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태후
고구려의 여성. 재사의 아내, 태조왕의 어머니.어머니 태후는 부여 사람이다. (중략) 나이가 7세였기 때문에 태후가 수렴청정하였다.
《삼국사기》 태조대왕조
기록이 딸랑 이것 밖에 없어서 이름도 성씨도 알 수 없다. '부여태후'라는 호칭도 그냥 '부여인인 태후'라는 뜻으로 역사학계에서 임의로 붙여준 것이다.
대무신왕 시대에 대소왕의 사촌동생이 백성 1만여 명을 이끌고 고구려에 항복해 왔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부여태후의 출신이 이들이라는 추정이 있다.
모본왕이 시해당하고 태자마저 불손하다는 이후로 폐위된 후 후계자로 지목된 남편 재사가 왕위를 거절하자, 아들 태조왕이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 태조왕의 나이가 7살로 너무 어렸기 때문에 태후가 대신 섭정을 했다. '''즉 한국사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섭정 기록이다.''' 남편 재사가 멀쩡히 살아 있음은 물론 신대왕이 태어나는 89년까지 생식기능을 유지했음[1] 에도 여자가 정치를 담당했다는 것은 굉장히 신기한 일이다. 태조대왕 초기의 행적들은 아마도 그녀의 주도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언제 섭정을 거두었는지는 기록되어있지 않다.
EBS1 역사가 술술 47회 고구려를 발전시킨 여걸 부여태후에서는 부여태후가 몸소 전쟁에도 참여하고 68년에 정치에서 물러났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 방송은 창작이 많이 들어간 것이며 근거가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