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립낫
- DC 유니버스의 일원에 대해서는 슬립낫(DC 확장 유니버스) 참고.
1. 개요
Slipknot
공식 홈페이지[2]
1995년에 결성된 미국 아이오와 주[3] 출신의 9인조[4] 유명 헤비메탈 밴드. 모던 헤비니스[5] 나 얼터너티브 메탈 밴드로 분류된다. 뉴메탈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분명 차이점이 있고 밴드 당사자들이 뉴메탈이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멤버 전원이 각자 기괴한 디자인의 마스크를 쓰고 의상을 통일해서 입는 것이 특징이다. 마스크는 앨범을 새로 발매할 때마다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멤버 각자가 0부터 8까지 고유번호를 갖고 있으며, 통일된 의상을 맞춰 입고 이 번호들을 옷에 새겨넣은 모습에서 소녀시대를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스크를 쓰고 활동하는 밴드는 슬립낫이 원조다!" 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나, 이들 이전부터 활동을 시작한 머쉬룸헤드라는 그룹이 가면 메탈 밴드(?)로서는 원조라는 이야기가 많다.[6] 하지만, 99년 전까지는 둘 다 인지도가 낮았으므로 각자의 독자적인 컨셉으로 보는 것이 맞는다. 다만 정말 제대로 따지고 보면 크림슨 글로리는 이 둘보다 한참 전인 86년때 마스크를 쓰고 데뷔했다. 아마 찾아보면 더 있을지도…. 실제 가면에 분장까지 더한 밴드 GWAR의 경우 보컬이 이와 관련해서 코리테일러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코리 테일러는 "가면 벗는 슬립낫은 절대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이 가면에 꽤나 큰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
음악적인 면을 보자면 2천 년대 들어 등장한 일군의 모던 헤비니스(메탈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를 이용한 빡센 음악을 하는 최신 조류를 통칭하는 표현) 세력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다. 샘플링과 턴테이블로 납량영화 같은 괴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운데 무려 세 명의 타악기 주자가 물량 공세로 비트를 쏟아붓고 보컬은 분노와 광기로 뭉친 가사를 숨쉴 틈 없이 토해낸다.[7] 보컬은 그로울링 등 브루털 창법으로 짐승처럼 울부짖기도 하고, 히스테릭하게 중얼거리고, 일반적인 락 보컬을 구사하는 후렴구를 넣기도 하고, 다 집어치우고 미친 듯이 웃어젖히기도 한다. 스래쉬 메탈과 데스 메탈의 격렬성은 받아들이되, 그들의 고전적인 '메탈' 스타일까지 받아들이지는 않고 에너지 분출 표현의 수단으로만 받아들인다. 정신놓고 즐기는 과격의 끝까지 간 페스티벌 음악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에너지와 선동성이 넘친다. 이 갖은 빡셈의 현대적 집대성과 대중성의 겸비에 세계의 대중은 열광했고, 이는 현재의 월드와이드 스타가 된 비결이다. 데스 메탈의 첫 삽을 뜬 밴드 중 하나인 모비드 앤젤의 트레이는 슬립낫을 일컬어 '이것은 새로운 시대의 데스 메탈이 아닌가'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들은 등장 때부터 줄곧 뉴메탈은 썩었다느니, 쓰레기라느니, 다 불살라야 한다느니, 우리는 메탈이다 라는 식의 발언이 일관되어 왔다. 콘[8] 도 림프 비즈킷도 가열차게 깠다. 덕분인지 림프 비즈킷의 프레드 더스트와 잡음이 많았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도 유해졌기 때문인지, 콘이나 림프 비즈킷도 처음의 몇 앨범은 좋았다면서 어느 정도 인정하는 훈훈한 발언을 한다. 하지만 결론은 뉴메탈은 쓰레기라는 것.
