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문학)
1. 개요
'시조(時調)'라는 명칭의 정확한 유래는 모른다.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준말이라는 일설이 많이 알려져 있으나, 근거가 없는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다만, 시조를 다르게 부르는 몇 가지 말들 중에 '시절가(時節歌)'가 등장하기는 한다.
한자로 '때 시(時)'를 쓴다. 으레 '시 시(詩)'를 쓰겠거니 짐작하여, '시조(詩調)'라고 잘못 아는 경우도 있다. 읊을 때 창을 곁들이는 등 음악과도 밀접한데, 이런 특성을 배제하고 시 문학으로서 다룰 때는 '시조시(時調詩)'라고 흔히 부른다.
형태가 확립된 한국의 대표적인 정형시로 3장 6구 4보격 12음보 총 45자 내외로 이루어지는 것을 기본 형식, 이른바 '평시조'로 하며 3장을 각각 초장, 중장, 종장으로 부른다.
각 장은 낱말의 글자 수가 3(4)-4-3(4)-4, 3(4)-4-3(4)-4, '''3'''-'''5'''-4-3으로 되어 있는데 한두 글자씩은 가감이 이루어지기도 한다.[1] 그렇게 각 낱말이 음보율을 이루어야 한다.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종장의 첫 음보(첫 구)는 꼭 세 글자'''[2] , '''두번째 단어는 다섯 글자 이상'''으로 되어야 한다. 초장에서 제시한 주제의식 혹은 미의식을, 초장과 동일한 음보율의 중장에서 유사한 의미나 구조의 문장을 반복하여 증폭-심화시키고, 종장에 이르러서는 첫 음보에서 '어즈버', '아해야', '님금하' 같은 감탄사나 호격사등을 통해 집약했다가, 일반적인 음보보다 자수가 많은 종장 둘째 음보에서 분출하여 절정에 이르게 하는 것이 평시조의 미적 특질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중기에 등장[3] 해 형태 자체는 고려 말기에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이 시조에 무반주로 가락을 붙여 여유로운 노래처럼 읊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시조창'이라고 하며 시조창 한 가지를 알아두면 다른 평시조에는 모두 응용해 부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1980년대 한국가요와 2000년대 한국가요가 템포가 빨라지는 쪽으로 변한 것처럼 시조창도 조선 전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점점 템포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시조에는 보통 제목이 없기에 초장의 첫 구를 제목 대신 부르는 경우가 많다.
- 남구만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넘어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이런 시조를 창(唱)하는 경우 보통 종장의 '재 넘어~ 언제 갈려'까지만 읊고 마지막 음보는 생략한다. "동창이 밝았느냐" 시조창
시조 여러 개를 이어 하나의 시로 만든 '연시조'라는 새로운 형태도 만들어졌다.[4] 현대의 시조 작가들은 보통 이 방식을 이용하며, 보통 평시조를 이어서 사용한다.
한국의 3대 시조집이라고 하면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를 일컫는다.
2. 종류
2.1. 평시조
3장 6구를 정확히 지킨 작품.
- 양사언태산이 높다 한들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아마도 시조를 배우면 제일 처음 접하게 되는 작품일듯.
- 월산대군 (성종의 형)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無心)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 이방원. 하여가(何如歌)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萬壽山) 드렁칡이 얽혀진들 그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百年)까지 누리리라
- 정몽주. 단심가(丹心歌)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싈 줄이 이시랴
조선 태종 이방원과 정몽주가 서로 대구로 주고받은 시조 두 수. 단심가를 듣고 나서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일 마음을 먹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2.1.1. 구별 배행 시조
시조를 장별로 줄을 나누어 세 줄로 쓴 시조가 아닌, 구별로 나누어 쓴 시조. 한 장을 한 연처럼 보이기 위해 장별로 행을 또 나누기도 한다. 현대 시인들이 시조 형식에 변화를 주기 위해 사용한다.
- 개화(開花) 이호우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 진달래, 이영도(시인)[5]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山河).
- 벽공, 이희승손톱으로 툭 튀기면
쨍 하고 금이 갈 듯,
새파랗게 고인 물이
만지면 출렁일 듯,
저렇게 청정무구(淸淨無垢)를
드리우고 있건만.
2.2. 엇시조
3장 6구를 지키긴 하지만 어느 한 부분이 늘어나 있다. 어긋난 시조라는 뜻. 평시조와 사설시조 사이에 애매하게 위치함으로써, 그 나름의 독자적인 미학을 창출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엇시조라는 개념의 설정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 있다. 현재는 시조의 이른바 3분류법을 부정하며 엇시조를 빼버려야 한다는 논의가 거의 정설처럼 되어가고 있다.
- 송시열청산(靑山)도 절로 절로 녹수(綠水)도 절로 절로
산(山) 절로 수(水) 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
그중에 절로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절로.
2.3. 사설시조
조선 후기에 상품경제의 발달과 한양, 지역별 장시를 배경으로 유흥문화가 발달하면서, 사대부 취향 일변도였던 시조가 점차 중인이나 부농, 부유한 상인 등에게도 유행해 점차 대중화한 형태로 추정된다. 평시조의 기본을 지키면서 각 장을 길게 늘여 쓰거나, 초장은 그대로이고 중장 혹은 종장, 혹은 둘 모두 확장하거나, 때로는 대구를 이루어 반복되는 형태이다.
- 김수장모란은 화중왕이요, 향일화는 충효로다.
매화는 은일사요, 행화는 소인이요,
연화는 부녀요, 국화는 군자요,
동백화는 한사요, 박꽃은 노인이요,
석죽화는 소년이요, 해당화는 계집애로다.
이 중에 이화는 시객이요,
홍도, 벽도, 삼색도는 풍류랑인가 하노라
2.4. 양장 시조
양장 시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조의 구성인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으로 이루어진 형태에서 중장을 생략하여 양장(2장)으로 줄인 형태이다. 즉 쉽게 말해 6구에서 4구로 시가 축약되어 있다. 노산 이은상 시인이 처음으로 시도했다.
초반에는 이은상을 비롯한 여러 시조 시인이 양장 시조를 창작했으나, 일본의 정통 정형시인 와카의 5.7.5조와 7.7조의 2행 구조를 시조 3장에서 한 장을 뺀 형태로 접합시켜 본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형태가 지나치게 작위적이며 반일적인 민족 감정도 작용하여 작가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잊히며, 이은상 역시 후속 작품을 발표하지 않아 실험작으로 그치고 말았다.
- 이은상, 소경 되어지이다뵈오려 안 뵈는 님, 눈 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 되어지이다.