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 안톤 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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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000년대 쇼트트랙을 제패했던 선수 중 한 명이다. 미국의 쇼트트랙 레전드로 치부될 정도로, 미국에선 국민 영웅으로 대접받는 선수며, 또한 2002년에 최초 남자부 개인 메달을 따낸 선수다.
대한민국에서는 그의 실력을 한국인 국가대표급 선수들보다 한 수 아래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상술한 타이틀에서 보이듯이, 실력은 객관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제 무대에서 쓸어담은 수많은 메달들은 고스톱 쳐서 딴 게 아니다. 한국 선수들이 실력적으로 가장 경계를 하는 해외 선수 중 하나였고, 현 시점에서 본다면 투박하긴 하지만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보냈던 선수임을 감안한다면 수준급 테크닉을 가지고 있고 강한 체력이 주된 장점인 한국 선수들에 결코 밀리지 않는 지구력을 갖췄으며 체격에 비해 힘도 있던 편이라 몸싸움이나 스퍼트에도 능한 편이었다.
덕분에 173cm라는 작은 신장을 가지고도 500m에서 꽤나 선전하던 선수였다. 500m는 체중이 많이 나가고 키는 175cm 이상 정도 되어야 유리하다. 쇼트트랙 스케이터로서 필요한 덕목을 모두 갖춘 올라운드 스케이터라고 봐도 무방하며 모든 종목에서 포디움을 노릴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그의 본 실력을 폄하할 정도로 평판을 엄청나게 깎아먹는 요소[6] 는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비매너적인 플레이에 있다. 상대 선수와의 접촉을 피하지 않으며 '''반칙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교묘하게 손을 쓰는 점'''에 있어선 역대급 재능을 지닌 선수였다.
국내 선수와 지도자들의 발언에 따르면 쇼트트랙이란 종목 특성상 신체 접촉이 잦을 수밖에 없고 이런 부분의 판단은 애매할 수밖에 없는데 오노는 정상적인 플레이와 반칙의 경계선에서 교묘하게 반칙성 플레이를 한다.[7] 당연히 쇼트트랙 최강국인 우리나라 선수들이 이와 엮이는 경우가 유독 많았고, 결정적으로 김동성과의 악연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거의 공인 '''욕먹는 포지션'''에 자리잡게 됐다.[8]
거기에다 묵묵하게 있어도 까일 짓을 했음에도 깨알같이 방정을 떨면서 "김동성 실격될 줄 알았다"라고 인터뷰를 날리는가 하면 뻔뻔하게도 자서전에 "김동성이 자신의 반칙을 인정하고, 나를 세계 최강자라고 칭송했음ㅋ"라는, 당사자는 알지도 못하는 거짓부렁까지 적어서 출판한 사실이 알려지고부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결국 그놈의 입방정 덕분에 더욱 더 까임을 자초한 케이스다. 그가 활동하던 2000년대 당시 한국에서는 오노 하면 연기를 하도 잘 한다고 '''할리우드 액션'''이라는 수식어가 반드시 따라다녔고 유명했다.[9]
다만 한 가지 알아야 할 건 그는 대표적으로 리자쥔, 왕멍을 비롯한 몇 중국 선수들처럼 다른 선수를 고의적으로 다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반칙을 범했던 선수는 아니었다.
2. 선수 경력
2.1. 어린 시절
12살이었을 무렵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을 시청하던 그는 쇼트트랙을 시청한 후 선수로서의 꿈을 키우게 됐다고 한다. 특히 김기훈의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고 하며 자신의 우상으로 김기훈을 말하기도 했다. 아버지인 오노 유키는 자신의 아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으며 심지어 차로 캐나다와 미국을 오가며 오노를 대회에 출전시켰다 한다. 그의 재능을 본 유키는 1996년 아직 미성년자였던 오노를 레이크플라시드 올림픽 트레이닝 센터에 보냈다. 이때 그의 나이 13세로 트레이닝 센터에 들어간 선수 중에는 가장 어린 선수였다고 한다.
2.2. 1996-97 시즌
처음 트레이닝을 시작하였을 때는 굉장히 나태한 자세로 훈련에 임했지만, 주변 동료들에게 땅딸막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자극을 받아 본격적으로 훈련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다음해였던 1997년에 미국 주니어 대표팀에 발탁되는데 실패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전미선수권 시니어 부문에 참가해 14세의 나이로 1500m에서 금, 300m에서 은, 그리고 500m에서 4위로 역사상 최연소로 대회 종합 우승을 했다.
