 질문을 던졌는데, 그 질문에 물리학자가 대답하지 못하자 "확실히 예스든가 아니면 확실히 노든가 그것도 아닌 건 대체 뭐야"라고 신랄하게 깠다고.

3. 독설가


예나 지금이나 물리학자들이 그렇듯 그도 물리학 이외의 학문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결혼 1년만에 이혼한 아내인 Käthe Margarethe Deppner(캐(카)테 마르가르(레)테 데프너)가 화학자와 새살림을 차리자 털썩 주저앉으며 '''"투우사에게 갔더라도 이해를 하겠는데, 화학자라니..."''' 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전자의 스핀이 대두되었을 때 이에 대한 독설을 퍼부었지만 정작 자신도 그에 대한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1] 이때 학부생 시절 교수의 추천으로 수리과학 백과사전의 상대성 이론 파트를 집필하여 아인슈타인의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2] 여기에 당한 사람 중 한명이 다름아닌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파인만의 풋내기 시절 대학원 첫번째 세미나에 참석하여 세미나 다 듣고 첫마디가 '''"나는 이러이러해서 이 이론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때 옆에 있던 아인슈타인이 여기에 대해 "Nooooooo!"라고 한마디 했는데, 파인만은 자기 인생에 있어서 가장 멋진 No였다고. 사실은 파인만도 파울리의 지적에 대해 "위대한 사람이 즉시 문제를 깨닫고 자신을 일깨워 준 것"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