사실 이들의 음악은 1, 2집은 빡센 뉴메탈[9] , 3집 이후는 메탈코어 성향을 띠는 정도. 하지만 이는 소수 매니아, 그 중에서도 장르 세세하게 따지기 좋아하는 집단에게나 통용되는 이야기다. 슬립낫은 미국 '''그래미상 Best Metal Performance 1회 수상'''과 수회의 노미네이트를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Loud wire, Metal storm 등의 해외 메탈관련 페이지 등에서도 메탈밴드로 분류된다. 이쯤되면 정통적인 의미의 헤비메탈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광의적인 의미의 헤비메탈밴드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10]
일본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자랑하며, 일본에서 그들은 '''엽기취미적격렬음악집단'''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하고 있다.
도로헤도로의 2권을 보면 이들의 얼굴을 찾을 수 있다. 믹 톰슨과 현재는 고인이 된 폴 그레이. 작가가 슬립낫의 팬인지 시리즈 곳곳에 엑스트라와 배경 등으로 무작위로 등장한다. 마법사들이 기괴한 가면을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받아들이며 꼭 쓰는 것도 슬립낫을 의식한 듯.#
멤버 대부분이 게임 마니아라 투어 중에 플레이스테이션2나 기타 게임기 등을 같이 갖고 다니면서 플레이할 때도 종종 있다고 한다.
슬립낫은 현재까지 전세계에서 '''총 40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였으며 3개의 앨범을 빌보드 1위에 올려놓았다.'''
2. 결성부터 현재까지
1995년 아이오와 주에서 현 퍼커셔니스트인 #6. 숀 크레이언은 드러머, #2. 폴 그레이는 베이시스트[11] 로서 'The Pale Ones' 이라는 이름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훗날 세계적인 밴드로 성장하게 되는 밴드 슬립낫으로서의 첫 발딛음이었다.
초창기 멤버 구성으로 폴과 숀이 지역 뮤직씬에서 만난 친구였던 앤더스 콜세프니와 도니 스틸을 각각 보컬과 기타리스트로 영입하게 된다. 밴드는 새로운 드럼세트에 대한 실험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새 드럼세트를 실험하기 위해 폴이 리허설에 #1. 조이 조디슨을 초대한다.[12]
드러머였던 숀은 조이 조디슨의 드럼 실력을 보고 감탄하여 밴드의 드러머 자리를 내어주고, 나중에 자신이 직접 제작한 퍼커션으로 자리를 옮기고[13] 조이가 드럼을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보컬 앤더스는 보컬을 계속 하면서도 퍼커션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때, 밴드는 조쉬 브레이너드를 세컨드 기타로 영입하고, 이리하여 폴 그레이, 숀 크레이언, 앤더스 콜세프니, 도니 스틸, 조이 조디슨, 조쉬 브레이너드 6명의 라인업으로 밴드 활동이 시작된다.
그리고 1995년 12월 4일, 이들은 어느 자선 콘서트에서 "Meld" 라는 이름의 밴드로 라이브 데뷔를 하게 된다. 밴드 초기에는 대체로 조이, 폴, 숀이 조이가 밤에 일하던 Sinclair 주유소[14] 에서 계획한 세션에 의해 개발이 이루어졌다.
1995년 이들은 "Slipknot"[15] 이라는 곡을 쓰게 되었는데 조이가 밴드 이름을 이 곡 이름인 "슬립낫" 으로 바꾸자고 제안했고, 밴드 이름은 슬립낫으로 바뀌게 된다.
