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브래드버리

 




[image]
'''이름'''
스티븐 브래드버리(Steven Bradbury)
'''국적'''
호주[image]
'''출생'''
1973년 10월 14일, 뉴사우스웨일스 주
'''신체'''
178cm, 80kg
'''종목'''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image]
'''주종목'''
10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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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호주의 前 쇼트트랙 선수로, 현재는 은퇴를 하여서 호주 쇼트트랙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라고 단순히 말하면 그냥 일대를 풍미한 한 선수라고 기억하기 쉽지만, 사실 이 선수는 '''파란만장한 쇼트트랙 인생'''을 겪은 후 은퇴를 한 선수다.
1991년 호주의 전력 상승을 가져다 준 선수로, 당시 월드컵 경기에서 호주가 그의 활약으로 입상을 하는 등 호주의 전력 상승에 큰 기여를 한 선수였다. 당시 호주는 이제 막 도약을 하고 있었고, 그 첫 주자가 브래드버리가 될 '''뻔'''했지만 '''그의 인생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었다.'''

2. 선수 경력



2.1.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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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유니폼이 호주 대표팀이다.
쇼트트랙이 올림픽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두번째 올림픽이던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당시, 호주는 브래드버리의 힘으로 계주 동메달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호주의 첫 동계 올림픽 메달이였다. 이후 동메달의 여세를 몰아 브래드버리의 주 종목인 1000m에 도전을 했지만 헛발을 디뎌서 예선전에서 넘어졌으며, 결국 실격 먹어서 예선 광탈해버리는 굴욕을 맛봤다.

2.2.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하지만 다음 올림픽인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는 아무것도 못해보고 전 종목 예선에서 탈락했다. 500m 19위, 1000m 21위, 5000m 계주도 8위를 하는 등 1994년의 영광을 다시 맛보지 못했었다.

2.3.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설상가상으로 2000년 '''목뼈 부상'''까지 당하면서 동계 올림픽 시점에서는 호주 쇼트트랙 대표팀의 에이스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력 아웃 수준의 선수로까지 평가되고 있었다. 나이도 문제였지만, 이 목뼈 부상 이후에 실력이 상당히 나빠졌다고 한다. 사실 이미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때 쓰러지면서 과다 출혈[1]까지 있었기 때문에 그의 메달을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브래드버리는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만족할 경기를 하기 위해서 1000m에 출전하여 노장 투혼을 발휘한다. 쉬운 조에 걸리기도 했고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련미로 1라운드 예선은 일단 1위로 통과. 2라운드에선 같은 조에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었던 아폴로 안톤 오노마크 가뇽이 있었고, 마지막에 결승점을 끊었을 때의 시점은 3위로 들어와 그대로 끝나는 줄 알았더니만 당시 심판이었던 제임스 휴이시가 2위로 들어온 마크 가뇽에게 일본의 타쿠마 나오야를 푸싱했다고 실격을 먹여 2위로 통과했다.
3라운드에서 자기 조를 보니 전 대회 우승자인 '''김동성'''과 전 대회 은메달리스트인 중국의 '''리자쥔'''이 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리자쥔의 발목을 걸어제끼기로 김동성이 먼저 아웃을 당하고, 막판에 선수들이 집단으로 얼음 위에 나뒹굴면서 또 두번째로 통과했다. 게다가 먼저 들어온 선수가 실격 처리되면서 공식적으로는 1위로 결승에 진출했다.
그렇게, 극적으로 결승에 올라오니 당대 최고 유망주였던 '''안현수'''에 (2라운드에서 한 번 붙었던) '''아폴로 안톤 오노''', (어드밴티지로 올라온) '''리자쥔''' 등 쟁쟁한 선수들이 포진해 있었고, 브래드버리는 경쟁에서도 밀릴 것 같아 ('여기까지 왔으면 됐지'라는 생각으로) 초장부터 몸싸움을 피해 꼴찌로 달리고 있었다. 브래드버리는 현실적으로 3위를 목표로 하여 끝에서 따라 붙다가 막판 역전을 노리겠다는 생각으로 시합에 임했으나, 경기중 4위와도 크게 격차가 벌어지자 그냥 등수 싸움을 포기하고 완주하는 것으로 목표를 두려했다.

