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토리어스 B.I.G.

 



<colbgcolor=#0c0000><colcolor=gold>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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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c0000> 이름
The Notorious B.I.G.
멤버
(개인 자격)
입성 연도
2020년
후보자격 연도
후보선정 연도

[image]
'''본명'''
Christopher George Latore Wallace
크리스토퍼 조지 라토어 월리스
'''출생'''
1972년 5월 21일
뉴욕브루클린
'''사망'''
1997년 3월 9일 (향년 24세)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
'''직업'''
래퍼
'''신체'''
187.8cm[1], 155kg[2]
'''국적'''
미국 [image]
'''활동시기'''
1992년 ~ 1997년
'''The Notorious B.I.G.'''
1. 개요
2. 실력
3. 생애
3.1. 사망
4. 싱글
4.2. 빌보드 핫 100 2위
5. 앨범 리스트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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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You never thought that hip-hop'''

'''넌 절대 힙합이'''

'''Would take it this far'''

'''이렇게 커지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지'''

'''Now I'm in the limelight 'Cause I rhyme tight'''

'''지금 난 라임을 잘 써서 각광받지'''

'''Time to get paid'''

'''이제 돈 벌 시간이야'''

'''Blow up like the world trade'''

'''세계무역센터처럼 폭발할 거야'''[3]

'''Born sinner,the opposite of a winner'''

'''죄인으로 태어났지, 승자의 반대로'''

'''Remember I used to eat sardines for dinner'''

'''내가 저녁으로 정어리를 먹던 때를 기억해'''

'''Peace to Ron G, Brucie B, Kid Capri'''

'''Funkmaster Flex, Lovebug Starski'''

'''Ron G, Brucie B, Kid Capri'''

'''Funkmaster Flex, Lovebug Starski에게 축복을'''[4]

'''I'm blowin' up like you thought I would'''

'''난 너희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폭발했지'''

'''Juicy 中'''

'''King of New York'''

'''뉴욕의 왕'''

미국의 래퍼.이스트 코스트(동부 지역)를 대표하는 MC로, 애칭은 "비기"이다.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있는 아티스트이며'''. 서부의 '''투팍 샤커'''과 함께 1990년대, 일명 미국 힙합의 황금기를 양분했던 래퍼였다.[5] 이를 두고 동부와 서부간의 전쟁이라고 언론에서는 부풀렸지만, 사실상 데스로우 레코드와 배드보이 레코드 간 싸움이었다.[6]
생전에 제작한 2장의[7] 정규 앨범 모두 힙합씬을 넘어 미국 음악사에서 손꼽히는 명반이며, 상단에 서술해놨듯이 동부를 대표하는 MC인만큼 미국 힙합/대중음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투팍이 총에 맞아 사망한 뒤 약 6개월 후[8], 비기도 똑같이 총격으로 피살됐다. 아래에 서술된 2집 앨범 프로모션을 위해 LA에 왔을 때 차량 이동 중 4발의 총알에 맞아 사망했다. #

