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트라프
1. 개요
서(西)사트라프(पश्चिमी क्षत्रप). 당시에는 브라흐미 문자로 대(大)사트라프(𑀫𑀳𑀸𑀔𑀢𑀧, ''Mahākhatapa'')라고 불렸다. 인도 서북부에 북(北)사트라프들의 국가가 존재했기 때문에 구별하기 위해서 西자를 붙인 것이다.
스키타이의 일파 샤카족의 일부가 현재 구자라트 지역에 자리잡아 세운 왕국. 본래는 쿠샨 왕조의 태수국이었다.
기원후 1~3세기경 인도 서북지역에서 매우 강력한 왕국으로 자리잡았다.
쿠샨 왕조와 세력다툼을 했으나, 마가다 지역에서 일어난 굽타 왕조에 의해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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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본디 샤카족은 스키타이의 일파로 월지족에게 밀려 인도쪽으로 쫒겨나게 된다. 그곳에는 여전히 그리스계열의 왕국들이 존재하였으나 이들은 샤카족들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기원후 1세기경 구자라트, 말와 지역쪽에서 샤카족의 일파인 크샤하라타 왕조가 왕국을 세우는데 이것이 서사트라프 왕국이다.
주변에는 비슷한 샤카족들의 소왕국들이 존재했었고 약간 북쪽 펀자브 지역쪽으로 존재했던 북사트라프 왕국과는 사이가 그닥 안좋았다. 그런데 이 북사트라프는 서북쪽에서 몰려온 쿠샨 왕조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서사트라프는 이보다 훨씬 오래 존속했었고 서북지역에서 나름 강국으로 성장한다. 성장배경으로 서사트라프가 자리잡은 위치가 적절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사트라프 왕국은 아라비아 해에 접해 있어 일찍부터 유럽과의 해상 무역이 발달했는데 이는 왕국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1]
중후반기에 서사트라프는 인도 중북부의 강자 사타바하나 왕조와 북쪽의 쿠샨 왕조와 경쟁하게 된다. 한때 그 위세가 매우 강력하여 쿠샨 왕조로부터 펀자브 일부 지방과 사타바하나 왕조의 구자라트, 카타이와르, 말와, 베라르 지역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빼앗은 적도 있을정도로 인도 서북의 최강자로 떠오르도 하였다.
그러나 4세기들어 내부 분란으로 세력이 많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당시 동쪽에서 크게 세력을 키우고 있던 굽타 왕조의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기어이 굽타 왕조의 찬드라굽타 2세가 서사트라프 왕국을 공격하게 되고 409년 서사트라프의 마지막 국왕 루드라싱하 3세가 살해당하게 된다. 결국 이로 인해 서사트라프 왕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