그 후 콜로라도로 트레이닝센터를 옮기면서 성인급 선수들과 훈련을 같이 하기 시작했지만 1997 세계선수권에서 종합 19위로 대회를 마치면서 쓴 맛을 봤고 마음에 큰 타격을 입은 그는 그 해 4월 자신의 고향인 시애틀로 돌아가 트레이닝을 그만뒀고다.
2.3. 1997-98 시즌
결국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던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선발전에서도 떨어졌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오노에게 새로운 동기부여를 제공해 콜로라도가 아닌 레이크 플라시드 트레이닝 센터로 돌아가 시니어가 아닌 주니어 레벨의 선수들과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2.4. 1998-99 시즌
1999 주니어 세계선수권에 출전해서 1000m, 1500m에서 금메달, 500m에서 은메달을 수상해 대회 종합우승을 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그 후 미국 국내 대회에서 두 번째로 우승, 세계 선수권에서는 500m에서 은메달을 수상하면서 종합 4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2000년엔 자신의 3번째 미국 국내 대회 타이틀방어에 실패하며 3위에 머무른다. 그리고 그 해 세계 선수권에서는 9위에 머무르며 다시 주춤하나 했으나 시즌 2000-01, 자신의 첫 월드컵에서 종합우승(세계랭킹 1위), 자신의 4번째 국내대회 우승, 그리고 세계 선수권에서 종합 2위[10] 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월드컵 시리즈에서 김동성이 부상으로 중도 하차 하긴 했지만 리자준, 마크 가뇽, 2000 세계선수권 우승자 민룡을 제치고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다
2.5. 2001-02 시즌
2.5.1.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 논란
2001년 12월, 동계올림픽 선발전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던 샤니 데이비스가 쇼트트랙 선발전에 출전했다. 오노와 러스티 스미스는 이미 점수를 많이 따내 선발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샤니 데이비스가 선발되려면 마지막 종목이었던 1000m에서 최소 오노, 스미스, 그리고 론 비온도라는 경쟁자들을 재치고 우승을 해야만 했던 상황이었고 가능성은 굉장히 낮아 보였다.
허나 샤니 데이비스가 1000미터 우승, 스미스가 2위[11] , 오노가 3위라는 예상을 뒤엎은 결과가 나왔다. 문제는 데이비스가 1위로 골인한 후 스미스와 오노가 함께 축하하는 장면. 이로 인해 데이비스의 친한 친구였던 오노와 스미스가 데이비스에게 1위를 양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데이비스가 1위를 하는 바람에 국가대표 선발에 실패한 토미 오헤어라는 선수는 공식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그의 주장은 오노가 데이비스와 스미스가 각각 1, 2위를 할 수 있도록 레이스 내내 의도적으로 비온도의 진로 방해를 했다는 것. 결국 3일 동안 오노, 스미스, 데이비스는 조사를 받게 되었고 셋 다 무죄판결을 받았다. 판결이 나고 오노는 인터뷰에서 "나는 잘못 안했는데 괜히 시비걺 ㅋ 암튼 무죄판결이라 기분 째짐"이라고 했다.
2.5.2.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2.5.2.1. 500m와 1000m
자국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이자 자신의 첫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500m에서는 준결승에서 일본 선수를 밀어 실격당했다. 1000m에선 결승에서 안현수와 리자쥔과 금메달을 놓고 경쟁했다.
그 뒤 마지막 코너를 남기고 리자쥔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다 리자준이 자빠진 뒤 리자쥔에게 스케이트날이 걸린 안현수와 코너를 돌다 넘어지면서 본인과 마티유 투르콧과 함께 충돌했다. 그 바람에 꼴찌로 레이스를 하던 호주의 스티븐 브래드버리가 금메달을 땄고 본인은 넘어진 후에 두번째로 오면서 은메달을 땄다.
