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욱(삼국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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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작가의 작품 삼국전투기에서의 순욱을 서술하는 문서.
조조군 모사 대부분은 과거 디시인사이드 필수요소들이 모티브인데, 순욱의 패러디 모델은 아시안 프린스이다.
원소의 부하로 있었지만 당대 최고의 두뇌집단을 보유하고 있었던 원소군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밀려[1] 조조에게 향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이 부분은 애초에 순욱이 원소 휘하로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 정확히는 한복이 순욱을 초청하자 이에 응하였는데, 순욱이 도착하기도 전에 원소가 한복세력을 정벌하였고 이후 원소도 순욱을 귀하게 대접하였으나 관직에 응하지 않다가 나중에 조조에게 간다. 즉 '''원소 휘하에서 일했던 적은 없고 손님대접받으며 잠시 머물렀을 뿐'''이다. 작가가 이 부분에서 잘못 이해하였거나 각색을 한 듯. 여담으로 삼국지 톡에서도 이 내용을 써먹는 등, 삼국전투기에서 이 내용을 서술한 이후 이렇게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여포가 진궁의 친필문서를 가지고 와서 성문을 열어주었는데, 공격을 당하여 연주성을 함락당했다는 보고를 하는 이전의 말을 듣고 진궁이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정욱에게 동아현을 확보해달라고 부탁한다.
조조가 돌아올 때까지 여포의 공격으로부터 견성을 사수한다.
복양 전투에서 조조가 패한 뒤 메뚜기떼가 발생해 휴전을 체결한 시점에서 유비가 서주를 점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주를 치겠다는 조조에게 연주도 지키지 못한 상황에서 서주를 칠 수 없다고 간언해 조조가 결정을 거두도록 만든다.
정욱이 여남에 황건적을 쳐서 군량을 확보하자는 제안에 조조는 공주의 반발을 우려하지만 순욱은 오히려 공주가 반길 것이라고 말하며 여남으로 원정을 추천한다.
전위의 맹활약으로 황건적을 섬멸한 뒤 식량을 확보하자 빠르게 여포와 일전을 벌일 것을 말하고 곽가에 전략을 짜줄 것을 부탁한다.
이각과 곽사에게 쫓기는 헌제를 옹립할 것을 조조에게 진언한다.
소패 전투 편에서는 여포의 존재를 껄끄러워하는 조조에게 서주 백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유비를 이용하여 여포를 견제할 것을 진언한다.[2]
완 전투 편에서는 순유, 정욱과 함께 조조가 말한 서벌 프로젝트에 대한 진행을 맡는다. 원래는 곽가도 있었어야 했는지 두리번거리며 곽가가 없다고 또 어디서 고주망태가 돼서 불참한 것이냐고 말하기도 했다. 정욱이 영양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걸로 서벌을 시작해야 한다고 하자 그러면 원소를 자극하는 일이 되어 자칫 현재의 위치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유로 반박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순유가 남양의 장수를 치자고 제안하자 그 의견에는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완 전투 편 막바지에서는 조조가 여러 세력들과의 다툼으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보이자 모든 실타래에는 반드시 시작과 끝이 존재하니, 차분히 살펴본다면 일의 순서를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수춘 전투 편에서는 조조에게 원술이 여포를 완전히 잡게 전에 슬슬 움직여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하며, 조조가 수춘으로 출정한 뒤에는 허도에 남아 장수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환 전투 편에서는 양표가 조조에게 찍히자 공융과 함께 조조를 말리려하지만 여의치 않자 만총을 찾아가 고문을 하는 것만은 자제해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만총이 고문을 가하자 만총에게 실망했다고 말한다. 헌데 만총이 조조에게 명망 높은 양표에게 증거없이 벌을 내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진언해 양표에 대한 심문을 거두게 만들자 만총이 자신과 조조의 수를 넘어 읽었다고 말하며 칭찬한다.
하비 전투 편에서는 여포를 잡기 위한 브리핑에서 여포가 과거보다 온순해졌음을 들어 오히려 원소와 대전을 앞뒀을 때 전력이 되지 않겠냐며 되묻지만 곽가가 여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요소라 안고 가기 힘들다는 말에 납득하고 여포를 치는데 동의한다. 이후 여포를 치는 중 원소가 움직일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에 곽가가 원소에게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니 반년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라고 답한다. 순욱이 대답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으나 정황 상 납득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하비 전투에서는 조조군이 허도를 비운 동안 중앙집무를 맡는다.
팽성 전투 편에서는 원소가 역경 전투에서 공손찬을 죽인 뒤 조조가 확인했을 때 조조가 떠는 모습을 보고 진동수준이라고 말한다(...)
