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

 

1. 개요
2. 비판
3. 사례
4. 기타
5. 관련 문서


1. 개요


말 그대로 새+정치, 즉 "새로운 정치"를 의미한다. "새"의 한자어인 "신"을 이용한 "신정치"나 또는 "정치개혁/쇄신" 등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프랑스 앙 마르슈의 전 가칭은 "정치개혁을 위한 협회"였다. 다만 표현이 다르더라도 그들이 추구하거나 하는 "새정치"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롭게 정치를 하자"는 말 그대로 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정치를 "구태정치", "낡은정치", "적폐" 등으로 규정하며, 이를 청산하고 정치를 개혁하자는 데 집중하고 있다.

2. 비판


하지만 이러한 "새정치"는 단순한 코스프레라는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으며, 종종 한표라도 더 받아보려는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나 구호로만 이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말로는 "구태정치 청산"을 주장하지만, 결국에는 본인도 "구태정치"를 하는 그저 일개의 평범한 정치인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다반사.
또한 "새정치"는 언급했다시피 말 그대로 "새로운 정치"를 말하지만, 문제는 그 "새로운 정치"가 정확히 무엇인 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의가 없으며, 이 때문에 새정치를 전략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애매모호한 전략이나 다름 없다고 봐도 무관하다. 만약에 새정치를 추구한다면 지금 정치가 왜, 어떻게 구태적인가를 알아야 하며, 그것을 어떻게 하면 청산할 수 있을까, 어떠한 것이 진짜 발전된 정치인가 등에 대한 정의를 내릴줄 알아야 하는데, 대게는 그냥 구체적인 증거 없이 "새정치", "정치개혁"만 운운하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그렇기에 실질적인 대안으로서 새정치가 아닌 단순히 정치혐오의 발산에 그치는 경우가 절대다수였고 이러한 정치 혐오의 물결을 타고 올라온 정치인들이 정치판에서 빠르게 몰락했던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3. 사례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정치를 표방했던 정치인들 '''모두가 실패'''했다. 물론 안철수는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2020년 현재까지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3.1. 김영삼, 김대중, 이종찬


1995년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은 기존의 민주당을 탈당하고 새정치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름부터가 대놓고 "새정치"를 표방하고 있다. 같은 시기 김영삼은 5공의 색채가 짙은 민주자유당을 해산하고 신한국당을 창당하며, "새로운 한국을 만들자"는 의미를 담았다. 비록 "새정치"를 대놓고 표방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운 한국을 만들고자 한다는 뜻에서 새정치를 갈망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결과 신한국당은 1996년 총선에서 139석을 차지하였으며 중도/진보 성향이 강한 서울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등 파란을 일으켰으나, 원내 과반에는 미치지 못했으며, 김대중의 국민회의의 경우는 79석만을 차지하여 차기 대권에 아예 비상이 걸렸다. 그리고 김영삼은 전임자들이 으레 그랬듯 정치공작을 펼쳐 야당인사를 영입해 과반의석을 채웠고, 결국 크리스마스 노동법 개악으로 그 실체가 다 밝혀지고 말았다. 김대중 또한 다르지 않아서, 차기 대권을 위해 공화계인 자유민주연합과 연대했고, 이를 이유로 김대중을 오랫동안 지지했던 최기일은 김대중 지지를 철회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김대중 또한 정치공작으로 야당 의원들을 빼가는 행동을 하면서 "새정치"란 그저 일개의 선거구호였음을 보여주기만 했다.
1992년 민주자유당을 탈당한 이종찬 의원이 새한국당 창당을 위해 만든 사전 조직도 새정치모임이었다. 사실상 민자당 내 민정계 인사들의 모임이었다는 점에서 새정치라는 단어가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름은 그랬다. 원래 새정치모임이란 이종찬을 비롯한 김영삼 퇴진을 주장하는 민정계 의원 8명이 시작한 모임을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언론이 자신들을 8인방이라 부르자 '새정치추진모임' 혹은 '새정치연구모임'이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세력이 점차 확대되어 1992년 민자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이종찬 의원의 지지 조직으로 활동하였다. 이종찬 의원은 1992년 5월 19일 민자당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난 직후인 5월 22일 당내 계파 모임의 형식으로 '새정치모임'을 결성하였으며, 8월 17일 민자당을 공식 탈당한 후인 9월 3일에는 이를 확대 개편해 '새정치국민연합'을 결성하였다. 이종찬 의원은 새정치국민연합을 바탕으로 새한국당을 창당하고 명망 있는 외부 인사를 영입하여 대선에 어느 한 진영의 후보가 아닌 '국민 후보'로 내세우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나, 놀라울만큼 그 누구도 새한국당의 대선 후보직을 수락하지 않았고, 결국 자기 자신이 출마했다가 얼마 안 가 사퇴했다.