이제 그들은 그들의 고향 아이오와 주에 있는 SR Audio라는 스튜디오에서 레코딩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던 1996년 2월 기타리스트 도니가 종교 문제 때문에 밴드를 탈퇴해버리고 만다.[16]
슬립낫은 탈퇴한 도니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5. 크레이그 존스를 기타리스트로 영입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스튜디오에서 보내는 시간 만큼 양질의 레코딩을 해내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후에 크레이그가 샘플링으로 자리를 옮겨 기타리스트 자리는 다시 #7. 믹 톰슨을 영입해 메꾸었다.[17]
그렇게 슬립낫은 계속해서 복잡한 시간을 가지다가 결국 1996년 10월 31일 할로윈데이에 그들의 첫 자작 앨범이자 데모 테이프를 내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96년에 자체 제작 앨범인「Mate.Feed.Kill.Repeat」을 2000장 한정으로 제작한다.[18] 이 당시의 악곡은 재즈 장르를 섞는 등의 카오틱 성향을 띠기도 했다. 프로듀서 로스 로빈슨에게 눈에 띄어 밴드는 단번에 준 메이저 레이블인 로드러너로 발탁된다.
이후 퍼커션 멤버로 그렉 웰츠가 영입되고 같은 아이오와에서 나름 유명한 밴드인 스톤 사워와 라이브 대결을 벌이고 이겨 스톤 사워의 보컬인 #8. 코리 테일러가 슬립낫에 가입되었고, 슬립낫의 원조 보컬이였던 앤더스 콜세프니는 퍼커션 및 백보컬로 포지션을 바꾸다 결국 나가버렸고 그 자리엔 브랜돈 다너가 들어왔으나 얼마안돼서 또 나가버리고 또 다른 퍼커션 담당인 그렉 웰츠도 어떠한 이유로 방출당하게 된다. 이후 남은 퍼커션 자리는 조이의 드럼 테크니션을 하겠다고 하자 숀에게 가입 권유를 받은 #3. 크리스 펜이 담당하게 된다. 이 쯤에서 DJ인 #0. 시드 윌슨도 클럽에서 미친듯이 디제잉을 하다 숀에게 캐스팅(?) 당한다.
그렇게 1999년 1집 「 '''Slipknot'''」작업을 마무리하고있던 와중에, 갑자기 기타 담당이였던 조쉬 브레이너드가 탈퇴해버린다. 그러자 보컬 코리 테일러는 스톤 사워에서부터 함께했던 기타리스트 #4. 제임스 루트를 추천하게 된다.[19]
그렇게 1999년에 발매된 대망의 1집인 「 '''Slipknot'''」은 마구 지르고 때려갈기는 극단적인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기록적인 세일즈를 수립하였고, 미국뿐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콘, 데프톤즈, 림프 비즈킷, 린킨 파크, 파파 로치, 마릴린 맨슨과 견줄 만한 빅 밴드로서 성장했다.
하지만 2001년에 2번째 앨범인 「'''Iowa'''」발표 이후 9.11 테러로 인해 앨범 홍보에 난항을 겪고, 멤버들 간의 불화 또한 표면화되어 이대로 밴드가 해체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2001년에는 일본에 방문하여 서머소닉 2001 출연을 성사시켰고, 2001년과 2002년에 걸쳐 Iowa world tour라는 이름으로 밴드 첫 월드투어를 달성시키는데 성공, 일본에는 2002년 4월 4일 동경 베이NK 홀에서 공연했다.
밴드의 긴 잠적기 이후 2004년에 발매한 3번째 앨범인 「'''VOL.3: (THE SUBLIMINAL VERSES)'''」발표를 기점으로 이전에 있었던 멤버들간의 불화는 해소되었다.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 2위의 성적을 달성했다.
2004년과 2005년, THE SUBLIMINAL VERSES World Tour라고 명명된 월드 투어를 개최하였고, 써머쏘닉 2005에도 출연하였다. 이 당시에 국내에 내한한 적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후술.
2006년 제48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싱글 중 하나인 「Before I Forget」이 「Best Metal Performance」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그 후에는 일시적으로 활동을 중지하게 된다.
또 오랜 시간이 지나 2008년 8월 11일에 활동 개시와 동시에 4번째 앨범인 「'''All Hope Is Gone'''」을 발표했다.(국내에는 9월 26일에 발매) 그리고 마침내 빌보드 1위를 차지했다.
