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빙엄

 



<color=#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A9151 9%, #6BB981 9%, #6BB981 11%, #2A9151 11%, #2A9151 29%, #6BB981 29%, #6BB981 31%, #2A9151 31%, #2A9151 49%, #6BB981 49%, #6BB981 51%, #2A9151 51%, #2A9151 69%, #6BB981 69%, #6BB981 71%, #2A9151 71%, #2A9151 89%, #6BB981 89%, #6BB981 91%, #2A9151 91%);"'''빌리 빙엄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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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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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아일랜드의 축구감독 '''
''' 이름 '''
'''빌리 빙엄'''
'''Billy Bingham'''
''' 본명 '''
윌리엄 로렌스 빙엄
William Laurence Bingham
''' 출생 '''
1931년 8월 5일 (92세) /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 국적 '''
북아일랜드
''' 신체 '''
170cm
''' 직업 '''
축구선수(측면 공격수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글렌토런 FC (1948~1950)
선더랜드 AFC (1950~1958)
루튼 타운 (1958~1961)
에버튼 FC (1961~1963)
포트 베일 FC (1963~1965)
''' 감독 '''
사우스포트 FC (1965~1968)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1967~1971/1980~1993)
플리머스 아가일 (1968~1970)
린필드 FC (1970~1971)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1971~1973)
에버튼 FC (1973~1977)
PAOK FC (1977)
맨스필드 타운 FC (1978~1979)
''' 국가대표 '''
56경기 10골(북아일랜드 / 1951~1963)
1. 개요
2. 경력
2.1. 선수 시절
2.2. 지도자 시절
3. 은퇴 이후
4. 수상 경력


1. 개요


영국(북아일랜드)축구선수 출신 감독. 1978년부터 1979년까지 맨스필드 타운 FC 감독을 맡았다.

2. 경력



2.1. 선수 시절


[image]
선더랜드 시절의 모습.
1931년에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빌리 빙엄은 학창 시절에 축구부 주장을 맡았을 정도로 축구에 흥미가 있었다. 17세 되던 1948년에 북아일랜드의 명문팀인 글렌토런에서 6파운드의 주급을 받으며 뛰다가 1949년에 1군에 데뷔하여 1949/50 시즌에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북아일랜드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한 빙엄은 1950년에 잉글랜드의 명문팀 선더랜드로 이적하여 팀이 강등되던 1957/58 시즌까지 8년간 206경기를 뛰며 주전으로 준수한 활약을 보였고, 이후 루튼 타운, 에버튼 등지를 떠돌다가 1965년에 현역 은퇴했다.
그는 잉글랜드에서의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1951년에 북아일랜드 국대에 발탁되어 12년간 대표팀으로 활약하며 1958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해 8강까지 진출하는 등 자신의 선수 커리어에 큰 족적을 남겼다.

2.2. 지도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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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튼 감독 시절 하워드 켄달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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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멕시코 월드컵 예선 당시 북아일랜드 선수단. 앞줄 가운데가 빙엄 감독, 빙엄 바로 오른쪽이 조지 베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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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라이스와 함께.
현역 은퇴 뒤 1965년에 사우스포트의 감독을 맡아 1967년에 팀을 3부 리그까지 올리는 수완을 보인 바 있고,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1967년에 아일랜드 국대의 감독도 겸임했지만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1971년에 국대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image]
[image]
게리 암스트롱과 함께.
이후 플리머스 아가일을 비롯해 그리스 국대, 에버튼, PAOK 등을 떠돌며 뚜렷한 성과 없이 방랑하다가 1980년에 북아일랜드 국대로 복귀, 그는 부임 첫 해에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에서 우승하여 기대감을 키웠고 1982년에는 온 북아일랜드 사람들의 염원인 1982 스페인 월드컵 본선 티켓을 손에 넣었다. 팻 제닝스와 마틴 오닐 외에는 이렇다 할 스타 선수 없이 단지 팀의 조직력만으로 이룬 대 성과였다.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개최국인 스페인을 2위로 밀어내고 조1위로 당당히 2라운드에 진출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 2-2로 지고, 미셸 플라티니를 위시한 '마법의 사각형'이 이끄는 프랑스에게는 1-4로 지면서 4강에는 닿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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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마지막 경기 당시 잭 찰튼과 함께.
그 다음에는 절치부심하여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한 팀은 조별 리그에서 알제리에 비기고, 스페인과 브라질에 연달아 지며 광탈당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그 사이 마틴 오닐, 노먼 화이트사이드, 팻 제닝스 등 황금시대의 멤버들이 은퇴한 북아일랜드는 당시 빈번했던 구교-신교 갈등과 시너지를 일으켜 팀 전력은 급속히 악화되어 1990년과 1994년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는 불운을 겪었고, 빙엄 감독은 1993년 11월 17일에 열린 아일랜드와의 마지막 예선 경기에서 1-1로 비긴 것을 끝으로 28년간의 지도자 생활을 마감했다.

3. 은퇴 이후


감독직 은퇴 이후 1990년대 중반에 블랙풀의 단장을 맡다가 2008년에 번리의 아일랜드 선수 스카우트 담당을 맡은 이후 별다른 활동 없이 현재 조용히 노년을 보내고 있다.

4. 수상 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