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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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 조약기구의 공용 군사지도 표기규약인
APP-6A에 따른 아군 보병 연대 표기
1. 개요
2. 상세
3. 대한민국 연대 목록
3.1. 보병연대
3.2. 포병연대
3.3. 교육연대
3.4. 수송교육연대
3.5. 경비연대
3.6. 특공연대
3.7. 기타
4. 기타


1. 개요


聯隊, Regiment. 군대의 편제 단위. 1,000 ~ 3,000명 정도로 구성된다. 여러 개의 대대를 모은 부대.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5개 대대가 연대를 이룬다. 보통 연대장대령이 맡는다. 대한민국 국군보병 연대는 3개 보병 대대와 중대급 직할대(본부, 수색[1], 의무, 통신, 지원, 수송대)를 합쳐 1,500~2,000명가량 구성된다.
본래 연대는 명망 높은 단일 지휘관이 편성, 지휘하는 독자적인 부대를 가리켰다. 중세 시대에는 보통 지방 영주가 편성한 기사단이 영주의 주된 군사력이었는데, 이것이 근세에 접어들면서 기사가 위관급 장교가 되고 영주가 영관급 장교에 가까운 지휘관, 영주가 영지에서 모집하거나 돈을 주고 고용한 병사가 주력 전투원이 되면서 편성된 부대가 연대 개념의 시초다. 중세 때도 기사가 장교가 되어 부대를 지휘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 시대부터 기사가 전투의 주력이 아닌 지휘관으로서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 기사단에서 연대로의 변화는 바로 이런 전쟁양상의 변화에 수반한 변화였다.
연대부터 여단, 사단, 군단은 야전부대에만 존재하는 편제다. 비전투·국직부대는 대대 위에 바로 이나 사령부로 올라간다. 언뜻 생각해 보아도, 군수지원이나 군수지원사령부는 들어본 적 있어도 군수지원연대나 군수지원사단은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단 계룡대 등에서는 예외적으로 '지원연대'라는 비전투 연대가 있다. 2020년 기준 지원연대는 해체되고 지원대대로 바뀌었다. 군필자들에겐 야수교라는 이름으로 익숙할 운전교육부대들도 편제가 변경되면서 '수송교육연대'가 되었다. 그리고 2020년 12월부로 보병연대들이 전부 보병여단으로 변경되어 보병연대 편제가 사실상 사라졌다.

2. 상세


사단 개념이 나오기 전까지는 근대 전투에서는 가장 기본이 되는 편제였다. 덕분에 영국군같이 전통을 좋아하는 군대에서는 여전히 옛 연대편제에 근간한 부대가 많이 남아있다(ex: 왕립 스코틀랜드 연대, 랭카스터 공작 연대, 왕립 수발총 연대, 아일랜드 근위기갑 연대 등). 제일 먼저 시작된 프랑스의 연대 전통은 기사가 끌고다니는 보병부대에서 기인하고, 상대적으로 지상군 전력이 중시되지 않았던 영국은 동네 귀족이 대강 모은 동네 아저씨들이 연대의 원형이 되었다.
아직까지 이때의 연대 전통이 남은 영국군은 '명예 연대장'은 그 동네 귀족이다. 현대에는 동네 귀족보다는 정규군의 고위 장성, 즉 '''국가로부터 세습이든 아니든 작위를 받은 양반들'''이 명예 연대장이 된다. 현대에는 준장이나 소장이 명예 연대장인 경우가 많지만, 1차 세계대전 때까지만 해도 명예 연대장은 대부분 연대 연고지의 영주인 세습귀족 아니면 정규군 중장 이상, 보통은 대장이었다. 연대 본부는 그 동네에 있지만 실제 대대는 아무 상관없는 다른 여단에 소속되어 파병된다. 1차대전 때까지는 지역별로 부대를 편성하는 지역 연고제가 널리 쓰였다.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유대감을 주기 위했던 걸로 보이는데,[2] 문제는 1차대전은 대대, 연대, 사단 단위로 병력이 증발하는 전쟁이었다. 한번 투입되었던 부대는 전투원이 모조리 죽는 참사도 당했던 것. 그래서 증발한 부대의 출신 지역은 전후 인구구조, 성비 등이 붕괴되는 참사를 맞이했다. 이 점이 지역연고제 폐지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영국군은 파병 시 여러 연대에서 병사를 대대 단위로 차출해서 파병용 여단을 결성해서 여단을 보내고, 각각의 연대는 병력 공급을 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그래도 연대의 전통은 꿋꿋이 지키고 있다. 이와 같이 연대 예하대로 여단을 편성해서 이를 모아 사단을 편성하는 전통은 연대 개념이 대두된 이후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런 연대 전통 때문에 연대 이상 부대는 19세기 초반까지 전 세계 공통으로 상설편성이 아니었으며, 영국군과 미군의 경우 1차 세계대전 참전 직전까지도 사단을 상설편성으로 유지하지 않았다. 특히 영국이 가장 오랫동안 이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3]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 혁명 당시 연대의 저런 과거 전통이 혁명 이전의 구체제를 연상시킨다 해서 일시적으로 연대라는 편제명을 없애고 반여단(Demi-Brigade)이라고 부른 적도 있다. 현대에도 반여단이라는 이름을 갖는 부대는 남아 있지만, 대부분은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이후 연대 명칭으로 복원됐다.
현대는 일반적인 보병/포병/기갑/공병 부대가 같은 병과만 모여 있는 가장 큰 부대 편제를 가리키며, 현대 육군에서는 주로 여러 개의 개별적인 연대를 모아 사단을 편성, 사단의 주력인 보병과 기갑 연대들을 같은 사단 내의 다른 병과 부대들이 지원해 준다.
같은 병과만 모여있어서 단독 작전이 힘들고 언제나 동료 보조 연대에게 지원을 받는다는 점 때문에, 현대 육군 편제에서는 병종이 다른 대대를 모은 사단 개념이 생겨났다. 이어서 예전에는 단일 병과를 모아 편성하던 여단 개념 역시 사단처럼 다수의 병과가 연합된 전투제대로 변화했다.
2018년경으로 예정된 국방개혁으로 인해 새로 창설되는 부대를 포함 거의 대부분의 연대급 부대가 여단으로 개편되는 것으로 예정되었으며 국방개혁 2.0으로 인해 2020년 12월부로 지역방위사단 예하 연대 중 도심지를 관할하는 연대들은 대거 여단으로 승격되었다.

