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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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전국시대 송나라의 마지막 군주. 송나라의 처음이자, 마지막 왕. 시호는 강(康) 또는 헌(獻)이라고 해서 송 헌왕이라고 한다.[3] 사기에서는 송왕 언이라고 한다. 형[4] 인 척성군 희를 몰아내고 송나라의 공작이 되었다. 왕위를 찬탈했지만 어차피 시대가 시대인지라 왕위찬탈이 일어나도 그냥 그려러니 하던 시절이었다. 여하튼 재위초기에는 전국칠웅과 겨룰 만큼 국력을 키운 명군이었지만, 재위 중반기를 지나자 폭군으로 타락했고 그 틈을타 제나라, 위나라, 초나라의 연합 공격 에 패해 나라가 망하고 그 자신은 죽었다.
2. 생애
2.1. 군위 찬탈
송 척성군 28년(기원전 329년), 대언(戴偃)[5] 은 척성군을 무력으로 몰아낸 뒤 스스로 송나라 공작에 올랐다. 척성군은 제나라로 달아났다.
2.2. 칭왕을 하다
송 강왕 11년(기원전 318년), 그는 왕으로 자칭했고, 같은 해에 제나라를 쳐서 이기고, 남하해서 초나라를 쳐서 이겨서, 300리의 땅을 얻었다. [6] 그리고 서쪽으로는 위나라를 쳐서 2개의 성을 함락시켰으며 소국인 등나라를 멸망시켰다. 이때 당시에 제나라가 한창 강성했던 시기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업적이었다. 이처럼 재위 초기의 강왕은 송나라를 전국칠웅과 동급의 강국으로 성장시킨 명군이었다.
2.3. 송 강왕의 악행
그러나 송 강왕은 송나라가 강성해지자 서서히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교만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폭정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장대에 가죽 주머니에 소의 피를 넣고 그 가죽 주머니를 명중시켜 피를 낸 뒤 하늘을 이겼다는 소문 을 내게 했다. 또 언젠가 주연을 열면서 자신은 꿀물을 마시고, 신하들에게는 그냥 술을 제공했는데, 송 강왕이 꿀물을 먹어서 취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데, 내막을 모르는 신하들은 송 강왕의 주량을 이겨보고자 덤볐지만 필름만 끊기고 말았다. 물론 나중에는 사실을 안 사람이 있었지만, 간신배들은 앞다투어 송 강왕에게 아첨했다. 그리고는 송 강왕이 기고만장해져서는 백성들에게까지 폭정을 자행하고, 신하들의 아내 중 예쁜 자는 자기가 차지하는 막장 짓거리를 저질렀다. 간신배가 있으면 간하는 충신들도 있는 법이지만 송 강왕은 충신들을 멀리할 뿐만 아니라 간하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목을 베었다. 그리하여 송나라 국내외의 사람들은 송나라의 걸왕이라 하여, 송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7]
여씨춘추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송 강왕이 재상 당앙(唐鞅)에게 "과인은 사람을 많이 죽였는데도 신하들이 여전히 과인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어찌된 일이오?"라고 묻자, 당앙은 "나쁜놈만 죽이시느라 그렇지 않겠습니까? 나쁜놈만 죽이시는데 어떻게 착한 사람이 겁내겠습니까. 그냥 마구잡이로 다 죽이세요."라고 대답했다. 좋은 생각이라고 여긴 송 강왕은 얼마 안 있어 '''당앙을 죽였다'''(...)
2.4. 송나라 멸망, 송 강왕 사망
송 강왕 42년(기원전 286년), 강왕의 이러한 행패가 계속되자 제민왕은 그 폭정을 구실로 초나라, 위나라와 연합해, 송나라를 쳤다. 송 강왕은 패하여 예후의 관사로 피하려 하다가 제나라 병사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했다. 송나라 땅은 위나라, 초나라, 제나라가 서로 나눠 가졌다.[8]
3. 미디어 믹스
달인전이라는 만화에서는 염왕이라 나오며 제나라와의 전쟁 도중에 궁궐로 들어가다 진나라의 자객들에게 붙잡혀 참수당한다.
[1] 그 이유는 죽서기년에 의하면 형인 척성군은 송후환공의 자식이 아니라 자성 대씨 가문의 일원으로 송대공의 자손이라 한다.[2] 사기의 기록.[3] 시호인 강왕 혹은 헌왕은 나라가 망한 후에 신하가 올린 사시(私諡)이다.[4] 동진(東晉)의 학자 서광(徐廣)은 척성군이 송 강왕의 형이 아닌 아버지로 추정했다.[5] 씨를 적용하면 이름이 대언이 된다.[6] 이것이 대단한게, 송양공 때 페어 플레이를 한답시고, 약한 국력을 생각 않고 계책을 쓰지 않고 초성왕이 보낸 성득신과 싸우다가 국력이 약해져, 춘추시대에 송나라는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7] 석산화 전설에서는 그의 잔학함이 끝을 달리는데 충신 한빙에게 미녀인 아내가 있단 소식을 듣자 그 아내를 취하기 위해 한빙을 귀양보내고 한빙이 자살하자 그 아내를 겁탈하려 했지만 아내가 남편의 뒤를 따라 자살하니 충신의 아내가 죽기 전 자신과 남편을 같이 묻어달라 했음에도 오히려 둘의 시신을 각각 다른곳에 묻어버렸다.[8] 아이러니 하게도 제민왕은 송강왕과 비슷한 길을 걷다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나마 사직은 지켰기는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