1000m 결승
'''그런데 마지막 바퀴에서 승리의 여신이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승선 반 바퀴를 남겨두고 리자쥔이 코너에서 중심을 잃고 그대로 슬라이딩하면서 오노를 건드렸고, 안현수가 이 틈에 오노를 추월하려 하자 오노가 손을 뻗어 안현수를 넘어 뜨렸다. 그리고 안현수가 넘어지면서 그 근처에 있던 마티유 투르콧까지 같이 넘어졌다. 결국 브래드버리는 그 경기에서 유일하게 넘어지지 않은 선수[2]가 되었고, 그 사이 뒤에서 멀찍이 달리던 브래드버리가 난리통을 피해 유유히 홀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로서 '''호주의 첫 동계 올림픽 금메달이자 남반구 최초의 동계올림픽 금메달 리스트가 되었다.'''
호주를 포함한 남반구 국가들은 대체로 더운 편이고 사면이 바다여서(해양 스포츠 쪽은 굉장히 발달되어 있지만) 동계 스포츠는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캔버라 근처에 겨울 한정으로 스키장이 있긴 하지만 현지인보다는 (여름에 훈련을 하기 위해) 외국 선수들이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덤으로 며칠 후, 호주는 여자 에어리얼 스키에서 알리사 캠블린의 금메달까지 챙기는 성과까지 얻었다.
요약하자면
  • 예선: 1위로 통과
  • 준준결승: 4명 중 4위로 달리다 앞선수 2명의 몸싸움으로 1명이 밀리면서 3위로 완주. 원래는 탈락이지만 2위가 실격당하면서 2위로 통과
  • 준결승: 5명 중 5위로 달리다 마지막 바퀴에서 선수 3명이 넘어져서 2위로 완주. 1위가 실격당하면서 1위로 통과
  • 결승: 5명 중 5위로 달리다 앞선수 4명이 마지막 바퀴에서 죄다 넘어져서 금메달
영상에 나온 대로 그가 받았던 황당함·기쁨은 최고조였다. 경우의 수라도 노리듯이 선두권이 몸싸움하면서 실격자나 낙오자가 나오게 되면 등수를 차지하는 작전으로 동메달이라도 따보자는 입장이었는데, 목적을 단순한 초과달성이 아니라 최정상에 오르는 것으로 달성해버렸다. 본인도 "꼴찌로 달리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보니 다들 앞에서 뒹굴고 있었다. '''이건 이겨서가 아니라 10년 간 최선을 다해서 주는 상인 것 같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찌 됐든 남반구 최초의 금메달이었기 때문에 호주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특별 우표까지 제작해서 판매할 정도로 영웅 대접을 받았다. 이 선수의 이름을 딴 'do a Bradbury(브래드버리 하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는데, 뜻밖에 무언가를 이뤄내거나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KBS 스펀지에서 두 차례(2010년과 2012년에) 소개된 적이 있고, 2017년에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소개되었다.
다만 국내에서는 며칠 후 1500m 결승에서 있었던 어느 미국 선수 때문에 별로 이슈화되지 못했다.

3. 은퇴 이후


현재는 현역 때 근무했던 스케이트 제조 회사 업무에 전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동계 올림픽의 레전드인 만큼, 동계 올림픽 시즌이 되면 자국 선수들에게 버프를 주기 위해 TV에 얼굴을 비추는 일이 잦아진다. 호주 올림픽 협의회(Australian Olympic Committee)가 동계 올림픽 전 선수들의 사기 증진을 위해 자주 초대하는 모양이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팀 리더 및 텔레비전 해설자로 활동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시즌에는 흑발로 바꾸는 등 상당히 스타일리시해졌다는 평가도 받았다. 당연히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해설로 참관했는데, 해설위원으로 가게 된 김동성 왈,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의 쇼트트랙 스타는 나와 아폴로 안톤 오노, 그리고 스티븐 브래드버리"라고 한다.
2005년부터 자동차 레이싱에 관심을 가지며 호주 국내 대회 위주로 종종 그랑프리에 출전해서 2010년까지 가끔 포인트 피니쉬를 보여줬다.

4. 수상 기록


올림픽
금메달
2002 솔트레이크시티
1000m
동메달
1994 릴레함메르
5000m 계주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1 시드니
5000m 계주
은메달
1994 길퍼드
5000m 계주
동메달
1993 베이징
5000m 계주

5. 여성판 스티븐 브래드버리


그리고 12년 후, '''여성판 스티븐 브래드버리중국에서 탄생했다.''' 2002년과 2014년 모두 대한민국 가 최대 피해자라는 점과, 그 두 피해자 모두 대한민국 쇼트트랙계를 떠났다는 점,[3] 영어권 국가가 가해자며 한국 남자 노메달인 대회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다른 점이라면 이쪽은 500m이고 우리나라 선수는 그래도 동메달을 땄다. 그리고 안톤 오노 같은 원인 제공자는 출전한 두 올림픽 모두 쓴맛을 봤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4]
[1] 당시 출혈량이 4 L에 달했으며, 111바늘을 꿰맸다고 한다.[2] 이 조차도 그냥 5등도 아니고 너무 쳐저있어서 넘어지지 않은 것이다.[3] 한 명은 러시아로 귀화했고, 다른 한 명은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4] 그 외에도 다른 대회에선 계주 메달만이 유일한 브래드버리와 달리 이 수혜자는 커리어가 화려하고 아폴로 안톤 오노보다도 더티 플레이가 심하다는 점이며 이 쪽은 브래드버리와 달리 본인의 주종목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