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성

 


1. 소개
2. 건설 시기
3. 기록
4. 숨겨진 배경


1. 소개


水晶城
고구려의 궁 안에 있었다는 건축물.
이름 그대로 '''수정(크리스털)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만약 실존했다면 1851년 런던에 건설되었던 수정궁을 천년 이상 앞지른다. 하지만 수정궁은 유리로 만들어 졌고, 수정성은 수정으로 만들었으니 기록상 남아있는 유일무이한 수정 건축물인셈이다.

2. 건설 시기


만약 정말 있었다면은 장안성으로 이동하기 이전의 전기 평양을 수도로 활용하던 장수왕~양원왕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건축물은 쇠퇴기에는 만들기 힘들었을테고 전성기에 세를 과시하기 위해 만들었을테니 장수왕대에 건축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3. 기록


《해동역사(海東繹史)》[1], 《양사공기(梁四公記)》[2], 《태평광기(太平廣記)》[3]의 기록에 고구려에 수정성이 있었다고 한다.참조1참조2 사방이 1리 가량 되며, 날씨가 좋지 않아도 밝기가 대낮같고, 갑자기 성이 보이지 않으면 월식이랜다.

고구려의 왕궁 안에는 수정성이 있는데, 사방이 1리 가량 되며, 날씨가 좋지 않아도 밝기가 대낮과 같다. 갑자기 성이 보이지 않으면 문득 월식(月食)이 일어난 것이다.

《해동역사》

이를 바탕으로하는 곽재식의 소설에서는 신라왕이[4] "우리 이제 땅도 넓어졌는데 간지나는 궁하나 지어야 안되겠냐? 너희가 듣거나 본 간지나는 건물들을 좀 말해봐라."라고 하자 개로왕이 만든 바둑 두는 누각과 더불어 나온 것이 바로 수정궁이라고 한다. 성벽과 기둥을 구성하고 있는 벽돌들이 모두 수정으로 만들어 져있고 양끝에는 벽을 깎아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었다고 한다.

4. 숨겨진 배경


이 건축물의 목적은 고구려 내 불교 진흥이나 '''고구려의 독자적 천하관에 대한 프로파간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 경전인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5]에:

"수정성(水晶城)은 환열천(歡悅天)이요, 금성과 수정성 사이에 비루파차천왕이 귀신들을 거느리고 있고 수정성과 유리성 사이에 비루륵천왕이 모든 가위귀신들을 거느리고 있고..."

라는 기록이 있어 불교와의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다. 불경 속 수정성은 성지 수미산에 있는 네 개의 대성(大城) 중 하나다. 각각 금, 은, 유리, 수정으로 만들어진 이 네 성은 수미산 꼭대기에서 모든 불교 세계관 속 신, 신령, 생물을 감싸고 있다.
'''즉 수정성이 있는 고구려는 모든 불교 세계관의 중심지다.''' 고구려는 진짜로 수정성을 짓는다는 것보단 수정성이 가진 상징성을 원했던 것이다.

[1] 조선실학자였던 한치윤과 조카 한진서가 1823년(순조 23년)에 편찬한 역사서[2] 당나라 연국공이 쓴 사서[3] 송태종의 어명에 따라 981년에 편찬한 500권짜리 소설집.[4] 건복 연간이라고 하니까 아마 진평왕인 듯 하다. 건복은 진평왕 때 사용한 연호.[5] 팔만대장경에 기록된 불경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