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초한시대)
三秦
진나라가 멸망한 직후, 진나라 항장(降將) 출신인 장한(옹:雍), 사마흔(새:塞), 동예(적:翟)에게 항우가 옛 진나라 본토 지역인 관중 지방을 봉토로 나누어 주면서 부른 이름. 한왕 유방을 견제하기 위해 범증이 만든 국가였으나, 유방을 우습게 본 항우에 의해 저절로 경계는 느슨해졌고 결국 유방이 한중을 나올 때 첫 공략 대상이 되어 초한쟁패기 유방의 발판이 된다.
재밌는 부분은 결국 이 삼진 평정 자체는 유방도 '''나름대로 명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의제가 약속한 관중왕의 약속을 항우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는 식으로 파촉에 유방을 봉함으로서 처리했는데 유방이 삼진을 평정함으로서 본디 의제가 내세운 약속대로 행동했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관중은 통상 함양(장안) 주변, 한-삼국시대의 옹주, 근현대의 섬서성을 의미하나, 넓게는 전국시대 시절 진나라의 영역을 의미하므로, 사마착의 정복 이래 진에 포함된 파촉이 포함되었다. 항우 측이 그 간극을 이용한 것.
이 삼진의 왕들은 관중의 왕으로 봉해질 자격도 없었다. 의제가 내세운대로 관중을 먼저 평정한 사람이 관중의 왕이 될 거라고 했는데 문제는 사마흔, 장한, 동예 등은 본래 진나라의 장수들로서 진승 오광의 난 이후로 구 육국 지역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느라 돌아다니던 도중 항우와 거록에서 만나 격파당하고 항우에게 항복한 장군들이었다. 그래서 관중을 평정하는데 기여한 것이 아니라 왕으로 봉해질 마땅한 이유조차 불분명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신안에서 진나라 군사를 20만 명이나 날려먹은 주제에 항우에게 붙어서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생각했을 진나라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때문에 유방은 아예 "저 세 명은 관중은 커녕 애초에 왕으로 봉해질 이유가 있기는 함?" 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들의 항복으로 진나라는 끝장나지만 그들의 항복을 받아낸건 항우이기에 이마저도 그 세 명이 아닌 항우의 공이다. 결국 유방 빼면 관중에 봉해진 왕들은 관중에 봉해질 명분도 없고 왕으로 봉해지는 것조차 항우가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옹나라의 영토는 함양 이서, 새나라의 영토는 함양 이동에서 황하까지, 적나라의 영토는 상군 전역이다. 전한의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옹나라는 대략 우부풍과 농서·무도·천수(이상 세 군은 진나라의 농서군에 해당)·북지·안정(이 두 군은 진나라의 북지군에 해당) 6군, 새나라는 대략 경조윤과 좌풍익 2군, 적나라는 상 1군이다. 인구수는 전한 기준으로는 대략 옹>새≫적으로, 삼진왕 중 원래 진나라에서 가장 높은 위치였던 장한이 가장 큰 몫을 가져간 건 당연한데 의외로 사마흔의 몫이 장한과 큰 차이가 안 나고 동예는 사실 이 둘에 견주기에도 민망할 만큼 조금 받았다.
옹나라의 수도는 폐구(지금의 싱핑시), 새나라의 수도는 약양(지금의 시안시 옌량구), 적나라의 수도는 고노(지금의 옌안시)다. 옛 진나라의 수도 함양이 황폐화되고 그나마도 옹과 새 두 나라가 나눠가졌으니 새 수도를 정하는 건 당연하고, 폐구는 한때 주나라의 수도였으며 약양은 나중에 한나라도 수도로 사용했었으니 입지도 괜찮았던 것 같다. 폐할 폐(廢)라는 망한 도시 삘나는 이름을 안 바꾼 건 신기하지만. 적나라의 수도는 상군의 전통적인 중심지 부시(지금의 위린시)가 아닌데, 당시 흉노가 부시까지 세력을 확대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을 수도로 정한 것 같다.
