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1. 개요
2. 유치
3. 마스코트
4. 종목
5. 개막식
6. 성적
6.1. 1일째 (2월 13일)
6.2. 2일째 (2월 14일)
6.3. 3일째 (2월 15일)
6.4. 4일째 (2월 16일)
6.5. 5일째 (2월 17일)
6.6. 6일째 (2월 18일)
6.7. 7일째 (2월 19일)
6.8. 8일째 (2월 20일)
6.9. 9일째 (2월 21일)
6.10. 10일째 (2월 22일)
6.11. 11일째 (2월 23일)
6.12. 12일째 (2월 24일)
6.13. 13일째 (2월 25일)
6.14. 14일째 (2월 26일)
6.15. 15일째 (2월 27일)
6.16. 16일째 (2월 28일)
6.17. 17일째 (3월 1일)
8. 명경기
9. 사건
10.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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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0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21번째 동계 올림픽. 총 82개국에서 2629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캐나다에서는 1988년 2월에 열렸던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이후 22년 만에 개최한 동계올림픽이자, 1976 몬트리올 올림픽까지 포함하면 3번째로 개최한 올림픽이다.
2. 유치
캐나다올림픽위원회 내에서 밴쿠버, 퀘벡(몬트리올), 캘거리 중에서 2차투표에서 밴쿠버가 결정되었다.
동계올림픽 개최에 나선 도시는
밴쿠버(캐나다), 평창군(대한민국),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베른(스위스), 안도라라 라벨라(안도라), 하얼빈(중국), 자카(스페인), 사라예보(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는 유고슬라비아 하에서 이미 동계를 개최한 바 있다).
이 중 IOC에 의해 선정된 최종후보지는 밴쿠버, 평창, 잘츠부르크, 베른이었지만, 스위스 내부의 국민투표에서 베른 시민의 대다수가 거부함에 따라 베른은 자진 포기했다.
2003년 7월 2일 체코 프라하에서의 제 115차 IOC총회에서 최종 결정되었는데......
이때 1차 투표에서는 한국의 평창이 51표, 캐나다의 밴쿠버가 40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가 16표를 받아 유효표 과반(54명/107명)을 불과 세 명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평창의 우세는 당시 예측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IOC 자크 로게 위원장이 잠깐 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에선 거의 선정된 것 같은 반응이 나왔지만... 결과는 뒤집혔다.
이어 열린 2차 투표에서 잘츠부르크의 표를 흡수한 밴쿠버가 56표로서 53표에 그친 평창을 제치고 유효표 과반(55명/109명, 탈락한 오스트리아 IOC 위원 한 명+무효표 안 던진 한 명)을 넘겨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평창의 3수 전설이 시작되었다.[4]
당시 이에 대해서 엄청난 논란이 있었는데 당시 동계올림픽을 넘보고 있던 무주군이 국내 선정과정에서 평창이 개최지로 선정되자 들고 일어났고 결국 달래기 위해 체결된 것이 양해각서에 따라 2010년은 평창, 2014는 무주가 하기로 했다. 근데 문제는 당시 김운용씨가 투표 당시 ''''평창군을 찍지 마라'''' 라고 로비를 했다는 것이 밝혀져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다. 우왕ㅋ굳ㅋ.
결국 무주는 평창의 3수 도전과 함께 2014년[5] , 2018년 올림픽 유치에도 결국 나오지 못했다. 유인촌 문화체육부장관이 ''''평창의 2018 동계올림픽 유치 여부를 확인할 때까지 국제대회 유치는 없다'''' 고 발언하면서 그 꿈은 더 멀어지게 되었다.[6] 게다가 이젠 평창이 동계 올림픽을 유치해버렸으니... 지못미. 하지만 사실 무주에서 동계 올림픽 유치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한다. 당시 규정으로는 알파인 활강 스키 종목을 치르기 위해서는 상당히 높고 급경사를 가진 경기장이 필요 한데, 이러한 경기장 규격을 만족 시키기 위해서는 무주의 지형 특성상 산 꼭대기에 50층 높이의 건물을 세워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조건 때문에 불가능했다는 것. 이후 IOC에서 규정이 개정되어 낮은 경사로를 2번 뛰어 합산 거리로 기록을 측정 할 수 있게 변경 되었지만,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강원도가 그동안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 부어 조성한 알펜시아 리조트 때문에라도 무주의 동계 올림픽 유치는 사실상 먼 이야기가 된 셈.[7] 저런 시설을 평창과 무주 두 군데 중복투자를 하는 것은 어려우니... 어찌되었든 평창이 유치에 성공하면서 무주는 동계 올림픽 유치는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었고, 대신 보상 차원에서 태권도 공원 유치 사업의 유력한 후보지로 꼽히던 경주나 춘천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던 무주군이 태권도 공원을 유치하는데 성공하였다.[8]
3. 마스코트
마스코트는 미가(전설의 바다곰. 형상은 곰+범고래), 콰치(사스콰치. 그냥 빅풋). 이 외에도 수미(패럴림픽 마스코트)와 Mukmuk가 있다. 모두 같은 날 발표되었는데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마스코트가 동시에 발표된 것은 물론 같이 모습을 보이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공홈에 들어가보면 알 수 있듯이 얘네들 귀여움이 장난 아니다. 이는 이들을 그린 사람들 Meomi가 원래부터 귀여운 캐릭터를 만드는 디자이너 듀오라서...[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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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스테이 프로그램에 쓰인 것으로 왼쪽이 Quatchi, 침대 위 Sumi, 침대 아래 Miga, 오른쪽이 Mukm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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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 (다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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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주도한 건 바로 디자인 총감독으로 참여한 레오 오브스트바움(Leo Obstbaum)이다. 그는 이번 올림픽의 배경 그림은 물론 포스터, 픽토그램, 성화봉, 메달 등 모든 분야의 디자인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들어가보자. 2009년 8월에 세상을 떠났다.
Leo and colleague working hard on perfecting the mascot plush toys(왼쪽이 레오).
관련 상품도 잘 팔렸고 폐회 이후에도 인기가 좋은 편이다. 성공적인 올림픽 마스코트를 꼽으면 반드시 꼽힐 정도.
4. 종목
- 노르딕복합경기 (3) - 2.14, 23, 25
- 쇼트트랙 (8) - 2.13, 17, 20, 24, 26
- 스피드 스케이팅 (12) - 2.13~18, 20~21, 23~24, 26~27
- 크로스컨트리 스키 (12) - 2.15, 17, 19~20, 22, 24~25, 27~28
- 루지 (3) - 2.13~17
- 스노보드 (6) - 2.15~18, 2.26~27
- 아이스하키 (2) - 2.13~28
- 프리스타일 스키 (6) - 2.13~14, 20~25
- 바이애슬론 (10) - 2.13~14, 16, 18, 21, 23, 26
- 스켈레톤 (2) - 2.18~19
- 알파인 스키 (10) - 2.15, 17~21, 23~27
- 피겨 스케이팅 (4) - 2.14~16, 18~19, 21~23, 25, 27(갈라쇼)
- 봅슬레이 (3) - 2.20~21, 23~24, 26~27
- 스키점프 (3) - 2.12~13, 2.19~20, 22
- 컬링 (2) - 2.16~27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 정식 종목이 된 종목들이 모두 들어가있으며 거기에 프리스타일 스키 세부종목으로 스키크로스가 신설되었다. 여자 스키점프도 들어갈 듯 말 듯하였으나 결국 소송에서 패배함으로서 들어가지 못 하였으나, 결국 4년 후인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 개막식과 폐막식, 빙상(피겨 스케이팅, 스피드 스케이팅, 쇼트트랙, 컬링)은 밴쿠버와 리치먼드에서.
- 노르딕 종목(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스키점프, 노르딕 복합)은 휘슬러 산(Whistler Mountain) 서쪽의 캘러핸밸리(Callaghan Valley).
- 알파인 스키는 휘슬러 산(Creekside).
