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그리스 왕국
1. 개요
알렉산더 대왕이 이룩한 헬레니즘 제국이 쇠퇴하면서 떨어져나간 박트리아 계열 그리스인들이 인도 서북부 지역으로 넘어와 세운 왕국들을 통틀어서 지칭하는 말이다.
기원전 2세기부터 서기 1세기 초까지 펀자브를 중심으로 존재하였으나 서북방면에서 몰려온 스키타이인들에 의해 멸망한다.
인도-그리스 왕국의 그리스인들은 고대 인도인들에게 그리스의 별칭인 이오니아(Ἰωνία)에서 유래한 요나(𑀬𑁄𑀦, Yoṇa) 또는 야바나(𑀬𑀯𑀦, Yavana)라고 불렸다.
2. 역사
본래 이 왕국들은 알렉산드로스 3세의 헬레니즘 제국에서 쪼개진 셀레우코스 제국의 속주들이었다. 그러다 셀레우코스 제국이 휘청거리면서 파르티아, 박트리아 등으로 쪼개지는데 박트리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남겨두고 간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을 세웠다. 본래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은 옥수스 강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에 위치한 동서양의 중요한 교통 중심지에 있었는데 월지에 의해 쫓긴 스키타이가 몰려들면서 이들이 밀리게 된다. 결국 이 그리스계 민족들은 마우리아 왕조가 쇠약해짐에 따라 인도 서북지역으로 넘어와 각자 자신들의 왕국을 세운다. 이것이 인도-그리스 왕국이다.
인도-그리스 왕국은 단순히 나라 하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도 지역의 그리스 계열 왕국들을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탁실라(Taxila), 카피사(Kapisa), 판차나다(Panchanada), 아라코시아(Arachosia), 푸슈카라바티(Puskalavati), 사갈라(Sakala) 등이 있다. 이들은 기원전 2세기 경 원래 자신들이 살던 지역에서 벗어나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펀자브지역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인도에 처음 진출한 이들 그리스인들이 인도의 풍습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들을 인도-그리스인 또는 박트리아-그리스인이라고도 부른다. 이들이 인도화되면서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왕통은 신, 구 두 갈래로 갈리지게 된다.
이들 인도-그리스 왕국들은 본래 자신들이 믿던 그리스 신화를 주로 믿었는데 이중 사갈라 왕국의 메난드로스 왕은 불교를 받들게 된다. 그는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었고 나가세나라는 승려와 함께 불교에 대한 논담을 나눈 뒤에 불교로 귀의하게 된다. 오늘날 <밀린다왕문경>(Milinda Panho)이라고 불리우는 불교 경전이 바로 메난드로스 왕과 나가세나의 논담을 다룬 것이다. 이 경전은 그리스의 합리적인 사고와 동양의 사상이 만난 최초의 작품으로써 역사 및 사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인도-그리스 왕국의 인도 유입은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리스에서 주조한 화폐들이 이 시기에 많이 유입되어 후에 인도 역사의 연대를 규정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도-그리스인들은 자신들만의 금화를 주조하기도 했는데, 이는 후에 쿠샨 왕조에서 널리 성행하게 된다. 거기다 이들의 침입으로 인도 서북지역에서는 간다라 양식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헬레니즘 문화가 성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인도-그리스 왕국들은 다시 월지인들에게 쫓겨온 소그디아나의 스키타이의 일파 샤카족들의 침공으로 멸망하게 되었고, 샤카족이 이 지역을 이어받아 인도-스키타이를 세웠다.
그러나 기록상으로는 서기 3, 4세기에도 야바나 인[1]의 정치집단이 확인되며, 9세기까지도 아프가니스탄 일대에서 주화에 그리스어를 기입한 사례가 존재한다.
3. 문화
그리스인들의 문화와 인도의 문화가 섞인 헬레니즘 문화가 성행하였다. 이의 영향으로 간다라 양식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미술작품이나 건축, 석굴상 등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통치자의 초상을 새긴 주화가 북인도와 아프가니스탄 일대에서 그리스인 장인들에 의해 주조되었으며, 통치, 행정 언어도 스키타이 왕국 시대까지는 그리스어로 남아서 이 시기에 인도를 여행한 그리스인은 그리스에서 인도까지 그리스어만 사용해서 육로로 여행할 수 있었다고 기록을 남겼을 정도이다.
그리스 인들은 인도의 천문학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산스크리트어로 점성술을 뜻하는 “호라샤스트라”는 고대 그리스어로 천문과 시간 관측을 뜻하는 “흐로스코포스”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헬레니즘 문화 문서를 참조.
[1] 인도인이 그리스인을 불렀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