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L

 

[image]
'''본명'''
'''Lamont Coleman (라몬트 콜먼)'''
'''출생'''
'''1974년 5월 30일, 뉴욕할렘'''
'''사망'''
'''1999년 2월 15일, 뉴욕할렘'''
'''국적'''
'''미국''' [image]
'''신체'''
'''173cm'''
'''직업'''
'''래퍼'''
'''소속 그룹'''
'''D.I.T.C, Children of the Corn'''
'''활동시기'''
'''1992년 ~ 1999년'''
1. 개요
2. 일생
3. 기타


1. 개요


'''You can't kill me, I was born dead'''

'''넌 날 죽일 수 없어, 난 죽은 채로 태어났거든'''

'''Big L - Put it on'''

'''If rap was a game I'll be M.V.P.'''

'''만약 랩이 게임이었다면 난 M.V.P.'''

''''The Most Valuable Poet' on the M.I.C.'''

'''MIC 위에 가장 가치있는 시인'''[1]

'''Big L - MVP'''

'''Why do I end up in so much shit?'''

'''왜 난 항상 이런 좆같은 처지에 놓이는 거야?'''

'''I done came way too far to be callin' it quits'''

'''포기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왔어'''

'''Big L - The Enemy'''

투팍비기 스몰즈의 동서대전이 시작되는 것에 묻힌감이 있지만 나스를 비롯하여 모든 힙합씬의 쟁쟁한 MC들이 인정하는 그랜드 마스터이며 모두가 그의 단명을 아쉬워하는 천재 랩퍼. 생후 25년째가 되는 해에 사망했다는 점에서 투팍과 비기와 동나이에 죽었다.
날카로운 하이톤의 날렵한 랩핑이 특징. 프리스타일 실력도 엄청나다.
굳이 첨언하자면 플로우 , 발성 , 톤 , 제스처 , 펀치라인 , 라임구성 래퍼로서의 기본기가 뭐 하나 빠짐이 없는 ''' 최상위권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의 괴물래퍼 '''. 프리스타일 전문 가수로 불리는 JAY-Z와의 프리스타일 랩배틀에서 탈탈 털어 버릴수준(...) [2]당시 막 떠오르던 다음절 라임을 능숙하게 사용했다. 주로 자기 자랑에 대한 가사를 썼다. 마치 기관단총처럼 딱딱 때려박는 스타일의 발성, 딕션을 구사하며 그만의 전매특허. 국내 랩퍼로서 설명하자면 초창기 매드클라운 느낌으로 연상하면 된다.
예명인 빅 엘(Big L)은 어릴때 그가 프리스타일 랩을 하면 사람들이 그를 보고 Little과 Lamont의 이니셜인 L을 합쳐 리틀 엘(Little L)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이 별명이 훗날 크면서 자연스레 리틀이 빅으로 바뀌며 정착한 것이다. 예명에 Big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마른 체형인데,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힙합씬의 작은 거인'이라고 부른다.

2. 일생


빅 대디 케인의 노래를 듣고 힙합에 입문했다고 한다.[3] 1990년 쓰리 더 하드 웨이라는 그룹에 들어가, "The Devil's Son"이란 트랙으로 사람들에게 "Horror Core" 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랩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서부터 인지도가 더 쌓었고, 그덕에 로드 피네스의 라이브의 오프닝을 불렀다.
1992년 Finesse의 "Return Of The Funkyman" 앨범의 싱글 "Yes You May"의 리믹스에 참여함으로써 공식 데뷔를 하였고, 1992년 말에 쇼비즈 & AG의 앨범 "Runaway Slave"에 "Represent"라는 곡에 참여함으로써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그 후 1993년에 Diggin' In The Crates의 멤버가 되었다.
1995년 데뷔앨범"Lifestylez Ov Da Poor & Dangerous"가 히트하였으나, 2년후 D.I.T.C.과 콜롬비아 레코드와의 트러블로 콜롬비아 레코드를 떠나게 된다. 이 사태가 지난지 2년후에 D.I.T.C.과 함께 인디펜던트 싱글 'Day One', 'Ignifies Soldiers', 'All Luv', 'The Enemy'를 발표하는데 이 싱글들중 'The Enemy'가 DJ 프리미어의 작품이란 이유로 호평을 받았다. 1997년엔 자신의 레코드레이블 "Flamboyant"를 설립하고 뉴욕의 "Fat Beats"와 앨범 배급계약을 맺게된다. 마침내 1998년 "Ebonics / Size'em Up" 싱글을 발표하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성공을하였다. 이 싱글은 소스지에서 그해의 "베스트 인디펜던트 앨범"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또한 앨범의 수록곡 Deadly Combination에 2Pac과 콜라보를 하여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성공가도를 밟으며 앞으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는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하였지만...
1999년 2월 15일, 형인 리 콜먼의 빚 때문에 갱단들이 리 콜먼을 쫒다가 빅 엘을 리 콜먼으로 오해하고 그 자리에서 총을 쏴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4] 이때 그는 한참 전성기였고, 대중적으로 빛을 보지 못한 상태로 세상을 떠나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여담으로 그가 죽은 곳은 그의 히트곡 'Put It On'의 뮤직 비디오를 찍었던 거리였다.
사후 나스, JAY-Z 등 많은 래퍼가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였다. 갱 스타의 DJ 프리미어는 Full Clip이라는 곡 인트로에 "Big L, Rest in peace"라는 구절을 넣어 애도를 표하기도 하였다.

3. 기타


2000년에 로커스 레이블이 그의 미발표곡들을 사들여 짜깁기해서 사후 앨범 'The Big Picture'를 낸다.
특유의 핸드싸인이 있는데, 검지와 엄지를 펴서 L자를 만든다. 미드 글리에 등장하는 그 사인 맞다.
발음이 특이한데, R 발음을 할때 혀를 거의 굴리지 않고 O를 [어]나 [아]로 발음해야되는 단어를 [오]로 발음한다.[5]
빅 펀, 노토리어스 B.I.G.와 같이 3 BIG이라고 묶여서 불리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세명다 요절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 힙합 역사상 최고의 워드플레이를 꼽으라하면 무조건 들어가는 구절중 하나다.[2] DJ 프리미어는 프리스타일이 끝나고 '이 방송에서 최고의 순간'이라고 칭했다. [3] 후에 나오는 The Big Picture 앨범에서 Platinum Plus에 빅 대디 케인이 참여한다.[4] 정작 리 콜먼은 동생이 죽었을 때 감옥에 있었는데, 출소한 뒤에 살해 당한다.[5] Lifestylez Ov Da Poor & Dangerous 가사중 "I couldn't afford the 'o-r'"가 있는데 'o-r'부분을 '오-어'로 발음하고, '맙 딥'을 '몹 딥'으로 발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