3. 대한민국 연대 목록





3.1. 보병연대



2020년 12월 1일부로 대한민국 육군의 보병연대는 전부 보병여단으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2020년 이후부터 대한민국 육군에는 보병연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3.2. 포병연대



2020년 12월 1일부로 대한민국 육군의 포병연대는 전부 포병여단으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2020년 이후부터 대한민국 육군에는 포병연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3.3. 교육연대




3.4. 수송교육연대




3.5. 경비연대




3.6. 특공연대



  • 제700특공연대 (수도군단)
  • 제701특공연대 (제1군단)
  • 제702특공연대 (제2군단)
  • 제703특공연대 (제3군단)
  • 제705특공연대 (제5군단)
  • (제7기동군단) [4]
  • 제706특공연대 (제6군단)
  • [5]

3.7. 기타




명칭은 여단이지만 실제로는 연대급 부대이며 여단장대령이다.

4. 기타


  • 미국 육군처럼 제75레인저연대나 기갑기병연대 같은 전통있는 연대를 제외하면 모든 연대를 다 여단으로 만든 사례도 있다. 이런 미군의 여단 편제 역시 사실은 따지고 보면 고전적인 방식, 즉 대대를 모아 여단을 편성하는 것에 가까운 형식이다. 다만, 과거의 여단은 제병과 연합체제가 아니었던 데 반해 현대의 여단은 제병과 연합부대로서의 경향이 큰 점이 차이다. 물론 엄격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독립여단과 이런 사단 직할 여단의 병과 연합 수준은 현격한 차이를 가지고 있으므로, 독립여단과 동일한 제대로 간주하는 것은 곤란하고 그저 강화된 연대전투단 정도로 보는 것이 옳다. 공군에서는 전대가 육군의 연대 단위 부대지만, 전투를 위해서 사람 숫자보다는 항공기 숫자가 중요한 동네이다 보니 실제 인원은 육군에 비하면 훨씬 적다. 물론 항공기 외에도 정비 인력이나 기타 병과가 같이 있어야 할 테니 육군 연대 수준은 아니더라도 사람은 많겠지만. 보통 독립비행전대의 경우 1개 비행대대와 기지대대, 정비대대 등을 아래에 두고 비행단 예하인 항공작전전대의 경우 3~4개의 비행대대와 운항관제대, 기상대 등을 아래에 둔다.
  • 그리고 연대급부터 제대로 구성된 사령부를 가질 수 있는 최소단위로 이 덕에 연대에서는 대대나 그보다 하위 편제들과는 달리 따로 직할대를 연대 사령부 예하로 둔다
[1] 육군의 경우에는 육군 수색대, 해병대의 경우에는 해병대 수색대. 육군의 후방 향토사단은 수색중대 대신 기동중대가 편성된다.[2] 이 때문에 뭉쳐서 역적질을 모의한다든가 하는 걸 우려해서 역으로 고향에서 멀리 떨어트리고 타지 출신들을 섞는 사례도 있었다.[3] 사실 이는 영국이 자리잡은 지리적 특성에도 기인하는데, 섬나라라는 환경을 고려하면 대규모 육군을 굴릴 이유가 없어서다. 오히려 상륙 전에 적을 격퇴하기 위한 해군력이 중요시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제2차세계대전 발발 직후에도 영국의 유럽전선에 투입된 육군 병력은 약 4개 사단에 해당하는 병력밖에 없었다. 대육군의 역할은 프랑스군, 대해군의 역할은 영국이 맡는 구조였기 때문이다.[4] 제7강습대대로 개편[5] 제700특공연대로 명칭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