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오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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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대 텍사스 국무 장관'''
'''본명'''
'''스티븐 오스틴(Stephen F. Austin)'''
'''출생'''
1793년 11월 3일, 미국 버지니아 주, 오스틴 빌
'''사망'''
1836년 12월 27일 (향년 43년), 미국 웨스트 콜롬비아, 브라 조리아 카운티, 텍사스
'''국적'''
미국 [image]
'''직업'''
정치인
'''배우자'''
미혼
'''종교'''
개신교 (침례회)
'''주요
경력
'''
미주리 민병대 기수 (1813년 5월 24일)
제 109 결사 프리메이슨 (1815년)
미주리 대의원 (1815년 ~1819년)
'''제 4대 텍사스 국무장관 (1836년 10월 22일 ~ 1836년 12월 27일)'''

1. 개요


텍사스의 정치인.
텍사스 땅의 대부분은 원래 미국 땅이 아니라 멕시코 땅이었다.[1] 그런데 텍사스 땅에 사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지역 발전을 위해[2] 1823년에 멕시코 정부가 미국인 이주 정책(엠프레사리오[3])을 펼쳐서 텍사스로 이주하려는 미국인에게 땅을 주고 세금도 면제하겠다고 했다.
이 정책이 실행되기 이전에 이미 일부 미국인은 멕시코 정부로부터 많은 미국인을 데려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상당한 토지를 증여받았는데, 그중에 가장 성공한 사람이 바로 젊은 이민자 '''스티븐 오스틴''' 이다. 최초로 멕시코와 합의하고 미국인들을 데리고 텍사스에 간 개척자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오스틴은 스페인어를 배워서 멕시코 시민권을 따고 처음에는 멕시코 정부와 미국인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지만 점점 정치적 힘과 책임이 늘어났다. 또한 멕시코의 부당대응과 침략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미국인 이주민을 지켜내었고 텍사스 독립전쟁을 이끈 주역이 된다. 즉, 텍사스의 아버지다.

2. 엠프레사리오 오스틴


오스틴은 엠프레사리오를 통해 멕시코가 요구하는 조건[4]을 충족하는 가족을 데려 오는 것으로, 그리고 이주민들을 통치하는 두 책임을 지게 되었다. 오스틴은 297가구를 처음 데려왔는데 이들을 멕시코 역사에서 '''Old Three Hundred'''[5] 라고 부른다. 그리고 오스틴은 미국인 이민자들을 보호 하고자 소위 '''텍사스 레인저'''를 조직한다.[6]
그런데 오스틴과 동업을 하던 '''헤이든 에드워즈''' 라는 땅 투기꾼이 있었다. 그는 나코드도치스(Nacogdoches)라는 지역에서 자기의 형 채플린과 같이 이주 사업을 했었는데 그 지역의 멕시코인 시장이 부당한 대우를 하자 에드워즈 형제는 시장에게 자주 따지고 들었고 정치에도 개입하려고 했다. 결국 그 시장은 멕시코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고, 에드워즈 형제의 교부금을 강탈해 그걸 다른 엠프레사리오와 나눠먹기에 이른다. 돈을 강탈당한 에드워즈 형제는 본인들이 데려온 미국인 이민자들의 경비를 못대면 결국 그들의 땅도 뺏기는거니 어떻게든 돈은 돌려 받아야 겠고, 그렇게 하려면 말로는 안될 것 같으니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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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도니아 공화국 기념비다. 좌상단 공화국 깃발을 보면 눈치챘겠지만 저것이 바로 텍사스 주 깃발의 시초가 된다.
반란에 앞서 에드워즈 형제는 멕시코 사람들 때문에 못살겠다며 연설을 했고, 에드워즈를 지지하는 미국인 이민자는 물론이고 체로키족 등 당시 멕시코 사람들을 경멸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지지도 받으며 '''프레도니아 공화국'''을 세우고 멕시코에 반란을 일으킨다.[7] 물론 멕시코에 비해 아주 작은 독립국이라 멕시코는 이들을 손쉽게 무장해제 시키고 에드워즈를 추방했지만 멕시코는 텍사스 땅을 미국인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게 된다. 앞선 반란처럼 미국인 이주민들의 수가 급격히 불어나고 힘을 얻게 되자 멕시코의 부당한 대응에 대한 태클을 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3. 텍사스 독립