3.2. 안철수


'''한반도 3대 미스터리'''

1. 박근혜창조경제

'''2. 안철수의 새정치'''

3. 김정은의 생각

- 이철희

안철수는 2010년대에 접어들어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하기 시작했고, 그를 바탕으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도중에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다. 이후 2013년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고, 2014년에 접어들어 신당 창당을 본격화한다. 일명 "새정치연합". "새정치"를 강조하는 안철수의 신당은 가히 파란을 일으켰으나, 인사들을 민주당 성향만 영입하는 등 비판을 받아왔고, 생각보다 성과가 신통치 않았는지 도중에 신당 창당을 포기하고 민주당 밑으로 들어간다.
양측의 협의로 민주당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개편되었으나, 2015년 말에 분열되었고, 안철수는 이제서야 신당을 창당했다. 허나 이름이 국민의당으로 "새정치"는 결국 빠져버렸고, 결국 안철수는 '''제2의 이인제'''로 떨어졌다. 이 때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구고 탈당한 자리를 메꾸기 위해서 당시 당대표 문재인을 필두로 대대적인 인재 영입에 나섰다. 이를 두고 오히려 새정치는 더불어민주당이 한다는 조롱섞인 평도 있었다. 이런 안철수의 정치를 비판하며 나온 풍자물이 안크나이트[1]다.
끝내 경악스러운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으로 새정치의 실체가 밝혀지고 말았다.''' 게다가 안철수는 다시 당대표가 되고 나서는 '''김이수 헌재 소장 임명 부결'''을 시발점으로 구태정치의 끝판을 보여주고 있다. 그 직후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주장을, 그것도 여러 지역에서 함으로써''' 새정치의 실체를 보여주었다.
결국 2011년부터 6년 동안 주야장천 떠들었던 안철수의 새정치란 슬로건만 있을 뿐 실체가 없는 허깨비에 불과했던 것이다. 왜 안철수가 그토록 새정치 타령을 하면서도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았고 개념도 애매모호 했는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새정치란 구호만 있을 뿐 개념이 무엇인지를 정립하지도 않았고 아예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안철수의 새정치는 말만 그럴 듯할 뿐 알맹이는 없는 '''빛 좋은 개살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는 썰전에서 전원책이 비판한 것과 똑같다.
2017년 국민의당 19대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전주 오거리파'''를 동원한 경선단 차떼기 사건이 벌어지고서 안철수에게 '''갱철수'''라는 별명이 붙게 되면서, 이후 안철수의 새정치 개념을 비웃을 때마다 '''쇠정치'''라는 이름으로 희화화되어 사용된다.
2017년 9월 20일에 안철수는 자신이 생각하는 새정치란 '''다당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하여 새정치를 부르짖었던 이유가 당을 쪼개기 위했다고 본인이 인증한 꼴이다. 다당제가 새정치라면 처음부터 신당 창당을 밀고나갈 것이지 왜 민주당에 들어와서 분탕질하고 당을 쪼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2017년 11월 20일 안철수는 국민의당 전현직 지도부와 오찬 회동 직후 "연대와 통합을 통해 국민의당은 3당에서 2당으로 나아갈 수 있다. 2당이 되면 집권당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라는 문자메시지를 당원들에게 보냈다. 다당제의 장점을 강조하다가 어느 지점부터 갑자기 거대 양당이 되는게 더 좋다고 느끼게 된 것 같다.
2018년 바른정당과의 통합 과정에서 당헌당규를 바꾸더니, 바른미래당에서는 자기마음대로 공천룰을 바꾸는 중이다. 이준석은 물론 선거를 20여일 앞둔 상황에서 박종진 공천과 관련해서 경선 1위 인물 대신 자기 세력으로 전략공천을 시도했고, 시도하고 있다.

4. 기타


  • 가끔 새정치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쇠정치'라고 비하해 부르기도 한다.

5. 관련 문서



[1] 해당 링크에는 2편 19대 대선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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