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알바레즈 데 톨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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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nando Álvarez[1] de Toledo
(1507. 10. 29 ~ 1582. 12. 11)
1. 개요
에스파냐의 군인이자 정치가. 보통 16세기 유럽사 굵직한 장면에 등장하는 '''알바 공(Duke of Alba)은 이 사람을 가리킨다.'''
2. 생애
1535년에 튀니스 원정에 종군하고, 1536년에는 이탈리아 원정에 참여하여 란츠크네히트의 한 축을 담당했지만 프랑스군의 지휘관인 안느 드 몽모랑시가 전략적 요충지를 제외하고 다른 지역을 초토화하는 작전으로 나가자 식량의 현지 조달이 어려운 상태에 봉착하였으며, 마르세유 근처에서 기습을 받자 병사들을 후퇴시켰다.
1541년에는 북아프리카 원정에서 육군 총사령관으로 참여하여 알제로 상륙하려고 시도했지만 매우 좋지 않은 날씨 탓에 수많은 병사들이 수장된데다가 상륙한 직후에는 매복한 무슬림들의 공격을 받아 후퇴했다.
이 북아프리카 원정 때 병에 걸려 몸이 좋지 않은 상태임에도 참전하였으며, 종군하기 전에는 전쟁에 필요없는 짐을 가져가려는 자를 제외시키고, 비전투 종군자들에게 태형을 내리는 등 전쟁을 위해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최고 궁내관에 임명되었다. 또한 이 해에 나바라와 카탈루냐의 수비를 맡아 현지의 병력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여 프랑스군이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게 하였다.
1544년 9월 18일에 프랑스 왕국과 맺은 크레피 평화조약 때 결혼동맹으로 프랑수아 1세의 차남인 오를레앙 공 샤를 2세의 짝을 선택하는 일로 토론이 벌어졌는데 그 대상은 카를 5세의 딸인 마리아와 카를 5세의 질녀인 안나였다.
마리아와 결혼하면 카를 사후 네덜란드 지배권을 부부가 공유하고, 안나와 결혼하면 1년 후 밀라노의 지배권을 가져간다는 조건이었는데 이 때 밀라노 공국은 나폴리, 시칠리아의 방어에서도 중요한 곳이면서 독일과 플랑드로로 원활하게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한다는 이유로 카를 5세의 질녀인 오를레앙 공 샤를 2세의 결혼 상대로 할 것을 주장하였다.
1542년에 11월 20일에 인디오(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좋은 대우와 보호에 대한 내용이 담긴 신법령을 발표하자 1546년 1월 8일에 곤살로 피사로가 반란을 일으키자 회의를 열었는데 오로지 혼자서만 병력을 보내 제압하는 강경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페드로 데 라가스카가 파견되어 외교적인 능력으로 이를 해결하였다.
1546년 슈말칼덴 전쟁에 종군하여 황제와 함께 군을 지휘하였다. 1547년 4월에 뮐베르크 전투에서 1천여명의 후사르와 화승총병 450명을 이끌고, 재빨리 여울목을 건너면서 롱머스킷 사수들에게 엄호하도록 시켜서 신교도군의 파수병을 쫓아냈으며, 우익 기병대를 맡아 돌격하여 신교도군의 좌익을 전멸시켰다.
1548년에는 펠리페 2세가 후계자임을 알리는 궁정 예식을 주관하였으며, 펠리페의 가솔과 일정을 총괄하여 관리하는 고문관의 자리에 올랐다. 1551년에는 아들인 돈 파드리케를 카르도나 공작의 딸인 기오마르 데 아라곤과 결혼시켰으며, 1552년에 작센 선제후인 모리츠가 프랑스의 편에 서서 인스브루크를 기습하여 황제를 도주하게 만들자 황제의 명에 따라 프랑스를 징벌하기 위해 메츠를 공격하지만 실패했다.