멕시코는 텍사스를 뺏기지 않으려고 힘을 썼다. 텍사스 땅에 미국인들이 많이 살게 되자 미국은 1824년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이 텍사스 매입을 위해 100만 달러를 제시했으나 멕시코가 거절했고 다음 1829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다시 500만 달러를 제시했지만 또 멕시코측에서 거절했다. 게다가 멕시코는 이전에 있었던 프레도니아 반란을 이유로 겁을 먹고 1830년에 미국인 이주를 금지한다. 또 엠프레사리오에 주어진 면세를 중단하고 세금을 징수했으며 텍사스에 많은 멕시코군을 주둔시키게 된다. 이에 미국인 이민자들은 점점 멕시코에 대한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1832년과 1835년 두 차례에 걸쳐서 텍사스의 아나우악이란 지역에서 멕시코와 이주민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다. 이유는 멕시코의 세금징수와 토지문제. 두번째 분쟁에서 이주민들은 멕시코군을 물리치게 되는데 이에 분노한 당시 멕시코 대통령 산타 안나가 군대를 보내 아예 텍사스를 정복할 준비에 착수했고, 오스틴을 체포했으며 모든 민병대의 무장해제를 요구했다. 오스틴이 감방에서 썩다가 석방되자 이제는 텍사스 독립 전쟁밖에는 답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결국 오스틴은 독립군을 조직하고 멕시코와 맞서 싸우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독립군은 멕시코군에 승리하게 되고(과정은 텍사스 역사 문서 참고) 1836년 오스틴은 텍사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 샘 휴스턴에 패배했으나 샘 휴스턴은 오스틴을 텍사스 국무 장관으로 지명한다.

4. 현재 텍사스에서의 지위


텍사스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텍사스의 주도 오스틴이 바로 스티븐 오스틴의 이름으로 지은거다. 게다가 오스틴 버그스트롬 국제공항,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 그리고 다수의 학교(예를 들어 텍사스에 스티븐 F. 오스틴 고등학교 등)를 포함하여 수 많은 장소와 기관의 이름을 오스틴으로 지을 정도로 텍사스인들은 오스틴을 명예스럽게 여긴다.

5. 관련 문서


  • 텍사스 레인저
  • [8]
  • 600만불의 사나이

[1] 그 이전에는 프랑스스페인의 땅이었다.[2] 이 당시까지만 해도 멕시코의 인구가 국토에 비해서 심하게 적었던 원인도 있다.[3] empresario 스페인어로 사업가라는 뜻이다. 멕시코의 이주제도를 의미한다. 엠프레사리오는 새로운 이주민 영입과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교환 조건으로, 멕시코의 토지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이때 이주 사업을 한 사람도 엠프레사리오 라고 부른다.[4] 멕시코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무조건 성실한 사람과 가축이다.[5] 올드 300은 멕시코에 면세 등을 받거나 가축을 기르면 일정 토지를 증여받는 수혜 혜택 이민자들을 말한다.[6] 당시에는 오스틴 뿐 아니라 이주 사업을 했던 다른 사람들도 다 각각 자기들의 이주민을 보호하고자 민병대를 두었다.[7] 프레도니아 공화국의 깃발은 백색과 빨강색이 있는 깃발인데(텍사스 주 깃발에서 파랑 부분을 뺀 나머지 백색, 빨강색만 있는 그 깃발이다) 백색은 앵글로 백인(미국 이주민)을 의미하고 빨강색은 아메리카 원주민(체로키족)을 의미하는 것이다.[8] 텍사스의 주도인 오스틴이 그의 출생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