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 크로스비

 

''' 빙 크로스비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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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
[image]
'''남우주연상'''
'''제16회
(1944년)'''

'''제17회
(1945년)'''

'''제18회
(1946년)'''
폴 루카스
(라인의 감시)

'''빙 크로스비
(나의 길을 가련다)'''

레이 밀랜드
(잃어버린 주말)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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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이름'''
'''빙 크로스비
BING CROSBY
'''
'''분야'''
'''라디오, 음반, 영화'''
'''입성날짜'''
'''1960년 2월 8일'''
'''위치'''
'''라디오 : 6769 Hollywood Blvd.
음반 : 6751 Hollywood Blvd.
영화 : 1611 Vine Street.
'''



'''Bing Crosby
빙 크로스비'''
'''본명'''
해리 릴리스 크로스비 주니어
Harry Lillis Crosby Jr.
'''국적'''
미국 [image]
'''출생'''
1904년 5월 2일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
'''사망'''
1977년 10월 14일 (향년 73세)
스페인 마드리드
'''직업'''
가수, 배우, 코미디언
'''활동'''
1925년 ~ 1977년
'''신체'''
171cm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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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1. 개요


[image]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

2. 상세


1927년 <Whispering>으로 유명한 폴 화이트먼 악단에 입단했으나, 1931년 독립했다. 이후 <Stardust> <The Day You Came Along> <Thanks> 등등 많은 노래를 레코딩했으며,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롤인 <White Christmas>[1] 친동생인 밥 크로스비(Bob Crosby) 역시 유명한 가수 겸 배우였다.

최초의 멀티미디어 스타이며, 최초의 미국 국민 가수, 아니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던 가수였다. 그 당시 음반 차트를 보면 1920년대 30년대에는 그냥 빙 크로스비가 음반 시장을 독식했었다. SP음반을 내기만 하면 1등 찍던 시절이고 프랭크 시나트라 이전에는 빙 크로스비가 있었다. 그러나 빙 크로스비 전엔 이러한 류의 가수나 엔터테이너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빙 크로스지를 최초의 멀티미디어, 현대적 스타라고 부르는 것이다. 과언이 아니라 진짜 빙 크로스비가 현대적 셀러브리티의 원조인 것이다. 밥 호프는 이보다 조금 늦게, 프랭크 시나트라는 10년 정도 뒤다. 그의 음악적 스타일은 동시대 영국의 알 보울리나 조금 늦게 등장한 프랭크 시나트라, 페리 코모 같은 가수들부터, 현재의 마이클 부블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는 크루닝(Crooning)이라고 부르며, 부드럽게 속삭이듯이 노래하는, 트레디셔널 팝의 주요 창법이며, 빙 크로스비가 개발함으로서 이전 세대의 빌 머리(Bill Murray)류의 오페라틱한 창법이 사장되었다. 이는 1950년대 초 테너 마리오 란자 (Mario Lanza)의 미국 시장 대성공으로 다시 컴백하긴 한다만 마리오 란자는 빌 머리 류의 팝 오페라틱이 아닌 진짜 테너였기에 달랐다.
연기 실력도 뛰어나 배우로도 상당히 성공한 사람인데, 멀티미디어 스타라는 말답게 가수와 배우 겸업하는 스타라는 개념을 거의 최초로 보인 사람이다. 193-40년대에도 인기 배우였지만 전쟁이 끝나자 인기가 폭발했으며, 1위 수성을 하던 시절도 있었을 정도다. 명장 레오 맥캐리가 자주 기용하던 배우였는데, 나의 길을 가련다 같은 경우 크로스비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음향이나 영상 기술에도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인데, 우선 크로스비의 성공 자체가 마이크의 발명과 큰 관련이 있다. 크로스비의 창법인 크루닝은 목소리 톤을 중시하는 창법인데, 마이크의 등장은 발성에 신경쓰지 않고도 톤을 살리는 창법에 큰 혜택을 줬기 때문이다. 이런 발전이 겹쳐 악단이 아닌 가수가 중심이 되는 음악 산업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빙 크로스비는 그런 변화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로 남게 되었다. 여기다 미국 최초로 오픈릴 테이프를 이용한 라디오 방송 제작 체제를 도입한 사람이기도 하다. 전후 라디오 방송을 하던 도중 기술자 존 T. 멀린과 함께 사비를 털어서 오픈릴 테이프 녹음기를 샀는데 혜안은 제대로 적중해, 오픈릴 테이프가 방송국에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외 멀린과 함께 텔레비전 생방송을 위한 비디오테이프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얼리 어댑터 면모가 강했던 인물.
말년에 들어선 심장이 나빠져서 의사에게 격한 운동을 자제하란 권고를 들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골프를 쳤는데, 기일엔 18홀을 돌고 난 뒤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호상이라면 호상인게, 그 라운드를 이겨서인지 멋진 게임을 했다는 유언을 남기고 행복한 얼굴로 죽었으며, 아내마저도 골퍼로선 이만한 최후가 없었을 거란 말을 했다고.#

[1] 대니 케이(Danny kaye) 주연의 크리스마스 영화로 잘 알려졌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제일 많이 팔린 싱글 음반이다. 무려 5000만 장을 팔았다고. 빙 크로스비의 위력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 노래가 유명해서 빙의 레코드가 많이 팔린 게 아니고, 당대 최고 스타 (프랭크는 엘비스 급의 신드롬을 일으켰으나 아직 빙의 위치에 오르진 못했다. 40년대까진 그래도 빙이 더 우위였다.)였던 빙이 취입했기에 이 노래가 캐롤로 널리 알려진 것이다. 참고로 2위는 3000만 장으로 꽤 압도적인 차이다. 앨범의 경우 마이클 잭슨의 Thriller가 6600만 장으로 압도적인 1위다. 출처는 미국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