이후 원술이 원소에게 의탁하려 한다는 정보가 들어오자 잡초는 미연에 싹을 뽑아버려야 한다며 조조에게 원술을 치라고 진언한다.
강하 전투 편에서는 유비가 서주를 차지해버리자 유비를 치려는 조조를 여포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하며 유비를 치는 것을 말린다.[3]
소패2 전투 편에서는 원소가 조공을 또 스킵했다고 조조에게 보고했다. 이후 유비 때문에 한참 골머리를 썩고 있던 조조가 서주의 진등을 이용하여 유비를 잡을 생각을 하자 진등은 완전한 조조쪽 사람이 아닌 서주인이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역으로 당할 수 있다며 반대한다. 고심하는 조조에게 곽가가 원상을 인질로 잡자는 제안을 하자 원소의 막내아들 사랑은 유명하다고 하면서 이에 동의하며, 곽가의 책략을 받아들일 것을 조조에게 진언한다.
백마 전투의 도입부에서는 처음 갑옷을 입어 보고는 마음에 들어하는 정욱과는 달리 영 어색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도 전투 편에서는 허도를 사수하던 중 조조가 원소의 보급을 한 차례 차단했음에도 승기가 보이지 않자 퇴군을 결심했을 때 홀로그램으로 영상편지를 보내 투지마저 꺾이면 앞으로의 행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진영이 클수록 허점 또한 커지는 법이라고 말하면서 조금만 더 버티면 반드시 원소가 헛점을 드러낼 것이라며 조조를 독려한다.[4]
창정 전투 편에서는 하후연에게 유비가 유표에게 의탁하기 위해서 형주로 향했다는 보고를 받은 뒤 유비도 잡을 겸 유표를 치려는 조조에게 원소의 세력이 아직 건재하다며 굳이 유표까지 적으로 돌리기보다는 원소가 두 번 다시 이쪽을 넘보지 못하게끔 쐐기를 박으라고 조언한다.
신야2 전투 편에서는 조조가 순욱같은 인재가 왜 치려를 존경하냐고 묻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는 등 왠지 치려를 존경하고 있다는 설정이 붙었다(...)
장패에게서 최정예 지원군을 요청받고 진짜 이 녀석은 자신에게 잘 보이려는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조조가 말하자 분명 조조가 그의 마음을 알아줄 것을 알기에 그랬을 거라며 장패를 옹호해 주는 모습으로 1컷 등장했다.
유수구 전투 편에서는 동소가 조조에게 위공의 구석을 추천하자 순욱은 행여라도 조조를 역적으로 만들 수는 없단 마음에 이를 반대하지만, 오히려 이에 빡친 조조가 유엽에게 손권과 일전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순욱을 초로 보내 좌천시킨다.
하지만 순욱은 좌천되었음에도 조조를 믿고 전쟁 준비를 열심히 한 뒤 찾아온 조조를 마중하여 군복을 입고 따라나서려한다.
허나 조조는 순욱에게 안색이 좋지 않아보인다고 말한 뒤 후방에서 도시락이나 먹으라고 도시락 을 던져주지만 도시락은 빈도시락이었고, 그제서야 순욱은 자신이 버림받은 것을 깨닫고 독약을 마셔 자결한다.
'''조조군 제 1모사'''
조조군의 모사 중 가장 지위가 높은 것처럼 묘사된다.
그런데 묘하게 분량도 적고 곽가와 가후만 부각되고 순욱은 순유, 정욱은 간손미처럼 세트로 엮여버린다.
물론 작중 활약은 간손미를 한참 웃돌긴 하지만, 곽가나 가후에 비하면 이 3사람은 유독 임팩트가 부족한 편.
작가의 인물 설명도 "그는 곽가, 가후 등과 같은 천재형 모사는 아니지만 그 안정성에 있어선 그 어떠한 모사도 능가함이 있다..." 라고 소개되어 있는지라 약간 저평가되는 면이 있다.
거기다 저수 전풍과 같은 원소 모사진에 못 미치는 인재라는 뉘양스 묘사도 있을 정도.[5]
전투가 중심이 되는 삼전의 경우 계략을 짜내는 것보다는 내정면에서 크게 활약하는 순욱이 잘 부각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으나. 다만 군략에서 곽가를 제치고 실질적으로 최고 업적을 쌓은 순유도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미묘한 설명이긴 하다... 순유의 활약 자체는 빼먹지 않는데 묘하게 공기 취급이고.
여하튼 역사적 사실 아래 순욱이 조조 제 1 모사라고 설명은 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묘사를 살펴보면 저평가다.