이 경기는 그가 실력만으로 가져갈 수 있었던 금메달을 리자준의 깽판으로 자기도 속력이 줄고 안현수도 넘어뜨리면서 본인도 휘말린 것이라 안타까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스티븐 브래드버리만 이득을 본 셈이다. 그래도 미국 남자부에서 개인전 최초로 메달을 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듯하다.[12]
2.5.2.2. 1500m
1500m 결승전에서 당시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였던 김동성과의 맞대결이 벌어졌을 때 2위까지 치고 올라오는데 성공했지만 김동성을 제치는데 실패하자 마지막 코너를 앞두고 다음과 같은 행동을 시전했다.
마치 김동성이 의도적으로 블로킹을 했다는 듯이 '''할리우드 액션'''을 취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인 심판 제임스 휴이시는 이를 김동성의 반칙 때문인 것으로 판단하여 실격시키는 바람에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오노는 레이스 후 인터뷰에서 "그가 실격당할 줄 알았어요"라고 했으며 미국 남자 쇼트트랙 첫 금메달리스트가 되면서 미국의 국민 영웅이 되었다.전이경 - '''영화배우 안톤 오노라고 하면 딱 맞겠습니다.'''
배기완 - '''영화 제목은 "비겁자"가 될까요?'''
전이경 - '''예. 반칙왕 2를 본 것 같습니다.'''
당시 경기를 중계한 SBS 전이경 - 배기완 중계진이 판정 이후 한 말. 이후 숏터뷰에서 다시 재중계를 했다.
경기가 끝난 후 큰 논란이 불거졌고 이 경기에서 4위를 한 파비오 카르타는 "말도 안되는 일이다" 라며 판정이 잘못됐다 한다. 하지만 김동성의 실격 덕에 어부지리로 동메달 대신 은메달을 딴 리자쥔은 "심판진의 판정에 수긍한다. 그것뿐이다"라고 했다. 곧 이같은 심판의 판정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13]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에게 '할리우드 액션', '반칙왕'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우연찮게 그가 '''일본계'''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반일감정까지 섞였고 당시 기승을 부리던 민족주의적 정서, '''애국심 마케팅'''까지 겹쳐 국내에서 철천지 원수 취급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까지 터지면서 반미 감정이 급속도로 확산되기도 하였다. 사실 사건 당시만해도 월드컵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으나, 연말들어서 무죄판결 소식이 들려온 후 반미 감정은 더 크게 확산되었다. 초딩들 사이에서 윤민석이 지은 Fucking USA라는 노래가 거리낌없이 유행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리고 당시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 사건을 보도하면서 이 노래를 보도 말미에 BGM으로 까는 패기도 보여주었다!
이후 오노의 반칙보다 심한 반칙을 저지른 선수들이나 편파적인 오심이 여럿 등장했음에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등장하기 전까지 오노처럼 전국민적인 까임을 당한 케이스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당시 오노에게 몰린 분노를 어림 짐작 가능할 정도다.[14] 인터넷에서는 가짜 오노 인터뷰가 돌아다니기도 하고 ''''오노스럽다'''', ''''오노 같은'''' 등의 비속어의 의미를 담은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였다.[15] 특히 '''오노의 헬멧 번호가 369'''였던 점이 알려지면서 '''괜한 369 게임이 오노 게임으로 전락'''했다.[16]
다만 가장 큰 문제는 오심을 한 심판에 있음에도 심판은 별로 까이지 않고 선수만 신나게 까였다. 사실 중요한 건 오심이었는데 오노가 심판에게 어필한 것 자체를 반칙이라고 할 수는 없고, 심판은 어필과 관계없이 공정한 판정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홈그라운드를 의식한 고의성이 의심되는) 오심을 했으므로 심판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 이런 면에서 좀 사건이 이상하게 전개된 감이 있다.
현재까지도 명맥을 이어오는 노빈손 시리즈에서도 이 장면을 써먹었다. 여기선 야비해보이는 턱수염을 기른 일본 선수 '이노무시키'가 한국 선수에게 할리우드 액션을 취해서 메달을 훔친다. 수염 드립부터 딱 오노다.
그 외에 홍스구락부의 플래시 작품들 중 MBC 뉴스데스크를 패러디한 MBG 뉴스에도 첫번째 장면에서 오노가 교통사고로 전치 780주[17] 가 나왔다고 오노를 신랄히 까는 부분이 나왔다. 홍스구락부 말고도 엽기하우스 등 수많은 엽기 사이트에서 이를 풍자하는 합성물들도 많이 나왔다.[18]
이 사건에 격분한 김구라와 황봉알은 없는 살림에 비행기 표까지 끊어서 오노의 아버지가 하고 있다는 이발소까지 찾아가 이발소의 한쪽 벽을 장식했던 오노의 사진에 '''"금메달 내놔, X새끼야"'''라고 적어놓는 영상을 인터넷 방송에 뿌려 화제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것과 달리 김동성의 말에 따르면 이 영상은 조작이었다고 한다.