4집 발매 이후 2010년 베이시스트 폴 그레이가 돌연 사망했다. 사인은 약물과다복용. 이 일로 밴드와 팬은 큰 충격에 빠졌으며 5집이 나오냐 안 나오느냐로 멤버들끼리 분쟁도 있었다.
하지만 앨범 발매와 별개로 2011년 영국에서 개최된 SONISPHERE FESTIVAL의 헤드라이너등 투어는 출장하기로 결정되어있고, 투어기간 동안 폴 그레이의 빈 자리는 전직 기타리스트였던 도니 스틸이 담당한다는 것을 발표하였다.
2010년 9월 28일 영국 Download Festival에서 8만명의 관객과 함께한 공연실황과 백스테이지 및 All hope is gone앨범의 연장선에 있는 다큐멘터리한편, 사망한 폴그레이를 기리는 영상을 담은 DVD (Sic)nesses를 발매했다.
그런데 다시 5집에 대한 기대가 나올 쯤 뜬금없이 조이 조디슨이 탈퇴를 했다. 정확한 사정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밴드는 새로운 베이시스트인 알레산드로 벤츄엘라와 드러머인 제이 웨인버그를 구해서 2014년 10월 21일에 폴 그레이를 기리는 앨범인 5집「'''.5: The Gray Chapter'''」을 발표하였다.
슬립낫이라는 이름 아래에서의 활동을 중지하고 있는 동안에는 각 멤버들은 각자 따로 음악 활동을 진행하기도 하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조이 조디슨이 참여하는 머더 돌즈, 코리 테일러와 제임스 루트가 참여하는 스톤 사워[20] 라는 밴드다.
2018년 10월 31일 All Out Life 라는 곡을 공개했다. 팬들의 반응은 주로 과거의 슬립낫이 돌아왔다며 기뻐하는 분위기다.
2018년 11월 20일 새 앨범 티져 영상이 공개됐다. 티저영상 2019년 여름에 발매될 예정이라고 한다.
신곡에 대해서는 "악마적이고 악질적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런데 새 앨범이 공개 되기도 전에 크리스 펜이 슬립낫 '''밴드원 전체를 고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참조영상 내부 비즈니스적인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지만 해당 영상이 올라온 시기에는 그 내막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의 자세한 사실을 알 수가 없다. 크리스 펜의 주장에 의하면 코리 테일러와 숀 크레이언이 몰래 자회사를 차려 돈을 빼돌린 것을 이유로 소송을 걸었다고 한다. #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테일러와 크레이언이 '슬립낫 소유주' 명목으로 회사를 차린 게 사실로 드러났다.
결국 팬들이 우려하던 대로 크리스 펜의 '''퇴출이 결정됐다.''' 6집 앨범이 공개되기까지 몇 달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팬들도 당혹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 그동안 밴드의 활동이 뜸했고[21] 5집 앨범부터 라이브 이외에는 이렇다 할 소식이 거의 없어 이러다 5집이 슬립낫의 마지막 앨범이 되는게 아닌가 하며 불안해 하던 팬들이 종종 있었는데, All Out Life와 6집 앨범 발매 소식으로 열광하던 분위기에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것.
항상 라이브에서 피노키오 같은 코가 달린 가면을 쓰고 무대 위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코리 테일러의 목이 불안정해지던 시기부터 옆에서 숀 크레이언과 함께 목을 쥐어짜가며 악마같은 그로울링으로 스피커를 채워주었던 멤버라 많은 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한편 짐 루트는 "펜이 빠졌다고 작업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았다"며 작곡 및 녹음 과정에서는 그의 빈자리가 크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로인해 슬립낫의 전성기 멤버들 9명중 6명만이 밴드에 남은 상태.