2. 실력


비기의 17살 때 프리스타일(40초부터)
투팍과 프리스타일하는 비기
MTV에서 "Juicy" 야외 수영장 공연
비기는 그 당시 나왔던 솔로 MC들 중 실력적인 면에서는 더 이상 이견이 없다. 음원보다 라이브에서 더 빛을 발하는 큰 발성, 아이덴티티인 무겁고 허스키한 음색, 시대가 변해도 촌스럽지 않은 고도의 라임 배치, 가사를 풀어가는 리듬 설계 모두 최정상급인데 심지어 가사를 종이에 쓰지 않고 외워서 녹음했다고 한다. 모든 곡을 프리스타일로 녹음했다는 뜻이며 이는 정말로 말 한마디가 곡이 된다를 몸소 실천하는 수준.[9]
세계 최고의 래퍼라고 기대하고 들었다가 갸우뚱하는 경우가 있는데, 비기의 랩 속도는 비트도 그렇고 조금 느린편이다.[10] 엄청난 엇박을 구사하지도, 빠르면서 현란한 스타일도 아니다. 하지만 박자 설계와 라임 배치를 아주 불규칙적으로 해서 되게 적은 가사만으로 조곤조곤 말하는데도 흥겹게 들리며, 후술할 발성 때문에 악센트로 발음을 강조하는 순간 처음 듣는 사람에게 강렬하게 꽂힌다.
특유의 두껍고 허스키한 목소리[11]는 랩을 한번만 들어도 뇌리에 깊게 박히고 힙합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강력함과 타격감을 극한으로 보여주기 탁월했다는 평을 듣는다. 위의 영상만 봐도 길거리 출신 래퍼들 사이에서 프리스타일 실력 역시 최상위권이었다.
힙합 음악의 중심이 지펑크 붐뱁을 거쳐 트랩, EDM으로 옮겨지고 그 때문에 래퍼들의 가사, 라임 배치, 리듬 설계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뀐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비기의 랩을 넘어섰다고 평가받는 래퍼는 아예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힙합 역사상 최고의 래퍼'''로 투팍과 함께 가장 많이 거론된다.
랩 스킬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작사 능력이 저평가되는 경우도 있는데 오히려 음악성이 더 대단한 래퍼다. 흔히 "투팍은 가사를 잘 썼고, 비기는 랩을 잘했다."하는 명언 때문에 생긴 오해다. 싱글 판매량 위해서 살짝 힘빼고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Juicy>[12], <Big poppa>를 들어보면 밑바닥에서 성공한 자신의 모습과 여자와의 애정 행각을 구체적이면서도 간결하게 표현했다. 특히 범죄 관련 스토리텔링 능력에 대해서는 나스와 함께 최상위권에 뽑힌다.[13] 무엇보다 비기가 생전 제작했던 앨범 2장 모두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에 선정되었다는 것만으로 비기의 음악성에 관해선 검증이 필요없다.