오노 아버지는 오노와 항상 동행해서 김동성도 잘 알고 있었는데, 영상에 나온 건 오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애초에 오노는 일본인 혼혈인데 그 동영상에 나온 아버지란 사람은 백인이라는 점에서 빼도박도 못한다. 아무래도 인터넷 방송국 측의 조작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황봉알은 결국 오노와의 만남이 불발이 되자 '''"다음엔 장애인 올림픽에서 보자, X새끼야"'''라는 희대의 망/명언을 남기고 돌아온다.[19]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미국전에서 안정환이 골을 넣은 뒤 펼친 오노 세리머니도 유명하다. 이천수가 오노 역을 맡아 할리우드 액션을 시전했다.[20] 심지어 월드컵과 엮인 플래시 게임으로도 나왔다!
이렇게 분노의 중심에 있었던 오노였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 분노가 가라앉았고 오노가 한국도 방문해서 철천지 원수와도 같을 것 같던 한국 국가대표와도 합동훈련을 했다. 합동훈련 과정에서 같이 연습한 한국 선수들이나 홈스테이를 했던 배우 조재현 의 입을 빌어 경기 외적인 모습들도 소개가 되면서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 기믹도 살짝 추가되는 등 (당사자도 한국인이 친절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는 립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2002년만큼 무조건 까이지는 않는 듯하다. 다만 일부 언론들의 '''공공의 적+반칙왕''' 드립은 여전한 듯. 사실 경기에서의 할리우드 액션+비매너와는 별개로 경기장 밖에서의 매너는 상당히 좋은 편으로 알려져있다.
그 뒤 5000m 계주에서는 결승에서 미국 동료가 중국 선수와 넘어지는 치명타로 인해 4위를 기록했다.[21] 당시 미국은 9 11 테러로 당한 피해를 올림픽을 통한 애국심으로 회복하려고 했는데 그 작전중에 하나가 미국 선수 영웅 만들기고 그중 하나가 오노다. 미국 언론에서는 대회전부터 오노에 관련된 기사를 연일 보도했고 심지어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었다. 엄마의 가출로 아버지 밑에서 홀로 운동하여 미국에서 비인기 종목 쇼트트랙 그것도 볼모지에 가까운 남자 쇼트트랙에서 여러개에 금메달을 따는 영웅은 미국에 입맛을 당기게 했다.
2.6. 2003~05 시즌
이후에는 3년 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7. 2005-06 시즌
2.7.1. 월드컵 시리즈
월드컵 2차 대회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며 1500m에서 이호석을 밀쳤다가 실격당했다. 그래도 1000m, 3000m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종합 2위를 하면서 아직까지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는 걸 보여줬다.
2.7.2.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2.7.2.1. 1500m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당시 전성기에 있던 그는 미국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올림픽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미국 언론에서는 오노가 최소 2개의 금메달을 따낼 거라고 설레발을 쳤으며 그 중에 하나는 당연히 주종목 중 하나인 1500m가 될 거라 했다.
정작 준결승에서 중국 선수를 추월하려다가 삐끗하는 바람에 조 4위로 들어와 파이널 B에 출전하는 굴욕을 겪었다. 본인도 속상했는지 일부러 락커룸에서 시간을 끌다가 늦게 경기장에 들어왔고, 기자들이 붙잡는데도 펜스를 넘어서 링크 안으로 들어가 이탈리아 홈팬을 비롯해 경기장에 있는 많은 관중들에게 야유를 받았다. 그 뒤 6명 중 3번째로 들어오면서 8위를 기록했다.
2.7.2.2. 1000m
1000m에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결승에 진출했고 미국 언론에서는 '한국의 안현수가 챔피언 오노에 '''도전'''하지만 금메달은 오노가 딸 듯 싶다'하며 설레발을 쳤다.
허나 이 경기는 사실상 진짜 세계선수권 우승자였던 안현수[22] 와 신흥 에이스 이호석[23] 이었고 결국 저 둘에게 차례로 추월당해 동메달을 땄다.