- 썰매종목(루지, 봅슬레이, 스켈레톤)은 블랙콤 산(Blackcomb Mountain).
- 프리스타일 스키와 스노보드 경기는 사이프러스 산(Cypress Mountain).
- 아이스하키 경기는 NHL팀인 밴쿠버 커넉스(Vancouver Canucks)의 홈구장인 제너럴모터스 플레이스(General Motors Place)에서 열렸다.
- 스피드 스케이팅 16명
- 쇼트트랙 10명
- 피겨 스케이팅 2명
- 스키 총 10명
- 루지 1명
- 봅슬레이 4명
- 스켈레톤 1명
- 바이애슬론 2명
대회 전의 목표는 금메달 6개 이상 획득을 통한 국가별 종합순위 10위권 이내 유지였다.
지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금 6, 은 3, 동 2의 성적을 거두었다.
결론적으로 '''금 6, 은 6, 동 2'''의 성적을 거두었다. 세부종목별로는 쇼트트랙 금 2(남 1000, 남 1500), 은 4(남 500, 남1500, 남계주 5000, 여 1500), 동 2(여 1000, 여 1500)/스피드 스케이팅 금 3(남 500, 남 10000, 여 500), 은 2(남 1000, 남 5000)/피겨 금 1(여자 싱글).
금메달 개수를 우선하는 국제식 계산으로는 5위, 전체 메달로 순위를 매기는 미국식 방식으로는 14개로 종합 7위다. 참고로 메달 순위 집계 방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때부터 문제가 되어왔다고 한다.)
어쨌든 한국은 금메달 숫자는 전 대회와 똑같지만 메달 수(14개)로 보나 성적(국내식으로 하면 5위)으로 보나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초반 스피드 스케이팅의 선전으로 예상보다 많은 메달을 딸 것 같아보였지만('''금메달 10개'''라는 설레발이 나오기까지 했다) 여자 쇼트트랙의 경우 중국의 벽에 막혀 예전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실제로 노골드에 그치면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여자 계주의 경우 다 잡은 금메달을 막판의 제임스 휴이시의 해외언론에서도 애매한 답변을 내놓을 정도로 이유를 모를 판정으로 놓쳐 더욱 안타까움을 더했다. 다행히 남자 쇼트트랙의 경우는 무난하게 목표를 달성하였고 무엇보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예상을 넘은 큰 쾌거로 한국이 더 이상 "쇼트트랙만 잘 하는 나라"가 아닌 "빙상 강국" 으로 도약했음을 알렸다. 스피드스케이팅 3남매(이승훈, 이상화, 모태범)의 금메달과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부문 금메달을 합치면 '''빙상 그랜드슬램'''이라고 하는데, 빙상 3개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낸 것. 한 동계 올림픽 대회에서 이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나라는 한국, 미국, 캐나다밖에 없다.[11]
하지만 '눈과 얼음의 축제'인 동계올림픽에서 여전한 설상(눈)종목의 부진은 다음 과제로서 남겨졌는데, 썰매 종목에서 사상 첫 출전에서 결선 진출을 이뤄낸 봅슬레이 4인조 대표팀의 성과는 결코 작지 않은 진전이었으며 향후 전망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였으며[12] 빙상 종목이 아닌 동계올림픽 종목들에 대해서도 걸맞는 투자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5. 개막식
- 캐나다는 개막식을 최초로 실내에서 개최하였다. 누가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고향 아니랄까봐 화려한 개막식을 자랑하였다. 원주민(First Nations)과의 화합의 문제가 당시 화두로 등장하기 시작하였기에, 경기가 개최되는 밴쿠버-휘슬러에 위치한 4개 Nations의 대표가 나와서 환영하는 것으로 개막식이 시작되었으며, 캐나다 전국의 원주민들이 모여서 축제를 진행한다는 스토리라인이었다.
- 캐나다 국기 게양식에서 캐나다 국기가 완전히 펴지지 않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 있었다.
- 게양을 위해 캐나다 국기가 입장하는 과정에서는 왕립기마경찰청이 국기를 옮겼다. 2014년 소치에서는 따로 국기 입장식이 없었고, 2018년 평창에서는 스포츠 스타들이 태극기를 옮긴 것과 대조해보면 캐나다에서 경찰대가 가지는 독특한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 개막식 성화 장면을 잘 보면 성화 주자들이 바닥에서 올라와서 서로 엮이는 기둥에 불을 붙이게 되어있는데 4개가 올라와야 하건만 3개만 올라오고 하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그 하나를 담당했던 주자는 그냥 멀뚱멀뚱 구경만... 이후 폐막식 퍼포먼스 첫 순서에서 이전에 불을 붙이지 못했던 성화 주자 카트리오나 르 메 돈(Catriona Le May Doan)이 재등장, 문제의 성화대 하나를 올리고 불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폐막식이니만큼 불이 얼마 못 갔지만...
- 캐나다의 공식 언어는 영어와 불어 두 가지인데,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의 국가 입장순서는 영어순이었다. 밴쿠버가 속한 브리티시 컬럼비아주가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
6. 성적
한국을 비롯하여 캐나다, 미국, 중국 등은 동계올림픽 참가 사상 가장 많은 금메달을 얻으며 분위기가 좋았던 반면, 러시아, 일본, 이탈리아, 핀란드 등은 부진한 성적에 울상.
개최국 캐나다는 금메달만 14개를 획득하여, 이전에 2차례 치렀던 올림픽에서 노골드 징크스를 단번에 깨뜨릴 수 있었다. 금 14, 은7, 동5로 총 26개의 메달을 획득. 단일 동계 올림픽에서 한 국가가 14개의 금메달을 얻은 것은 사상 최고의 성적이었다. 금메달 수 기준으로 캐나다가 종합 1위를 차지하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처럼 총메달을 기준으로 메달 순위를 매기던 캐나다 언론에서는 금메달을 우선시하여 메달 순위를 집계하면서 캐나다가 종합 우승을 했다고 한다. 빙상, 썰매, 스키 종목에서 고루 강세를 보였지만, 아이스하키에서 남녀 모두 금메달을 딴 것이 캐나다에서는 가장 기쁜 일이었다. 시드니 크로스비의 연장전 골든골로 미국을 꺾은 남자 아이스하키가 대미를 장식했다.
미국은 금9, 은15, 동13개로 총 37개의 메달을 얻었으며 메달총계 기준으로는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미디어에서는 자국에서 열린 1932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이후 78년만에 종합 우승했다고 엄청나게 자랑스러워했다.[13] 아폴로 안톤 오노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은 없었지만, 은1과 동2을 추가하여 동계올림픽 통산 메달 8개를 기록, 미국 동계올림픽 참가 선수 중 가장 많은 메달을 딴 것도 화제였다. 노르딕 복합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그동안 유럽 국가들이 주도하던 노르딕 스키에서 미국 선수가 사상 처음으로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도 주목을 받았다.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는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미라이 나가수가 종합 4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금메달 5개를 따며, 동계 올림픽 참가 사상 처음으로 톱10에 진입했다. 여자 쇼트트랙 4개의 금메달을 싹쓸이하고, 피겨 스케이팅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 프리스타일 에어리얼 강국답게 여기서도 메달을 따고, 처음 참가한 여자 컬링에서도 동메달을 얻었다.
지난대회 금2 은8 동9로 부진한 노르웨이는[14] 금메달 9개, 은메달 8개 동메달 6개로 다시 부활한 모습을 보여줬다.
