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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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서상교는 그의 종손자(從孫子)[4] 이다.
2. 생애
서건수는 1874년 1월 17일 경상도 대구도호부 상수남면 우록동(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서 아버지 서진국(徐鎭國)과 어머니 일직 손씨 손정두(孫廷斗)의 딸 사이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이재(怡齋) 서사진(徐思進)의 10대손으로, 그의 조부는 구한 말 영남지방의 이름난 유학자였던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이며, 아버지 서진국[5] 은 임재의 장남이었다.
그는 1919년 3월 파리 강화 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김복한을 중심으로 한 충청도 유림과 김창숙·곽종석 등의 영남유림 137명이 대표가 되어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영남유림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하였다. 이들은 '파리장서'를 통해 일제가 자행한 명성황후·고종황제의 시해와 한국 주권의 찬탈과정을 폭로하면서 한국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1919년 4월 12일 경상북도 성주군의 만세운동과 관련하여 당시 독립청원서 서명자의 한 사람이었던 송회근이 체포되는 바람에 발각되었고, 서건수 또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고초를 겪었다. 다만, 일제는 이들 유림이 한국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었으므로 민족적 감정이 더욱 번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
그는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한동안 구금되었다가, 1921년 2월 22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 경상북도 대구부 남산정(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거주하다가 1953년 6월 15일 별세하였다.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