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행동당

 

[image]
'''Partido Socialista'''
'''약칭'''
PAC
'''한글명칭'''
시민행동당
'''상징색'''
금색
'''창당일'''
2000년 12월 3일
'''이념'''
사회민주주의
진보주의
반부패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좌파
'''주소'''
Casa Ciudadana, Calle 65
11501, San Pedro, Montes de Oca
'''당 대표'''
Marta Eugenia Solano Arias
'''국제 조직'''

'''청년 조직'''
청년 시민행동당
'''슬로건'''
Somos el pueblo que decidió cambiar.
우리는 변화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입니다.
'''의회 의석 수'''
'''10석 / 57석'''
'''웹사이트'''

1. 개요
2. 역사
2.1. 몰락 1 - 내부 문제
2.2. 몰락 2 - 지방선거 참패
2.3. 몰락 3...?
2.4. 부활


1. 개요


코스타리카의 사민주의, 진보주의 정당이다.

2. 역사


본래 코스타리카는 중도좌파를 대표하는 민족해방당(PAC)과 우파를 대표하는 사회기독통합당(PUSC)의 양당제였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 민족해방당이 우경화하기 시작했고 마땅한 좌파 정당이 없던 상황에서 좌파 유권자들은 그나마 유연한 민족해방당을 차악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선명 좌파정당의 필요성이 민족해방당 내의 개혁파들 사이에서 거론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2000년 말 집단 탈당하여 신당 창당을 선포한다. 한편으로 사회기독통합당이 부패 스캔들로 몰락하기 시작하자 이에 염증을 느낀 소장파들이 추가적으로 탈당했는데, 이 두 세력이 하나로 손을 모아 12월 지금의 시민행동당을 창당했다.
이후 2002년 당의 창당주였던 오톤 솔리스가 대선에 도전했지만 26.2%를 얻어 3위로 떨어졌으며, 총선 또한 14석만 건져 3당이라는 안습한 지위를 누려야만 했다. 하지만 새로 창당한 정당이 대선과 총선에서 3위를 기록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대단한 일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민족해방당의 17석과 단 3석 차이었는데다가 그간 20석 이상은 유지하던 사회기독통합당의 20석 대도 무너뜨렸을 정도로 가히 큰 파란을 일으켰다. 이 열풍에 힘업어 오톤은 2006년 다시 도전했으며 비록 떨어졌으나 2위를 기록했으며 총선마저 원내 2당으로 떠오르면서 민족해방당-사회기독통합당의 양당제를 졸지에 무너뜨렸다.[1] 2010년에는 비록 2006년보다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선 2위, 총선 2위로 새로운 양당제를 세웠음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렸다.
여러 한계 때문인지 꼭 민족해방당에 밀려 2위라는 안습함은 있었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 민족해방당 정권의 실책으로 일부를 중심으로 이번에는 진짜 집권하는게 아닌가 하는 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2014년이 다가오면서 이번에는 서서히 희망을 갖기 시작했고, 당은 오톤에게 네 번째 도전을 요구했지만, 3수도 실패한 것에 대해 불안하게 여겼던 오톤은 불출마를 선언한다. 대신에 루이스 기예르모 솔리스를 후보로 내세웠다. 비록 오톤과는 달리 기반이 다소 약해 처음에는 군소 후보에서 시작했으나, 이후 돌풍을 일으키며 본선에서 30.6%를 기록해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거기다가 민족해방당의 후보로 나선 조니 아라야가 결선 때 기권하면서 솔리스는 '''77.8%'''라는 몰표를 받아 당선되었으며, 이로서 코스타리카 최초의 제3세력 출신 정부가 등장했다. 워낙에 새정치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높은 기대가 적용했는지 초반에는 신혼여행 첫날에 비교될 정도로 훈훈하게 나아가는 듯 싶었으나...