러시아의 부진은 가장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금메달 3개로 종합 11위에 그친 것. 소련 시절에는 늘 종합 1, 2위를 오가던 위엄은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말았고, 차기 개최국으로서의 체면도 서지 않게 되었다. 성적 부진에 화가 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동계올림픽 예산 사용내역을 감사할 것을 지시하는가 하면, 체육부 장관 해임까지 거론될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일본은 피겨 스케이팅과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은3, 동2을 땄다. 총 메달 수는 금메달 1개만 땄던 전 대회에 비해 늘어나서 본전은 뽑았다는 분위기도 있지만,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성적이라는 것이 중론. 자국에서 열렸던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이후 가장 많은 종목에 가장 많은 선수단을 파견했으나, 선수단 규모와 참가종목 수가 적은 한국과 중국에 밀리면서 "종목만 다양한데 최고는 없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왔다. 일본은 그전까지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은 적지만, 다양한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에 총 메달 획득 개수만큼은 한국과 중국보다 많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총메달 개수마저 한국과 중국에 밀리게 되었다. 많은 선수를 파견한 만큼, 다양한 종목에서 큰 기대를 했으나, 아쉬운 차이로 메달을 놓친 경우가 많았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에서 4위를 하여 기대를 모았던 미나가와 겐타로는 이번에는 미끄러지면서 실격되어 버렸고, 미나가와의 부인이자 프리스타일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여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던 우에무라 아이코는 이번에 4위로 메달을 놓쳤다. 노르딕 복합과 스키점프 단체전에서도 메달이 유력시되기도 했으나, 각각 6위, 5위로 메달을 못 땄다. 피겨 스케이팅에서는 아사다 마오가 은메달을 딴 것이 아쉽다고도 하지만, 김연아의 실력이 워낙 넘사벽이다 보니 체념하는 듯 하고, 대신 다카하시 다이스케가 남자 싱글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딴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는 남자 500m에서 은, 동을 한꺼번에 따고, 여자 단체 추발에서 예상 외의 은메달을 딴 것으로 만족하는 분위기.[15] 다만, 일본 선수가 메달을 딸 때,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경우가 특히 두드러지게 보여 분위기가 더 저조했다고도 한다. 일본 선수가 시상대에 오른 것이 4차례인데[16] , 그 중 2차례는 금메달을 한국 선수들이 얻어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러퍼졌다.
6.1. 1일째 (2월 13일)
- 개막식 [17]
- 스키점프 노멀힐(K-90) 개인전 예선
김현기(22위, 본선진출), 최흥철(40위, 본선진출), 최용직(43위, 탈락)
6.2. 2일째 (2월 14일)
- 스키점프 노멀힐(K-90) 개인전 본선
김현기(40위), 최흥철(48위).
둘 다 결선 진출 실패.
둘 다 결선 진출 실패.
-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0m
이승훈 은메달
- 바이애슬론 여자 7.5km 스프린트
문지희(56위)
- 프리스타일 여자 모굴 결승
서정화 (21위)
- 쇼트트랙 남자 1500m
- 루지 남자 싱글
이용 (1차 36위, 2차 34위)
6.3. 3일째 (2월 15일)
- 바이애슬론 남자 10km
이인복(65위)
-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3000m
노선영(19위), 이주연(23위), 박도영(26위)
- 루지 남자 싱글 결승
이용 (3차 35위, 4차 37위)
6.4. 4일째 (2월 16일)
- 크로스컨트리 여자 개인 10km
이채원 (54위)
- 크로스컨트리 남자 개인 15km
이준길 (79위)
-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
모태범 금메달(1차 인 코스 기록 34.92, 2차 아웃코스 기록 34.90), 이강석 4위, 이규혁 15위, 문준 19위.
한국의 동계올림픽 출전 사상 '쇼트트랙 외의 종목' 에서 나온 최초의 금메달!
사람들의 초점은 세계랭킹 상위 랭커인 이규혁과 이강석에게 맞추어져 있었으나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다크호스 모태범[18][19] 이 금메달을 수상. 1번째 레이스에서 2위, 2번째 레이스에서 2위. 2위를 2회 후 금메달을 수상했다. 1회차와 2회차의 레이스 기록을 합산해서 빠른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는 스피드 스케이팅 단거리 특유의 계산방법 덕에 거둔 쾌거. 황신의 가호가 있었던 듯. 이 날은 마침 자신의 생일이었다. 자기가 자신에게 금메달을 선물해준 격. 나중에 모태범이 500m보다 1000m에 더 자신 있다고 말해 1000m에서도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다. 이 종목 메달은 8년 후 비록 은메달이긴 하지만 차민규가 계보를 이어갔다.
한국의 동계올림픽 출전 사상 '쇼트트랙 외의 종목' 에서 나온 최초의 금메달!
사람들의 초점은 세계랭킹 상위 랭커인 이규혁과 이강석에게 맞추어져 있었으나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다크호스 모태범[18][19] 이 금메달을 수상. 1번째 레이스에서 2위, 2번째 레이스에서 2위. 2위를 2회 후 금메달을 수상했다. 1회차와 2회차의 레이스 기록을 합산해서 빠른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는 스피드 스케이팅 단거리 특유의 계산방법 덕에 거둔 쾌거. 황신의 가호가 있었던 듯. 이 날은 마침 자신의 생일이었다. 자기가 자신에게 금메달을 선물해준 격. 나중에 모태범이 500m보다 1000m에 더 자신 있다고 말해 1000m에서도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다. 이 종목 메달은 8년 후 비록 은메달이긴 하지만 차민규가 계보를 이어갔다.
6.5. 5일째 (2월 17일)
-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이상화 금메달(1차 38초249 2차 37초850, 합계 76초09), 안지민 31위, 오민지 32위, 이보라 26위.
한국 여자 빙속 사상 첫 메달이자 첫 금메달을 수상하며 기염을 토했는데, 남자 빙속의 경우 모태범의 금메달 이전에도 김윤만, 이강석 등의 역대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존재하였으나 여자 빙속은 벤쿠버올림픽이 사상 첫 메달이었는데 이게 금메달이었다. 더 대단한 것은 당시 세계랭킹에서 1위 자리를 다투던 독일의 예니 볼프[1차] 와 중국의 왕 베이싱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덧붙여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메달을 딴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가 한국체대 동기며 특히 모태범과는 초등학생 때부터 알던 사이라 빙속 3남매라고 불리며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한국 여자 빙속 사상 첫 메달이자 첫 금메달을 수상하며 기염을 토했는데, 남자 빙속의 경우 모태범의 금메달 이전에도 김윤만, 이강석 등의 역대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존재하였으나 여자 빙속은 벤쿠버올림픽이 사상 첫 메달이었는데 이게 금메달이었다. 더 대단한 것은 당시 세계랭킹에서 1위 자리를 다투던 독일의 예니 볼프[1차] 와 중국의 왕 베이싱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덧붙여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메달을 딴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가 한국체대 동기며 특히 모태범과는 초등학생 때부터 알던 사이라 빙속 3남매라고 불리며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6.6. 6일째 (2월 18일)
- 스노우보드 남자 하프파이프
김호준 예선 탈락 (1차 18위, 2차 8위)
-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m
- 쇼트트랙 여자 500m
- 쇼트트랙 남자 1000m 조별전
-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준결승
6.7. 7일째 (2월 19일)
- 바이애슬론 여자 15km 개인
문지희(73위)
- 바이애슬론 남자 20Km 개인
이인복(71위)
-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1000m
김유림 넘어져서 탈락, 이상화 23위.
- 스켈레톤 남자 1차, 2차 시기
조인호(1차 22위, 2차 24위)
6.8. 8일째 (2월 20일)
- 스키 점프 라지힐 개인 예선
김현기(33위), 최흥철(34위), 최용직(46위, 결승 진출 실패)
- 크로스컨트리 여자 15km 추발
이채원(59위)
- 스켈레톤 남자 3차, 4차 시기
조인호(3차 23위, 4차 진출 실패)
6.9. 9일째 (2월 21일)
- 스키 점프 라지힐 개인 1라운드
김현기(42위), 최흥철(49위), 둘 다 결승 진출 실패.
