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장품 야구단
1. 소개
한국실업야구에서 활약했던 실업야구팀. 롯데그룹에 이어 두번째로 민간기업이 창단한 실업야구팀이었으며 한국 실업야구연맹 11번째 가맹팀이었다. 당시 한국화장품은 여자농구단을 운영[1] 하고 있었는데 광고효과를 짭짤하게 보게 되자 야구팀을 창단하게 되었으며[2] 이후 한국화장품 야구단은 롯데 자이언트와 더불어 실업야구계의 강자로 군림했었다.
2. 창단
1976년 8월 31일에 발족식을 가진후, 특별지원 선수 15인을 지명했고, 1976년 11월 13일에 정식 창단식을 가졌다.
롯데 못지 않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학 유망주들을 싹쓸이했는데 대표적으로 입단 첫해 타격부분 4관왕에 신인상, 트리플 크라운상, MVP 등 7관왕을 수상한 김재박이나 황규봉 등. 강기웅도 서울 올림픽 참가를 위해 2년간 몸 담았었다.
1977년에 실업야구 전기리그를 우승, 후기리그 우승팀인 육군경리단과의 코리안시리즈를 가졌는데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다.
3. 해체
한국프로야구 창설 당시 KBO에서 동참을 제의하자 연고지를 서울로 하고 기존 선수단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그러나 KBO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프로야구 참여를 거부했다.[6][7] 이후 1995년에 해체되었다.해체 당시 기사. 당시 선수 스카웃까지 마친 상태에서 팀을 해체해 야구인들의 분노를 샀다.
4. 유니폼
5. 관련 선수
[1] 1997년에 해체##.[2] 임광정 당시 한국화장품 사장이 야구에 관심이 많기도 했다. 임광정 사장은 개성공립상업학교 재학 시절 야구선수로 뛰었다고 전해진다.[3] 임광정 당시 한국화장품 사장의 장남.[4] 당시 야구대표팀 감독직을 겸임하고 있었다.[5] 전 상업은행 감독[6] 당시 KBO는 한국화장품 측에 서울 대신 인천·경기·강원·이북5도 연고팀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했다. 임광정 회장이 개성시 출신의 실향민이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KBO가 각 구단의 모기업 조건을 '연고지 출신 기업인이 운영하는 기업이거나 연고지에서 성장한 기업'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 라이온즈는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가 대구에서 창업됐다는 이유로 대구를 연고로 삼았고 빙그레 이글스도 김승연 구단주가 충청남도 출신이었기에 충청 연고팀으로 창단됐다.[7] 프로야구 창설 당시 청와대가 낙점했던 서울 연고팀의 운영 주체는 문화방송이었다. 프로야구단 창설을 추진하던 두산그룹도 당초 서울 연고권을 원했지만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1982년부터 1984년까지 3시즌동안 충청 연고팀을 맡기로 했다. 결국 프로 원년 서울팀으로 MBC 청룡이 탄생한다.[8] 선동렬의 경우에 한국화장품과의 이중계약으로 아주 잠깐 한국화장품 유니폼을 입었었다. 1985년 실업야구 시범경기까지 등판 했었지만, 결국 해태 타이거즈로 입단해서 85년 시즌 후기리그부터 등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