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기

 

1. 중국 삼국시대의 인물
2. 중국 서진의 인물


1. 중국 삼국시대의 인물


司馬岐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로 사마지의 아들이며 사마의의 큰조카.
아버지 사마지가 죽자 작위를 이었으며, 그 후 하남의 승으로부터 정위정으로 전임되었다가 진류의 상으로 승진한다. 이 때 양군에 죄인들이 붙잡혔지만 몇 년이 지나도 해결이 안돼서 벌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조방은 조서를 내려 사마기의 관할하에 있는 현으로 재판을 옮기도록 하면서[1] 죄수들은 워낙에 조사 과정에서 무엇을 속여야 할지 교묘하게 속이는 놈이었으며, 현에서는 형구를 미리 설치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사마기는

지금 죄인은 수십 명이고, 그들의 말은 교활하고 거짓이 있어 부합되기 어렵지만 이미 그 정황은 쉽게 판단할 수 있소. 어찌 또 감옥에서 오랫동안 있도록 하겠소?

죄인들이 도착한 다음에 심문을 하니 그들은 모두 감히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는 이가 없었으므로 하룻만에 판결을 끝마쳐 질질 끌던 사건을 해결하니 사마기는 정위로 발탁되었다.
이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조상하안, 등양 등과 함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남양의 규태가 조상의 뜻에 어긋나는 말을 해서 체포되어 정위에 구류되었다. 조상 일파인 등양은 당연히 심문을 통해 규태를 무거운 형벌에 처했는데, 사마기가 겁도 없이 등양에게 여러 차례 말하길

당신은 국가의 정치를 움직이는 대신이고, 왕실의 보좌를 맡고 있습니다. 당신은 왕실의 교화를 돕고 도덕을 완성하여 옛날 사람과 아름다움을 견줄 수 없고 마음 내키는 대로 당신의 사사로운 분한을 발설하고 무고한 사람에게 억지로 형벌을 정했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위급하다는 마음을 갖게 했으니 이것이 그르지 않다면 또 무엇이겠습니까?

이 말에 등양은 부끄러워하면서도 화가 나서 물러갔는데, 이를 본 사마기는 두려움에 떨면서 질병이 생겨 관직에서 떠났다가 결국 1년도 안되어 서른 다섯 살의 젊은 나이로 죽어 아들 사마조가 작위를 잇는다.
그에 대한 평으로는 진교전에 한 구절이 나오지만 그 구절이 참 안습한데, 위에서 보듯 법률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관직을 법률과 관계된 곳에서 지내 이와 관련되어 뛰어난 법을 처리하는 능력에 대한 일화가 2가지나 있지만 법률을 읽지 않은 진본이 더 우수했다고 나온다.

2. 중국 서진의 인물


司馬機
생몰년도 미상
서진의 황족. 자는 태현(太玄). 사마소의 7남.
청혜정후 사마경이 죽자 그의 후사를 잇게 되었고 265년에 연왕에 봉해져 식읍이 6663호였고 함녕 초에 보병교위가 되었다가 여남군이 그의 봉지로 더해지면서 시중을 겸하게 되었다. 청하군독, 진동장군, 가절을 받고 북평군, 상곡군, 광영군 등 10337호의 봉지를 더해졌다.
사마염사마감과 함께 이 두 명을 위해 덕망과 자질이 뛰어난 사람을 사우로 발탁하면서 이 둘이 나란히 장대해 그들의 길을 도울 사우를 얻어야 했으며, 또한 유학을 취해 의를 행하면서 절약과 검소로 엄정함을 족히 여기게 하고 옛날에 한기[2]가 전소[3]와 더불어 떠돌면서 선을 행하기를 좋아한 옛 사례를 들면서 그들에게 그 사람됨을 얻게 해야 한다고 했다.
사후에는 아들이 없어 제왕 사마경의 아들인 사마기가 후사를 계승했지만 팔왕의 난 때 사마경이 패하면서 그 봉지인 연국이 폐지되었다.

[1] 그의 아버지 사마지가 뛰어난 법률가였기에 이런 결정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2]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신인 한궐의 아들로 진도공 때 상경이 되었다.[3]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현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