-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500m
모태범(5위), 이종우(22위), 하홍선(31위)
- 쇼트트랙 여자 1500m
이은별 은메달, 박승희 동메달, 조해리(5위)
그놈의 부정출발과 선수가 넘어져 재출발, 거기에 어드밴티지까지 주여져 결승전에서 사상 초유의 8명 동시 출발이 이루어졌다. 보통 쇼트트랙은 4명 1조로 구성이 되어지고 1500m는 거리의 특수성 때문에 6명 1조로 이루어지는데 이미 예선에서부터 어드밴티지가 차곡차곡 쌓여 준결승에서 3조 중 7명 출발이 한 조가 생겨버렸다. Final A에선 8명이 뛰는 사태가 벌어졌었다(개인 3000m에서는 8명이 뛴다고는 하지만 이건 1500m다). Final B는 대신에 4명 출발했지만.
그놈의 부정출발과 선수가 넘어져 재출발, 거기에 어드밴티지까지 주여져 결승전에서 사상 초유의 8명 동시 출발이 이루어졌다. 보통 쇼트트랙은 4명 1조로 구성이 되어지고 1500m는 거리의 특수성 때문에 6명 1조로 이루어지는데 이미 예선에서부터 어드밴티지가 차곡차곡 쌓여 준결승에서 3조 중 7명 출발이 한 조가 생겨버렸다. Final A에선 8명이 뛰는 사태가 벌어졌었다(개인 3000m에서는 8명이 뛴다고는 하지만 이건 1500m다). Final B는 대신에 4명 출발했지만.
- 쇼트트랙 남자 1000m
이정수 금메달, 이호석 은메달, 성시백(결승 진출 실패 후 순위결정전인 Final B에서 실격, 7위)
선수들이 준결승에서 차례차례 실격당한 탓에 이 Final B에선 2명 1조라는 괴이한 경기가 펼쳐졌다(...).
선수들이 준결승에서 차례차례 실격당한 탓에 이 Final B에선 2명 1조라는 괴이한 경기가 펼쳐졌다(...).
6.10. 10일째 (2월 22일)
-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1500m
노선영(30위), 이주연(33위)
6.11. 11일째 (2월 23일)
한국 선수 출장 경기 없음
6.12. 12일째 (2월 24일)
- 알파인스키 남자 대회전
김우성(실격)
-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0m
이승훈 금메달(12분 58초 55)
올림픽 신기록이자 아시아 선수 최초로 빙속 장거리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10000m 공식대회 단 3번째 출전에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놀라운 성과. 그간 아시아에선 여자 장거리에서만 메달이 있었다. 다만 약간의 운이 따라주긴 하였다. 이승훈 문서 참조. ~
올림픽 신기록이자 아시아 선수 최초로 빙속 장거리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10000m 공식대회 단 3번째 출전에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놀라운 성과. 그간 아시아에선 여자 장거리에서만 메달이 있었다. 다만 약간의 운이 따라주긴 하였다. 이승훈 문서 참조. ~
- 피겨 스케이팅 여자 쇼트 프로그램
김연아 1위(기술점수 44.70+구성점수 33.80/합계 78.50), 곽민정 16위(기술점수 31.40+구성점수 21.76/합계 53.16)
먼저 경기를 펼친 아사다 마오가 73.78점이란 고득점을 획득함으로써 지켜보던 사람들을 조마조마하게 했지만 김연아는 바로 보란 듯이 78.50이라는 세계 신기록을 기록하였다. 곽민정은 16위로 프리 진출.
먼저 경기를 펼친 아사다 마오가 73.78점이란 고득점을 획득함으로써 지켜보던 사람들을 조마조마하게 했지만 김연아는 바로 보란 듯이 78.50이라는 세계 신기록을 기록하였다. 곽민정은 16위로 프리 진출.
6.13. 13일째 (2월 25일)
- 알파인 스키 여자 대회전 1차 시기
김선주 (53위)
- 쇼트트랙 여자 1000m 예선
박승희, 조해리 셋 다 조 1위로 준준결승 진출
- 쇼트트랙 남자 500m 예선
성시백, 이호석, 곽윤기 셋 다 조 1위로 준준결승 진출
-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
6.14. 14일째 (2월 26일)
- 알파인 스키 여자 대회전 2차 시기
김선주 (종합 49위)
- 피겨 스케이팅 여자 프리 스케이팅
김연아 금메달(프리 150.06+쇼트 78.50=총점 228.56점), 곽민정 13위(프리 102.37+쇼트 53.16=총점 155.53점)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 메달만 있었던 한국에 최초의 피겨스케이팅 메달, 금메달을 안겨준다.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사상 금메달을 획득한 두 번째 아시아 여성이 되었다.
이로써 김연아는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사대륙선수권+그랑프리파이널 석권)을 달성한다.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 메달만 있었던 한국에 최초의 피겨스케이팅 메달, 금메달을 안겨준다.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사상 금메달을 획득한 두 번째 아시아 여성이 되었다.
이로써 김연아는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사대륙선수권+그랑프리파이널 석권)을 달성한다.
올림픽에서만 본인이 세웠던 세계신기록들을 세 번이나 갱신하며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사상 최초로 쇼트프로그램 75점대, 프리스케이팅 135점대, 140점대, 145점대, 150점대, 총점 200점대, 205점대, 210점대, 215점대, 220점대 225점대를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김연아 선수는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다. 점수는 쇼트, 프리, 총점 모든 분야에서 월드 베스트. 2위인 아사다 마오와의 점수 차이가 23.06점이다.
곽민정 선수의 순위도 김연아를 제외한 역대 한국 피겨 역사상 최고 순위.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곽민정 선수의 순위도 김연아를 제외한 역대 한국 피겨 역사상 최고 순위.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6.15. 15일째 (2월 27일)
- 알파인 스키 여자 회전
김선주(1차 58위, 2차 46위)
-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단체 추발 8강
이승훈, 이종우, 하홍선(탈락, 최종순위 5위)
-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단체 추발 8강
노선영, 박도영, 이주연(탈락, 최종순위 8위)
- 봅슬레이 4인승 1차, 2차 주행
선수는 강광배, 김동현, 김정수, 이진희. 1차 23위, 2차 18위
- 쇼트트랙 남자 500m
성시백 은메달, 곽윤기(결승 진출 실패, 5위), 이호석(결승 진출 실패, 8위)
성시백은 금메달을 바로 앞에 둔 상황에서 미끄러져서 아쉬움을 샀다. 일단 넘어진 채로 3위로 들어왔는데 오노가 실격하면서 은메달이 되었다.
성시백은 금메달을 바로 앞에 둔 상황에서 미끄러져서 아쉬움을 샀다. 일단 넘어진 채로 3위로 들어왔는데 오노가 실격하면서 은메달이 되었다.
- 쇼트트랙 여자 1000m
-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
6.16. 16일째 (2월 28일)
- 알파인 스키 남자 회전 1차, 2차 시기
- 봅슬레이 4인승 3차, 4차 주행
선수는 강광배, 김동현, 김정수, 이진희. 3차 20위, 4차 19위.
봅슬레이의 경우 한국에선 불모지나 마찬가지고 이번이 첫 출전이다. 게다가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결승(4차)에 진출해 큰 의미를 갖는다. 또한 강광배는 이 대회를 통해서 세계 최초로 올림픽의 세 썰매 종목인 루지, 스켈레톤, 봅슬레이에 모두 출전하는 선수가 되었다.
봅슬레이의 경우 한국에선 불모지나 마찬가지고 이번이 첫 출전이다. 게다가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결승(4차)에 진출해 큰 의미를 갖는다. 또한 강광배는 이 대회를 통해서 세계 최초로 올림픽의 세 썰매 종목인 루지, 스켈레톤, 봅슬레이에 모두 출전하는 선수가 되었다.
