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씨)

 



1. 개요
2. 중국의 성씨
3. 한국의 성씨
3.1. 본관 분파
3.1.1. 신라계
3.1.2. 고려계
3.2. 실존 인물
3.2.1. 손씨를 예명으로 쓰는 인물
3.3. 가상 인물


1. 개요


한국중국의 성씨이다.

2. 중국의 성씨


중국의 손씨의 시원에 대한 가설은 왕손씨, 공손씨에 대한 가설과 관련이 있다. 왕은 아니지만 높으신 분을 공(公)이라 했고, 그들의 아들은 왕자, 공자, 그들의 손자는 왕손, 공손이라 했다. 이런 칭호가 이름 앞에 붙으면서 점차 현대의 성씨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다시말해 왕의 손자, 공의 손자만 왕손, 공손으로 부른 것이 아니라, 그 손자의 후손들도 왕손, 공손으로 부르다 보니 성씨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왕자, 공자를 줄여서 '자'라고 하고, 왕손, 공손을 줄여서 '손'이라고 부르는 일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손을 줄여 표현하던 '손'이 성씨가 되었다는 것이다.
춘추시대 위나라, 정나라, 제나라에서 독자적으로 손씨가 각각 계출되었다. 위나라의 손씨와 정나라의 손씨는 각각 위나라 공실과 정나라 공실의 후예들이고, 제나라 손씨는 나중에 강제를 찬탈하는 규성 전씨[1]에서 갈라져 나왔다. 이 규성 손씨에서 손자, 손빈이 나왔다고 한다. 위나라와 정나라는 희성 제후국으로 주나라와 동성이니, 주나라의 후손을 내세우는 손씨와 순임금 - 진(陳)나라 - 전씨의 제(齊)나라의 후손을 내세우는 손씨가 각각 있는 것이다.
삼국시대 오나라의 국성이다. 시조 손견은 손자의 후손으로 추측하기도 하나, 오나라에서는 황가를 손자의 후손이나 순임금의 후손이라고 내세우는 일이 거의 없었다.
현대 인물 중에는 정치가 쑨원, 축구선수 쑨지하이, 수영선수 쑨양, 배우 손려(쑨리), 가수 쑨전니, 쑨루이 등이 있다.

3. 한국의 성씨



한국에서는 경주 손씨와 밀양 손씨 등 총 35개의 본관을 갖는다. 안동 손씨(일직 손씨)를 제외한 모든 손씨는 고조선 멸망 이후 경주시 지역으로 남하해 자리잡아 마을을 이루다가 신라 박혁거세 때 그를 왕으로 추대한 경주시 6부 중 무산 대수촌의 촌장 구례마의 후손으로 일컬어진다. 이 중 경주 손씨가 대성(大姓). 참고로 일직 손씨는 원래 순씨인데 피휘를 하면서 손씨로 바꾼 것이다. 지금은 일직 손씨가 순씨보다 훨씬 더 많다.[2] 밀양 손씨는 손씨의 70~80%를 차지하며, 경주 손씨도 꽤나 많다. 밀양 손씨는 경상도뿐만이 아니라 손씨들 중에서는 충청도전라도에서도 많다. 다만 강원도가 좀 없을 뿐(...). 경주 손씨는 경상도(특히 경북)에서만 많이 볼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의 주요 터줏대감이다. 일직 손씨는 전라도에는 거의 없고, 경상북도 지방에서만 제일 많이 볼 수 있다. 경상북도의 손씨로 평해 손씨도 있다.[3]

3.1. 본관 분파



3.1.1. 신라계



3.1.2. 고려계



3.2. 실존 인물



3.2.1. 손씨를 예명으로 쓰는 인물


  • 손여은 - 배우[4]
  • 손지현 - 배우[5]

3.3. 가상 인물



4. 일본의 성씨


일본에도 한자와 발음이 같은 孫(そん)이란 성씨가 있는데, 소프트뱅크를 세운 손정의(孫正義)가 일본으로 도래 할 때 창성한 것이다. 정확히는 손정의가 도래하면서 성을 '손'이라고 하려고 하자 일본인 중에 그런 성이 없다면서 거절당하자 배우자의 성씨를 손씨로 바꾸자고 설득해 배우자가 성씨를 바꾼 다음에[6] 그 성을 썼다.


[1] 진(陳)나라의 국성이다. 전씨가 진나라 망명인의 자손이기 때문[2]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순씨의 시조 순경진이 고려에 출사한 때가 목종대인데 바로 그 다음 왕 현종대에 피휘해서 성을 바꿔버렸다. 즉 고려에 정착하자마자 한 무리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게다가 순씨가 조선조 이몽학의 난에 가담했다가 일족이 모조리 갈려 나가면서 수가 또 줄었다.[3] 평해는 울진군의 남반부인 옛 평해현을 가리킨다.[4] 본명은 변나연.[5] 본명은 남지현.[6] 일본은 결혼 시 부인이 기존 성에서 남편의 성으로 바뀐다. 남편이 데릴사위로 들어간 경우 반대로 남편이 부인의 성으로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