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양나라)

 


'''시호'''
안황제(安皇帝)
'''작위'''
예장군왕(豫章郡王)
''''''
소(蕭)
''''''
환(歡)
''''''
맹손(孟孫)
'''부황'''
고종(高宗)
'''모후'''
채씨(蔡氏)
'''생몰 기간'''
? ~ ?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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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황족으로 는 맹손(孟孫)이었고, 소명태자 소통과 채씨(蔡氏)의 장남. 후에 아들인 예장흥문왕이 안황제(安皇帝)로 추존했다.

2. 생애


무제의 장손이었으며, 화용현개국공(華容縣開國公)으로 봉해졌고, 동중랑장(東中郎將)과 남서주자사(南徐州刺史)를 맡았다. 531년 아버지 소통이 사망하자 무제가 소환을 황태손으로 삼기 위해 건강으로 징소했다.
그러나 소환이 이전에 무제와 소명태자 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에 대해 원망하고 있었고 또 무제도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으며 오히려 삼남인 진안왕 소강을 더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에 마침내 한 달 뒤 소환을 돌려보내고 이어서 소강을 황태자로 세웠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건 옳지 않다고 여겼고 의심하자 마침내 무제가 소환을 황태손으로 삼지 않는 대신에 그의 봉지보다 더 큰 땅인 예장군(豫章郡)에 예장군왕(豫章郡王)으로 높여 봉함으로써 불만을 잠재웠다. 또한 운휘장군(雲麾將軍)과 강주자사(江州刺史)로 관위를 높여주었다.
사망한 후 시호를 안왕(安王)으로 하였고 장남인 소동이 습작하여 예장왕이 되었다. 이후 551년 소동이 황제로 즉위한 뒤에 시호를 안황제(安皇帝)로 높여 추존했다.
아들들로는 소동, 소교, 소규가 있었으나, 모두 숙부였던 원제 소역에 의해 일부러 구멍낸 배에 탔다가 익사당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