3. 생애


크리스토퍼 월리스는 1972년 5월 21일, 뉴욕브루클린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2살이 되고 집을 떠났으며, 그의 어머니 볼레타 월리스는 투잡을 뛰면서 그를 키웠다. 학교에서 그는 뛰어난 수재였으나 불우한 환경탓에 12살부터 마약을 팔기 시작했다. 이후 학교에 다니면서 JAY-Z, DMX 등과 친해지게 된다. 십대부터 거리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랩과[14] 마약거래를 시작하였으나, 17살 때 몇몇 범죄에 연루되면서 결국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감옥을 나온 후 그는 비기 스몰즈라는 예명으로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였으며, 테이프는 주변 지역에서 돌아다니다 DJ Master Cee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깊은 인상을 받은 마스터 시는 그의 테이프를 힙합 전문지 THE Soruce의 기자이자 랩퍼 빅 대디 케인과 같이 일하는 '메티 시'에게 들려주었다. 결국 비기는 THE Source 매거진의 'Unsigned Hype'란에 실리게 됐고, 업타운 레코드의 인턴으로 있던 프로듀서 퍼프 대디의 눈에 띄게 된다. 동시에 추후 서부 힙합의 거물이 되는 투팍 샤커와의 친분을 쌓게 된다. 그러나 1993년 8월 8일 이미 결별한 여자친구 사이에서 덜컥 딸을 갖게 된다. 그는 자신이 학교를 중퇴한 것과는 다르게 딸 타냐가 좋은 학생이 되기를 바랬으며, 딸을 먹여살리기 위해 다시 마약 판매에 손을 대게 되나 퍼프 대디가 이를 발견하고 막게된다.
이후 퍼프 대디가 업타운 레코드에서 해고되고 직접 사장이 되어 배드 보이 레코드를 세우면서 1992년부터 Notorious BIG라는 새로운 예명으로 여러 리믹스 곡의 피쳐링과 객원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했다. 많은 노래들이 빌보드 차트에 높은 순위를 기록, 이를 통해 나름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94년 8월 4일 R&B 가수 페이스 에반스와 결혼, 아들을 갖게 된다.[15][16] 5일 후 그의 첫 개인활동 싱글인 '''Juicy'''[17]가 빌보드 팝 차트 27위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되고 9월 13일 그의 첫 정규 앨범 '''Ready to Die'''가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순식간에 엄청난 거물로 떠오르게 된다. 이후 후배 그룹 Junior M.A.F.I.A.를 성공적으로 데뷔시키고 걸출한 R&B 뮤지션들과도 작업을 하게 되면서 그는 그 해의 가장 많은 앨범을 판 솔로 랩퍼, 아티스트로 거듭났으며,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그 해의 최고의 랩아티스트 상을 받는다.
이후 11월 30일 투팍이 맨해튼의 Quad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총격을 당해 기적적으로 생존하는 일이 생기고, 투팍이 강간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수감 중일때 그는 바이브 매거진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1994년 11월 30일 내가 총격을 당하기 전에 비기랑 퍼프 대디는 내가 총격을 당했던 맨해튼 스튜디오에 있었어. 그들이 날 쏜거라고. 그리고 내 보석이랑 돈을 빼앗았겠지.' 라고 말했다. 하지만 퍼프 대디와 비기는 '투팍이 그렇게 말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우린 안 그랬고 그가 정신이 없어서 그렇게 말했을거야. 생각해 봐, 총을 몇 발이나 맞은 사람이 제 정신일 수 있겠어?'라고 결백함을 주장했다.
어쨌든 일련의 사건과 의심이 겹치면서 힙합계는 배드 보이 레코드 및 노토리어스 BIG로 대표되는 '''동부'''와 데스 로우 레코드 및 투팍으로 대표되는 '''서부'''로 갈라졌고, 동부와 서부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노토리어스 BIG는 서부 힙합계의 거물인 투팍과 힙합 디스전을 한다. 1996년 6월 투팍이 전설적인 디스곡인 ''''Hit 'Em Up''''을 공개 하였다. 그러나 몇 달 후 투팍은 차를 타고 가던 중 총격을 당해 사망하였으며, 이에 비기가 이를 사주한 용의자로 의심받게 되었으나 아무런 증거도 없어 유야무야 된다.
비기는 1995년 9월 두번째 스튜디오 앨범 Life After Death의 레코딩 작업에 들어갔으나, 법정 논쟁 때문에 질질 끌리게 되어 무려 18개월이나 걸리게 된다. 1996년 5월 23일 그는 맨해튼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팬 두 사람을 폭행하고 살해 위협을 가한 죄로 체포된다. 그는 유죄를 선고받고, 100일 동안의 자원 봉사 명령을 받았으며, 같은 해 몇 달 후 그의 집에서 마약과 총기가 발견되어 벌금을 물었다. 또한 레코딩 중 차 사고를 당해 왼쪽 다리가 박살나면서 지팡이를 쓰게 된다.

3.1. 사망


1997년 2월 비기는 Life After Death의 프로모션과 리드 싱글 '''Hypnotize'''의 뮤직 비디오 촬영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앨범은 3월 25일 발매할 예정이었으나 3월 9일 새벽 12시 45분, 비기의 차가 멈춰선 사이 쉐보레 임팔라를 탄 흑인들이 총격을 가했으며, 이 총격으로 가슴에 4발의 총격을 당한 비기는 바로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30분 후 사망 판정을 받는다. 그의 나이 24세. 투팍이 죽은지 불과 6개월도 안 되어 동부와 서부의 힙합 거물이 비슷한 방식으로 암살되어 사망하게 된 것.
비기의 장례식은 3월 18일 치루어졌으며, Run DMC, 릴 킴, 버스타 라임스, DJ 쿨 허크 등 350명의 문상객이 다녀갔으며, 그의 유해는 화장되었다.

4. 싱글



4.1. 빌보드 핫 100 1위


  • Hypnotize (1997)
  • Mo Money Mo Problems[18] (1997)

4.2. 빌보드 핫 100 2위


  • One More Chance/Stay With Me (1995)
  • Been Around The World (1998)