1555년에 프랑스군이 이탈리아의 제국 영토들이 위협받자 이탈리아로 군사를 이끌고 갔으며, 그 와중에 보급 문제로 고전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이탈리아를 지배하는 것에 적대감을 가진 교황 바오로 4세가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맞서 싸우려고 하자 로마로 진군하였다.
로마로 진군한 것으로 다급해진 교황이 휴전을 하지만 1557년 1월에 프랑스군이 휴전이 깨지고, 프랑스의 기즈 공작이 나폴리를 공격하자 수세로 일관하였다. 시에나에서 소수의 프랑스군을 격파하자 이들을 모두 교수형에 처하였으며, 1557년에 스페인군이 프랑스 북부을 기습하면서 교황령을 서서히 점령하였다.
결국 1557년 9월 27일에 교황의 구걸로 평화 조약이 이루어졌으며, 나폴리의 부왕이 되었고, 1559년에는 국내의 신교도들을 탄압하기 위해 프랑스와 카토캉브레지 화약을 체결했다.
1566년에 플란데런의 혼트슈테 교회를 칼뱅주의자들이 습격하여 성상 파괴 운동이 벌어지자 1567년에 8월 22일에 1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브뤼셀에 주둔하였다. 또한 플란데런의 총독으로 임명되면서 종교재판소를 설치해서 에흐몬트 백작, 호른 백작 등 약 18,000명을 처형했다. 이 재판은 피의 법정(Bloedraad)이라 불렸으며, 알바 공작은 강철 대공이라는 악명을 떨치면서 이에 항거한 빌럼 1세를 몰아냈다.
이 일과 함께 각종 무거운 세금과 압정으로 네덜란드 독립전쟁을 유발하였으며, 1573년에 반란군이 점령한 알크마아르를 공격했지만 실패하였고, 10월에 레이던을 공격하였다가 빌럼 1세가 구원하자 무케르헤이데에서 빌럼 1세가 이끄는 군대를 격파했다.
1573년에 본국으로 소환되었다가 1574년 6월에 다시 레이던을 공격하였지만 저항이 매우 거셌다. 빌럼 1세의 수공으로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자 철수하였다. 1579년에 왕의 미움을 받아 추방되었다.
1580년에 포르투갈 합병을 위해 다시 부름받아 군대를 이끌고 리스본으로 출병하여 기습 점령하는데 성공했지만 1582년에 리스본에서 사망했다.
3. 매체에서
3.1. 게임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등장 인물
대항해시대 온라인 에스파냐 이벤트의 등장인물. 포르투갈, 잉글랜드, 네덜란드 이벤트에도 나온다. 모델은 항목 1의 인물.
알바 공은 에스파냐의 군권을 가지고 있는 재상이며 발바리아 해적과 네덜란드 독립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두 문제 중 네덜란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보고 있어서 발바리아 해적의 수장 하이레딘과 접촉해 분쟁을 종식하고 발바리아 해적을 맡은 흑고래 용병함대를 네덜란드로 보내 처리하려고 한다.
에스파냐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잉글랜드에 대해서는 스파이를 파견하고, 잉글랜드 해군의 지휘권을 가진 킬링류 백작을 회유하여 잉글랜드를 통채로 집어 삼키려든다.
하지만 흑고래 용병함대 대장인 발타자르 올리베이라의 똥고집때문에 알바의 계획은 물거품으로..지못미.
발바리아 해적은 알바 공의 의도와는 달랐어도 어쨌든 발타자르와 디에고가 처리를 해줬지만 네덜란드 독립은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숨겨둔 딸(...) 이네스는 바다여단과의 싸움도중 전사하고 만다.
킬링류 백작을 통해 잉글랜드를 집어삼키려던 계획도 잉글랜드 해군 장교 라이자 미들튼의 민폐에 가까운 활약으로 쫄딱 망하고 만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악역이기는 하지만 알바 공으로서는 국내외에 산적한 여러가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한 것인데.. 주인공 보정 앞에서는...지못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