2.7.2.3. 500m와 부정출발 논란
1500m와 1000m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뒤 500m에서는 결승에서 자리배정을 기막히게 잘 받아서 스타트부터 골라인까지 선두를 유지해 금메달을 땄다. 참고로 토리노 올림픽까지 자리배정은 "랜덤"이었다. 준결승에서 프랑수아루이 트랑블레가 1위로 결승 진출했고 같은 조에 있던 그는 2위를 기록했다. 괜히 논란이 나오는 게 아니다. 만약 준결승 랩타임을 기준으로 했다면 트랑블레와 안현수가 각각 1, 2레인을 받았어야 했다. 그리고 이 둘은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받았다.
500m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이다.
여기서 논란이 된 건 부정 출발을 했다는 것이다. 출발 총성이 울리기도 전에 상체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으나 심판진은 그냥 넘어갔으며 500m에 항상 강세를 보이던 캐나다가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사실 두 캐나다 선수 역시 부정 출발을 하긴 했지만 본인은 3번이나 부정 출발을 했다. 그럼에도 절대 부정 출발을 안 했다고 반발했다.[24] 오노 본인은 아니라고 말했으나 이 영상을 보는 사람들은 누가 봐도 부정출발을 했다는 것을 알수있다.
2.7.2.4. 5000m 계주
마지막 경기인 5000m 계주에서 미국은 1, 2위를 다투던 한국과 캐나다와는 거리가 한 바퀴나 벌어지면서 홈버프를 받은 이탈리아 계주팀과 3위를 다투었고, 마지막 2번 주자로 활동해 마지막 2바퀴에서 분전한 끝에 동메달을 땄다.
2.8. 2007~09 시즌
나이가 들면 기량이 떨어지듯이, 그도 신예 한국 선수들에게 밀리면서 세계선수권에서 별다른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도 2008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을 하면서 본인의 3번째 올림픽 준비를 하고 있었다.
2.9.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2010년, 미국의 국가대표팀은 J.R. 셀스키와 사이먼 조가 합류되는 등 어느정도 물갈이가 됐을 때도 살아남았다. 사실 오노만한 실력을 가진 선수가 미국에 없었다.
그는 새 대표팀 멤버에 대해 상당히 만족했고 이번 역대 최강의 미국 대표팀이라며 좋아했다. 그리고 이 올림픽이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며, 올림픽 이후 은퇴한다고 선언했다.
첫 경기인 1500m에서 동료인 J.R.셀스키와 함께 결승에 올랐으며 같이 겨룬 한국인 선수들은 바로 토리노 올림픽 메달리스트이자 2009 세계선수권 우승자 이호석, 당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성시백과 이정수였다. 경기 내내 몸싸움을 걸면서 거칠게 레이스를 펼쳤다.
이호석이 무리하게 성시백을 제치려다 같이 넘어지는 바람에 본인은 어부지리로 은메달을, 동료였던 셀스키가 동메달을 따면서 미국이 1994년에 여자 500m에서 2명의 메달리스트를 배출한 뒤 같은 종목에서 2명의 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덕분에 원래대로였으면 비매너적인 스케이팅을 한 본인이 까였을 게 분명했으나 오히려 파벌 문제로 원래부터 이미지가 안 좋았던 이호석에게 한국의 관심이 쏠리면서 오히려 묻혔다.
경기 이후 '''그는 웃으면서 무례한 손동작을 취한 다음,''' 동료와 함께 기쁨을 누렸다.
금메달을 차지한 이정수는 2위가 된 오노와 경기하던 중에 심하게 몸싸움을 했는지 나중에 오노를 향해 "시상대에 올라와서는 안 될 선수다"라고까지 비난했다.
1000m에선 1500m에서의 일로 정신적 타격을 입은 성시백을 샤를 아믈랭과 함께 추월하면서 1위로 골인해 결승진출에 성공했다. 결승에선 이정수,이호석, 그리고 캐나다의 샤를 아믈랭과 프랑수아 아믈랭[25] 과 맞붙게 되었는데, 한국 선수들에겐 고맙게도 아믈랭 형제들과 접전을 벌여준 덕에 이호석과 이정수가 아웃사이드로 치고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줬다.
바로 이 장면이다.