5. 앨범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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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y to Die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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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After Death (1997)
비기 사망 이후에 발매됐지만 녹음 및 프로듀싱, 뮤직비디오 촬영 등 모든 것을 다 마치고 발매만 남겨놓고 사망했기 때문에 사후앨범이 아니라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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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Again (1999)
첫 사후 앨범이다. 1993년~1994년에 녹음되었던 곡을 가지고 새롭게 프로듀싱해서 만들었다. 피처링진이 화려하다. 나스, 아이스 큐브, 에미넴, 버스타 라임즈, 맙 딥, 메소드 맨 & 레드맨, 스눕 독이 참가했다. 2pac과의 사이에서 문제가 되었던 곡 Who Shot Ya?, 에미넴이 참여한 유일한 곡 Dead Wrong이 실려있다. 후덜덜한 거물급 피쳐링진에도 불구하고 1집, 2집에 비해서는 평이 좋지 않다. 비기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거 아니냐는 평이 많다. 그리고 여담으로 재밌는 점은 본 앨범에 실린 'Come on'이 게시된 유튜브 영상 댓글들을 보면 하나같이 토마스와 친구들의 오프닝과 리믹싱한 노래보다 원곡이 못하다는 평이 주류다.원곡믹싱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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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ets: The Final Chapter (2005)
두 번째 사후 앨범. 그가 죽기 전에 녹음했던 곡들을 리믹스해서 만든 컴필레이션 성격의 앨범이다.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다. 아니 매우 안좋다. 롤링스톤지에서 별 2개를 받았을 정도이니....중간도 못갔다고 할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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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est Hits (2007)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주기가 되는 해에 나온 베스트앨범.

6. 여담


  • 친구인 퍼프 대디의 명곡으로 꼽히는 I'll Be Missing You는 노토리어스의 추모곡이다.[19]
  • 랩 네임인 노토리어스 B.I.G와 비기 스몰즈의 경우에는 처음엔 1975년 영화인 'Let's do it again'이란 영화에서 캘빈 록하트(Calvin Lockhart)가 '비기 스몰즈(Biggie Smalls)라는 배역으로 연기를 해서 거기서 그대로 따와서 비기 스몰즈라고 지었으나 (달리 말하면, '오마주') 이미 그 랩네임을 사용 중인 다른 사람이 있음을 알고, 결국 처음의 랩 네임이었던 비기 스몰즈를 일종의 비공식적 랩 네임처럼 취급하고 노토리어스 B.I.G.라는 새로운 랩 네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 2013년 6월 6일, 비기 살해 공범자로 불리는 클레이턴 암스트롱 힐이 탈옥했다.
  • 드라마 루크케이지의 악역 코튼마우스가 방 안에다 그의 초상화를 고이 모셔두고 있다.
  • 생전에 심한 사시가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123영상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나 잡지 사진을 찍을때는 눈에 힘을 주어 중간으로 모았던 것으로 보인다.[20]
  • 2015년에 비기가 배드보이 레코즈와 계약할때 사용된 계약서가 경매 사이트에 올라왔다.# 이는 비기가 계약서에 직접 서명을 한 유일한 계약서라고 한다.
  • 비기가 생전 마지막으로 녹음한 곡은 퍼프 대디의 Victory로 암살되기 하루 전인 1997년 3월 8일에 녹음을 했다.
  • 비기는 살면서 총 7번 체포됐다. 1989년 불법 총기 소지 혐의로 처음 체포됐고, 이 외에도 강도질, 마약팔이, 폭행 등으로 체포됐다. 참고로 비기가 감옥에 가장 오랫동안 수감된 기간은 9개월이라고 한다.
  • 비기의 첫 롤렉스 시계는 투팍 샤커가 사줬다고 한다.

  • 투팍이 죽었을 때 그것에 대한 인터뷰를 했는데 투팍을 어떻게 생각했는가에 대해서 또 이 사건을 들었을때 그 역시 충격을 금치 못했으며 사이는 좋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길 바라는 건 아니였다고 밝혔다.#
  • 2016년 5월 21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비기의 생일을 공식 기념일로 지정했다.
  • 2009년 그의 일대기를 다룬 <노토리어스>(Notorious)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조지 틸먼 주니어가 감독을 맡았으며 자말 울러드(Jamal Woolard)[21]라는 래퍼가 노토리어스를 맡았다. 특이하게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 월리스 주니어가 그의 어린 시절을 연기 했다. 참고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팔콘을 맡은 앤서니 매키투팍을 맡았다.[22]

