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프라이즈 우주왕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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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ASA 우주개발의 자존심 우주왕복선의 프로토타입. 개조 비용을 비롯한 이런저런 어른의 사정으로 실제 우주 임무를 수행하지는 못했으나, 활공 시험(Approach and Landing Test, '''ALT''')을 통해 다른 우주왕복선들 못지 않은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기종이다. 이 엔터프라이즈의 비행을 통해 '''우주개발의 새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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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트렉의 주연배우들과 진 로덴베리를 초청한 역사적인 취역식.
원래 엔터프라이즈는 후에 정식 우주왕복선으로 개조할 염두를 두고, 궤도선 재식번호를 OV-101로 하였으나 후에 OV-099인 챌린저호를 개조하는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되어 개조는 하지 않았고, 1986년 챌린저호가 폭발한 이후, 다시 이 우주선을 개조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또 다시 비용 문제로 다른 셔틀의 여분의 부품을 이용해 엔데버호를 제작하기로 결정이 난다
2. 상세
원래 미국의 최고령 현역 군함 컨스티튜션의 이름으로도 쓰이는 그 컨스티튜션이라는 이름을 쓰려 했으나, '''전미의 트레키들이 NASA와 백악관에 40만 장에 이르는 투서를 날려대서 이름을 바꿔버렸다.''' 어쨌든 미국 SF의 자존심인 스타 트렉의 스타쉽이자 2차대전의 역사 그 자체인 이름을 최초의 우주왕복선에 붙이는 결과는 좋았다.
ALT는 간단히 말해, '''크고 아름다운 보잉 747의 등짝에 실려 이륙한 뒤 홀로 활공하여 지상 활주로에 착륙하는 실험'''이다.[1] 1977년 2월 15일부터 10월 26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이중 8월 12일에는 첫번째 자유비행을 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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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파일럿 4인 : 좌측부터 C. 고든 풀러튼, 프레드 헤이즈, 조 엥글, 리처드 트룰리.
공교롭게도 이 네 우주비행사들은 미국의 우주개발사에서 크고 작은 설움을 겪었던 이들이다. 풀러튼과 트룰리는 페이퍼 플랜으로 끝난 미합중국 공군의 MOL 프로그램에서 전속되었고, 조 엥글은 고정익기 X-15로 우주에 갔다온 경력도 있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였으나 해리슨 슈미트에게 아폴로 17호 달 착륙선 조종사 자리를 빼앗기며 달에 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를 잃은 지못미 그 자체이며, 프레드 헤이즈는 아폴로 13호의 그 인물이자 취소 크리를 맞은 아폴로 19호의 사령관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인물. 헤이즈-풀러튼, 엥글-트룰리 조로 나뉘어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이들 중 엥글과 트룰리 그룹은 '''STS-2'''의 승무원이 된다. 비록 제미니 계획의 전설적인 레전드인 존 영이 사령관으로 내정된 STS-1만큼은 아니지만 이들 역시 굉장한 임무를 수행했던 셈. 헤이즈의 팀은 당초 셔틀 프로그램이 일찍 시작되었다면 실행에 옮겨졌을 STS-2 '''스카이랩''' 미션[2] 이었으나, 셔틀 개발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연되는 와중에 스카이랩이 결국 고도를 유지하지 못한 채 1979년 대기권에 재돌입하였고, 헤이즈는 이에 서운함을 표하며 NASA를 나와 그루먼으로 이직했다. 하지만 풀러튼은 이후 STS-3 파일럿, STS-51-F 사령관으로 활약했고, 엥글과 트룰리도 모두 STS-2와 향후의 미션에서 한 번씩 사령관을 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이후 엔터프라이즈는 정식으로 우주 미션에 투입될 후보로 검토되었으나, 함께 테스트용으로 제작되었던 OV-099 챌린저의 개조 비용이 더 싸게 먹힌다는 것이 밝혀지며 프로토타입으로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실험용으로는 여전히 매우 좋고 부담도 적은 기체였기 때문에 STS-51-L 챌린저 폭발사고 전까지 기획되던 '''반덴버그 공군기지''' 셔틀 발사대 공사[3] 라든지 디스커버리, 아틀란티스 등 후속 셔틀 개발을 위한 여러 실험에 쓰였다. 이런저런 투어도 가지며 우주개발을 선도하는 신대륙의 기상(...)을 널리 떨쳤다. 실험이 끝난 후에는 오랫동안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 별관 우드바-하지 센터에 전시되었으나 2011년에 디스커버리가 퇴역하면서 스미소니언에 들어오고 엔터프라이즈는 2012년 4월 뉴욕 항에 정박중인 퇴역항모 인트리피드 항공우주박물관으로 이동 전시되고 있다. 이때 보잉 747에 실려 뉴욕을 날아다녔던 것이 마지막 비행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 시험기를 운반했던 보잉 747 비행기는 세 개의 마운트로 시험기와 체결되는데, 이 마운트에 그 유명한 "ATTACH ORBITER HERE NOTE: BLACK SIDE DOWN"(왕복선을 여기 부착하시오. 주의: 검정색 면이 아래를 향하도록 부착할 것)이란 개그가 적혀 있다.[4]
[1] 생각보다 중요한 실험이다. 우주왕복선은 대기권 진입 후, 자체 동력은 일체 없이 글라이더처럼 활공하는데, 이게 일반 항공기보다도 빠른 속도로 아무런 동력 없이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2] 스카이랩이 방치되는 동안 고도를 잃고 있음은 이전부터 NASA에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스카이랩을 좀 더 오래 써먹자는 엔지니어들의 주장으로 스카이랩에서 부스터를 쏴서 고고도로 복귀시킨다는 플랜. 하지만 셔틀의 개발이 지체되며 1979년에 스카이랩은 끝내 재돌입하고 말았다.[3] 위의 사진에서 케이프 커내버럴과 다른 위화감이 느껴졌다면 제대로 본 것이다. 저 사진이 반덴버그 공군기지의 셔틀 발사대 제작 중 찍힌 것이다. 하지만 챌린저 참사로 반덴버그 발사 우주왕복선 미션은 완전히 백지화되었고 셔틀 발사대로 계획 및 제작된 SLC-6은 현재 ULA가 매입해서 델타 4 헤비 로켓을 발사하는 데 쓰고 있다. ULA의 이동식 격납고 옆의 'USAF'라 적힌 건물이 그 증거다. [4]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