레이스 막판에 분전하면서 경기 내내 선두 지키느라 체력 다 빠진 아믈랭 형제를 차례대로 추월한 끝에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미국 동계올림픽 개인통산 최다 메달리스트''' 기록을 세워 미국에선 명실공히 '''영웅'''으로 추대받게 되었다. 동계올림픽 후 미국의 방송에서는 'Welcome Back, Our Hero'하면서 아폴로 오노의 귀국을 환영하고 칭송하는 광고들을 내보냈다.
마지막 개인전인 500m를 치를 때 같이 참여했던 선수들이 넘어졌는데 예선에서는 프랑스, 독일 선수가 넘어졌고, 준결승에서는 이호석 선수가 넘어졌다. 결승전에서는 다시 한번 더티 플레이를 작렬해서 캐나다 선수인 트랑블레를 밀어버린 다음 샤를 아믈랭에 이어서 2번째로 골인했을 때 제임스 휴이시 대신 나온 심판이[26] 반칙사유를 정확히 캐치해내서 결국 실격당했다. 그 바람에 결승선에서 다 왔다가 넘어져서 겨우 3등으로 들어온 성시백이 은메달, 트랑블리가 동메달을 땄다.
본인의 은퇴 경기이자 올림픽 마지막 경기인 5000m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를 맡았을 때 한국 팀의 실수를 틈타 캐나다에 이어 중국과 함께 2, 3위로 자리를 잡아 은메달을 딸 것처럼 보였으나 마지막 코너에서 4위로 들어오던 곽윤기에게 눈 깜짝할 새에 추월당했는데 마지막에 곽윤기를 붙잡고 끌 때 곽윤기의 스케이트 앞날이 2위로 달리던 다른 중국 선수의 뒷날에 걸리는 바람에 중국팀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 코앞에서 삐끗하면서 4위가 되었다. 어쨌거나 동메달을 따면서 이렇게 본인의 마지막 경기가 막을 내렸다.
3. 은퇴 이후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미국 NBC 해설위원으로 나왔는데, 마침 김동성이 KBS 해설위원으로 나왔다. 결국 은퇴 후에도 라이벌 구도가 재현되었다. 그래도 세월이 약이라고, 지금은 서로 인사하고 다니고 기념사진도 찍고 한국에 대한 립서비스도 이것저것 해주고 오노가 NBC 센터에만 있는 스타벅스에서 김동성에게 커피를 사다주기도 했다. 그리고 여자 3000m 계주 결승전에서 일어난 중국의 실격에 대해, 중국 측은 왜 실격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그는 심판의 판정이 옳았다고 해설했다는 게 알려져 한국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김동성은 대인배고, 오노는 철이 좀 든 것 같다. 해설자로 데뷔하면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대한 평을 했는데, 남자 대표팀에 대해서는 "김동성이나 안현수가 뛰던 시절의 강력함이 보이지 않는다"고 평했고, 이어 "가장 뛰어난 선수들을[27] 를 부상으로 인해서 내보낼 수 없음으로 인해 힘든 올림픽이 될 것"이라 평했고, 여자 대표팀은 최강으로 인정했으나 심석희의 3관왕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수 1명이 올림픽 메달을 휩쓰는 건 어렵다"며 낮게 봤다. 빅토르 안에 대해서는 기술, 경험, 능력이 모두 전성기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평했다.
2018년 현재 한국의 한 가상화폐 거래소 운영업체에서 임원으로 재직 중인 게 확인되었다.
4. 수상 기록
5. 기타
- 원래는 안톤 오노라고 부르지 않고 아폴로 오노라고 부르는 게 맞다. 아폴로가 이름(First Name)이고 안톤은 보통은 쓰지 않는 미들 네임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안톤이라고 자칭하면 또 모르는데 한국에서 굳이 안톤이라고 부르는 건 역시 아폴로라고 부르기 민망한 걸로 추측된다. 사실 솔트레이크 올림픽 당시에는 아폴로 오노라고 부르는 언론도 없지는 않았는데 안톤 오노라고 부르는 언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30]
- 꼭 '할리우드 액션'이란 별명이 아니더라도 꽤나 쇼맨십에 능숙한 인간임에는 분명하다. "Dancing with the Stars"라는 미국 TV 쇼[31] 에 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으며 2007년에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 올림픽 경기에서 한국과의 악연으로 인해 각종 드립과 농담거리의 소재로 유명했다. 예를 들자면 오노가 가장 싫어하는 과자는 Oh Yes! 라는 식의 농담까지 나왔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오노와 한국 선수들과 심판을 소재로 한 농담들도 상당히 유행했었다.