순욱이 자결할 때 작가가 "실용을 중시하던 조조가 과연 위공의 자리에 연연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조조가 한실 찬탈의 생각은 없었고 단지 순욱이 괘씸해서 처리한 것일 뿐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순욱을 한의 충신이 아닌 철저하게 '''조조의 충신'''인 것으로 묘사한다. 애초에 작중 내 자체에 이러한 뉘앙스의 묘사가 없다. 구석에 반대한 것도 '''조조를 역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충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설했다. 얼핏 보면 그럴듯한 해석이지만, 여러 가지 사서의 이 시기에 대한 기록들과 사가들의 순욱에 대한 평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히 순욱은 조조의 '패업달성'보다는 조조가 '한 제국을 재건해주는 것'을 주 목표로 삼았던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범엽은 그를 후한서에 따로 실었고, 배송지 또한 그의 행동을 한나라를 위한 행동이라 평한것이다. 또한 단순히 괘씸해서 순욱을 죽였다는 것 또한 솔직히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순욱은 당시 조조군 세력의 2인자였고, 그런자를 쳐낸다는것은 단순히 그자를 쳐내는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무리를 전부 쳐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행위를 단순히 기분나빠서 그랬다는 것은 정말 조조가 미치치 않고서야 할 수 없는 행위이다. 실 예로 순욱이 그렇게 좌천된 이후로 순욱의 아들들은 위나라에서 중용되지 못하였다가, 나중에 사마씨가 조씨에게서 왕가를 찬탈할때 앞장을 선것만 보아도, 조조의 이러한 행위로 상당한 권력의 이동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차라리 2인자였던 순욱을 견제하려고 했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을 것이며,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조조가 순욱을 쳐내면서 그를 따르는 친한왕실 세력을 같이 쳐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적 전체에게 수면을 거는 스킬의 존재 때문에 사용되긴 했지만 자주 보이기 힘들었으나, 패치로 여러 조합이 가능해지면서 조금 더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7성 때는 곽가보다 총합 능력치가 낮았지만 8성에서는 곽가보다 높아졌다.
1. 개요
최훈 작가의 작품 삼국전투기에서의 순욱을 서술하는 문서.
조조군 모사 대부분은 과거 디시인사이드 필수요소들이 모티브인데, 순욱의 패러디 모델은 아시안 프린스이다.
2. 작중 행적
2.1. 초반부
원소의 부하로 있었지만 당대 최고의 두뇌집단을 보유하고 있었던 원소군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밀려[1] 조조에게 향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이 부분은 애초에 순욱이 원소 휘하로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 정확히는 한복이 순욱을 초청하자 이에 응하였는데, 순욱이 도착하기도 전에 원소가 한복세력을 정벌하였고 이후 원소도 순욱을 귀하게 대접하였으나 관직에 응하지 않다가 나중에 조조에게 간다. 즉 '''원소 휘하에서 일했던 적은 없고 손님대접받으며 잠시 머물렀을 뿐'''이다. 작가가 이 부분에서 잘못 이해하였거나 각색을 한 듯. 여담으로 삼국지 톡에서도 이 내용을 써먹는 등, 삼국전투기에서 이 내용을 서술한 이후 이렇게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2.2. 복양 전투 ~ 정군 전투
여포가 진궁의 친필문서를 가지고 와서 성문을 열어주었는데, 공격을 당하여 연주성을 함락당했다는 보고를 하는 이전의 말을 듣고 진궁이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정욱에게 동아현을 확보해달라고 부탁한다.
조조가 돌아올 때까지 여포의 공격으로부터 견성을 사수한다.
복양 전투에서 조조가 패한 뒤 메뚜기떼가 발생해 휴전을 체결한 시점에서 유비가 서주를 점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주를 치겠다는 조조에게 연주도 지키지 못한 상황에서 서주를 칠 수 없다고 간언해 조조가 결정을 거두도록 만든다.
정욱이 여남에 황건적을 쳐서 군량을 확보하자는 제안에 조조는 공주의 반발을 우려하지만 순욱은 오히려 공주가 반길 것이라고 말하며 여남으로 원정을 추천한다.
전위의 맹활약으로 황건적을 섬멸한 뒤 식량을 확보하자 빠르게 여포와 일전을 벌일 것을 말하고 곽가에 전략을 짜줄 것을 부탁한다.
2.3. 낙양 전투 ~ 환 전투
이각과 곽사에게 쫓기는 헌제를 옹립할 것을 조조에게 진언한다.