[각주]
진나라가 멸망한 직후, 진나라 항장(降將) 출신인 장한(옹:雍), 사마흔(새:塞), 동예(적:翟)에게 항우가 옛 진나라 본토 지역인 관중 지방을 봉토로 나누어 주면서 부른 이름. 한왕 유방을 견제하기 위해 범증이 만든 국가였으나, 유방을 우습게 본 항우에 의해 저절로 경계는 느슨해졌고 결국 유방이 한중을 나올 때 첫 공략 대상이 되어 초한쟁패기 유방의 발판이 된다.
재밌는 부분은 결국 이 삼진 평정 자체는 유방도 '''나름대로 명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의제가 약속한 관중왕의 약속을 항우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는 식으로 파촉에 유방을 봉함으로서 처리했는데 유방이 삼진을 평정함으로서 본디 의제가 내세운 약속대로 행동했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관중은 통상 함양(장안) 주변, 한-삼국시대의 옹주, 근현대의 섬서성을 의미하나, 넓게는 전국시대 시절 진나라의 영역을 의미하므로, 사마착의 정복 이래 진에 포함된 파촉이 포함되었다. 항우 측이 그 간극을 이용한 것.
이 삼진의 왕들은 관중의 왕으로 봉해질 자격도 없었다. 의제가 내세운대로 관중을 먼저 평정한 사람이 관중의 왕이 될 거라고 했는데 문제는 사마흔, 장한, 동예 등은 본래 진나라의 장수들로서 진승 오광의 난 이후로 구 육국 지역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느라 돌아다니던 도중 항우와 거록에서 만나 격파당하고 항우에게 항복한 장군들이었다. 그래서 관중을 평정하는데 기여한 것이 아니라 왕으로 봉해질 마땅한 이유조차 불분명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신안에서 진나라 군사를 20만 명이나 날려먹은 주제에 항우에게 붙어서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생각했을 진나라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때문에 유방은 아예 "저 세 명은 관중은 커녕 애초에 왕으로 봉해질 이유가 있기는 함?" 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들의 항복으로 진나라는 끝장나지만 그들의 항복을 받아낸건 항우이기에 이마저도 그 세 명이 아닌 항우의 공이다. 결국 유방 빼면 관중에 봉해진 왕들은 관중에 봉해질 명분도 없고 왕으로 봉해지는 것조차 항우가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옹나라의 영토는 함양 이서, 새나라의 영토는 함양 이동에서 황하까지, 적나라의 영토는 상군 전역이다. 전한의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옹나라는 대략 우부풍과 농서·무도·천수(이상 세 군은 진나라의 농서군에 해당)·북지·안정(이 두 군은 진나라의 북지군에 해당) 6군, 새나라는 대략 경조윤과 좌풍익 2군, 적나라는 상 1군이다. 인구수는 전한 기준으로는 대략 옹>새≫적으로, 삼진왕 중 원래 진나라에서 가장 높은 위치였던 장한이 가장 큰 몫을 가져간 건 당연한데 의외로 사마흔의 몫이 장한과 큰 차이가 안 나고 동예는 사실 이 둘에 견주기에도 민망할 만큼 조금 받았다.
옹나라의 수도는 폐구(지금의 싱핑시), 새나라의 수도는 약양(지금의 시안시 옌량구), 적나라의 수도는 고노(지금의 옌안시)다. 옛 진나라의 수도 함양이 황폐화되고 그나마도 옹과 새 두 나라가 나눠가졌으니 새 수도를 정하는 건 당연하고, 폐구는 한때 주나라의 수도였으며 약양은 나중에 한나라도 수도로 사용했었으니 입지도 괜찮았던 것 같다. 폐할 폐(廢)라는 망한 도시 삘나는 이름을 안 바꾼 건 신기하지만. 적나라의 수도는 상군의 전통적인 중심지 부시(지금의 위린시)가 아닌데, 당시 흉노가 부시까지 세력을 확대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을 수도로 정한 것 같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