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착
司馬錯 [1]
생몰연대 미상
전국시대 중후반기의 진나라의 명장. 기록 상에는 혜문왕(惠文王) 때부터 언급된다. 그리고 춘추전국시대부터 수백년 간 진나라를 괴롭혀왔던 파촉(巴蜀)[2] 을 기어코 멸망시킨 장수이다.
기원전 316년에 사마착은 연횡책으로 유명한 장의(張儀)와 설전을 벌인 끝에 결국 10만 병사를 얻어내어, 장의와 함께 진나라 군대를 이끌고, 파나라와 촉나라를 공격하여, 파촉을 멸망시켰다. 촉을 멸망시키고 사천 지방에 봉지를 얻었다.
사마착이 파촉을 멸망시킨 것이 진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만들었고, 제나라(齊)가 연나라(燕)에게 털려 몰락한 상황에서 초나라(楚)와 비견되는 2강 체제를 구축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한중(漢中)과 파촉을 동시에 먹은 진나라는 양방향으로 초나라를 후려칠 수 있게 되었고, 이후로 촉나라 병사를 이끌고 초나라로 쳐들어가 수도를 함락시켜 천도하게 만들었다. 초나라는 영토가 계속 쪼그라들게 되었다.
기원전 301년에는 촉나라였던 사천 지방에서 촉후인 영휘가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하고, 기원전 292년에는 백기와 함께 위나라(魏)의 원을 빼앗다가 돌려주며 다음 해에 위나라의 지, 등 땅을 빼앗고, 기원전 289년에는 위나라의 원, 하옹을 빼았으며, 기원전 286년에 위나라의 하내 지방을 공격하면서 위나라로부터 안읍을 할양받았다.
기원전 280년에는 농서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사천 지방을 지나 한수를 거슬러 올라가서 초나라의 검중을 점령한다.
활동 영역으로 보면 남쪽 방면의 군사 행동을 맡은 것으로 보아 정남 장군 비슷한 직책이었던 듯 하다.
손자 사마근(司馬靳)은 무안군(武安君) 백기를 상관으로 섬겼으며, 장평대전에서 기병대를 이끌고 조나라의 수송로를 차단해 조나라 군사 40만명을 생매장 비극에 제대로 일조했으며 백기의 최측근 급으로 가깝거나 혹은 그 일파의 인물로 분류되었는지 백기가 숙청당할때 함께 휘말려 죽게 된다. 이후로 후손들은 군사 방면 직책을 맡지 않으며 내려왔으며 그중 한명이 그 유명한 사마천이다. 위나라의 사마의(司馬懿)는 초한쟁패 시대 항우에게 은왕(殷王)으로 책봉되었던 사마앙(司馬卬)의 후손으로 방계에 해당한다.
하라 야스히사의 만화 킹덤에 따르면 진 소양왕 시절 육대장군 중 하나였다고 설정되어있다.
나름 실제 역사에서도 활약한 인물임에도 회상 등을 통해 용모가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작중 언급이 아예 없다.''' 다른 육장들이 동료와 제자, 싸웠던 적들의 입을 통해 어떤 스타일의 장군인지 알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 향후 스토리의 전개과정에서 언급될 가능성이 있다.
생몰연대 미상
1. 개요
전국시대 중후반기의 진나라의 명장. 기록 상에는 혜문왕(惠文王) 때부터 언급된다. 그리고 춘추전국시대부터 수백년 간 진나라를 괴롭혀왔던 파촉(巴蜀)[2] 을 기어코 멸망시킨 장수이다.
2. 생애
기원전 316년에 사마착은 연횡책으로 유명한 장의(張儀)와 설전을 벌인 끝에 결국 10만 병사를 얻어내어, 장의와 함께 진나라 군대를 이끌고, 파나라와 촉나라를 공격하여, 파촉을 멸망시켰다. 촉을 멸망시키고 사천 지방에 봉지를 얻었다.
사마착이 파촉을 멸망시킨 것이 진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만들었고, 제나라(齊)가 연나라(燕)에게 털려 몰락한 상황에서 초나라(楚)와 비견되는 2강 체제를 구축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한중(漢中)과 파촉을 동시에 먹은 진나라는 양방향으로 초나라를 후려칠 수 있게 되었고, 이후로 촉나라 병사를 이끌고 초나라로 쳐들어가 수도를 함락시켜 천도하게 만들었다. 초나라는 영토가 계속 쪼그라들게 되었다.
기원전 301년에는 촉나라였던 사천 지방에서 촉후인 영휘가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하고, 기원전 292년에는 백기와 함께 위나라(魏)의 원을 빼앗다가 돌려주며 다음 해에 위나라의 지, 등 땅을 빼앗고, 기원전 289년에는 위나라의 원, 하옹을 빼았으며, 기원전 286년에 위나라의 하내 지방을 공격하면서 위나라로부터 안읍을 할양받았다.
기원전 280년에는 농서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사천 지방을 지나 한수를 거슬러 올라가서 초나라의 검중을 점령한다.
활동 영역으로 보면 남쪽 방면의 군사 행동을 맡은 것으로 보아 정남 장군 비슷한 직책이었던 듯 하다.
3. 후손
손자 사마근(司馬靳)은 무안군(武安君) 백기를 상관으로 섬겼으며, 장평대전에서 기병대를 이끌고 조나라의 수송로를 차단해 조나라 군사 40만명을 생매장 비극에 제대로 일조했으며 백기의 최측근 급으로 가깝거나 혹은 그 일파의 인물로 분류되었는지 백기가 숙청당할때 함께 휘말려 죽게 된다. 이후로 후손들은 군사 방면 직책을 맡지 않으며 내려왔으며 그중 한명이 그 유명한 사마천이다. 위나라의 사마의(司馬懿)는 초한쟁패 시대 항우에게 은왕(殷王)으로 책봉되었던 사마앙(司馬卬)의 후손으로 방계에 해당한다.
4. 대중 매체에서
4.1. 하라 야스히사의 만화 킹덤에서의 묘사
하라 야스히사의 만화 킹덤에 따르면 진 소양왕 시절 육대장군 중 하나였다고 설정되어있다.
나름 실제 역사에서도 활약한 인물임에도 회상 등을 통해 용모가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작중 언급이 아예 없다.''' 다른 육장들이 동료와 제자, 싸웠던 적들의 입을 통해 어떤 스타일의 장군인지 알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 향후 스토리의 전개과정에서 언급될 가능성이 있다.
[1] 錯이라는 한자가 뜻과 음이 '어긋날 착' 말고도 '둘 조'라고도 읽히기에 사기 본기 번역본을 보면 좌경 조니 사마착이니 뭐니 혼돈되게 표기되어있지만, 모두 동일인물이다.[2] 삼국지의 촉한 할 때 그 촉 지역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