어쨌든 남은 멤버들은 계속 함께 가게 되었으며 5집 한정으로 추가되었다고 생각된 멤버들 역시 가면을 새로이 맞춘 것으로 보아 정식 멤버로 함께 가는 것으로 보인다. 소송 발생 이후 처음으로 무대를 가지는 게 무려 지미 키멜 쇼. 2016년 이후 3년 만에 가지는 방송무대다. #
5월 16일 신곡과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는 동시에 수많은 정보를 쏟아냈다. 골자는 새 앨범 <We Are Not Your Kind>는 8월 9일 발매되며, 어둡고 서정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것. 그리고 크리스 펜의 자리를 채울 새로운 멤버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
한편 크리스 펜과의 분쟁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크리스 펜이 슬립낫 비즈니스 매니저 개인에게 건 소송은 기각됐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반면 슬립낫은 펜이 문제삼는 계약 및 앨범 작업은 뉴욕에서 이뤄지지 않았다며 현재 재판을 진행중인 뉴욕 법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중. #
결국 크리스 펜이 슬립낫에 대한 소송을 철회했다.#
3. 내한
2003년 말에 내한공연이 확정되었으나, 새 앨범 녹음에 집중하고 싶다는 멤버들의 의견에 따라 투어가 취소되었고, 결국 약 1년 뒤인 2004년 말에야 첫번째 내한 공연이 이루어졌다.
당시 기나긴 투어로 전 멤버가 피곤에 쩔어있던 상태였으나, 그들은 최선을 다해 연주하고 몸을 흔들었고, 관객들도 이에 질세라 함께 헤드뱅을 즐겼다.
단, 앰프 음질이 워낙 안 좋아 소음으로 가득한 공연에 불만족한 관객들도 더러 있었다. 공연 당시 스피커의 음질이 좋지 않아 노래를 불러도 무슨 노래를 하는지 몰라 멀뚱멀뚱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기획사 측 해명으로는 슬립낫은 다른 밴드들과는 다르게 우퍼 스피커를 두 배가량 추가로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현재 기획사 기존 홈페이지가 사라져 원본글은 찾을 수 없지만 당시 다른 카페에서 퍼 간 글이 남아있어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당시 기획사 후기 글 링크
어찌됐건, 코리 테일러는 내한공연이 매우 맘에 들었는지, "한국 팬들은 평화롭게 미칠 줄 아는 관객들이다. 아주 맘에 든다." 라는 인터뷰를 한적이 있다. 아무래도 비교적 정적인 이웃나라 일본과 비교했을 때 훨씬 열광적이고[22][23][24] , 그렇다고 매우 열광적이지만 관객부상 등의 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유럽, 남미에 비해선 별 사고없이 공연이 마무리 된 것을 염두해 언급한 것로 보인다.
4. 멤버
슬립낫/멤버 항목으로. 본문보다 길어져서 따로 분리되었다.
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앨범
5.2. 라이브앨범
5.3. 베스트 앨범
5.4. 비디오앨범
[1] 조이가 만든 로고이다.[2] #5. 크레이그가 운영한다.[3] 참고로 아이오와 주 출신 밴드 중에서, 아니 세계적으로도 가장 출세한 메탈밴드 중 하나에 속한다.[4] 2019년을 기점으로 정식 멤버는 6인이다.[5] 뉴메탈로 시작했지만 본인들이 뉴메탈 계통을 상당히 싫어하며 메탈코어 등 다양한 방향으로 음악적인 시도를 많이 한다.[6] 머쉬룸 헤드는 93년에 결성되었다.[7] 노래방에 그들의 노래가 있기는 하나 많은 이들이 부르는데 난항을 겪는 이유가 이 때문. 완급 조절이 힘들다.[8] 마냥 사이가 나쁜 건 아닌 게 코리 테일러와 조이 조디슨이 콘을 서포트해주기도 했다.[9] 메탈의 출력은 받아들였지만 리프는 메탈스타일의 리프와는 거리가 심하게 멀다. 거기에 드러밍과 곡 진행은 하드코어 성향이 보이는 편.[10] 메탈음악은 항상 여러가지 장르가 분파되어서 생각외로 어느 한 장르가 씬 전체를 주름잡고있던 시기가 긴 역사를 생각해보면 그다지 길지않은 편이다. 