6.17. 17일째 (3월 1일)
- 폐막식
7.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성적
■ 2010 21회 벤쿠버 동계올림픽 (2010 Winter Vancouver Olympics)
- 기간 : 2월 12일 ~ 2월 28일
- 종목 : 86개
- 참가선수 : 2,566명
- 개막일 : 2010년 2월 12일
- 폐막일 : 2010년 2월 28일
- 쇼트트랙 남자 1,000m 이정수 (금메달)
- 쇼트트랙 남자 1,500m 이정수 (금메달)
-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0m 이승훈 (금메달)
-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모태범 (금메달)
-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이상화 (금메달)
-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김연아 (금메달)
- 쇼트트랙 남자 500m 성시백 (은메달)
- 쇼트트랙 남자 1,000m 이호석 (은메달)
- 쇼트트랙 여자 1,500m 이은별 (은메달)
-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곽윤기, 이호석, 성시백, 이정수, 김성일) (은메달)
-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모태범 (은메달)
-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 이승훈 (은메달)
- 쇼트트랙 여자 1,000m 박승희 (동메달)
- 쇼트트랙 여자 1,500m 박승희 (동메달)
[image]
8. 명경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스캔들로 얼룩졌던 전전 대회와 지루한 경기로 끝났던 전 대회와는 달리 피겨스케이팅에서 여러 명경기들이 펼쳐졌다. 당시 캐나다 및 북미의 피겨스케이팅 열기는 다른 동계올림픽 종목들에 밀리며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조아니 로셰트가 인터뷰에서 "캐나다에서는 '''비인기 종목'''인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호응이 한국에서는 커서 놀랐다"고 하였을 정도다. 그렇기는 하지만 개최국인 캐나다가 페어 종목을 제외한 세 종목에서 메달권을 기대해 볼 수 있었기에 나름 주목을 받았다.
그간 피겨 스케이팅의 불모지였던 한국이지만 벤쿠버 올림픽만큼은 피겨 경기가 큰 관심을 받았는데,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나온 피겨천재 김연아 선수 덕분이었다. 당시 김연아 선수의 훈련지가 캐나다에 있었고 캐나다 출신인 브라아언 오서 코치의 지도를 받았기에, 캐나다 언론에서도 김연아에게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20]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의 경우 '별들의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우승 후보가 많아서 그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엔트리만 해도 전시즌 월드챔피언인 에반 라이사첵, 수식어가 필요 없는 전설 예브게니 플루셴코, 토리노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스테판 랑비엘, 일본의 다카하시 다이스케, 캐나다의 패트릭 챈, 미국의 조니 위어, 2007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브라이언 주베르,세계 랭킹 1위 토마스 베르너, 그랑프리 파이널 준우승자 오다까지 있어 포디움을 예상하기도 힘들었다. 월드챔피언 라이사첵 조차 스포츠 도박사이트의 배당률이 1:6에 달했을 정도였으니 그만큼 남자싱글은 별들의 각축전이었다.
결과적으로 남자 싱글에서는 수많은 별들 중 미국의 에반 라이사첵이 왕좌에 올랐다. 전설 예브게니 플루셴코는 은메달 리스트가 되었으며 일본의 다카하시 다이스케가 동메달 리스트가 되면서 일본 남자 싱글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얻었다.
여자 싱글에서는 대부분이 전 시즌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며 피겨 여왕으로 불린 '''김연아'''의 압도적 우세를 점쳤다. 특히 김연아는 올림픽시즌 초부터 자신이 세운 세계신기록을 자신이 갈아치우며 전설을 쓰고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김연아의 올림픽 우승에 대해 이견이 없었지만, 유난히 일본에서는 아사다 마오의 우승을 점치는 설레발이 많았고 한국의 기자들은 클릭수 유발 및 흥미와 긴장감 조성을 위해 이를 퍼다 나르며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보란듯이 여자 싱글 올림픽 쇼트에서 김연아 선수가 1위에 오르자 북미 언론이 걱정한 유일한 것은,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이래로 여성 쇼트1위가 우승을 하지 못한 징크스를 김연아가 깰지 말지였다.
결국 여자 프리에서 김연아가 종전에 자신이 세웠던 세계신기록을 경신하며 압도적인 기량으로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다. 쇼트, 프리, 총점 모두 신기록을 세운 완벽한 1위였다. 김연아의 총점은 228.56점으로 2위인 아사다 마오보다 무려 23점이나 높은 점수였다. 이 대회에서 보여준 전설적인 연기로 김연아는 단순히 피겨퀸의 자리를 넘어 피겨 전설[21] 이 되었으며, 김연아의 프리프로그램인 '조지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은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역사에 길이 남을 프로그램이 되었다. 자세한 것은 김연아 선수 문서 참조.
동메달을 차지한 캐나다의 조아니 로셰트는 1988년 캘거리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였던 엘리자베스 맨리 이후 처음으로 조국 캐나다에 올림픽 여자 싱글 메달을 가져다준 선수가 되었다. 김연아 선수와 함께 출전한 한국의 곽민정 선수는 16세라는 어린 나이에도(이 대회에 참가한 모든 피겨 스케이터들 중에서 두번째로 어린 나이였다) 침착한 연기를 선보여 '''13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기록했다. 김연아와 곽민정 이전에 한국이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거둔 성적은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당시 정성일 선수가 남자 싱글에서 기록한 17위를 뛰어넘은 역대 최고 성적이다.
아이스 댄싱에서는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속에 캐나다의 테사 버츄 / 스캇 모이어 조가 북미 더비 라이벌인 미국의 메릴 데이비스 / 찰리 화이트 조를 넘어 금메달을 조국에 보탰다. 아이스 댄싱 종목에서 전통적 강자인 유럽이 아니라 북미가 최초로 차지한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게다가 테사 버츄와 스캇 모이어는 둘 다 이십대 초반으로 아이스 댄서로서는 어린 나이에 올림픽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 올림픽 이후로 버츄/모이어와 데이비스/화이트는 4년 동안 세계선수권에서 1, 2위를 번갈아 해먹으며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또 다시 우승을 놓고 겨루게 되었다.
페어에서는 중국의 선쉐 / 자오훙보 조와 팡칭 / 퉁젠 조가 나란히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사상 중국도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지난 두 번의 올림픽에서 두 개의 동메달에 그친게 전부였던, 쉔/자오 부부는 은퇴까지 번복하고 돌아왔으며 결국 중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독일의 알리오나 사브첸코 / 로빈 졸코비 조가 동메달을 따고, 러시아의 유코 카바구티 / 알렉산더 스미르노프 조가 4위를 기록했다. 이로써 중국은 신흥 페어 강국의 자리에 오른 반면, 러시아(소련 포함)의 12회 연속 올림픽 페어 스케이팅 금메달 기록은 끝을 맺었다.
개최지가 북미인 걸 감안해도 피겨 스케이팅에서 동구권 및 유럽이 유난히 부진하고, 북미와 아시아 등 비유럽 국가들이 선전한 대회였다.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종목에서 동구권 및 유럽 국가들이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것은 1960 스쿼밸리 동계올림픽 이후 50년 만의 일이다. 그래도 1960년에는 은메달은 모두 동구권 및 유럽 선수들이 가져갔지만, 이번에는 은메달도 남자 싱글에서 러시아 선수가 얻은 것이 전부였으며, 페어에서 독일, 아이스댄싱에서 러시아가 동메달을 따서 동구권 및 유럽 국가들은 피겨 스케이팅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2개를 가져가는 데 그쳤다. 특히 피겨스케이팅이 관심을 잃어가고 있는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아직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관심이 상당한 러시아의 충격이 컸을 것이다. 불과 4년 전 올림픽에서 피겨 스케이팅 종목에서만 금메달을 3개나 쓸어간 데 비해 이번에는 금메달은 없고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에 그친 것이다.
전반적으로 유럽 국가들이 부진했던 반면, 아시아 국가들은 가장 화려한 성적을 거두었다. 피겨 스케이팅 변방국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은 올림픽에서 딴 최초의 피겨스케이팅 메달을 금메달로 장식했다. '''4년 전 출전권을 얻지 못해 토리노올림픽에 단 한 명의 피겨스케이터도 내보내지 못했던 나라에서 올림픽 챔피언이 탄생한 것이다. 한편 그동안 은메달과 동메달만 땄던 중국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첫 금메달의 감격을 맛봤다. 전대회에서 처음으로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땄던 일본은, 이번에는 금메달은 따지 못했으나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따고, 남자 싱글에서 사상 첫 메달을 획득하였다. 캐나다는 아이스댄싱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며, 여자 싱글의 조아니 로셰트는 대회 직전에 모친을 잃는 슬픔 속에서도 선전을 펼쳐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이와 같이 비유럽권 국가들이 피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외신들도 유럽 국가의 부진과 아시아 국가의 선전을 조명했다.
