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녜나사우 왕조

 



'''Huis van Oranje-Nass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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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네덜란드 성립 이전
2.2. 네덜란드 성립 이후
3. 역대 국가원수/국왕
3.1. 네덜란드 공화국 국가원수
3.3. 네덜란드 국왕
4. 기타


1. 개요


현재 네덜란드의 왕조이다. 한때 룩셈부르크의 왕조이기도 했다. 현재 빌럼알렉산더르가 네덜란드의 국왕으로 즉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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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2.1. 네덜란드 성립 이전


1515년에 독일의 귀족 가문 나사우 가문의 일원인 헨드리크 3세(Hendrik III van Nassau)[1]오랑주(네덜란드어로는 오라녀) 공작 필리베르 드 살롱(Philibert de Chalon)의 여동생인 클로드 드 샬롱(Claude de Châlon)[2]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이 그 시초이다. 헨드리크와 클로드는 아들 르네 드 샬롱오랑주(René de Châlon-Orange)[3]를 낳았는데 1530년 샬롱오랑주 가문으로서는 마지막 오랑주 공작이던 그의 외사촌이 후사없이 사망하자 오랑주 공국을 상속받으면서 나사우 가문이 오랑주까지 다스리게 되었다.
브레다 백작이자 오랑주 공작 르네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영지였던 저지대의 17개 주 중 홀란트, 제일란트, 위트레흐트, 헬러의 4개주 총독을 동시에 맡을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으나 1544년 카를 5세와 프랑스와의 전쟁 중 카를 5세 편에 종군하던 르네는 불행하게도 생디지에 공략 와중에 전사하고 말았다. 불과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르네는 결혼은 했으나 자식이 없었고 르네가 유언으로 자신의 영지를 자신의 사촌에게 물려줄 것을 남겼다. 결국 르네의 작위와 영지는 르네의 사촌인 빌헬름 폰 나사우딜렌부르크(Wilhelm von Nassau-Dillenburg)가 상속받게 되었으니 이 사람이 바로 네덜란드의 국부 빌럼 1세이다.
빌헬름 폰 나사우딜렌부르크, 즉 빌럼 1세가 오랑주 공국을 물려받으면서 그의 성씨는 원래 가문인 나사우에 물려받은 영지인 오랑주(오라녀)가 합쳐지면서 오라녜나사우로 정해지게 되었다. 이후 빌럼 1세는 네덜란드 독립전쟁 때 네덜란드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2.2. 네덜란드 성립 이후


네덜란드가 실질적으로 네덜란드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얻은 17세기 이후에는 빌럼 1세의 후손들이 대대손손 네덜란드 공화국의 국가원수(Stadthouder/스타트하우더르)를 맡았다. 이름은 국가원수이지만 합법적으로 자리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으므로 사실상 (제한된) 실권까지 있는 국왕이나 다름없었다.[4]
19세기 초반에 프랑스 제1공화국에 나라가 통째로 점령당하고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한 이후에는 빌럼 5세가 죽은 틈을 타 나폴레옹의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가 홀란트 왕국의 국왕이 되기도 했으나,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빈 회의의 결과 네덜란드를 오라녜나사우 가문이 지배하는 왕국으로 독립시키는 것이 결정되었고, 이를 통해 오라녜나사우 가문은 네덜란드의 왕가가 된다. 이 때 오라녜나사우 가문은 대공국으로 승격된 룩셈부르크의 대공이 되기도 하여, 네덜란드 국왕이 룩셈부르크 대공을 겸하게 된다. 그러나 룩셈부르크는 살리카법을 채택한 나라였으므로 빌럼 3세가 사망하고 빌헬미나 여왕이 즉위할 때 대공직이 방계인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의 아돌프 대공에게 상속된다. 또, 15년정도 벨기에와 네덜란드와 연합왕국이 되어서 벨기에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한편 19세기의 빌럼 3세, 빌헬미나 여왕 시기를 거쳐 사회주의자들이 대두하면서 왕조 폐지 요구가 좀 있기도 했지만 네덜란드와 왕가는 보통선거제 도입과 헌법 제정 등 여러 사회개혁을 진행함으로써 왕가에 대한 지지를 유지했다.
2차대전 당시에는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아 왕가가 통째로 영국 런던에 망명한 바 있다. 비록 독일의 침공 앞에 무력하게 당했지만 왕가는 빌헬미나 여왕의 지도 하에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각국을 돌아다니며 나치 독일을 규탄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1890년에 즉위한 빌헬미나 여왕 이래로 군주가 생존한 상태에서 자식에게 양위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빌헬미나 여왕은 68세가 되던 1948년에 딸 율리아나에게 양위해 1962년 82세를 일기로 사망했고 율리아나 여왕은 71세가 되던 1980년에 딸 베아트릭스에게 양위해 2004년 94세를 일기로 사망했고 베아트릭스 여왕은 75세가 되는 2013년 4월 30일에 아들 빌럼알렉산더르에게 양위하고 상왕에 해당하는 여공으로 물러앉았다.

