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니움
1. 개요
삼니움(Samnium) 고대 이탈리아 남부에 있던 지역이다. 사실, 삼니움이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삼니움인들(Samnites)은 자기들이 살던 지역을 오스크어(語)[1] 로 사피님(Safinim)이라고 불렀다. 많은 삼니움인들이 오스크어를 사용했으나, 모든 오스크어 사용자가 삼니움에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동시에 모든 삼니움인이 오스크어만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기원전 600년부터 서기 290년 사이에 이탈리아 남부에 존재하다가, 로마 공화국에 흡수된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다. 왜 "일반적으로는"이라고 언급했냐면, 후일 로마 시대에도 삼니움이라는 지명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대 삼니움과 로마의 행정구역으로서의 삼니움은 일단 면적부터[2] 시작하여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았기 때문에 주로 따로 분류한다.
단순히 '삼니움'이라고 칭했을 때는 고대 로마와 경쟁하던 강력한 삼니움족일 수도 있고, 아니면 로마 시대의 삼니움 지역일 수도 있으나, 본 문서에서는 고대 로마와 경쟁하던 삼니움인과 그들이 살던 지역인 삼니움에 대하여 서술한다.
2. 역사
일단 기록으로는 기원전 354년의 로마와 삼니움 사이의 조약[3] 에서 최초로 확인된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삼니움과 로마는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삼니움은 고대 로마의 강력한 경쟁자 중 하나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삼니움 전쟁. 로마와의 전쟁에서 몇 번이나 승리를 거둔 삼니움은 기원전 4세기경에 이탈리아 남부의 강자로 부상한다.
그러나 삼니움 전쟁에서의 패배와 아피아 가도 건설로 삼니움은 로마의 세력권에 복속하게 되고, 다시 독립하기 위해서 봉기한 크라니타 언덕 전투[4] 에서마저 패배하게 되면서 삼니움은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이후의 동맹시 전쟁까지는 어느 정도 세력을 유지할 정도는 되었으나, 그마저도 기원전 82년에 로마의 독재관인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에 의해서 완전히 일소되면서, 이후에는 아예 로마에 동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