총평을 내리자면,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의 뒤를 이어 피겨스케이팅 역사에서 좋은 의미로 두고두고 회자될 올림픽이다. 남자 싱글을 제외한 세 종목에서 역대급 퍼포먼스들이 나왔으며, 남자 싱글도 화려한 엔트리로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출중한 선수들의 경기를 볼 수 있었다. 특히 네 종목 모두 골고루 화젯거리[22] 가 많았던 점도 특징이었다. 선수들의 기량 또한 전 대회보다 상향화된 대회였다.
9. 사건
- 캐나다는 이전의 두 번의 주최했던 올림픽에서 노 골드라는 실망스런 성적을 거두었기에 이번에는 'Own The Podium(시상대 점령)' 이란 프로젝트를 가동하였다. 그 성과는 지난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거둔 금 7개가 금 14개로 되는 등의 역대 개최국 사상 최대의 성적. 애당초에 금메달 14개는 한 국가가 한 번의 동계올림픽에서 거둔 최대의 성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시 여겼던 캐나다의 국기 하키가 있었다. 2006년에는 총합 연봉 1억 달러가 넘는 팀이 고작 7위를 했고 "이 종목만 우승하면 다 져도 상관없다" 고까지 말했던 그 종목이었다! 결국 캐나다는 마지막날에 열린 (예선전에서 몇 십 년 만에 패배했던) 미국과의 남자 아이스하키 결승전에서 드라마틱하게도 종료 24.4초 전에 동점골을 얻어맞았지만 연장전에 들어가서는 시종일관 부진했던 시드니 크로스비(피츠버그 펭귄스)의 골든골로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 그리고 축제는 끝났고 캐나다에는 10억 미국 달러라는 빚이 남았다. 적자가 50억 달러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흑자를 기록했다는 호평에 비하면 22년이 지나 캐나다가 다시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었을 때 그 시절의 경제적인 재현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역대 최악의 적자를 보인 캐나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의 빚을 전부 갚는 데에 30년이 걸렸는데 이번에도 그 저주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3]
- 안 좋은 기상 상태 및 여러 운영 미스.. 밴쿠버의 기상 상태가 썩 좋은 것은 아닌지라 대회 초기에는 알파인 스키 경기를 전혀 못하고 있다. 날씨가 영상인 건 그렇다 쳐도 며칠동안 비가 왔다는 게 문제. 산 정상에서는 눈이 오는데 피니시라인에서는 비가 오는 아스트랄한 상황까지 나왔었다 한다. 그나마 모굴 같은 프리스타일 스키는 진행할 수 있다지만 기상이 조금만 안 좋아져도 부상 위험이 높은 알파인스키는 전부 연기된 상태. 그리고 알파인 스키는 16일의 폭설로 인해 다시 연기되었다.
사실 캐나다는 앨버타주의 로키산맥 지역이 동계올림픽 개최하기에 제일 좋은 조건이다. 실제로 레이크 루이스는 매년 FIS(국제스키연맹) 알파인스키 경기를 개최하고 있는게 사실이기도 하고... 만약 정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내에서 개최하고 싶었다면 밴쿠버가 아니라 프린스조지에서 개최했어야 했다. 기온도, 자연환경 자체도 겨울에 더 적합한 곳은 프린스조지이다. 이곳은 4월에도 아침기온은 영하로 떨어진다. 2월에는 평균적으로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게 다반사다. 누가봐도 캐나다에서 따뜻한 지역인 밴쿠버에서 개최를 결정한 캐나다의 잘못이 제일 크다.
그리고 대회가 개최 중이었던 2월 24일, '''밴쿠버 시내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16일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 도중 정빙기가 고장나는 통에 1차 시기 중간에 1시간 동안의 지체 시간이 있었다. 대체 투입된 정빙기도 얼음을 제대로 정리해주지 못하는 통에 얼음 상태는 그야말로 개판. 이 상황에서 경기가 치러졌고 그 때문인지 선수들의 최고기록에 현저히 미치지 못한 기록이 나왔다.
그리고 쇼트트랙 여자부 경기에서 스타팅 심판이 좀 막장 수준이라서 그런지 플라잉이 자주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여자 500m 예선에서 '''8경기 전부 플라잉(부정출발)'''이 나온 것은 희대의 개그라고 볼 정도. 아무리 스타트가 중요한 500m이지만 그래도 예선 8경기에서 전부 플라잉이 나온 건 심판의 문제라고 봐야 될 듯. 결국 이 스타팅 심판은 500m 준결승/결승에서도 똑같이 플라잉맨이 되어주셨다. 게다가 이 심판, 1000m에서도 또 플라잉 행진을 해주셨다(선수들이 적응했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일어났다).
남자부 500m에서 스타트를 담당했던 한국 스타터 분은 플라잉 별도 없이 제대로 진행했는데 유독 이 심판만 그랬다.
- 조지아의 루지 선수 사망.. 개막 직전 조지아의 루지 선수 노다르 쿠마리타쉬빌리가 연습 중 코스를 이탈하여 쇠기둥에 부딪치는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 사고가 발생하자 조지아 선수단은 올림픽을 포기하고 전원 철수까지 고려했다가 결국 참가를 결정. 개막식에서 애도의 뜻으로 국기 위에 검은 띠를 부착하고 선수들도 검은 목도리와 검은 띠를 착용하고 입장했다. 관중들은 모두 기립하여 조지아 선수들을 격려했으며 이후 진행 중에도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이 사고로 국제루지연맹에선 출발 지점을 아래쪽으로 당기자는 의견을 냈으며 이를 받아들여 남자 1인승 경기의 경우 출발점을 176m 아래쪽으로 당겨 여자 선수의 출발점에서 경기를 시작하기로 했으며 여자 1인승 및 2인승 경기는 주니어 선수의 출발점에서 시작하기로 했다고 한다.
아울러 이 사고로 인해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1972 뮌헨 올림픽에서 검은 9월단의 테러로 인해 이스라엘 선수들이 사망한 사고 이래 38년만에 올림픽기와 캐나다기를 조기로 게양했다.
그의 사망은 루지만이 아니라 봅슬레이, 스켈레톤 등 비슷한 코스를 이용하는 경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19일, 훈련 도중 전복 사고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링크.
거기다 23일에 스타트 위치를 수정했음에도 봅슬레이 남자 2인승 2차 시기 도중 네덜란드 1팀이 전복 사고가 일어나는 덕분에 약간의 코스 개조(11번 코너를 수정)를 해놓은 상태. 4인승 경기는 개조된 상태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조금 안전해졌다곤 하지만 '''27일 봅슬레이 경기에서 전복 사고가 속출'''했다.[24] 문제가 되었던 13번 코너에서 일본, 영국, 미국팀 등이 전복했으며 무사히 코너를 빠져나온 팀도 코너 이탈시 벽에 충돌이 있는 등[25]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후 국제봅슬레이 연맹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대회 참가 조건을 까다롭게 바꾸는 바람에... 완주율이 낮고 코스 탈락 빈도가 잦았던 한국 루지/스켈레톤 팀은 대부분 월드컵 대회를 캔슬당하는 아픔을 겪어야했다. 지금은 메달리스트 출신 외국인 코치를 영입하고 실력을 강화하여 소치 본선 진출까지 무난한 상태로 발전했다고.