3. 역대 국가원수/국왕



3.1. 네덜란드 공화국 국가원수


대수
이름
취임연도
퇴임연도
1대
빌럼 1세
1559년
1584년
2대
마우리츠 판 나사우
1585년
1625년
3대
프레데리크 헨드리크
1625년
1647년
4대
빌럼 2세
1647년
1650년
5대
빌럼 3세
1672년
1702년
6대
빌럼 4세
1711년
1751년
7대
빌럼 5세
1751년
1806년

3.2. 네덜란드 주권공


대수
왕호
재위시작
재위종료
재위기간
비고
1대
빌럼 1세
1813.12.06.
1815.03.16.



3.3. 네덜란드 국왕


대수
왕호
재위시작
재위종료
재위기간
비고
1대
빌럼 1세
1815.03.16.
1840.10.07.


2대
빌럼 2세
1840.10.07.
1849.03.17.


3대
빌럼 3세
1849.03.17.
1890.11.23.


4대
빌헬미나
1890.11.23.
1948.09.04.


5대
율리아나
1948.09.04.
1980.04.30.


6대
베아트릭스
1980.04.30.
2013.04.30.


7대
빌럼알렉산더르
2013.04.30.




4. 기타


  • 오랑주 공국은 빌럼 1세의 후손인 네덜란드 공화국의 국가원수들이 오랑주 공작의 자격으로 계속해서 통치했으나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의 결과 프랑스로 넘어가게 되었다.
  • 네덜란드의 상징색이 주황색인 것은 오라녜나사우 가문 이름과 주황색을 가리키는 네덜란드어 '오라녀'(영어로는 오렌지)와 똑같았기 때문에 오라녜나사우 가문이 가문의 상징색으로 주황색을 쓰면서 이렇게 된 것이다.
  • 한때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 왕위를 차지한 가문이었다. 빌럼 3세는 메리 2세의 남편 자격으로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 국왕 윌리엄 3세가 되어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네덜란드 동군연합(?)을 구성한 적이 있다. 둘 사이에 자식이 없어서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 왕위는 스튜어트 왕조으로 넘어갔고, 네덜란드는 국가원수를 옹립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동군연합은 해체.
[1] 네덜란드어. 프랑스어로는 Henri III de Nassau. 브레다 백작이었기 때문에 헨드리크 3세의 가문은 나사우브레다(Nassau-Breda) 가문이라고도 한다.[2] 프랑스어. 네덜란드어로는 Claudia van Châlon.[3] 프랑스어. 네덜란드어로는 René van Châlon. 원래라면 아버지의 성인 나사우브레다를 물려받는 것이 원칙이나 르네 본인은 어머니의 성인 샬롱오랑주를 더 자주 썼다.[4] 사실 명색이 공화국인데 이런 세습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로 계승이 이루어질 때 지지하는 주와 반대하는 공화파 주가 갈려 대치하다가, 오라녜 공이 회유와 협박, 공화파 지도자 제거(윌리엄 3세가 공화파 지도자이자 총리인 요한 드 비트를 살해하고 즉위한 사례) 등의 수단으로 스타트하우더르 직을 얻어내거나, 외교 형세가 불리해지면 통합된 리더십을 제공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세력인 오라녜 공을 공화파주가 울며 겨자먹기로 추대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아래의 국가원수들의 임기를 보면 중간 중간 빈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