아무리 추려도 미국과 유럽시장이 항상 같은 취향으로 맞았던적이 없기때문에 최소 투트랙이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앞선 밴드들의 영향을 받아서 등장한 밴드들이 많아지는데, 장르구분에 까다로운 사람들은 골치 아파진다. 어느 한 장르를 기준으로 메탈을 정의하려고하면 여기에 꼭 벗어나는데 그렇다고 메탈이 아니라고 할수는 없는 부류의 밴드가 자꾸 많아지는것이다. 메탈이라고 할때 올드스쿨 밴드들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에게는 그렇다면 이런 음악은 메탈이 아닌것인지에대한 의문이 스스로 남게 된다. 그 시발점에 있는 밴드들중에 하나로 평가받는게 슬립낫이다. 과거에 하드락을 벗어난 무언가로 태동한 헤비메탈에 또 한번 의문이 던져진것인데 아직까지는 헤비메탈 이후의 포용적인 이름이 나타나지않았고, 장르 구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않는 사람들에게는 지금까지도 메탈리카를 보여줘도 Periphery를 보여줘도 헤비메탈이다.[11] 이때 폴은 베이스를 칠 줄 몰랐다고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슬립낫전에 앤더스 콜세프니가 하던 밴드에서 베이스를 칠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자 베이스는 칠 줄도 몰랐던 폴이 "나 베이스 짱잘침" 이라고 해서 음악을 시작했다고 한다…. 가 아니고 사실 그냥 꾸며낸 일화라고 한다. 실제로는 실력있는 사람.[12] 폴과 조이는 1994년에 Anal blast라는 그라인드 코어 밴드를 결성한 적이 있었다.[13] 숀은 밴드에서 드러머를 세 명으로 구성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슬립낫에 퍼커션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14] 조이는 원래 주유소 직원이었다.[15] 1집의 「(sic)」은 이 노래를 리메이크한 것이다.[16] 1999년 조이에게 이 일에 관해 물어봤을 때 "우린 그를 잡으려 했지만 그는 여기 남길 원하지 않았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도니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사망한 폴 그레이를 위해 활동하게 된다.[17] 당시 믹톰슨은 기타 강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18] 한번 폐반이 되었다가 2008년에 재발매되었다.[19] 당시에는 이미 레코딩 작업이 거의 끝났기 때문에 슬립낫 1집에 짐이 레코딩에 참여한 곡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20] 제임스 루트는 2013년에 탈퇴했다. 자세한 사항은 스톤 사워 참조[21] 슬립낫이 주최하는 2018년 Knotfest 에 정작 슬립낫이 참여하지 않을 정도로 활동이 뜸했었다.[22] 사실 이는 편견이다. 일본은 다른 장르들은 몰라도 락이 주류 장르를 차지하는 몇 안 되는 나라인 만큼 호응이 좋고, (특히 헤비메탈은 더더욱)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슬립낫의 인기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나라여서, 일본을 제외하면 슬립낫의 아시아 공연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본인들이 주관하는 'KNOTFEST'도 개최한다.[23] 가장 최근이었던 2016년 도쿄 라이브와 2001년 도쿄 라이브를 봐도 열광적인 호응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유투브에 slipknot japan 이라고 검색하면 수두룩 하게 나올 정도로 일본에서 굉장히 많은 라이브를 가졌다.[24] 사실 요즘은 오히려 서양보다 일본이 훨씬 더 호응이 좋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로 서양인들은 카메라로 찍기만 바쁘며 과거에 비하면 호응이 정말 많이 약해졌다. 5집 앨범에서 최고로 하드한 Custer를 부르는데도 발동동 수준으로 뛰며 팔만 흔들고 앉았다(...) 댓글에서도 관중들의 리액션을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