소패 전투 편에서는 여포의 존재를 껄끄러워하는 조조에게 서주 백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유비를 이용하여 여포를 견제할 것을 진언한다.[2]
완 전투 편에서는 순유, 정욱과 함께 조조가 말한 서벌 프로젝트에 대한 진행을 맡는다. 원래는 곽가도 있었어야 했는지 두리번거리며 곽가가 없다고 또 어디서 고주망태가 돼서 불참한 것이냐고 말하기도 했다. 정욱이 영양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걸로 서벌을 시작해야 한다고 하자 그러면 원소를 자극하는 일이 되어 자칫 현재의 위치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유로 반박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순유가 남양의 장수를 치자고 제안하자 그 의견에는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완 전투 편 막바지에서는 조조가 여러 세력들과의 다툼으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보이자 모든 실타래에는 반드시 시작과 끝이 존재하니, 차분히 살펴본다면 일의 순서를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수춘 전투 편에서는 조조에게 원술이 여포를 완전히 잡게 전에 슬슬 움직여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하며, 조조가 수춘으로 출정한 뒤에는 허도에 남아 장수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환 전투 편에서는 양표가 조조에게 찍히자 공융과 함께 조조를 말리려하지만 여의치 않자 만총을 찾아가 고문을 하는 것만은 자제해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만총이 고문을 가하자 만총에게 실망했다고 말한다. 헌데 만총이 조조에게 명망 높은 양표에게 증거없이 벌을 내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진언해 양표에 대한 심문을 거두게 만들자 만총이 자신과 조조의 수를 넘어 읽었다고 말하며 칭찬한다.
2.4. 하비 전투 ~ 소패2 전투
하비 전투 편에서는 여포를 잡기 위한 브리핑에서 여포가 과거보다 온순해졌음을 들어 오히려 원소와 대전을 앞뒀을 때 전력이 되지 않겠냐며 되묻지만 곽가가 여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요소라 안고 가기 힘들다는 말에 납득하고 여포를 치는데 동의한다. 이후 여포를 치는 중 원소가 움직일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에 곽가가 원소에게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니 반년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라고 답한다. 순욱이 대답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으나 정황 상 납득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하비 전투에서는 조조군이 허도를 비운 동안 중앙집무를 맡는다.
팽성 전투 편에서는 원소가 역경 전투에서 공손찬을 죽인 뒤 조조가 확인했을 때 조조가 떠는 모습을 보고 진동수준이라고 말한다(...)
이후 원술이 원소에게 의탁하려 한다는 정보가 들어오자 잡초는 미연에 싹을 뽑아버려야 한다며 조조에게 원술을 치라고 진언한다.
강하 전투 편에서는 유비가 서주를 차지해버리자 유비를 치려는 조조를 여포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하며 유비를 치는 것을 말린다.[3]
소패2 전투 편에서는 원소가 조공을 또 스킵했다고 조조에게 보고했다. 이후 유비 때문에 한참 골머리를 썩고 있던 조조가 서주의 진등을 이용하여 유비를 잡을 생각을 하자 진등은 완전한 조조쪽 사람이 아닌 서주인이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역으로 당할 수 있다며 반대한다. 고심하는 조조에게 곽가가 원상을 인질로 잡자는 제안을 하자 원소의 막내아들 사랑은 유명하다고 하면서 이에 동의하며, 곽가의 책략을 받아들일 것을 조조에게 진언한다.
2.5. 관도 대전
백마 전투의 도입부에서는 처음 갑옷을 입어 보고는 마음에 들어하는 정욱과는 달리 영 어색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도 전투 편에서는 허도를 사수하던 중 조조가 원소의 보급을 한 차례 차단했음에도 승기가 보이지 않자 퇴군을 결심했을 때 홀로그램으로 영상편지를 보내 투지마저 꺾이면 앞으로의 행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진영이 클수록 허점 또한 커지는 법이라고 말하면서 조금만 더 버티면 반드시 원소가 헛점을 드러낼 것이라며 조조를 독려한다.[4]
2.6. 창정 전투 ~ 신야2 전투
창정 전투 편에서는 하후연에게 유비가 유표에게 의탁하기 위해서 형주로 향했다는 보고를 받은 뒤 유비도 잡을 겸 유표를 치려는 조조에게 원소의 세력이 아직 건재하다며 굳이 유표까지 적으로 돌리기보다는 원소가 두 번 다시 이쪽을 넘보지 못하게끔 쐐기를 박으라고 조언한다.
신야2 전투 편에서는 조조가 순욱같은 인재가 왜 치려를 존경하냐고 묻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는 등 왠지 치려를 존경하고 있다는 설정이 붙었다(...)