- 동메달로 장난치던 미국 대표 사건.. 밴쿠버 현지 시간으로 18일에 스노우보드 하프파이프의 동메달리스트인 스카티 라고라는 선수가 그날 밤 나이트클럽에서 자신이 딴 동메달을 자신의 검열삭제에 달아맨 뒤 여성들을 유혹했다. 그런데 한 동양 여성이 거기에 키스를 했다.[26] 이게 인터넷상에 유포되며 파문이 일고 있다고 한다. 기사. 라고는 이 소식이 퍼진 후 대표팀에 사죄한 뒤 밴쿠버를 떠났지만 이미 명예는 실추된 뒤.
- 쇠고기 햄버거 먹은 인도 대표 사건.. 인도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라힘 카말 선수와 스노보드 선수 아만딥 거프릿 선수가 쇠고기가 든 햄버거를 먹다 적발되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패러디 신문의 기사를 그대로 가져다가 기사랍시고 내놓은 것으로밝혀졌다. 원문 패러디 기사. 인도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국가다. 힌두교 신자가 쇠고기를 먹더라도 종교적 비난을 받을지언정 공적 단위에서 처벌 받을 리는 없다(...)
- 케냐 선수들의 사고.. 케냐 선수 8명 중 4명이 주차장에서 사자에게 물려서 동계올림픽에 불참했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이것도 패러디 기사였다. 심지어 위와 같은 출처다. 원문 기사 링크
- 중국 선수의 부상.. 밑에 있는 '2월 25일 여자 쇼트트랙 계주 결승 실격 논란' 참고.
나중에 장후이 선수의 부상을 보고 한국 선수들의 반칙으로 중국 선수가 다친 거라는 둥 말이 많았으나 나중에 왕멍 선수가 자신의 실수로 다친 거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한국 인터넷에선 '왕멍 팀킬' 이라 불리며 유명해졌다.
10. 논란
- 해설자 관련 논란이다. 남자 피겨 스케이터는 동성애자??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피겨 스케이팅 경기를 중계하던 오스트레일리아 해설자들이 선수들을 동성애자라고 조롱해 문제가 되었다. 참고.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프랑스 해설자들도 비슷한 짓을 해서 같이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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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올림픽에 입고 나온 쇼트 프로그램 코스튬. 프리 프로그램에선 좀 정상적인 옷을 입고 나오나 싶더니 키크존에서 머리에 꽃 꽂은 남자가 되면서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국제적 논란이 될 수도 있었지만 위어 선수 본인이 기자회견에서 다소 불만을 표시하는 것 외에는 더 일이 커지지 않고 슬쩍 넘어갔다. 실수 없이 잘했어도 아쉽게 포디움엔 못 들어서... 라기보다는 나중에 터진 예브게니 플루셴코의 신채점제에 대한 불만제기 건[28] 이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의 최대 이슈로 부상해버리는 바람에 이 사건은 묻혀버린 듯.
- 2월 25일 여자 쇼트트랙 계주 결승 실격 논란: 한국 여자 쇼트트랙 계주팀은 25일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1위로 통과했음에도 오심으로 인해 디펜딩 챔피언 자리를 내주었다.
결국 여자 계주에서 중국에게 자리를 내주자 태극기를 들고 빙판을 돌면서 기쁨의 눈물을 쏟았던 한국 선수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고 김기훈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 등 코치진은 격하게 항의하기까지 했다.
방송에서 계속 중국 선수가 얼굴에 피가 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는 중국 선수들끼리 금메달 확정 후에 좋아하다가 일어난 사건이며 애당초에 피가난 선수는 문제가 된 쑨린린(111번) 선수가 아닌 장후이(113번)다.'''결론은 팀킬 아닌 팀킬'''.
해외에서도 도저히 어떻게 말할 처지가 안되는지 애매하게 평가를 하고 있으며 출전했던 중국 선수들조차 "'''왜 실격인진 모르겠지만 반칙이 있었던 것 같다'''" 라고 할 정도로 정당한 싸움이었다고 하는데 왜 혼자서 실격 처리했는지는 아직도 의문.
그리고 더 석연치 않은 점은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 때 김동성의 금메달을 아폴로 안톤 오노에게 넘긴 제임스 휴이시 심판이 이 시합의 심판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계속 발굴(?) 중이라고 할 정도로 그가 내린 석연치 않은 한국 선수 실격 판정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휴이시 심판은 자신이 심판을 맡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고 예정대로 여자부 1000m 결승까지 심판을 볼 것이라 했었으나 마지막 날인 27일 결국 독일 심판으로 교체되었다.[30]
여기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 같은 날 열린 '''중국이 금메달 따는 게 확실했던''' 프리스타일 여자 에어리얼 종목에서 호주 선수에게 통한의 일격을 당하면서 금메달을 놓쳤다. 쇼트트랙의 그 휴이시 심판의 국적은 호주이기 때문에 혹자는 이걸 보고 '이것이 올림픽'이라고 하기도... 어쨌거나 이 일 덕분에 중국은 여자 쇼트트랙 모든 종목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했으며 2관왕과 3관왕 선수를 배출했다.[31]
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대표팀 멤버였던 김민정 선수는 이 일에 여러 모로 상처를 많이 받았는지 올림픽이 끝난 후 있었던 인터뷰에서 "'''휴이시 심판에게 복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휴이시 심판을 욕하면서도 자신들을 응원해준 네티즌들의 도움이 위로가 많이 되었다고. 그리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결국 설욕에 성공했다.[32]
10.1. SBS 단독중계 논란
SBS의 독점방송으로 인해서 KBS, MBC 등은 동계올림픽 방송을 못하게 되었다. 실제로 개막식 날 MBC는 메인뉴스에서 개막식 관련 소식은 단 15초만 보도하였다. KBS와 MBC가 방송권 공유로 낸 방송통신위원회에 낸 분쟁조정신청을 SBS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제 방통위도 더이상 개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KBS, MBC가 소송을 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SBS는 현지 중계권 독점만이 아닌 영상 전송마저 거부하고 있으며 SBS측은 "KBS, MBC는 지금까지 협상 태도가 무성의했고 이제 와서 무임승차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세한 것은 이것을 참조하자. 김연아 선수 경기를 단독 중계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주장도 있다.
올림픽 팬들은 KBS, MBC 보지 말고 SBS에 채널을 고정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됐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동안 대형 스포츠 행사를 중계할 때 방송 3사가 같은 경기를 중계함으로서 벌어지는 전파 낭비 논란과 그에 의한 시청자들의 프로그램 선택권 박탈 등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논리인데 그렇다고 해서 한 방송사가 대형 스포츠 행사의 중계권을 독식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교차중계/순환중계라는 윈윈 대안도 있음을 알아두자.
하지만 14일 쇼트트랙 중계 때 처음 캐스터가 나와서 말할 때 소리가 20여 초 동안 안 나오는 방송 사고가 났다. 또한 개막식 전 스키점프 예선 때는 '''20여 분''' 동안 스튜디오 캐스터 소리는 물론 해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또 15일 스피드 스케이팅 중계 도중 박도영 선수가 출발선에 섰을 때 국적 표시를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로 했다. 우왕ㅋ굳ㅋ.
손기정이 지하에서 울 일이다. 현장에서 바로 수정되긴 했으나 예리한 기자들의 눈을 피하진 못했다.
또한 16일 모태범 선수가 금메달을 수상했을 때에도 2위를 한 일본 선수만 계속 비춰주어 "실격으로 금메달이 바뀐 줄 알았다"라는 말이 나왔다. 캐나다 현지에서 나오는 방송 신호를 통제하는 권한이 SBS측에 전혀 없기 때문에 나온 일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는 핑계를 대기도 그런 게 경기장 스크린에 다 뜨는 마당에 방송 송출 핑계 댈 수도 없는 노릇. 게다가 독점 중계할 때 자체 영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서 카메라를 갖고 가겠다고 했다니 더더욱.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지만 올림픽 폐회식을 방송할 때(재방송 포함) 한국 선수단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었다. 아시아 쪽을 거의 안 찍은 캐나다 현지 방송은 그렇다 쳐도 다른 나라 방송국들은 자체 카메라 들고 가서 찍었다는데 SBS는 만약에 대비해 자체 카메라로 찍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는 소리라 폐회식을 본 사람들 여럿이 황당해했다고 한다.
