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영
孫萬榮
(? ~ 697)
거란의 가한으로 이진충의 처남이다.
귀성주자사로 있다가 696년에 조문홰가 거란 사람들을 무시하자 원한을 품고 영주에서 5월 12일에 이진충과 함께 봉기해 영주를 함락시켜 조문홰를 죽였으며, 이로 인해 측천무후는 이진충을 이진멸(李盡滅)[1] 로, 손만영[2] 을 손만참(孫萬斬)[3] 이라 불렀다. 이진충이 가한이 되자 선봉이 되어 각 지역을 공격해 가는 곳마다 함락하면서 열흘 만에 군대를 수 만이나 모아 전진했다.
9월에 이진충이 죽자 가한이 되었고 10월에 기주를 빼앗아 육보적을 죽여 수천 명을 죽이면서 영주를 공격해 하북을 진동했으며, 697년 2월에 왕효걸, 소굉휘가 이끄는 18만을 격파하고 유성의 서북쪽 400리에 있는 험한 곳에 성을 쌓으면서 유주를 침략했으며, 단주를 포위했다가 6월에 해족 사람들이 배반해 기습을 받았다.
또한 당나라의 뇌물에 넘어간 돌궐의 공격을 받아 요하강 상류인 시라무렌 유역에 있는 본거지가 기습을 받아 무너지면서 거란 민중들이 동요하게 되고 하북성의 전선에 나가있던 손만영과 그 군대도 사기를 잃고 패퇴해 노수의 동쪽으로 도망갔다가[4] 노복에게 살해당했다.
드라마 대조영에서 담당한 배우는 조인표.[5] 처음 나올때는 이진충의 처남으로 나오는데, 설인귀의 영주땅을 내주는 조건으로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걸 같이 수락하는 걸로 나오며 이후 이진충과 같이 영주땅 보호를 위해 당나라 조정의 정책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조문홰가 거란인들에게 폭정을 하고 뒤에서 이문이 거란인들이 봉기하도록 조장해 괴롭히는데, 거란인들이 봉기하면서 이문이 거란인들을 진압하자 이진충과 함께 붙잡혀 고문당하는 고초를 겪다가 대조영, 대중상, 이진충의 손자 이검이 영주성을 해방시키자 구출된다.
당나라와 거란족의 전면전이 시작된 이후 대조영과 이진충의 밀담을 부하를 통해 대조영을 후계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듣자 자신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면서 후계를 빼앗길 수 없다고 했으며, 당나라가 대중상을 진국공에 봉하는 등 이간책을 사용해 이진충이 대조영을 의심하게 되면서 분노에 치밀어 쓰러지자 신흥과 같이 부족회의에 따라 임시로 정사를 맡게 된다.
대조영과 거란의 대립 속에서 자주 이해고를 위하던 신홍의 꼬드김을 받는 모습을 보이고 이검이 대조영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이진충을 죽이려고 시도했지만 죽이지 못했다. 이진충이 손만영이 자신을 암살하려던 이유를 듣고 용서받았으며 이진충이 신홍에게 살해당하고 대조영이 이진충으로부터 미리 받은 유서를 통해 손만영을 후계자로 삼은 사실이 남겨졌기에 이에 따라 새로운 가한 자리에 오르게 된다.
유서에 따라 대조영과의 약속을 지켜 대조영과 그 유민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려고 했지만 신홍, 이해고 등의 반대에 부딪혔으며 설인귀가 거란을 직접 찾아와 당나라와의 수교를 맺자고 하자 거절하려고 했지만 신홍, 이해고 등이 요동의 대조영을 공격하자고 설득하자 어쩔 수 없이 허락하고 당나라의 주선으로 돌궐에서 형식적으로 신하 관계가 되겠다고 요청받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는 거란을 멸망시키기 위해 당의 계략이었고 이해고가 대조영이 있던 요동을 공격한 틈을 타서 영주가 돌궐의 공격을 받아 패했으며 포로로 잡히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마지막으로 초린에게 서찰을 보내 대조영의 지원군을 이끌고 오게 끔 유도한 후 요하성에 있는 거란군에게 대조영의 군이 오니 항복하지 말라고 소리치며 연설하다가 묵철이 날린 도끼에 맞아 숨을 거둔다. 허나 눈앞에서 자신들의 왕이 죽고, 지원군에 대한 희망을 가진 거란군은 굶주림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돌궐과 당나라의 대군에도 수차례 공격을 버텨낸다.
(? ~ 697)
1. 개요
거란의 가한으로 이진충의 처남이다.