2.7. 첨산 전투
장패에게서 최정예 지원군을 요청받고 진짜 이 녀석은 자신에게 잘 보이려는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조조가 말하자 분명 조조가 그의 마음을 알아줄 것을 알기에 그랬을 거라며 장패를 옹호해 주는 모습으로 1컷 등장했다.
2.8. 최후
유수구 전투 편에서는 동소가 조조에게 위공의 구석을 추천하자 순욱은 행여라도 조조를 역적으로 만들 수는 없단 마음에 이를 반대하지만, 오히려 이에 빡친 조조가 유엽에게 손권과 일전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순욱을 초로 보내 좌천시킨다.
하지만 순욱은 좌천되었음에도 조조를 믿고 전쟁 준비를 열심히 한 뒤 찾아온 조조를 마중하여 군복을 입고 따라나서려한다.
허나 조조는 순욱에게 안색이 좋지 않아보인다고 말한 뒤 후방에서 도시락이나 먹으라고 도시락 을 던져주지만 도시락은 빈도시락이었고, 그제서야 순욱은 자신이 버림받은 것을 깨닫고 독약을 마셔 자결한다.
3. 작중 묘사
'''조조군 제 1모사'''
조조군의 모사 중 가장 지위가 높은 것처럼 묘사된다.
그런데 묘하게 분량도 적고 곽가와 가후만 부각되고 순욱은 순유, 정욱은 간손미처럼 세트로 엮여버린다.
물론 작중 활약은 간손미를 한참 웃돌긴 하지만, 곽가나 가후에 비하면 이 3사람은 유독 임팩트가 부족한 편.
작가의 인물 설명도 "그는 곽가, 가후 등과 같은 천재형 모사는 아니지만 그 안정성에 있어선 그 어떠한 모사도 능가함이 있다..." 라고 소개되어 있는지라 약간 저평가되는 면이 있다.
거기다 저수 전풍과 같은 원소 모사진에 못 미치는 인재라는 뉘양스 묘사도 있을 정도.[5]
전투가 중심이 되는 삼전의 경우 계략을 짜내는 것보다는 내정면에서 크게 활약하는 순욱이 잘 부각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으나. 다만 군략에서 곽가를 제치고 실질적으로 최고 업적을 쌓은 순유도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미묘한 설명이긴 하다... 순유의 활약 자체는 빼먹지 않는데 묘하게 공기 취급이고.
여하튼 역사적 사실 아래 순욱이 조조 제 1 모사라고 설명은 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묘사를 살펴보면 저평가다.
3.1. 논란
순욱이 자결할 때 작가가 "실용을 중시하던 조조가 과연 위공의 자리에 연연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조조가 한실 찬탈의 생각은 없었고 단지 순욱이 괘씸해서 처리한 것일 뿐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순욱을 한의 충신이 아닌 철저하게 '''조조의 충신'''인 것으로 묘사한다. 애초에 작중 내 자체에 이러한 뉘앙스의 묘사가 없다. 구석에 반대한 것도 '''조조를 역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충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설했다. 얼핏 보면 그럴듯한 해석이지만, 여러 가지 사서의 이 시기에 대한 기록들과 사가들의 순욱에 대한 평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히 순욱은 조조의 '패업달성'보다는 조조가 '한 제국을 재건해주는 것'을 주 목표로 삼았던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범엽은 그를 후한서에 따로 실었고, 배송지 또한 그의 행동을 한나라를 위한 행동이라 평한것이다. 또한 단순히 괘씸해서 순욱을 죽였다는 것 또한 솔직히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순욱은 당시 조조군 세력의 2인자였고, 그런자를 쳐낸다는것은 단순히 그자를 쳐내는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무리를 전부 쳐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행위를 단순히 기분나빠서 그랬다는 것은 정말 조조가 미치치 않고서야 할 수 없는 행위이다. 실 예로 순욱이 그렇게 좌천된 이후로 순욱의 아들들은 위나라에서 중용되지 못하였다가, 나중에 사마씨가 조씨에게서 왕가를 찬탈할때 앞장을 선것만 보아도, 조조의 이러한 행위로 상당한 권력의 이동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차라리 2인자였던 순욱을 견제하려고 했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을 것이며,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조조가 순욱을 쳐내면서 그를 따르는 친한왕실 세력을 같이 쳐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4. 게임
4.1. 7성 조조군
적 전체에게 수면을 거는 스킬의 존재 때문에 사용되긴 했지만 자주 보이기 힘들었으나, 패치로 여러 조합이 가능해지면서 조금 더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4.2. 8성 조조군
7성 때는 곽가보다 총합 능력치가 낮았지만 8성에서는 곽가보다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