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후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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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춘추시대 송(宋)나라의 제33대 군주. 송휴공의 아들. 송씨 송나라의 마지막 군주. 그는 송대공의 자손인 대씨의 우두머리 척성군의 공격을 받아 폐위되어 서민으로 강등당한다. 사기에서는 시호를 벽공(辟公)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고, 척성군과 송강왕이 송 후환공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2. 생애
2.1. 사기의 기록
사기에서는 송휴공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이 벽공(후환공)이 즉위하고, 벽공이 재위 3년만에 사망하자, 그 아들인 척성군(剔成君)이 그 뒤를 이었다고 기록되었다. 그 기록의 원문은 이렇다.
休公田二十三年卒, 子辟公辟兵立. 辟公三年卒, 子剔成立.
휴공 전이 재위 23년 만에 죽고, 아들 벽공(후환공) 벽병이 즉위했다. 벽공이 재위 3년 만에 죽고, 그 아들인 척성군이 즉위하였다.
2.2. 죽서기년의 기록
송 후환공 7년(기원전 356년), 척성군은 송 대공의 후손이자 송 후환공의 신하로 송 후환공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씨가 송나라의 공족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렇게 송씨 송나라는 종언을 고한다.[1]
[1] 위평후 이후의 위(衛)나라도 같은 처지다. 위씨에서 자남씨로 공족이 갈려나갔다. 그러나 그 쪽은 전국칠웅인 위(魏)나라의 왕인 양혜왕이 위성후를 죽이고 아들이 없어 자남씨를 대신 세워버려서 처지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