- 맥도날드, GE, 코카콜라, AT&T, 네슬레 등 굵직한 기업들의 후원도 많이 받는 편이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2009년 오노는 150만 달러를 벌어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 중에서 5번째로 소득이 높다.[32] 그의 스폰서 중 하나인 알래스카 항공에서는 오노의 모습이 그려진 래핑 항공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오메가에서 2010년부터 그를 후원했다.
- 2012년 6월 6일 방송된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김동성은 오노를 언급하면서 그가 자서전에 김동성으로부터 "네가 1등이고 최고의 선수다"라는 말을 들었고 자신의 실력을 인정했다는 헛소리를 적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 2019~2020년 들어서 그가 조금씩 재평가되고 있기도 하는데, 김동성이 여성 편력 문제가 나오고 양육비 문제로 배드 파더스에 등재되자 안톤 오노는 그래도 사생활적인 문제에서는 깨끗하지 않냐는 평가도 생기고 있다.
-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전후를 생각하면 오노보다는 리자쥔이 더 욕을 들어먹어야 마땅했으나, 당시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으로 인해 유례없이 강했던 반미 정서와 겹쳐 한국 사람들의 공적이 되었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이 메달 색깔에 영향을 끼쳤고 비매너 행위인 것은 맞지만, 그와 경기하면서 선수 생활이 위험할 일은 거의 없었다. 반면 리자쥔은 실제로 빙판 위의 흉기였고 거침없이 날을 밀어대는 바람에, 김동성이 현역 시절 부상을 입기도 했다.
6. 관련 문서
[1] 이름과 외모로 미루어 보아 알 수 있겠지만 아버지가 일본인이고 어머니가 백인인 일본계 미국인이다. 어머니가 어릴 적에 가족을 떠나, 아버지 밑에서 엄하게 자랐다고 한다.[2] 그와 같이 3회 이상 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바로 샤를 아믈랭으로 2006년부터 2018년까지 메달을 땄다.[3] 빅토르 안과 더불어 쇼트트랙 남녀 통틀어서 최다 올림픽 메달(8개) 보유자다.[4] 단거리 500m부터 장거리 1500m까지 골고루 잘 타는 올라운더였으며, 올림픽 전종목 메달은 마크 가뇽, 빅토르 안에 이은 역대 3번째 기록으로 여자부 왕멍, 박승희까지 세계에서 다섯 명밖에 없는 기록이다.[5] 총 3회로 4회 우승을 기록한 양양(A)에 이은 역대 2번째로 많은 우승횟수. 왕멍이 2009-10 시즌에 한 번 더 우승하면서 그와 타이를 기록했고, 심석희가 2012-13 시즌부터 2014-15 시즌까지 3연패를 하여 타이 기록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수자네 슐팅이 3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그와 타이를 이루었다.[6] 물론 미국에서의 이야기는 아니고, 오노의 비매너 플레이로 피해를 입은 해외 국가들 한정이다. 대표적인 국가로는 캐나다, 한국이 있다.[7] 미국, 캐나다, 중국이 ISU에 끼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아서 다른 나라 선수들이 불리한 판정을 받을 확률이 높다.[8] 그 당시 오노는 스티브 유와 함께 거의 국민역적이었다. 이 오노사건과 그 후에 일어난 미선이 효순이 사건 때문에 반미감정이 거의 최고조에 이르렀다. 2002 월드컵에서 미국전의 분위기도 매우 험악했고 안정환이 골을 넣으니깐 그 세레머니를 했다. 야구로 치면 오재원, 농구로 치면 이정현 급 밉상인 셈이다.[9] 사실 2002 월드컵 때의 토티나 비에리도 정말 비매너의 극치를 보였음에도 오노보단 덜까였다. 아무래도 이겼으니 어느정도 희석이 된것이다. 오노는 말그대로 금메달 강탈을 했다. 비에리는 김태영의 코뼈를 부러뜨렸다. 토티도 내내 더티플레이를 했고 말이다. 물론 마지막에 할리우드 액션은 논란이 있겠지만 그 액션으로 PK를 얻고 만약 우리가 졌다면 토티와 비에리는 정말 오노급으로 까였을지도 모른다.[10] 리자쥔이 68점으로 종합 우승을 했으며 5점 차이가 난 마크 가뇽하고 동점이었는데 슈퍼 파이널에서 1등으로 들어와 종합 순위 2위가 되었다.