2. 생애
귀성주자사로 있다가 696년에 조문홰가 거란 사람들을 무시하자 원한을 품고 영주에서 5월 12일에 이진충과 함께 봉기해 영주를 함락시켜 조문홰를 죽였으며, 이로 인해 측천무후는 이진충을 이진멸(李盡滅)[1] 로, 손만영[2] 을 손만참(孫萬斬)[3] 이라 불렀다. 이진충이 가한이 되자 선봉이 되어 각 지역을 공격해 가는 곳마다 함락하면서 열흘 만에 군대를 수 만이나 모아 전진했다.
9월에 이진충이 죽자 가한이 되었고 10월에 기주를 빼앗아 육보적을 죽여 수천 명을 죽이면서 영주를 공격해 하북을 진동했으며, 697년 2월에 왕효걸, 소굉휘가 이끄는 18만을 격파하고 유성의 서북쪽 400리에 있는 험한 곳에 성을 쌓으면서 유주를 침략했으며, 단주를 포위했다가 6월에 해족 사람들이 배반해 기습을 받았다.
또한 당나라의 뇌물에 넘어간 돌궐의 공격을 받아 요하강 상류인 시라무렌 유역에 있는 본거지가 기습을 받아 무너지면서 거란 민중들이 동요하게 되고 하북성의 전선에 나가있던 손만영과 그 군대도 사기를 잃고 패퇴해 노수의 동쪽으로 도망갔다가[4] 노복에게 살해당했다.
3. 창작물에서
드라마 대조영에서 담당한 배우는 조인표.[5] 처음 나올때는 이진충의 처남으로 나오는데, 설인귀의 영주땅을 내주는 조건으로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걸 같이 수락하는 걸로 나오며 이후 이진충과 같이 영주땅 보호를 위해 당나라 조정의 정책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조문홰가 거란인들에게 폭정을 하고 뒤에서 이문이 거란인들이 봉기하도록 조장해 괴롭히는데, 거란인들이 봉기하면서 이문이 거란인들을 진압하자 이진충과 함께 붙잡혀 고문당하는 고초를 겪다가 대조영, 대중상, 이진충의 손자 이검이 영주성을 해방시키자 구출된다.
당나라와 거란족의 전면전이 시작된 이후 대조영과 이진충의 밀담을 부하를 통해 대조영을 후계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듣자 자신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면서 후계를 빼앗길 수 없다고 했으며, 당나라가 대중상을 진국공에 봉하는 등 이간책을 사용해 이진충이 대조영을 의심하게 되면서 분노에 치밀어 쓰러지자 신흥과 같이 부족회의에 따라 임시로 정사를 맡게 된다.
대조영과 거란의 대립 속에서 자주 이해고를 위하던 신홍의 꼬드김을 받는 모습을 보이고 이검이 대조영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이진충을 죽이려고 시도했지만 죽이지 못했다. 이진충이 손만영이 자신을 암살하려던 이유를 듣고 용서받았으며 이진충이 신홍에게 살해당하고 대조영이 이진충으로부터 미리 받은 유서를 통해 손만영을 후계자로 삼은 사실이 남겨졌기에 이에 따라 새로운 가한 자리에 오르게 된다.
유서에 따라 대조영과의 약속을 지켜 대조영과 그 유민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려고 했지만 신홍, 이해고 등의 반대에 부딪혔으며 설인귀가 거란을 직접 찾아와 당나라와의 수교를 맺자고 하자 거절하려고 했지만 신홍, 이해고 등이 요동의 대조영을 공격하자고 설득하자 어쩔 수 없이 허락하고 당나라의 주선으로 돌궐에서 형식적으로 신하 관계가 되겠다고 요청받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는 거란을 멸망시키기 위해 당의 계략이었고 이해고가 대조영이 있던 요동을 공격한 틈을 타서 영주가 돌궐의 공격을 받아 패했으며 포로로 잡히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마지막으로 초린에게 서찰을 보내 대조영의 지원군을 이끌고 오게 끔 유도한 후 요하성에 있는 거란군에게 대조영의 군이 오니 항복하지 말라고 소리치며 연설하다가 묵철이 날린 도끼에 맞아 숨을 거둔다. 허나 눈앞에서 자신들의 왕이 죽고, 지원군에 대한 희망을 가진 거란군은 굶주림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돌궐과 당나라의 대군에도 수차례 공격을 버텨낸다.
[1] 충성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완전히 죽여버리다[2] 만세토록 영화롭다[3] 만 번이고 참수하겠다[4] 자치통감에는 이때 손만영이 "조정(무주)에 항복해도 죽고, 돌궐로 도망가도 죽을 테고, 신라로 건너가도 죽을 텐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하고 탄식했다고 한다. 망명지로 돌궐과 함께 신라를 언급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5] 태조 왕건에서 김언, 광개토태왕에서 모용희 역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