2.1. 몰락 1 - 내부 문제


설상 대선에서 이긴 시민행동당일지라도, 총선은 2위였기 때문에 앞날이 문제였다. 아무리 정치개혁을 갈망하던 국민의 요구가 적용된 탓에 비록 대권을 창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미약하던 비주류 정당이 급격하게 돌풍을 일으키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는 일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대통령이야 시민행동당에서 나오면 좋겠고 솔직히 원내 1당까지도 가면 좋겠지만... 그래도 듣보잡에 꼬맹이가 갑자기 1당 되면 떡 먹다 체하는 거 아니야?"며 불가피하게 지지를 하지 않았고, 대신에 국회의원만은 민족해방당으로 뽑는 상황이 벌어졌다. 덕분에 원내 1당 지위는 민족해방당이 그대로 유지했고, 이후 민족해방당은 시민행동당의 국정 운영에 적지 않은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발목을 잡히는 것도 문제지만 이 당에게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치명타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계파 갈등이었다. 당 자체가 온건한 민족해방당의 탈당파가 만들었다지만, 선명 우파 정당인 사회기독통합당에서 탈당한 사람들도 적지 않게 가담했고, 이 때문에 당은 민족해방당 출신의 개혁파와 사회기독통합당 출신의 실용파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뭐 이것도 그냥 표면적으로 대충 분류한 것이지, 세부적으로 분류하면 단순히 이렇다 저렇다로 가르기도 무리였는데 민족해방당 출신들 중에서도 실용파를 위시로 한 보수계열이 존재했다. 당장 같은 민족해방당 출신임에도 대선 승리의 주역인 솔리스는 개혁파였지만, 오톤은 이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보수들의 지지를 받는 실용파였다. 게다가 시민행동당의 창당 취지 또한 "선명 좌파 정당 창당"이라기 보다는 "민족해방당의 부패·권위주의 탈피"라는 성향이 강했으며, 덕분에 민족해방당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싫어서 뛰쳐나온 중도우파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민족해방당의 태클+내부 분란으로 솔리스 정권은 각종 삽질을 거듭했고, 민심은 그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지방선거가 다가왔다.

2.2. 몰락 2 - 지방선거 참패


이미 시민들은 '''시민'''행동당에서 멀어진 뒤였다. 솔리스의 지지율은 32%만을 기록하여 레임덕이 충분히 다가온 상태였고, 시민행동당의 지지율 또한 하락세만을 기록했다. 반면 각종 실책과 스캔들로 민심에서 멀어지는 듯 했던 민족해방당은 재빠르게 지지율을 상승시키며 지방선거의 승리가 유력시되었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자 시민행동당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승리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으며, "그래도 잘 하면 승리할 것이다"는 정신승리까지 하며 그나마 남은 조금의 희망이라도 걸어보고자 했다. 그리하여 본인들이 승리할 수도 있다고 기대하기도 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망했어요'''. 당장 시장도 겨우 '''7명'''만을 건졌고 시의원도 '''64명''', 그리고 지방의원도 '''506명'''을 건져 '''3위'''를 기록하는 굴욕 of 굴욕을 겪었다. 당연히 승자는 민족해방당으로 시장 '''50명''', 시의원 '''186명''', 지방의원 '''1765명'''으로 무난하게 1위를 가져갔다. 심지어 각종 스캔들로 졸지에 군소정당으로 떨어졌던 사회기독통합당이 시장 '''14명''', 시의원 '''103명''', 지방의원 '''575명'''으로 2위를 기록하면서 시민행동당은 떨어진 군소정당에게마져 털려야만 했다.
이 영향을 받아 그나마 좀 건재하다 싶었던 솔리스의 지지율도 졸지에 급락했고, 이들로서는 그야말로 가망이 없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2017년, 솔리스가 연설 중 실수로 말벌을 삼키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전 같았으면 국민들이 "괜찮아요?"하며 동정심을 보여줬겠지만 지지율이 떨어진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조롱거리로만 떨어졌다.

2.3. 몰락 3...?