[1] 6피트 2인치[2] 출처[3] 이곡은 1994년에 나왔고 2001년에 일어난 9.11 테러와는 연관이 없다. 9.11 사건이 일어나기 8년 전인 1993년 같은 건물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이다. 여담으로 9.11 테러 이후 발매된 JAY-Z의 앨범 The Blueprint 2: The Gift & The Curse의 트랙인 A Dream에서 이 가사가 들어있는 Verse를 통째로 샘플링 했는데, 이때는 당연히 묵음 처리가 되었다. 자세한 건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문서로.[4] 다섯 명의 아이코닉한 뉴욕의 힙합 DJ들에게로의 샤라웃.[5] 동부와 서부라는 지역으로 나눈 것은 언론과 기획사의 고도의 상업적인 마케팅 전략이었다. 하지만 진영논리를 떼놓고 봐서도 두 사람 다 미국 힙합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시대의 아이콘이란 것은 부정할 수 없다.[6] 사실 힙합의 시작을 지역으로 본다면 뉴욕을 비롯한 동부에서 클럽음악으로 시작되었고 1982년 The Message를 통해 사회 비판이 시도된 이후 198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야 Ice-T, N.W.A와 같은 래퍼가 등장하면서 동부와 서부가 나눠졌으며 갱스터 랩이라는 서부스타일만의 힙합이 만들어졌다. 이를 계기로 1990년대 들어서 각 지역별로 서부의 스눕 독, 투팍, 아이스 큐브 동부의 비기, 나스, 우-탱 클랜, JAY-Z과 같은 실력자들이 나왔다. 다만, 동부와 서부 둘 다 힙합 씬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7] 2집인 Life After Death는 말로만 사후지 앨범 수록곡 녹음, 앨범 믹싱 등 작업과 관련된 일은 비기 생전에 모두 끝마쳤다. 단지 앨범이 발매되기 2주 전에 사망해서 사후 앨범이 되었을 뿐.[8] 투팍은 1996년 9월, 비기는 1997년 3월 살해당했다.[9] 이 방법은 나중에 친구였던 JAY-Z에게 전수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JAY-Z의 인터뷰에서 본래는 JAY-Z가 먼저 이렇게 랩을 하기 시작했다가 같이 곡(JAY-Z의 1집 수록곡 Blooklyn's Finest)을 녹음하는 과정에서 노토리어스 B.I.G.가 배웠다고 한다. JAY-Z가 랩을 막 시작했을 땐 어디에 앉아서 노트에 가사를 쓸 시간도 없었고, 노트를 살 돈도 없어서 이렇게 랩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10] 물론 Party and Bullshit처럼 타이트하게 랩한 곡도 있다[11] 다만 이런 목소리때문에 은근히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12] 그러나 오히려 juicy는 비기의 곡들중 최고로 꼽힐뿐만 아니라 힙합 역사상 최고의 곡으로 꼽힌다.[13] Warning과 Gimme the Loot에서는 피처링 없이 1인 다역으로 스토리텔링 랩을 하기도 했다.[14] 거리에서 뛰어난 랩핑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17살 때 프리스타일 랩배틀을 하는 영상[15] 그 전 비기는 해어진 여친과 낳은 아이가 있었다.[16]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Notorious의 어린 시절 비기를 연기한 바로 그 아이다.[17] 비기는 원래 Juicy를 하기 싫어했다.[18] 아리아나 그란데Break Your Heart Right Back이라는 곡에서 샘플링했다.[19] 사용된 샘플이 폴리스의 그 유명한 Every Breath You Take 인데, 노래 가사가 잘못 이해되는 곡중 하나 라는걸 생각하면 참 묘하다. 사실은 이 노래는 스토커 얀데레적인 전 애인 관점에서 적은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비기의 곡들이 어떻게 고인드립되는지 생각한다면...[20] 해당 문서 상단 사진 촬영 당시 카메라 필름에 나와있듯이 우측 하단 필름을 보면 다른 필름들에 비해 눈의 초점이 다른것이 차이가 확 난다.[21] 이후 투팍의 전기 영화 All Eyez On Me에서도 비기의 역을 그대로 맡았다.[22] 또한 앤서니 매키8 마일에도 파파 독 역으로 출현하였는데, 다름 아닌 B. 래빗 (에미넴)과 대립하는 배역이였다! 여러모로 힙합과 인연이 있는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