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황사 모전석탑 출토 수정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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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1 :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 선덕여왕이야기 수정화주, 사진 출처2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 - 수정화주(水晶火珠)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사의 모전석탑(국보 제30호)에서 발견된 7세기 경(634년 제작 추정) 신라시대의 수정제 돋보기. 세간에는 신라 선덕여왕이 사용하던 전설의 화주(火珠)가 아닌가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판 님루드 렌즈라 불리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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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한국광학회 25주년 기념 백서
지름 5.6cm, 두께 1.9cm.
일제강점기이던 1915년, 일제에 의하여 분황사 모전석탑이 해체, 수리되던 중 탑 내부에서 발견된 신라시대의 화주(火珠)이다. 최초 발견 당시 고신라시대 전설의 삼기팔괴 중 하나가 발견되었다고 대서특필되었는데 사실 이것이 선덕여왕이 직접 사용하던 전설의 화주(火珠)가 맞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는 상태다. 다만 유물을 분석한 결과 선덕여왕 재위 기간인 634년에 모전석탑이 처음 완공되던 당시 함께 봉안된 당대의 물품이라는 사실은 확실하게 밝혀진 상태다.
화주(火珠)란 불을 일으키는 구슬이란 뜻으로, 수정빛의 바둑알 모양인데 햇빛에 갖다 대고 솜을 가까이에 놓으면 그 솜이 탄다고 전해진다. 이 화주는 볼록 렌즈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광학회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까지 발견된 우리나라 최초의 안경이기도 하다.안경의 역사 따라서 이 유물은 굳이 선덕여왕의 전설의 도구가 아니라 할지라도 일단 7세기 이전부터 신라인들이 수정 렌즈와 광학기술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된다. 또한 기존에 우리나라에 전해지던 가장 오래된 수정렌즈 공예품은 1590년경 제작된 학봉 김성일의 애체(靉靆), 즉 수정 안경인데 이 화주는 깎은 수정면의 다듬기나 공예기술적인 측면에서 천여년 더 이후의 작품보다 더 정밀하여 당시 신라의 공예술이 가히 현대 기술과도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록상으로 중국에서는 11세기부터, 유럽에서는 13세기부터 렌즈를 사용했으며, 최초의 안경은 1286년 이탈리아의 피사의 살비노 다르마트(1258~1312)와 피렌체의 수도사 알레산드로 다 스피나(1313년 사망)가 발명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 렌즈는 그보다 500~700여년 더 앞서 만들어진 한국의 렌즈로, 한국광학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선덕여왕이 사용하던 것이 맞다면 신라 전설의 도구인 삼기 중에 하나가 현대 한국인들에게까지 온전히 이어져내려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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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분황사 모전석탑에서는 이 화주와 함께 630년대 당시 최고위층의 한국 여성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 바늘, 은제 바늘, 각종 수정 및 유리구슬 장신구, 재봉용 가위 등의 다양한 여성용 위세품들이 함께 발견되었다. 당시 유행했을 여성용 공예품들을 연구하는데 중요하게 사용된다.
사진 출처1 :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 선덕여왕이야기 수정화주, 사진 출처2 : 국립경주박물관 홈페이지 - 수정화주(水晶火珠)
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사의 모전석탑(국보 제30호)에서 발견된 7세기 경(634년 제작 추정) 신라시대의 수정제 돋보기. 세간에는 신라 선덕여왕이 사용하던 전설의 화주(火珠)가 아닌가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판 님루드 렌즈라 불리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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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한국광학회 25주년 기념 백서
지름 5.6cm, 두께 1.9cm.
일제강점기이던 1915년, 일제에 의하여 분황사 모전석탑이 해체, 수리되던 중 탑 내부에서 발견된 신라시대의 화주(火珠)이다. 최초 발견 당시 고신라시대 전설의 삼기팔괴 중 하나가 발견되었다고 대서특필되었는데 사실 이것이 선덕여왕이 직접 사용하던 전설의 화주(火珠)가 맞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는 상태다. 다만 유물을 분석한 결과 선덕여왕 재위 기간인 634년에 모전석탑이 처음 완공되던 당시 함께 봉안된 당대의 물품이라는 사실은 확실하게 밝혀진 상태다.
화주(火珠)란 불을 일으키는 구슬이란 뜻으로, 수정빛의 바둑알 모양인데 햇빛에 갖다 대고 솜을 가까이에 놓으면 그 솜이 탄다고 전해진다. 이 화주는 볼록 렌즈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광학회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까지 발견된 우리나라 최초의 안경이기도 하다.안경의 역사 따라서 이 유물은 굳이 선덕여왕의 전설의 도구가 아니라 할지라도 일단 7세기 이전부터 신라인들이 수정 렌즈와 광학기술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된다. 또한 기존에 우리나라에 전해지던 가장 오래된 수정렌즈 공예품은 1590년경 제작된 학봉 김성일의 애체(靉靆), 즉 수정 안경인데 이 화주는 깎은 수정면의 다듬기나 공예기술적인 측면에서 천여년 더 이후의 작품보다 더 정밀하여 당시 신라의 공예술이 가히 현대 기술과도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록상으로 중국에서는 11세기부터, 유럽에서는 13세기부터 렌즈를 사용했으며, 최초의 안경은 1286년 이탈리아의 피사의 살비노 다르마트(1258~1312)와 피렌체의 수도사 알레산드로 다 스피나(1313년 사망)가 발명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 렌즈는 그보다 500~700여년 더 앞서 만들어진 한국의 렌즈로, 한국광학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선덕여왕이 사용하던 것이 맞다면 신라 전설의 도구인 삼기 중에 하나가 현대 한국인들에게까지 온전히 이어져내려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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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분황사 모전석탑에서는 이 화주와 함께 630년대 당시 최고위층의 한국 여성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 바늘, 은제 바늘, 각종 수정 및 유리구슬 장신구, 재봉용 가위 등의 다양한 여성용 위세품들이 함께 발견되었다. 당시 유행했을 여성용 공예품들을 연구하는데 중요하게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