말벌 사태가 끝난 직후인 2017년 7월, 대선을 1년 앞두고 각 정당에서는 차기 대선 후보를 선출하려는 경선을 시작하면서 정국은 경선 무드로 전환되었다. 시민행동당도 어김 없이 후보를 내서 대선에 도전하려는 의지를 퍼부었지만, 이미 민심이 험악해진 상태라 당 내에서도 "비교적 솔리스와 거리가 먼 비주류"를 밀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에 힘업어 무려 3번이나 도전한 오톤을 다시 후보로 선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당장 개혁파는 안 된다는 분위기 때문에 비교적 보수적인 실용파를 밀어주려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오톤이 "다시는 안 나가겠다"고 못을 박으면서 이 뭐 가망도 없어졌다. 대신에 대통령과는 자연스레 거리가 있게 되는 부통령을 밀어주자는 분위기로 바뀌어, 솔리스 정권의 부통령인 아나 엘레나 차콘 등이 거론되었으나, 차콘도 불출마 선언을 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 UN 대사인 후안 카를로스 멘도사도 불출마를 선언했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솔리스 정권의 장관 및 각료들을 출마시키는 방법으로 선회하여, 노동사회문제부 장관을 지낸 카를로스 알바라도(개혁파), 경제부 장관을 지낸 웰메르 라모스(실용파), 그리고 국회부의장이자 '''솔리스의 전 경선 경쟁자'''였던 엡시 캠벨이 출마를 선언했다. 당연히 개혁파인 알바라도는 제대로 된 지지를 받을 리가 없었고, 여론 조사 집계가 시작되자마자 비주류인 캠벨이 60% 이상의 지지율로 앞서는 듯 싶었으나... 3월 27일 사퇴를 선언했다. 이리하여 알바라도와 라모스의 양자 대결로 압축되었는데, 알바라도는 "미래를 선택한 대통령(Elijo el futuro)"[2]을 표어로 내세워 비교적 포지티브를 강조한 반면, 라모스는 "너 같은 시민들(Un ciudadano como usted)"을 내세워 네거티브를 내세웠다.
당초 여론은 비교적 솔리스와 거리를 두려는 라모스가 승리할 것으로 보았다. 뭐 이유야 캠벨이 사퇴했으니 그 표심이 자연스레 라모스에게 갈 것으로 보았기 때문. 그런데 천만에. 정작 승자는 알바라도였다. 그냥 56%로 단독 과반을 차지한 반면 라모스는 44%로 떨어졌다. 이뭐병.
이후로 알바라도는 여론조사에서 과연 제대로 지지는 받고 있나 의심스러운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아주 오락가락하기는 하지만 끽 많아봤자 6%고, 보통은 4~5%를 기록했으며 아주 최악으로는 0.3%(...)도 있었다. 그러나 2018년 1월 22일 ~ 24일 여론 조사에서는 8.3%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 조사는 Demoscopía에서 한 것이고, 같은 시기 Opol의 조사에서는 5%(...)였다. 오락가락하니까 걸러서 봐야 하겠지만, 어쨌거나 10%에는 한참 도달하지도 못하는 판국이다. 1위야 말할 것 없이 민족해방당이고, 심지어 사회기독통합당에도 한참 털리는 판국이다. 공표금지기간 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는 그나마 사회기독통합당보다는 높은 지지율을 보여주었다.
다만 일부를 중심으로 마지막 희망이나마 걸어보는 듯 하다. 막판에는 뒤집힐 가능성도 있으니까. 하지만 결선제가 있는 코스타리카의 특성상, 이번에는 본선에서부터 탈락할 상황이다. '''그러나...'''

2.4. '''부활'''


'''극적인 역전승으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알바라도 후보'''. 자세한 내용은 '''2018년 코스타리카 대통령 선거''' 문서를 참조.

[1] 참고로 사회기독통합당은 졸지에 지리멸실한 군소정당으로 떨어졌다.[2] 직역하면 "나는 미래를 선택했다"이지만, 한국식 표어에 맞춰 "미래를 선택한 대통령"으로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