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일로 살돔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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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돔비데는 평생을 그의 집이 있던 산타 루시아에서 보냈고, 그래서인지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처음 프로생활을 시작하였다. 1927년부터는 나시오날에서 선수생활을 하였는데 나시오날이 잘 나가는 팀이다보니 1927년의 북중미 투어에서부터 자신의 역할을 소화했다. 1934 시즌까지 나시오날에서 활약하였으며 182경기에 출전, 45골을 기록하였다.
살돔비데의 국가대표팀 데뷔는 1922년 12월 10일에 치렀으며 1928년 9월 21일의 마지막 시합까지 총 15경기에 참가하였다. 여러 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최강팀 우루과이의 멤버이긴 했지만 그가 제대로 주전으로 참가한 대회는 1926년의 코파 아메리카가 유일했다. 나머지 대회는 거의 후보 선수로서의 역할이었다.
양쪽 사이드에서 모두 뛸 수 있었고 스피드가 빨랐다고 전해진다.
1. 생애
1.1. 선수 생활
1.1.1. 클럽
살돔비데는 평생을 그의 집이 있던 산타 루시아에서 보냈고, 그래서인지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처음 프로생활을 시작하였다. 1927년부터는 나시오날에서 선수생활을 하였는데 나시오날이 잘 나가는 팀이다보니 1927년의 북중미 투어에서부터 자신의 역할을 소화했다. 1934 시즌까지 나시오날에서 활약하였으며 182경기에 출전, 45골을 기록하였다.
1.1.2. 국가대표
살돔비데의 국가대표팀 데뷔는 1922년 12월 10일에 치렀으며 1928년 9월 21일의 마지막 시합까지 총 15경기에 참가하였다. 여러 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최강팀 우루과이의 멤버이긴 했지만 그가 제대로 주전으로 참가한 대회는 1926년의 코파 아메리카가 유일했다. 나머지 대회는 거의 후보 선수로서의 역할이었다.
2. 플레이 스타일&평가
양쪽 사이드에서 모두 뛸 수 있었고 스피드가 빨랐다고 전해진다.
3. 뒷이야기
- 살돔비데는 원래 양쪽 아웃사이드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시오날에서는 계약으로 인해 조금 더 왼쪽으로 뛰는 시간이 더 많았다.
- 1928년 올림픽에는 아예 참가를 거부했는데 사유는 모기지 은행에 입사 시험 준비를 했기 때문이었다.
- 1930년 월드컵에는 엔트리에 이름만 올려놓고 실제로는 뛰지 않았다.
4. 수상
4.1. 클럽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4회: 1923(FUF)(몬테비데오 원더러스), 1924, 1933, 1934(이상 나시오날)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4회: 1924, 1926(이상 몬테비데오 원더러스), 1929, 1931(이상 나시오날)
4.2. 국가대표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