[11] 이로 인해 1000m 진출권을 따냈다.[12] 그 이전 올림픽 메달은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남자 계주 은메달이 전부였다.[13] 심판 양반 덕분에 이후 쇼트트랙에는 비디오 판정이 도입되었지만 성과는 그다지 좋지 못한 듯하다. 그 심판이 이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비디오 판정을 이용해 한국 선수를 실격시켰으니 말 다했다.[14] 미국의 기계체조선수 폴 햄, 스위스의 축구 선수 알렉산더 프라이, 독일의 펜싱 선수 브리타 하이데만, 영국의 쇼트트랙 선수 엘리스 크리스티가 한국인들로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였지만 오노만큼은 아니었다. 오노 이후 오노와 비견될 정도로 전국민적으로 까인 경우는 러시아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장현수, 야구 선수 오지환 정도가 고작이다.[15] 당시에도 초등학생들의 별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름을 토대로 별명을 짓는 경우가 많은 초등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원호, 온호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들에게 이 치욕스러운 별명을 선사했다.[16] 여담으로 오노 사태 10년 뒤인 2012년 1월에 김동성이 SBS 도전 1000곡에 출연해서 "오노를 위해 번호를 고르겠다" 며 '''곡 번호를 369로 선택'''한 다음 김현식의 '사랑사랑사랑'을 불렀다고 한다.[17] 무려 15년이다. 아닌게 아니라 "금메달를 팔아서 병원비 내야겠군요" 라는 대사처럼 만만치 않은 병원비에 선수생활은 당연히 은퇴를 해야되는 수준이다. 그정도로 오노에 대한 분노가 엄청났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다. [18] 여기에 올림픽 전에 터진 9.11 테러 사건 때문에 조지 W. 부시나 오사마 빈 라덴도 합성물에 많이 나온 것은 덤이다. 애초 대회 개막식부터 9.11 테러 당시 잔해에 발견된 성조기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이외에도 상술한 은메달리스트인 리자쥔도 종종 합성물에 끼는 경우가 있었다.[19] 이후 시대가 변하면서 이런 소리 하면 무조건 장애인 비하로 분류된다. 16년 후 제도권 정당의 한 정치인이 왜 논란에 휩싸였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20] 그리고 이것은 12년 후 이근호에 의해 재연되었다.[21] 참고로 할리우드 액션에 묻혀서 그렇지 동료는 그보다 더 심한 짓을 했다. 중반에 한국 선수를 미는 바람에 그 선수는 이 경기에서 큰 부상을 입었다.[22] 당시 2005 세계선수권 우승, 2005-06 시즌 월드컵 종합 우승, 세계랭킹 1위.[23] 2005-06 시즌 월드컵 종합 준우승, 세계랭킹 2위.[24] 그 당시 레이스 경기의 경우 부정 출발은 2번까지 허용되었으며 2010년부터는 한 번만 해도 바로 실격 처리된다.[25] 성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두 선수는 형제다.[26] 하루 전에 심판진이 교체되었으며 독일 출신이 심판을 보았다. 성시백이 넘어진 건 고질적인 발목 부상으로 넘어진 것이다.[27] 곽윤기, 노진규 [28] 문제의 헐리우드 액션이 나온 경기다.[29] 성시백 선수가 이 선수의 경기 차림복 형태가 비슷하다. 같이 참여한 트랑블레 선수도 밴쿠버 올림픽 이전까지는 고글을 착용하지 않았다.[30] 비슷한 예로 미국의 전직 여자 육상 선수인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도 '그리피스 조이너'라고 불리지만, 플로렌스 조이너가 맞다.[31] 본래 영국 BBC가 오리지널인 프로그램으로, 한국에서도 MBC가 포맷을 수입하여 제작한 적이 있다. 영국에서의 원제는 Strictly Come Dancing이다.[32] 1위는 750만 달러를 벌어들인 김연아와 숀 화이트가 공동으로 차지했다. 다만 내셔널 하키 리그(NHL) 등 프로 선수는 제외한 통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