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럼 판 오라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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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em I/Willem Van Oranje
(1533년 4월 24일~1584년 7월 10일)
1. 개요
네덜란드의 초대 총독(스타트하우더르 Stadhouder)으로, '''네덜란드의 국부'''. '''빌럼 1세'''라고도 한다. 본명은 빌헬름 폰나사우딜렌부르크(Wilhelm von Nassau-Dillenburg). 종교에 대해 의견을 내지 않고 침묵으로만 일관해 '침묵공(De Zwijger)'으로도 불렸다. 오랑주 공작으로서의 칭호는 프랑스식으로 '''기욤 1세'''이며, 그에 따라 오랑주 공작으로서의 풀네임 또한 기욤 드 오랑주(Guillaume de Orange)다.
1533년 지금의 독일 영토인 나사우 백작령의 딜렌부르크 성에서 나사우딜렌부르크 백작 빌헬름 1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1] 1544년에 사촌인 오랑주(=오라녜) 공작이자 브레다의 르네가 프랑스와의 전쟁 도중 전사하였고 유언으로 빌럼에게 작위를 물려줄 것을 남기면서 르네의 영지인 오랑주와 브레다를 물려받았다. 자신의 가문인 나사우와 상속받은 작위인 오랑주를 합쳐서 오라녜나사우 가문을 창시한 빌럼은 거점을 네덜란드 브레다로 옮겼다. 그 후 브뤼셀에서 카를 5세의 여동생이자 네덜란드 총독 마르가레타의 후견을 받아 성장했으며, 카를 5세의 총애를 받아 1555년에는 대 프랑스 전쟁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카를 5세가 물러나고 펠리페 2세 휘하에서 금양모기사, 국무회의 의원 등을 지내고 1559년에는 카토 캉브레지 조약의 협상자로 활동해 프랑스, 스페인 사이의 이탈리아 지배권을 둔 분쟁을 종식시켰으며, 홀란트, 제일란트, 위트레흐트 총독에 임명되었다.
1561년에는 프랑슈콩테의 총독에도 임명되었다가 1566년에 성상 파괴운동을 강경하게 진압했는데, 빌럼은 안트베르펜에서 이를 진압했지만 성문을 폐쇄하고 스페인의 군사들이 진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충성 서약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영지는 모두 몰수당하고 추방당해 1567년에 딜렌부르크로 망명했으며, 1568년에 군사를 일으켜 4월 23일에 헤일리허를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페르난도 알바레즈 데톨레도에게 엠스 강둑에서 패하자 퇴각해 프랑스로 도망쳤으며, 1571년에 페르난도 알바레즈 데톨레도가 세금을 마구 거두어들인 것으로 반발을 사면서 1572년 4월 1일에 '시 베거스'(바다의 거지들)라 불리는 집단이 함대를 이끌고 브릴레 항구를 점령하면서 홀란트, 제일란트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자 이들과 합류한다.
협상을 통해 홀란트, 제일란트의 총독이 되었고 1573년에 칼뱅교로 개종했으며, 1576년에 겐트 화약이 성립되어 네덜란드의 통일이 이루어졌지만 1579년에 스페인에 귀순한 남부의 네덜란드 귀족들이 아라스(아트레흐트) 동맹을 결성했다. 이에 맞서기 위해 북부 7주에서 위트레흐트 동맹을 결성하면서 빌럼은 이 동맹을 이끌고 한때 충성했던 스페인과 싸웠다.
1584년 7월 10일에 델프트에서 가톨릭 교도인 발타자르 제라르의 저격에 맞아 사망했다. 제라르는 고문을 받은 뒤 7월 13일에 처형되었다.[2] 묘지는 자택이 있던 델프트의 개신교회에 마련되었다. 이후 독립투쟁은 그의 아들 마우리츠 판나사우에게 바톤이 넘어간다.
네덜란드의 국부로서, 그의 공위명인 '오라녜(오렌지)'에서 유래된 오렌지색은 네덜란드의 상징색이 됐다.
2. 게임
문명 시리즈 에서는 대대로 네덜란드 문명의 지도자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