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성밍
1. 소개
쉬성밍은 대만 가오슝 출신의 야구선수로 훗날 웨이취안 드래곤스를 운영하게 되는 웨이취안에서 후원하는 중국문화대학에서 야구선수로 활약하였으며, 졸업 후 웨이취안 실업야구단에서 활약한다.
이후 웨이취안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던 한국화장품 야구단을 통해 한국 진출을 시도한다. 1984~1988년에 실업야구 한국화장품 야구단의 에이스이자 대한민국과 대만 야구 최초의 너클볼러로 통했던 투수다. 1984년 LA올림픽에 대만 대표로 출전하였고, 당해년도 한국 실업리그 최우수투수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다. 한 때 한국 프로야구 진출도 몇차례 노렸지만 이때는 외국인 규정이 없어서 단념했다.
어찌됐던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초의 대만 출신 외국인 선수라고 볼 수 있다.[1]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중앙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이는 대만 야구선수로서는 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첫 번째 석사학위 취득자였다고 한다. 일부 한국선수들이 CPBL에 진출할 때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김덕칠 선수의 경우 본인의 팀에서 기용해서 타이완시리즈 최초의 한국인 승리투수가 되기도 했다.
2. 은퇴 이후
현역 시절을 마친 그는 대만에 프로리그가 출범하자 코칭스태프로 활동을 시작한다. 소속팀이었던 웨이취안 실업야구단이 프로로 전향하면서 1990년부터 웨이취안 드래곤스의 투수코치를 역임한다. 잠시 스바오 이글스에 몸을 담기도 했으나 1996년 웨이취안에서 감독으로 데뷔한다. 감독을 맡는 동안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웨이취안의 3연속 우승을 이끌어낸다. 이 때가 지도자로서 가장 화려했던 시기로 3년 연속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한다. 1999년 시즌 승부조작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백주대낮에 칼빵을 당한 적도 있다.'''
99시즌 후 팀이 해체되었고 2000년 고향팀인 TML 가오핑의 감독으로 취임한다. 2003년 이 팀의 선수들이 합류한 띠이진강(현. 라쿠텐 몽키스)의 초대감독이 되었으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7승 24패의 시점에서 해임된다. 2004년 중신 웨일스의 투수 코치로 들어왔다가 감독이 해임 되어 잔여시즌과 2005시즌 감독을 맡았으나, 띠이진강이나 중신 웨일스 모두 워낙 약체라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08년 싱농 불스의 감독이 해임되자 시즌 후반기부터 팀을 지휘하였고 2010시즌 전기리그 우승 및 종합승률 1위를 차지했으나, 타이완시리즈에서 완패하면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13년 다시 고향팀인 EDA 라이노스[2] 감독으로 돌아와 전기리그 우승을 이끌어냈는데, 당시 매니 라미레즈를 기용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후기리그 진행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는데 불과 5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들어서는 나이였다. 우승경력은 초창기 3회에 불과하지만 감독으로서도 평가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지라 여러팀에서 감독을 지낼 수 있었다.
[1] 이후, 무려 30년 뒤인 2018년에 대만 출신 외국인 선수인 왕웨이중이 NC 다이노스와 계약하면서 대만 출신 외국인 선수의 계보를 잇는 중이다. 사실 CPBL의 규정 때문에 KBO 리그에 대만 출신 선수가 없었으며, 왕웨이중은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NC 다이노스에 영입된 케이스다.[2] 이전에 감독으로 있던 싱농불스를 인수해 가오슝으로 연고이전을 하였다. 이전에 가오슝에 있던 띠이진강의 후신 라뉴베어스는 타오위안으로 연고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