10.1.1. 제갈성렬의 해설 자질 논란
스피드 스케이팅 SBS 해설위원을 맡고 있는 제갈성렬이 '샤우팅 해설'로 논란이 되었다. 참고. 그의 해설에 대해선 같이 흥분을 느낄 수 있어서 괜찮다고 보는 사람과 전문적인 내용이 별로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 둘로 나뉘었다.
다행히 큰 문제가 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이대로만 끝났으면 심권호 해설의 사례처럼 '감정적인 해설'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지만 2월 24일에 사고를 한 번에 2개나 일으켰다. 자세한 건 제갈성렬 문서를 참고.
그나마 크라머 선수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한 걸 순순히 인정했으면 좀 나았겠지만 24일 재방송을 보여주기 전에 스튜디오에서 '실격인 줄 알고 있었으나 심판 판정이 나지 않았기에 자제하고 있었다' 라는 거짓 해명을 하여 추가적인 까임거리를 제공했다.
또한 해명 이후 재방송 때 '''원래 내용을 덮어씌워서''' 더 까였고 결국 25일에 자진하차를 했으며 해설 문제도 있지만 기독교드립 덕분에 조계종에서 태클 먹은 게 가장 크다고...
10.2. 그외
캐나다 공식 중계 방송사인 CTV 와 CBC의 폐막식 방송에서 모든 참가국 선수들이 입장하는 장면에 각 세계 선수들을 차례대로 카메라에 담으면서 '''대한민국 선수들 만 아예 하나도 화면에 찍어 내보내지 않는''' 만행을 저질렀다. 심지어 지네 나라 기수를 수많은 금,은메달리스트들 놔두고 하필 여자 피겨 동메달리스트인 조애니 료셰트 를 세워 내보내며 정작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는 전혀 꼬빼기 도 안 비췄다.
[1] 한국시간 기준. 현지기간이면 하루씩 빼면 된다.[2] 캐나다 국가(國歌)의 가사에서 따왔다.[3] 이 중 묵묵은 올림픽과 패럴림픽 양 대회의 마스코트이다.[4] 참고로 이 때와 같은 1차 투표 유럽 분산 후 2차 투표 유럽 단결 현상은 평창이 두 번이나 떨어지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5] 평창이 2010년 대회를 유치하지 못하면 무주가 유치전에 뛰어들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으나, 국제스키연맹 실사 결과 무주는 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이 판명되어 대회 유치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전북 전주시, 무주군, 익산시, 군산시는 물론 심지어 무주와 접경지인 경북 김천시에서 단체로 항의까지 했지만 애당초 무주는 부적격으로 판명났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김천시의 경우 김천-전주철도 건설에 사활을 건 상태였기 때문이다.[6] 이때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지역구 경북 김천, 現 경북도지사)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정작 해당지역구 의원인 정세균 現 국무총리는 입에 오바로크를 쳤을 정도로 조용했다.[7] 하지만 개정된 규정에도 불구하고 평창에선 가리왕산을 밀어서 스키장을 짓는다는 참으로 놀라운 발상을 실천으로 옮기면서 엄청난 비판받고 있다. 자세한 건 가리왕산 문서 참조. 이때문에 동계아시안게임 유치 여론이 매우 안좋다. 일본 삿포로에 줘버리든지 할려면 전국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무주-전주에서 하라고 난리다.[8] 그나마 경주는 한수원 본사이전+양북1터널+토함산터널 이라는 3종 종합선물세트를 받으면서 묻혔다.[9] 참고로 이 둘은 바다탐험대 옥토넛의 원작자다. 시기상 이게 먼저지만.[10] 출발 드림팀에 나온 내용을 잘못 들으신 분들이 있을 텐데, 거기 나왔던 한국인 두 명은 마스코트 '''인형'''을 만들었지 마스코트를 만든 게 아니다.[11] 일본은 스피드 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은 1998년 대회에서, 피겨 스케이팅은 2006년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서 한 대회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는 못했다.[12] 그리고 설상, 썰매 종목은 8년 뒤 모국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13] 올림픽 국가순위 집계방식에 대한 기준은 없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금메달 수 기준으로 순위를 집계한다. 하지만 사실 애초에 올림픽은 올림픽 출전 선수들 개개인의 경쟁일 뿐 공식적으로 국가순위에 대한 개념은 없다.[14]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금메달 13개로 금메달 수 1위를 한 나라다![15] 대진운도 상당히 좋았다.[16] 남자 500m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동시에 획득. 모태범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바로 그 경기다.[17] 여담으로, [18] 이 당시 모태범은 출전한 3명의 한국 선수들에 비해 국제적인 대회에서의 랭킹이 낮은 데다 500m는 그의 주종목이 아니라서 주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19] 1차 레이스가 끝나고 빙상을 정리하는 중 잠보니가 고장나서 경기가 1시간 이상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경기가 지연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 벌어졌다. 어찌어찌 경기가 재개되었으나 좋은 기록을 내기에는 빙질이 매우 떨어진 열악한 상황. 어쩌면 이런 요소들 때문에 상위 랭커보다 다크호스가 금메달을 수상했는지도 모른다.[1차] 레이스와 2차 레이스의 기록을 합산해서 세계기록을 보유한 선수이다. 은퇴한지 4년이 넘었는데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이상화의 시상식때 해설위원들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스피드스케이터라고 말했다.[20] 반대로 아사다 마오는 코치가 러시아의 피겨 대모인 타라소바였고 전지훈련지도 주로 러시아였다. 대충 알렉세이 야구딘과 예브게니 플루셴코의 구도와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 야구딘이 북미에서 훈련했고 스타일도 소위 말하는 북미 스타일이었기에 북미 언론이 무척 우호적이었는데, 김연아도 이 경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21] 김연아는 2008-2009시즌, 여자 선수로서는 최초로 남자선수의 영역대였던 총점 200점을 깬 시점에서 이미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거기에 밴쿠버 올림픽 우승으로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다.[22] 남자 싱글은 별들의 전쟁이었고, 여자 싱글은 한일전이었으며(해외 해설자들도 경기 시작전 한일 양국의 역사적 배경을 들어 설명했다), 페어는 중국vs중국, 아이스댄싱의 경우 캐나다vs미국이었던데다 두 조 모두 코치가 같아서 함께 훈련하는 등 비화가 많았다.[23] 1990년대 이후 동계올림픽 개최 도시들은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단, 대부분의 경기 시설을 1회용으로 건설해서 비용을 최소화한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은 흑자 대회였다.[24] 2인승 때도 전복 사고가 일어났는데 하물며 그것보다 크기가 더 큰 4인승에서 안 일어나라는 법도 없다. 애초에 개조했던 이유가 2인승에서 전복 사고가 나왔기 때문에 4인승에서는 속출할 거라 예상하고 코스를 개조했던 것. [25] 2인승에서도 똑같은 불안요소가 생겼다. 결국 DNF가 속출.[26] 당연한 거지만 검열삭제가 연상되는 장면이다.[27] 올림픽 이후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커밍아웃했다.[28] 한국에선 처음엔 메달에 관한 논쟁인 걸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신채점제에 대한 불만제기였고 이에 관한 것이 언론의 왜곡 등으로 인해 복잡하게 얽혀버린 것이다. 플루셴코 항목을 참고.[29] 중국 신화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무리한 추월 과정에서 생긴 반칙으로 인해 실격을 줬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이 앞서있었는데?[30] 그 바람에 아폴로 안톤 오노가 500m에서 다른 선수를 밀다가 이게 들켜서 실격당했다.[31] 반면 남자 쪽에서는 캐나다와 한국 선수들에게 밀리면서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다.[32] 그리고 중국은 2회 연속 올림픽 여자 계주에서 실격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