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리)
Lý Chiêu Hoàng, 李昭皇
1. 소개
베트남 리 왕조의 제9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묘호는 없고, 시호는 소황제(昭皇帝). 휘는 불금(Phật Kim, 佛金) 또는 천형. 베트남 역사상 유일한 여제(女帝)이다. 혜종의 둘째딸.
2. 생애
즉위 전 작호는 소성공주(昭聖公主)였다. 1224년, 아들이 없던 혜종에 의해서 소성공주는 황태녀로 책봉되었다.[1] 아버지 혜종이 진수도에 의해서 폐위되자, 소성공주는 1224년 음력 10월, 7살(세는나이)의 나이로 황제에 즉위하였다. 그리고 아버지 혜종은 진수도에 의해서 절에 유폐되었으며, 쩐 왕조가 들어선 뒤에 그 곳에서 혜종은 자결을 강요당하였다.
1225년 음력 10~11월, 진수도에 의해서 동갑내기 진경(陳煚)과 혼인하였고[2] 같은 해 음력 12월 초하루에 황위를 남편 진경에게 선양하는 방식으로 소황은 폐위되었다. 이때 나이 8살.[3] 리 왕조의 대다수 황족들은 권신 진수도에 의해서 살해되었고, 소수의 황족들은 성씨를 바꾸거나, 타국으로 망명하게 되었다[4] .
소황은 황제에서 황후가 되었지만, 황후위에 있은 지 12년 만에 진태종 진경과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지 못해서[5] 1237년에 진태종에게 이혼을 당하였으며,[6] 이후 1258년에 장군 레푸쩐(Lê Phụ Trần, 黎輔陳)과 재혼하여, 그 사이에 1남 1녀를 낳았다.
1278년, 소황은 6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3. 기타
푸른 늑대와 흰 사슴: 원조비사와 징기스칸 4에서 리 왕조 고종의 왕비 소성공주로 등장하지만, 소성공주(=소황)는 고종의 손녀라서 고증에 맞지 않고, 고증대로라면 태종이 국왕인 시나리오 3에서 태종의 왕비로 등장해야 맞다.
[1] 언니는 시집갔기에 황위계승에서 제외되었다.[2] 혼인을 시킨 명분도 정말 가관인데, 당시 베트남에는 여자가 남자 쪽에 빈랑 열매를 보내 그것을 남자가 받아들이면 혼인이 이뤄지는 풍습이 있었다. 어느 날 소황이 자신과 친구가 된 진경과 같이 놀다가 우연히 빈랑의 열매가 담긴 수건을 던졌는데, 진수도는 그것을 빌미로 둘의 혼인을 추진했다.(...)[3] 망국의 여왕이라 그랬는지 암군 항목에도 리 소황이 걸렸던 적이 있지만, 일단 나이부터 어려서 뭘 해보고 자시고를 할 수 없었기에 지나치게 가혹한 평가였다.[4] 대표적으로 타국으로 망명한 황족은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이다.[5] 1233년, 황태자를 생산하긴 했으나, 금방 요절했다.[6] 문제는 진수도가 자기 일족에게 시집간 소황의 언니를 강제이혼시키고 진태종의 황후로 만들었다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