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계 브라질인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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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난다 리마[1]
2. 역사
대항해시대부터 중남미의 대부분 지역이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브라질 지역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경계가 애매모호하다보니 일부 스페인인들이 브라질로도 이주한 적이 있었다. 이베리아 연합으로 포르투갈 왕국이 스페인 왕국의 일부가 되면서 스페인인들이 브라질 영토라고 이주하는 경우가 적지는 않았다. 브라질 남부 팜파스 대초원에는 유럽계 남성과 원주민 혼혈 유목민인 가우쵸들이 거주했는데, 하플로그룹 조사 결과 이들 중에는 포르투갈계보다는 스페인계 조상을 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19세기에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면서 유럽인들이 중남미로 많이 이주했는데, 브라질로도 수많은 스페인인들이 이주했다. 새로 독립한 브라질 정부는 19세기 중후반부터 기존에 개발된 동북부를 방치[3] 하는 대신, 새로 남부의 초원지대를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브라질 동북부의 흑인 혼혈 주민 대신에 새로 유럽에서 이주해오는 이민자들이 훨씬 더 생산성이 높다는 판단 하에 개발할 땅을 분양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브라질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오늘날 브라질의 인구 구성은 도미니카 공화국과도 흡사했을 것이다. 브라질 정부의 정책은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이민 붐과 겹쳐서 유럽 각지에서 엄청난 수의 이민자들을 끌어모았는데, 스페인계 브라질인들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스페인은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농촌에서 펠라그라병[4] 이 유행할 정도로 농민층의 경제 상황이 좋지 못했다.
19세기 원래 스페인이 선호했던 이민지는 브라질보다는 아르헨티나와 쿠바였으나,[5] 1898년 미서전쟁에서 스페인이 쿠바를 영토를 집어삼키자 20세기 초에는 대안으로 브라질이 떠오르고 이민 인구가 증가했던 적이 있었다. 1884년부터 1893년까지 113,116명, 1894년부터 1903년까지 102,142명이었던 이민 규모는 1904년부터 1913년까지 224,672명으로 두 배 규모로 증가하였다가, 다시 1914년부터 1923년에는 94,779명 규모로 감소하였다.[6]
브라질에 정착한 스페인인 중 절반 가까이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출신이었고, 주로 커피 농장에서 일했다.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출신도 전체 이민자의 22.6%(1893년부터 1902년 사이 기간) 정도를 차지했는데 갈리시아의 언어는 포르투갈어와 대동소이하다.
3. 문화
3.1. 언어
브라질내 스페인계 브라질인들은 대부분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가 매우 가깝기 때문에 언어교류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다만 오늘날 브라질 내 스페인어는 스페인계, 비스페인계를 떠나서 스페인어권 이웃 국가들의 영향으로 주로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사용된다고 한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가 가깝다보니 국경지역에선 포르투뇰이란 혼합언어가 생겨나기도 한다.
4. 종교
스페인계 브라질인들은 포르투갈계나 이탈리아계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천주교를 믿고 있다.
5. 관련 문서
[1] 카탈루냐인 후손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추첨 사회를 진행했었다.[2] 다만 스페인계 브라질인 후손이 '''최소''' 1천 5백만여 명이라는 통계 조사는 신뢰성에 의문이 있다. 일단 브라질의 인구조사 통계가 자가 응답에 바탕을 둔 것도 있고, 각 출신 민족이나 종교 단체에서 발언권 강화를 위해 추정 인구를 말 그대로 뻥튀기해서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3] 어느정도였냐면 1877-78년 사이 동북부에서 40만여 명 정도가 기근으로 사망했는데도 별다른 구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4] 나이아신(비타민 B3)이 만성적으로 결핍되어 발생하는 홍변병의 일종으로 특히 근대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던 지역에서 많이 발생했다.[5] 19세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던 멕시코와 콜롬비아는 스페인인 이민에 적대적이었다.[6] 출처 : 브라질 지리학 통계 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